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오늘 출석하는 교회에서 유아세례가 집례되었다. 8명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서약을 하고 차례로 강단에 등단하여 아기를 담임목사의 품에 넘겨주어 유아세례가 베풀어진다. 모두가 숨죽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멘' 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회당이 웃음바다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 아기가 아빠, 아빠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아기는 아빠의 품 안에 안겨 있다가 담임목사의 품으로 넘겨지자 아마도 아빠가 자기를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예수를 믿는 ㅇㅇㅇ의 아들 ㅇㅇㅇ에게...”하는데 아빠, 아빠하면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온 교회당에 울려 퍼졌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예기치 않게 아기가 교인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나에게는 또 다른 깨달음의 은혜가 밀려들었다. 아이의 아빠라는 외침이 아빠 아버지라고 들리면서 그의 울음소리는 회개의 통곡 소리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서 웃고 있는 아내에게 저 아이가 아빠 아버지를 부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는 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너는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음을 터뜨렸던가? 그때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기라도 하였던가? 아기는 다른 본능적인 의미로 아빠를 찾으면서 울음보를 터뜨렸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은혜로 찾아온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아기가 물을 찍어 머리에 얹는 목사의 손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목회할 적에 그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것이 마치 세례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를 출산하고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는 날 부부를 한 시간 정도 일찍 교회에 오도록 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공부와 문답을 실시하고 그날 주일 예배 시에 유아세례를 집례 하였던 것이다. 아기가 전혀 거부할 수 없는 시기이기에 손을 밀어내거나 울거나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를 광고를 통해 교인들에게 예고하였을 뿐 아니라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꼭 전화 심방을 하거나 전도사와 아내를 통해 방문하고 이러저러할 터이니 준비하라고 일러둘 뿐만 아니라 아기를 안고 교회에 처음 오는 주일엔 목사에게 전화하게 해서 서로가 준비하도록 하였다.

나는 그것이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유아세례를 보면서 이런 은혜도 있구나 하고 느끼는 바가 컸다. 그러려면 늦어도 한 살 이상은 넘기지 말아야 하겠고 아빠하고 울기는 하겠지만 머리에 얹혀진 목사의 손을 밀어내는 것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는 때가 적당하리라 생각했다.

세례는 죄인인 육신의 내가 물에 빠져 죽는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예식이다. 세례요한이 시작했지만, 예수님이 이를 받아 계승시켜 기독교회라면 꼭 거쳐야 하는 예식이 되었다. 마태복음 28: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예수님이 친히 명하신 것이 세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정 교인이 되는 입문만이 아니라 죄인인 육의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예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아버지를 울면서 찾을 수 있는 은혜가 넘치는 세례가 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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