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혼자일 때는 거의 지하철을 애용한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은 도심에선 지하철이 그만이다. 시간만 잘 맞춰 나가면 제시간에 데려다주는 정확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다른 것은 나무랄 게 없다. 그것도 경로 우대를 해주니 그게 어디인가.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을 타면 못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관찰, 분석해 보는 것이다. 처음엔 젊은이들처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공부를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우리 나이에 마땅히 들을 만한 곡은 한정되어 있어서 몇 번 듣고 나면 그게 그거여서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30분 이상을 가야 하는 장거리일 때는 눈을 감고 마냥 조는 체 할 수도 없어서 나름대로 시간 죽이기 활용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 것이다. 대체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들의 지식수준이나 삶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생각을 풍성하게 가질 수 있다. 전화를 받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들의 관심사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재미로 관찰하다 보면 지루하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관찰의 대상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 시간 이상을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대체로 한가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앞줄을 훤히 다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마침 앞줄에는 단체 이동을 하는 것처럼 여자들만 죽 앉았는데 40대 후반, 50대 초반, 50대 후반, 60대로 보이는 다양한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주름이 패었고 깊은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해 보였다. 젊은 날의 기백과 자신감은 어느 시궁창에 버렸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고민을 하는 것일까? 왜들 저렇게 푹 팬 얼굴들이 되었을까? 누가 저들의 그 팽팽한 아름다움을 다 앗아 가고 깊은 고민의 주름만 남겨 놓았을까? 순간,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등골이 다 빠져버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한없이 슬퍼 보이고 불쌍히 보였다.

젊은 날, 그 무엇도 겁날 것 없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재잘거리며 거리를 쏘다니던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나면서 남편과 자식들이 그녀의 그늘에 앉아 등골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었으니,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씩 늘고 주름질 데가 없게 되니 패인데 더 깊은 주름의 골짜기가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싱싱한 잎을 휘날리며 바람을 유혹하던 그들이 열매를 맺으면서 영양분을 빼앗기다가 점점 고목이 되어가는 것이다. 60이 넘은 여자는 손자를 데리고 있다. 이제는 그 손자에게 마저 등골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관절염이 빨리 오고 등골이 굽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엄마의 등골을 빼먹고 자란 아이들은 그 사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나 주고는 있을까? 아마도 앞줄에 앉은 여자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저렇게 표정들이 고민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가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의 등골을 빼내어다가 제 주머니에 채우고 그 자식들은 희희낙락 오늘도 동무들과 재잘거리며 동네를 싸질러 다니겠지. 우리 엄마가 사 준 것이라며 비싼 아이폰을 자랑으로 내보이며 효도랍시고 엄마한테 전화하겠지. 엄마의 등골이 빠지는 것도 모르고.

생각이 거기까지 왔을 때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전화를 건다. “엄마, 나 그거 꼭 필요하거든. 그래야 졸업 된데. 알았지?” 그녀의 엄마는 또 등골이 빠질 일이 생긴 것이다.

목사는 대체로 70세에 은퇴한다. 그런데 은퇴하고 바로 원로 목사회에 오려 하지 않는다. 70세이지만 자신은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좀 더 나이 들어서 오겠다고 하는 대답이다. 그런데 은퇴식 날에 보았던 얼굴이 2~3년 후에 만나면 폭삭 늙은이로 변하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과 비교해서 말이다.

원로회에 앉아 있는 목사들, 정말 등골이 다 빠진 초라한 모습이다. 강단의 호랑이는 옛말이다. 이는 물리적인 노년의 정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단물이 다 빠져나간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목회 일선에서는 청년같이 달음박질하던 목사들이 은퇴 후에 급격하게 등골이 빠진 모습으로 변하더니 몇 년 후에 세상에서 은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등골 빠지게 일한 부모, 등골 빠지게 사역한 목사, 그 패인 얼굴이, 그 굽은 등골을 나는 여전히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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