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만들고 나누며 식습관 개선…학생이 학교 기준·규칙 만들기도
놀이 기반 학습 추구…"신나는 느낌 받고 활동하고 싶어 해야 배움 돼"

(코펜하겐·캔버라=연합뉴스) 이동경 성도현 기자 =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옛 학습방식이다.

탐방팀이 찾은 호주와 덴마크 교육 현장에서는 배움의 주체인 학생의 모습이 돋보였다.

코펜하겐의 공립학교 뤼센스텐 귐나시움(한국의 고등학교급)에서는 글로벌 시티즌십 프로그램(GCP)과 연계된 교육과정 및 수업에서 각 교육 주체들에게 주어지는 자유로운 권한이 눈에 띄었다.

탐방팀과 대화하는 뤼센스텐 귐나시움 학생(왼쪽)과 교사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덴마크 뤼센스텐 귐나시움의 아담 프리스-하셰 군(왼쪽)과 GCP 및 교육 프로그램 책임자인 안데르손 슐트 교사. [촬영 이동경]
탐방팀과 대화하는 뤼센스텐 귐나시움 학생(왼쪽)과 교사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덴마크 뤼센스텐 귐나시움의 아담 프리스-하셰 군(왼쪽)과 GCP 및 교육 프로그램 책임자인 안데르손 슐트 교사. [촬영 이동경]

교사는 수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학교의 전체적인 교육과정이나 GCP 프로그램에 부합하면 학교가 각 교과에서 어떤 수업이 이뤄지는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입학 초기에 교육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안내를 받은 후에는 3년간 공부할 과목을 직접 선택한다. 교과 수업 내에서도 교사에게 배우고 싶은 내용을 제안하고, 상황에 따라 교사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수용하는 편이다.

학생회장 출신인 아담 프리스-하셰(12학년) 군은 "학생회 활동 등을 통해 학교가 학생의 목소리를 존중한다고 느꼈다""학교 정책에서부터 연례 뮤지컬 제작, 파티 준비까지 학생들이 직접 크고 작은 행사를 주도한다"고 말했다.

물론 뤼센스텐 귐나시움은 학교 정책이나 교육 방향에 공감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 이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덴마크 문화에 따라 최소한의 요건만 만족한다면 별도의 제재를 하지는 않는다.

학교 측은 GCP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에게는 세계시민교육 등과 관련된 전문성 개발의 기회를 제공한다. 매년 예산의 일부를 교사 연수를 위해 사용하고, 교사들 간 수업 공개를 장려함으로써 다양한 수업 방법이 공유되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이 선택권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교육과정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하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를 권유한다.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 'GCP 메트로'도 제공한다.

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덴마크 팅비에르 스콜레의 마르코 담고르 교장(왼쪽)과 아니타 에른스트 교감.
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덴마크 팅비에르 스콜레의 마르코 담고르 교장(왼쪽)과 아니타 에른스트 교감.

코펜하겐의 종합학교 팅비에르 스콜레는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학생들이 민주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행사하는 시민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학교는 학생의 자치 활동을 장려하고, 학생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언제든 원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 학교 측은 어릴 때부터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고, 그 의견을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46학년 학생들은 1주일 동안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아이디어도 내면서 책임감을 배운다. 학생 자치회는 최근 구매한 학교 의자가 불편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뒤 학생 자치 예산으로 구입한 쿠션을 모든 학생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자유학교 교원 양성기관인 덴 프리 레레스콜레는 학교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학생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생들은 주제별로 그룹을 구성해 활동하며, 학교에서 연간 계획 등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해당 그룹과 논의한다.

호주 학교들은 자기주도학습을 중요시한다. 학생이 수동적이고 대상화된 존재가 아닌 배움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학생이 어떤 문제를 발견하면 스스로 해결책도 찾을 수 있도록 하면서 교사와 학교가 지원하는 형태다.

캔버라의 에인즐리 초등학교는 2021년부터 학생들의 건강한 식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생각의 연료'(Fuel for Thoughts) 프로그램을 주 1회 진행하고 있다. 34학년 학생들이 스스로 메뉴를 선택하고 음식을 만들어 다른 학생들이 맛보게 한다.

지역 주민이나 학부모, 교사들이 재료를 마련해주고 음식 준비 과정을 지켜보긴 하지만 전 과정은 학생들이 주도한다.

탐방팀과 만난 프로그램 담당 교사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영양이나 균형 있는 식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실천 능력을 키워주는 게 핵심 목적"이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하는 호주 에인즐리 초등학교 학생들[촬영 성도현]
쉬는 시간에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하는 호주 에인즐리 초등학교 학생들[촬영 성도현]

탐방팀이 방문했을 때는 한국의 유치원생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실습장에는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 조리 시설에서 조심해야 할 사항 등을 학생들이 직접 그리고 정리해서 만든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학생들을 적극적인 이해와 해석의 주체로 인정하는 모습은 학교 곳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한 교실에는 학생들이 '친구'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친한 친구의 이름뿐만 아니라 '친구들은 언제나 무시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한다', '우정은 공동체다' 등 가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도 담겼다.

웬디 케이브 교장은 "우정 등의 가치를 교사가 설명하지 않고 학생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반영해 이해와 실천력을 높여주고자 한다""학생들이 기준과 규칙을 만드는 게 학습이지, 그것을 잘 따르는 게 학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레드퍼드 칼리지의 경우에는 일부 과목에서 학생이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검토한 뒤 자기 평가까지 하도록 한다.

자기 평가를 바탕으로 교사가 학생의 학습 진행 상황을 재검토하고 조언하며, 상호 소통 과정을 기록해 복기하게 한다.

학교 측은 이러한 자기주도학습으로 조사·분석력, 계획·수행력 이외에 시행착오를 통해서 회복력도 기를 수 있다고 본다. 외부에서 전하는 피드백보다 자기반성을 통해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레드퍼드 칼리지의 철학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전하려는 모습도 호주와 덴마크의 학교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됐다.

코펜하겐 외곽 지역 올레룹에 위치한 자유학교 베스테르 스케르닌게 프리스콜레(유치원9학년)에는 평화로운 자연환경과 함께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있다.

이 학교의 토마스 비스뷔 교장은 "학생들에게 삶과 학습을 위한 흥미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러한 원칙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삶을 위한 기술과 그 근간이 되는 가치를 교육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에인즐리 초등학교는 오전 11시부터 30분간 중간 휴식 시간을 두고 있다. 이 시간에는 학년과 관계 없이 모든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가 놀이 활동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혼자 농구하거나 여럿이 나무에 오르는 등 여러 놀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학년이 다른 학생 여러 명이 모여서 스티커 붙이기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체를 움직이고 자연과 교감하며, 다른 학년의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삶에서 중요한 역량들을 익히고 있었다.

에인즐리 초등학교 교사 소피아 씨는 "특정 사회정서 프로그램을 교육받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놀면서 신나는 느낌을 받고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할 때 비로소 배움이 된다"고 말했다.

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호주 이저벨라 플레인스의 사이먼 베이커 교장[촬영 성도현]
선진 전인교육 탐방팀과 대화하는 호주 이저벨라 플레인스의 사이먼 베이커 교장[촬영 성도현]

캔버라의 유아 학교인 이저벨라 플레인스는 '놀이에 기반한 학습'을 주요 가치로 내세우며 자연환경을 야외 교육활동의 장으로 활용한다.

사이먼 베이커 교장은 "아이들이 논다는 자신이 안전한 상황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아이들은 탐색하고 놀면서 배움의 기회, 실패할 위험을 감수해볼 안전한 기회, 다른 아이들이나 성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는다"고 강조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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