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 저항의 땅에 꽃피운 기독교 문화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기나긴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인천의 섬 강화도는 예로부터 외지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서양의 종교를 전파하려던 선교사들은 섬에 들어가지 못해 번번이 발걸음을 돌리거나, 나루터 주변을 전전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도성 바깥에 예배소가 차려지고, 배 위에서 세례가 이뤄지는 과정 등을 거쳐 강화도에도 조금씩 기독교 신앙이 스며들었다.

'선상 세례' 재현한 조형물[강화교산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선상 세례' 재현한 조형물[강화교산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저항의 섬 강화도에 뿌리내린 기독교

인천 강화도에 있는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은 근대 기독교가 이 섬에 전파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2층 건물에 마련된 전시관에는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 한편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려 꽃 피우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을 비롯해 조선시대 병자호란, 병인양요·신미양요 등 외세 침략의 아픔과 이를 견뎌낸 민족적 자긍심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이 섬에 서양의 종교를 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화도 첫 선교는 18937월 영국 성공회 소속 신부 워너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1년 가까이 강화도로 통하는 물길을 답사한 뒤 선교를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도성 내 외국인 거주가 금지돼 있어 관문인 진해루 바깥의 갑곶 나루터에 예배소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워너는 이곳 나루터와 장터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보육원을 세우는 등 선교 활동을 펼쳤다.

외지인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1892년 미국인 선교사 존스는 강화도를 방문했다가 입도(入島)가 허용되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이듬해 인천 제물포에서 만난 이승환의 요청에 따라 그의 어머니에게 세례를 행하기 위해 다시 강화도로 향한다.

이때 이승환은 한밤중 어머니를 업고 바닷가로 나가 존스가 있는 배 위에서 세례를 받도록 했다. 이른바 '선상 세례'를 기점으로 전도가 활발히 이뤄지며 강화도 첫 감리교회인 교항교회(현 강화교산교회)가 세워진다.

한옥 형태의 진촌교회(현 서도중앙교회)[인천시 강화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옥 형태의 진촌교회(현 서도중앙교회)[인천시 강화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울러 진촌교회(현 서도중앙교회)와 온수리성당, 홍의교회,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 성공회강화성당 등 유서 깊은 교회들도 잇따라 문을 연다.

기독교에 내재한 도덕적 의식과 민족주의적 특성은 강화도에 빠르게 스며들었고, 일제강점기 강화도 교회를 중심으로 항일 민족 저항운동이 역동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온수리교회는 교회 깃발을 매달아 주일이나 대축일을 알리는 데 사용했는데 한일합병 시기 조선의병과 일본군 사이의 산발적인 전투나, 저항운동 당시 현장 상황을 알리는 신호로 활용했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촬영 김상연]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촬영 김상연]

주체적인 종교 해석전통문화 결합

선교 활동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생겨난 강화도 교회들은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강화도에는 기독교와 전통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해석한 특색 있는 신앙이 형성됐다.

영국 선교사 트롤로프는 한국 문화에 적합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신자 김희준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구상했다. 이들은 1898년 강화군 관청리에 2500평 규모의 터를 매입한 뒤 190011월께 성공회 강화성당을 건축했다.

강화성당은 2층 석탑 형태의 전통 한옥으로, 내부는 중세 서양의 바실리카 성당 양식을 따랐다. 국내에 현존하는 한옥 교회 중 가장 오래된 이 성당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국가사적으로도 지정돼 있다.

강화도 내 주체적인 기독교 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돌림자 개명 운동'이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1층 모습[촬영 김상연]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1층 모습[촬영 김상연]

강화도의 초기 기독교 역사를 기록한 자료에는 ''()자로 끝나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강화지역에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홍의교회에서 집단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합심해 개명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성을 바꾸지 않는 대신 이름 마지막 글자를 모두 ''로 통일했다고 한다. 기독교의 세례명 관습을 받아들이되 전통적인 이름과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홍의교회 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의미로 검은색 의복을 입어 한때 '검정 개'라는 조롱과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기독교식 장례 문화를 꽃피우는 등 종교 토착화에 앞장섰다.

최훈철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이사장은 "강화도만의 특색 있는 기독교 문화와 신앙 선진의 발자취가 기념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내년부터 주요 교회를 거점으로 강화도 선교의 역사가 담긴 순례길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운영시간은 오전 9오후 6(일요일 휴관). 관람료는 성인(19세 이상) 2천원, 어린이·청소년·군인(718) 1500원이다.

goodluck@yna.co.kr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