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예견]

죽음이라는 것은 나와는 해당 사항이 없는 줄 알았다.

있어도 저 멀리 있는 줄로만 알았다.
몸속에 숨어 똬리를 틀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내가 꿈을 하나씩 키워 갈 때
그놈은 내 안에서 세포를 하나씩 먹어 치우고 있었다.

내 안에 죽음의 영토가 커지고 돌이킬 수 없게 되면
난 영락없이 삼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두려움은 없다.
살 만큼 살았고 먼저 간 친구들보다는 더 살았다.

사명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목회도 끝나 있다.
지키고 싶은 명예는 더더욱 없다.
하고 싶은 사랑놀이도 없다.
자식도 다 자라 독립할 수 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남아있지 않다.
그냥 죽음에 삼키어 그렇게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육신을 먹어 치울지라도
영혼은 손대지 못할 것이다.
주의 품에 안기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많은 죄를 지었다.
죽음의 화살은 나의 죄를 표적 삼았겠지.
그리고 그 화살에 맞았으니 죽어야지.
그러나 난 죽어도 살 것이다.
주께서 살려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붙들고 저쪽으로 기울어져 간다.

 

아침에 펴든 국민일보 신문 기사에 무료급식자원봉사자로 열심히 일하시던 한 여 집사님이 2005년 설날 음식을 준비하던 중 하혈이 쏟아져 병원으로 옮겼더니 신장암으로 판명되어 수술 후 1개월이 안 되어서 사망하였고 그 일로 남편은 충격을 받아 무료급식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이제 정신을 차리고 추석 후 다시 무료급식을 시작한다는 기사는 나를 급격히 어둠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거의 나와 같은 증상이었습니다. 신장에 혹이 두 개나 있으니 정확한 판명을 위해 CT촬영을 해보자고 하는 권유를 받고 있던 터였었습니다. 그렇다면 악성이라면 수술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조용히 주의 부르심에 응답하리라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썼던 [예견]이라는 글입니다.

 

친구의 강요에 못 이겨 다시 진찰을 받으러 갔던 방사선과 의원의 원장은 단순 물혹이니 걱정할 것 없다는 진단을 주셨지만 아직은 정확히 모르니 6개월 후에 다시 진찰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였고 나는 개척하다시피 일군 교회를 젊은 후임자에게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께서 일을 맡기실 때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며 살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보자던 6개월도 훨씬 더 지나도록 잊고 있던 일을 새삼 떠올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옆구리가 이상한 것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었던가 잊고 있었던 신장의 혹이 나의 생각을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올 게 왔다는 신호가 온 것입니다. 통증이 시작했다면 이미 늦어버린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나 가더라도] /천헌옥

가더라도
아주 간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없다고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더라도
흔적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정지되었다고
천국에서 정지된 것은 아닙니다.

가고 난 뒤
울어준다고 위로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글과 사진들로 인해
좋았더라고 웃어줄 수는 있을 겁니다.

가더라도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먼저 가서
번개 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죽음이 엄습해 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봐야 했습니다. 가서 진단을 받아보아야 했습니다. 가더라도 어떻게 간다는 것은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산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직은 물혹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너무 커졌다는 것입니다. 신장은 그리 간단한 수술이 안 되기 때문에 혹을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고 혹을 줄이려면 긴 주사기로 물을 빼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또다시 물은 찬다는 것이니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혹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혹 안에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안심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놓습니다. 아직은 악성 단계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혹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한 가닥 불안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다시 6개월 후에 검사해보자는 진단을 받고 왔습니다혹이 생각 외에 많이 커졌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여기까지가 2005년의 일입니다.

 

<추후>

그래서 부산을 떠나 인천으로 왔습니다.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사라지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나와는 달랐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A일보에서 사진기자 훈련도 받으면서 6개월이 지나니 코람데오닷컴 편집장 자리에 갖다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죽을 몸이라고 생각하니 아무 겁도 없었습니다. 모든 기사는 겁 없이 썼기에 혹 불편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12년을 지나 은퇴를 했습니다. 지난번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혹은 지름이 7cm가 되도록 자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늘 경성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오히려 복입니다. 죽음을 달고 사니까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갈 것입니다. 일생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들로 낯을 들 수 없지만 그런 연약한 저를 주께서는 품어 주셨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되다고 하셨으니 나, 가더라도 애석해할 필요가 없는 것은 복된 죽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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