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 담임, '다음 세대를 구하는 7가지 법칙' 저자)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 담임, '다음 세대를 구하는 7가지 법칙' 저자)

김훈 소설가의 장편 소설 <하얼빈>이 현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구미남교회 천석길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 <하얼빈>은 안중근에 관해서 쓴 책이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일본어: 伊藤博文)를 처형했다. 안중근이 그를 처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1905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군대를 해산시킨 죄,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한국이 300만 영국 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 죄. 안중근은 열다섯 가지의 죄목을 제시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했다.

그 후 안중근은 코레아 후라’(코리아 만세)를 외치고 순순히 붙잡혔다. 안중근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할 때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參謀中將)으로서 한 것이다. 안중근은 사명감으로 그 일을 했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거사를 행한 후에 재판받기 위해서 오랫동안 조사를 받았다. 심문받고 또 재판하는 가운데, 그는 당당했다. 그는 자기가 왜 그 일을 했으며, 그 일을 하고 나서 이후에 그가 받아야 할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 길을 걸어갔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했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27:27~28)

금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씌우고 손에 갈대를 쥐게 한 다음 다시 그 갈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를 때렸다.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27:30~31)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총독의 군병들에게 매우 심한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다. 그리고 골고다에서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았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27:35~36)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은 일반적으로 노예들에게만 주어지는 로마 형벌이었다. 일단 사형수는 발가벗긴 후, 십자가 형틀에 눕힌다. 그렇게 한 후 못을 손목이나 손 위에 댄 채로 그 형틀에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 십자가 형틀을 이미 곧게 세워 놓은 기둥에 어떤 방법으로든 달아맸다. 예수님의 발도 각각 그 나무(십자가)에 다 박았다. 군병들은 지휘관의 명령대로 그 형을 집행했고, 그러고 나서 예수님의 옷을 찢어 제비뽑아 나눠 가졌다. 그런 권리가 관례를 따라 그들에게 주어졌고, 그들은 지체없이 관례대로 행했다. 이때 군병들은 앉아서 예수님을 지키고 있었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를 붙였더라.”(27:37)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19:19~20).

죄 패에 쓰인 것은, 예수님을 처형하게 된 이유에 대한 공식적인 진술로서, 빌라도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다. 요한복음 1920절에 보면, 이 죄 패가 세 언어 즉, 아람어, 라틴어, 헬라어로 쓰였다. 이 죄 패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공포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은 큰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모진 고생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모욕을 당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시던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권능의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사랑은 기꺼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이다.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희생, 그것이 바로 참된 사랑의 표현이다. 살리기 위하여 내가 대신 고통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가페사랑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또한 사명이 주어졌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또 그 일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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