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Asi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HL 교수) 부산대학교,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 영국 브리스톨 트리니티대학교에서 구약윤리를 공부했다. 경성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통일교육문화원 이사장, 애국지사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이성구(Asi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PHL 교수) 부산대학교,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 영국 브리스톨 트리니티대학교에서 구약윤리를 공부했다. 경성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통일교육문화원 이사장, 애국지사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잦아지는 북한의 도발, 대책이 있는가?

최근 들어 북한이 지속적으로 동해안, 서해안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어 걱정이다. 혹시라도 국방에 빈틈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김정은은 고모부도, 이복동생도 마구 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 대한민국을 향하여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증가하고 있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 510일 이후 이틀 만에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쏘며 도발에 나섰고,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지대공미사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수시로 발사하며 무력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현재(11.10)까지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은 모두 65발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지대공미사일 6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2발로 집계됐다. 여기에 언론을 통해 공개된 순항미사일은 4발로 확인됐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추정치로 계산해보면, 지대공미사일을 포함한 단거리탄도미사일 62발 발사에 모두 2,356억 원이 소요되었다. 중거리탄도미사일 1발은 125억 원, 대륙간탄도미사일 2발은 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순항미사일 160억 원까지 더하면 총금액은 3,141억 원, 달러로는 228백억 달러에 달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북한은 1년 식량 도입에 7천만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발사한 미사일 가격만으로도 3년 치 식량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결국 북한의 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래서 한반도의 위험은 더 가중되고 있다. 북한은 이 모든 작업을 통해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순간, 우리는 그 핵 위협 아래 놓여 북한에 종속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 한국의 유사성

흥미롭게도 구약에 나타난 고대국가 이스라엘과 근대국가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매우 근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 이스라엘은 지파 동맹체 시대를 지나 왕정국가로 세워진 후 겨우 120년 만(BC 1050~930)에 남북으로 분열된 역사를 갖고 있고, 우리나라 근대사는 1897년 시작된 대한제국 시대로부터 겨우 51년이 지난 1948년 남북으로 분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이 남쪽에 이집트, 북쪽에 앗시리아, 동쪽으로 바빌로니아 등 대국들에 둘러싸여 항상 눈치를 보고 외교적 부담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강대국 속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이 북국은 앗시리아에 망하였고, 남쪽은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것처럼 분단된 대한민국의 북쪽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그 사상에 지배받고 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면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못하다.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가 망한 586년 이후 근대 국가를 재건한 1948년까지 2,534년간이나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한 채 유리방황하였으나 지금은 고대에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던 전체 영토에 이스라엘이라는 단일 국가를 다시 세웠다. 물론 본래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 특히 그들의 절대적 성지인 예루살렘에까지 적대적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이 자리를 잡고 있어 늘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고 그들을 통제권 안에 두고 있다. 우리는 남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최근 들어 갈등과 긴장의 강도는 더욱 높아가며 통일의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드는 느낌을 받고 있다.

성경의 나라, 곧 우리에게 모델로 주어진 나라일 수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서 통일을 위하여 우리가 배울 교훈은 없는 것일까?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여기서 나는 아모스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자기의 이름을 담은 책을 남긴 선지자의 모습을 보면서 통일을 바라는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살피려 한다.

 

남쪽 드고아의 목자 출신 예언자를 북쪽으로 파송하다

BC 760년 경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전쟁이 그치고 살림도 어렵지 않은 시대였다. 2장에 나타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나, 4장에 나타나는 특정 지역인 바산의 암소들에게 외친 아모스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이스라엘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현저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봉건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예언자들이 두드러지게 활동한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남쪽 유다가 아니라 단과 벧엘에 독자적인 제단을 만들고 남쪽과의 교류를 막은 북왕국 이스라엘이었다. 예언자의 역사는 아브라함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20:7)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조시대가 등장하기 직전 나타난 사무엘이 선지자들과 함께 전문적으로 예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삼상 10:11).

그 후 예언자의 대표인 엘리야(17:4, BC ?-849)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을 비판하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열왕기는 그 이름대로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이어지는 예언자에 대하여 길게 할애하고 있다(왕하 1~8). 북이스라엘의 예언자 계보는 마침내 최초로 문서를 남기는 아모스 선지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한 호세아 선지자로 이어지고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왕이나 제사장보다 선지자들의 사역이 돋보이는 역사를 보여준다. 여전히 솔로몬 성전이 자리를 지키면서 이스라엘 고유의 예배 의식이 살아있는 예루살렘보다는 유사 제단인 벧엘과 단에서 모이는 이스라엘의 예배는 본질에서 많이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선지자들의 질타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리적 유일신론이라 할 만큼 강력한 예언으로 새로운 예언자 시대를 연 것으로 일컬어지는 아모스 선지자는 기실 북왕국 출신도, 예언자의 가문에서 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남유다 예루살렘 남방 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드고아(teqo'a) 출신으로 직업은 목자였다(1:1, 7:14). 놀랍게도 주전 9세기부터 막강한 선지자 전통이 세워진 북 왕국으로 남쪽 유다 평민 출신이 선지자 역할을 하도록 보내졌다. 이미 선지자의 전통이 서 있는 곳, 엘리사 시대는 선지학교까지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왕하 2:3,5,7) 그 북왕국에서 왜 남유다 출신 아모스가 사역하게 된 것일까?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사장 아마샤와 남왕국 유다 출신 아모스는 벧엘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7:10-17).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남쪽으로 도망갈 것을 촉구한다. 거기로 가서 떡을 먹으라, 그곳에서 빌어먹고 살라고 권고한다. 마치 밥 빌어먹기 위해 북으로 올라온 것으로 치부한다. 감히 벧엘이 어디라고 여기서 마음대로 예언이랍시고 하느냐고 힐난한다. 왕의 성소, 나라의 궁궐이 있는 벧엘에서 예언하는 것은 왕에 대한 모반이라고 단정한다. 그의 예언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로보암 왕이 칼에 죽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될 것이라는 엄청난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당장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왕에게 알린 아마샤는 아모스에게도 화가 임하기 전에 빨리 도망을 가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모스의 발언은 신랄했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후 감히 유다 출신 선지자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예언을 마음대로 선포하는 아모스가 북국 이스라엘에 등장한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상황이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예언자 전성시대를 누렸던 북국이었지만 어느새 그 막강한 선지자들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나라는 영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었다. 최후의 수단이 필요해졌음을 알 수 있다.

