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목사(덕암교회 담임)
박영수 목사(덕암교회 담임)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항상 단술을 빚으셨다.

한 봉지의 질금(엿기름이라고 도 한다)을 망사 보자기에 넣고 따뜻한 물에 빨아내면 뽀오얀 국물이 나온다.

이 물에 갓 지은 밥과 설탕을 추가하여 전기밥솥에 넣고 보온상태로 하루, 저녁만 두면 삭은 밥알이 동동 떠오른다.

이것을 한소끔 끓이면서 거품을 걷어내어 식히면 단술이 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요즘 나는 단술을 꽤나 잘 빚는다.

10여 년 전부터 빚기 시작한 나의 실력은 이제 결코 실패 없이 단술을 끓여낸다.

치자꽃물을 우려내어 노오란 단술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다 삭힌 후 생강을 넣어 생강단술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박영수 목사
사진@ 박영수 목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술은 생강단술이다.

단술을 빚을 때마다 나는 내 어머니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올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단순히 명절이니 어머니가 단술을 빚으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머니는 목회자의 아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서원하신 아버지의 그 서원을 따라 사명자의 길로 몰고 가셨고, 마침내 어머님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농어촌 목회자의 아내로서의 평생의 삶을 사셨다.

그러했기에 가난한 농어촌교회를 섬기던 내 어머니가 해내실 수 있는 가장 좋은 명절 음식은 단술이었다.

 

단술은 많지 않은 살림에도 언제나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참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우리 집의 명절에는 항상 어머니의 단술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주일에도 나는 교회 식구들이 먹고 난 뒤 밥이 남아 있기에 단술을 빚었다.

내가 만드는 단술은 뽀오얀 국물이 아니라 곰삭아 짙은 회색을 띄는 어머니가 빚으시던 그 단술처럼 만드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농촌 목회자로 살아온 나의 세월도 어느덧 30년을 넘겼다.

내 어머니가 가신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더욱 더 어머니가 빚으시던 그 단술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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