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전철은 만원이었다. 동대문에서 인천까지는 50분은 견디어야 하는 거리이다. 결코 만만찮은 거리이다. 창경궁을 관람하느라 몇 시간을 걷고 난 후에 전철을 타게 되니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서 맨 앞칸이나 맨 뒤 칸이라도 올라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만원인 객차 안에서는 앉았다는 것은 대단한 기회를 얻음이었다.

이리저리 시달리고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들의 부대낌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도 서울역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는 눈을 감고 편안히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뿐 어디서 아주 이상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참으로 고약하지 않은가.

좌우를 살펴보니 왼편에는 넥타이를 한 멋진 신사가 앉았고 우편에는 어수룩한 옷을 입은 장년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졸고 있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졸고 있는 그 어수룩한 장년이 의심스럽다. 옆의 신사에게는 추호도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신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냄새는 더욱 강하게 코를 자극한다. 그가 숨을 내쉴 때 그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을 보면 냄새의 범인은 그 신사임이 틀림없었다.

멀쩡히 생겼고 옷도 말끔히 입었는데 이 무슨 냄새인가. 속에 병이 있을 때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그에게서는 아주 특이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 향기롭지 못한 고약한 냄새다. 코를 돌리는 것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야 하는 그런 냄새다.

한국 사람에게는 된장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는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된장 냄새로 알아낸다고 하는 말이 있다. 오래 된장을 먹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그것은 얼마나 고소하고 향기로운 냄새인가. 그것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리라.

몇 년 전 서구를 여행할 때 프랑스의 어느 호텔에서 아침을 먹기 위하여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는 승강기를 탔다. 그런데 마침 두 사람만 타게 되었는데 서양의 노년에 속한 여성분과 함께 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둘은 탈 때만 서로 굿 모닝 하였을 뿐이지 15층에서 지하 식당까지 내내 돌아서 있었다. 나는 그녀의 냄새 때문이고 그녀는 나의 냄새 때문이었다.

같은 식당을 가지만 그러나 어쩌랴 버터와 치즈 그리고 고기를 많이 먹는 그녀에게서 나는 특이한 노랑 내를 내가 참지 못하겠음이고 된장에 찌든 나의 냄새를 그녀가 참지 못하겠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외면한 채 거리를 두고 돌아서 있어야 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냄새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어수룩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아예 몸을 틀어 앉아 오히려 그 어수룩한 남자에게 기울어져 밀착하고 있었다. 겉으로 깔끔하기보다는 비록 어수룩하여도 냄새가 없는 그가 오히려 더 친근해 보이기조차 하였다. 말끔해도 냄새가 나는 사람보다는 어수룩해 보여도 냄새가 없는 사람에게로 기울어진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15초간 넘게 문이 열려 있을 때는 바깥바람이 몰려 들어오는데 그 시원함과 상쾌함이란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냄새 때문에 오래 신경을 쓰면서 오다 보니 머리가 띵하니 아파온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는 대여섯 정거장을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그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그쪽으로 기울어져 코를 두고 있던 내게 그 졸고 있던 남자가 지독한 가스를 분출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꿈속에 있기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날 나는 이래저래 냄새로 곤욕을 치르고 전철에서 내렸다. 상쾌한 바람을 쐬며 집으로 올라가는 나는 새삼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본다. 혹시 나도 냄새나는 사람은 아닌가. 옷은 말끔히 입고 향수를 뿌려 물리적으로는 향기 나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그래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냄새 나는 사람은 아닌가? 누구에게나 향기가 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 향기 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그 향기를 맡으려고 몰려올 것이다.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그곳을 펴들고 읽어 내려간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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