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주일 아침에는 교회에 가기 전까지 방송을 통해 설교를 듣는다. 말씀을 통한 은혜를 받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어느 주일 한 채널에서 대형교회 어느 목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직 실행해 보지 않았지만 해보고 싶은 예배가 있다. 찬송을 부르는데 그 찬송이 은혜가 되면 찬송을 부르다가 예배를 마치고 설교를 하다 오늘 설교가 은혜가 된다고 생각되면 설교만 하다가 예배를 마치고 싶다.”

거기까지가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의 마침표가 되었다. 도대체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예배는 내가 은혜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목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가? 그런데 예배의 목적을 은혜를 받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한다면 뭔가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배를 드리는 자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반드시 은혜가 있다고 믿는다. 그 은혜는 우리들, 목사나 찬양대나 기도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예배를 드리는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이다.

그렇다면 은혜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찬송하는데 은혜가 된다면... 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느끼는 감동(?)을 말하는 것인가? 예배는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목사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신약에서는 예배의 요소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 요소를 기본으로 예배 순서가 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의 요소는 성경 낭독(1:22), 기도(12:12; 딤전 2:8), 찬송(5:19), 고백(2:5-11), 가르침(5:42; 20:7), 세례와 성찬예식(2:41; 고전 10:16; 11:18-34), 연보(고전 16:1-2), 축도(고후 13:13; 13:20-21) 등이다.

25일 자 국민일보 기사에 모 여자 목사의 별세 소식이 떴다. 그는 동성애자 인권 옹호와 퀴어신학을 주장하고 사회운동에 앞장섰던 목사인데 지난 3일 향년 55세로 별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부고 소식 말미에 그 교회는 “5일 주일예배는 드리지 않는다.”목사와 유가족, 목사를 그리워하는 모두를 위한 기도로 대체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아무리 담임목사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그 목사와 유가족, 목사를 그리워하는 모두를 위한 기도로 예배를 대체한다? 도대체 예배를 누구를 위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어떤 이는 예배 시간에 박수치는 것을 권장하면서 특별히 찬양대의 찬양이 끝나면 박수를 치자고 말한다. 모두가 기도 끝나면 아멘 하듯이 설교 끝나면 '아멘' 하고 찬양이 끝나도 아멘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좀 더 나아가 찬양이 끝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라면서. 함께 박수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수고한 찬양대에 박수를 보내자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예배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도록 올려드리는 것이 예배일진대 어떻게 찬양대가 준비하느라 수고를 많이 했으니 그들을 위해 박수를 치자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박수를 치자고 한다면 설교 준비하느라 수고한 목사에게도 박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축도 외의 모든 순서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지 사람들의 축제이거나 사람들의 만족을 위한 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가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이 견지해온 예배인지 돌아보면서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요소들을 되짚어 보면서 예배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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