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을 오르며]

수락산을 가기 위해서 나는 없던 부지런을 떨어 9시에 출발하여 1030분에 수락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맞은편 도봉산이 왜 수락산을 가느냐고 묻는다. 그건 내 마음이라고 말해 주기는 했어도 실은 사연이 없을 수 없다. 네게로 가기 위해서는 거금이 필요하지만, 수락산은 입장료가 없다는 것이 이유라고 말한다면 야 이 좀생이야 그럴 것 같아서 내 털어놓지만 수락산에는 내가 뿌려놓은 추억이라는 것이 있다.

수년 전이랄까 주말이면 어김없이 우린 도시락을 싸 들고 거기를 갔었지. 사 먹는 것은 그렇다고 꼭 손수 싸게 만들어서 넉넉하게 담아지고 올랐던 곳이야 거기서 우린 많은 이야기들을 숲에다 해 두었거든.

이제 내가 가면 아마 숲들이 돌 하나라도 내게 그 이야기를 다시 돌려줄 것 같아. 그래서 아침 부지런을 떨었던 거야. , 그런데 수락산의 정자는 홀로 사람이 그리워 기다리다 늙어 버렸나 머리가 하얘지다니 네 의자에 앉았던 그 여인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네가 나인가 내가 너인가.

나 하나만 족하지 너까지 이렇게 쓸쓸히 고독을 씹고 있더란 말인가? 그래도 넌 희망이 있다. 겨울 지나고 여름 오면 다시 널 찾을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락산 바위들은 햇볕을 쬐고 서서 누가 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나를 알려나 얼굴을 드니 아무리 말 못 한다고 얼굴까지 잊어버리겠느냐고 나무란다.

갑자기 그들이 커져 보인다. 나는 왜 이리 작아졌는지 언제나 산 앞에 서면 겸손해져야 한다는 진리를 듣는다. 그런 나를 그는 어서 오르라고 손짓한다. 이전엔 깊은 산골이었을 이 산에도 어김없이 무덤은 있었다. 비석을 볼 때마다 나는 이전 어느 공동묘지에서 본 젊은 부부를 기억에서 털어내지 못한다.

봄산을 올라보라 수많은 꽃들이 환영할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봄산을 올라보라 수많은 꽃들이 환영할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어제 세운 비석에
이슬내리고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
내 마음엔
소나기 되어 내린다.

쨍쨍한 하늘
가을의 높음을 자랑하지만
내 마음엔 먹구름 장마가
독방신세로 갇혀 있다.

당신이 아이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중얼 거릴 때
내 마음은
천길 벼랑으로 떨어진다.

여기가 그 유명한 깔딱 고개. 너무 가팔라 오르기가 힘들어 붙여진 이름인가. 이름값을 하느라고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숨 한 번 깔딱하고 나면 오를 수 있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으리라. 이전 깔딱 고개를 올라 그와 나누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여름산은 또한 아름다운 색을 선물할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여름산은 또한 아름다운 색을 선물할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수락산]

깔딱 고개를 깔딱 거리며
오르는 사람들
저 멀리서
오색 치마 입은 처자가 오는가.
깔딱거리는 소리 들리다.

한여름 제 세상인양
매미는 그렇게 울더니
태양이 높이 오르고
하늘이 더욱 파래질 때
너는 구름을 타고 승천했는가.

적막한 수풀 사이로
소리 없이 다가와 수를 놓는다.
저 멀리로
오색 치마 입은 처자가 오는가.
깔딱거리는 소리 들리다.

내려다보니 아찔한 급경사다. 위를 오를 땐 위만 바라보아야 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레 겁을 먹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법이다. 만사가 그러할 것이다.
수락산 바위가 이제 저긴데 그 바위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가을산은 가을의 정취로 힐링을 줄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가을산은 가을의 정취로 힐링을 줄 것이다. 사진@천헌옥 목사

[바위의 사랑]

따가운 햇볕 그대로
얼음장 달빛 그대로

누구 보듬어 주는 이 없는
누구 눈여겨 주는 이 없는
절벽위에 오뚝이 앉아
수천 년을 기다려
속만 터졌더이다.

속 터진 사이로 씨알하나
받았더니
기다린 보람인지 뿌리박고
어느 듯 연인되었다네.

따가운 햇볕 가려주고
얼음장 달빛 막아주어
지난 세월 달랬더니

점점 깊이 들어와
마음까지 다 주었는데
그가 사랑하는 것이
이슬인 것을 알고
터진 속은 아예 갈라져
내리더이다.

그래도 사랑하리라
산산이 깨어져도 사랑하리라
밤마다 아픔을 견디며 사랑하리라

그가 죽으면
썩은 뿌리를 안고서라도
천년에 하나 얻은 사랑을
사랑하리라.

그렇다. 바위도 천년만년 그대로일 수 없다. 갈라지고 쪼개어지고 변한다. 우리네 사랑을 바위에 새기면 언젠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에 쓰면 될까? 밤하늘의 별들에게 고백할까?

겨울은 백지장같은 흰색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사진 기독사진가협회 황매란 사모
겨울은 백지장같은 흰색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사진 기독사진가협회 황매란 사모

[사랑을 심비에 쓰세요]
 

사랑을
하늘에 쓰지 마세요.
장마 지면
그 모든 언어가
당신의 가슴에 내려 꽂혀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될 테니까요.

사랑을
별들에다 고백하지 마세요.
별들이 지면
다시 별을 만날 때까지
그 모든 언어를
들을 수 없을 테니까요.

사랑을
가슴에 대고 쓰세요.
가슴에 새긴 것은
계속 흘러나와 강을 이루니까요
돌비(石碑)에 쓴 것은 세월 따라 희미해지지만
심비(心碑)에 쓴 것은 영원한 것이니까요.

그들이 계속 더 신비한 곳으로 유혹하며 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고 인천까지는 갈 길이 멀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내려와야 했다.

 
사진/ 글
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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