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노인들 천헌옥

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1.

지난 4월경.
내가 사진 활동을 했던 한 사이트의 게시판에 어느 날 부고가 올라왔다.
80이 넘은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소천했다는 것이다.
일반 사이트에 그분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여기 부고장을 올렸을까 했는데
글을 읽으면서 아그분이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닉네임은 익숙하지만, 본명은 잘 알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새삼 그의 사진을 검색해 보았다.
3월 어느 날에 올린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3월까지도 높은 산을 오르며 사진을 담아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던 분이셨다.
그리고 한 달여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주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사진활동을 하시며 건강을 유지하셨고 즐겁게 사시다가
그리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시며 노년을 즐겁게 사시다가 가신 것이다.

2.
서울에 볼일이 생겼다.
기다리던 카메라 렌즈가 용산 땡땡 상가 ㅇ호점에 있으니 속히 가서 선점하라는
지인의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개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침 전철은 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70쯤 되어 보이는 촌로가 지팡이로 떠나가는 전철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놈들 손님이 오는 것을 보았으면 태워 가야지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도
그냥 가다니....."
전철의 마지막 칸이었기에 다행이었다.
달리는 전철을 막대기로 때리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노인은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놈들....
어른도 몰라보고.....
손님을 보고도 문을 닫다니...."
연신 지팡이로 가버린 전철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이 어른 분명 고향에서 유지쯤 되실 것이다.
동네에 납시면 모든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그런 분이실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멀리서 달려오는 손님을 기다려 주는 그런 인심 좋은 동네에 사시는
분일 것이다.
모처럼 아들네 집에 오셔서 아들 며느리의 후한 대접과 손자 손녀의 재롱을 한껏 받으시고
역까지 바래 드리겠다는 며느리의 호의도 마다하고
"내가 촌놈 아니여!"
그러면서 나오셨을 것이다.
그런데 전차는 그를 본체만체하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서울은 30년 전의 시골 인심으로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며 사는 데가 아니니 말이다.

5월은 뭐라해도 장미의 계절이다/ 사진@천헌옥
5월은 뭐라해도 장미의 계절이다/ 사진@천헌옥


3.
용산역에 도착하니 상가가 문을 열기까지는 30여 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문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옆에는 80에 가까운 할머니들 서너 분이 어디로 가는지
여행 가방들을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용산역이니 아마 호남 쪽으로 여행을 가시나 보였다.
그런데 나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 말이 들렸다.
"어제 목사님 설교가 쨩이야

목사라는 익숙한 말에 귀가 번쩍했다.

? 이 무슨? 그래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그들은 한참이나 은혜받은 이야기를 나누더니 화제를 바꾸어
"그런데 축구 보면서 짜증나더라."
"왜 그 선수 있지, 몸이 덜 풀렸나, 왜 그리 못 뛰어?"
"작전 미스야"
"감독이 너무 물렁해"
"이래 갖고 8강은 커녕 16강도 어려워...."
"지금 히딩크가 와도 안 되겠던걸..."
"지금 네티즌들이 난리가 아니더라"
"그래도 너무 비판하면 그나마 하나 있는 기마져 죽으니 그만들 해"

와하하
이 할머니들....
인터넷 시대에 당당히 보조를 맞추고 사는 멋쟁이 할머니들이 아닌가...
부개역에서 만난 그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들 사이에 가만히 들어와
기죽은 듯 서 있다.

그러는 나는 지금 어떤 노인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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