구약이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나라의 안위가 결코 정치적 안정, 경제적 부요에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가 위기의 핵심은 도덕적 부패와 신앙의 타락에서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선지자 아모스는 강력하게 선포하였다. 아모스 2:6-8절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한 내용은 부패의 핵심 사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아모스 2:6-8).

의인은 내치고, 가난한 자를 궁지로 내몰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예배의 자리마저 욕망으로 얼룩지게 만든다는 것이 아모스가 파악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였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결코 그 벌을 돌이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스라엘은 멸망은 필연적인 미래가 된 것이다.

 

북한을 향한 회개의 촉구가 필요하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오늘의 북한보다는 훨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때가 위기였고 선지자들은 강력한 메시지로 북왕국을 흔들어야 했다. 물론 BC 9세기의 선지자 엘리야 이후 북왕국의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BC 8세기 후반 호세아 선지자의 심판 메시지를 받은 북왕국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마음껏 조롱했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9:7).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고 외치는 선지자를 이스라엘인들은 바보스럽다거나 미쳤다고 할 정도로 우습게 대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적인 자신감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기 때문에(1:1, 1:1) 선포를 시작하였던 그들이라 어떤 방해 공작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심판의 메시지를 이어갔다.

오늘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교회는 통일을 위하여 무엇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가? 모든 방안을 국가에 맡기고 기도만 하면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남쪽 유다 출신 아모스 선지자가 감당했던 사역을 깊이 고려해보아야 한다. 아모스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통일은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통일은 논의의 주제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지리적 정치적으로는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적으로도 상관할 수 없는 다른 존재로 간주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남쪽 드고아 출신의 아모스가 북왕국의 수도 벧엘로 올라가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한 것을 두고 북왕국 제사장 아마샤가 극렬하게 반대 의사를 드러내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되받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7:15).” 여호와께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라고 하셨다는 것이 예언자들의 일치된 진술이다. 하나님 앞에서 분열된 두 나라는 없다는 말씀이다. 예언자들이 해야 했던 말은 역사 앞에 드러난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죄악에 대한 단호한 심판의 선포였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외교적 전략을 세밀하게 세워야 한다. 북한 핵실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튼튼한 국방전략, 한미, 한미일 군사동맹을 통한 안보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존 볼턴(John Bolton)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말대로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 핵은 하룻밤에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국방을 위해서는 핵문제의 해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북한의 비참한 영적 상황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군대는 휴전선에서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북쪽을 향한 방송을 중단했다. 풍선을 날려 북한의 정체를 폭로하고 김정은이 지은 죄를 지적하거나 남한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어 놓았다.

북한이 미사일을 난사하는 지금도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하여 말할 때 북한을 돕거나 통일 후 북한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그들의 죄악상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공론화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의 제재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때도 교회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경제적으로 도와주거나 북한의 편을 들면 북한 문제가 해결되거나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이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역시 우리가 막대한 경제적인 손해를 보아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특히 한국교회가 통일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할 일은 아모스 선지자처럼, 북으로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심판을 선포해야 하는 일이다. 제주 극동방송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적지 않고, 휴전선의 방송, 풍선에 담긴 남북한의 실상이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경우가 상당하였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이 북한 인권에 대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 대한민국 공교회는 북한이 우리 해수부 공무원을 불태워도 입을 다물었다. 세계 종교 통계 사이트 애드히런츠닷컴 (adherents.com)신도 수에 따른 세계 주요 종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주체사상'은 신도 수 1,900만 명 이상으로 힌두교·유교·불교 등과 함께 세계 10대 종교라고 발표하고 있다. 게다가 평양 봉수교회 리성숙 목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김일성 주석이다. 김일성 주석이 하나님이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런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함께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공동기도문을 작성하면서도 북한 당국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한 기억은 없다. 이제 이런 굴욕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정책만으로 통일은 주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퍼주기도 해보았고, 틀어막기도 하였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좀 더 강력하게 한국교회가 아모스 선지자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할 말을 하는 복음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제2, 3의 아모스가 나타나야 할 시점이다. 회개의 메시지와 함께 북한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야 통일이 우리에게 해방처럼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한국교회가 너무 허접한 모습을 많이 드러내 부끄럽고 답답하다. 대오각성할 시간이 벌써 이르렀다.

 
※출처 월드뷰 2022년 12월호(저자의 허락으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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