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부유' 풍자가 문제 됐을 수도…코미디언들 잇단 수난

중국의 한 코미디언이 토크쇼에서 "가난할수록 일을 많이 한다"고 발언했다가 당국의 조사를 받는 처지에 몰렸다.

8일 소상천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안후이성 허페이시 문화여유국(문화관광국)은 전날 "대중의 요구에 따라 모 코미디언의 토크쇼에 대한 법규 위반 사항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코미디언이 사전 허가 받은 내용과 다른 토크쇼를 진행했다""이는 사전 승인을 받아야 티켓을 판매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한 상업성 공연 관리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크쇼 발언으로 조사받게 된 中 코미디언 리보[펑파이신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토크쇼 발언으로 조사받게 된 中 코미디언 리보[펑파이신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논란이 된 코미디언은 걸쭉한 입담으로 인기를 얻은 중국 동북의 유명한 여성 코미디언 리보(李波).

그는 지난 6일 허페이의 공연장에서 한 토크쇼에서 "한 도시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가난할수록 일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중국 서민들이 "가난할수록 일을 많이 한다"고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지난 3년간 반복된 코로나19 확산과 엄격한 방역 통제로 경제가 악화했고, 방역 완화 이후에도 경제 회복이 더딘 탓에 삶이 팍팍해진 청중들은 현실을 풍자한 그의 발언에 공감하며 박장대소했다.

코미디언이 토크쇼에서 한 우스갯소리로 받아넘길 법한 이 발언에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창해온 '공동 부유'를 비꼰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 주석은 2021"전체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이 모두 부유한 것"이라고 공동 부유를 정의하면서 개혁 개방 이후 거둔 경제적인 성과를 배분하는 공동 부유로 빈부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공동 부유는 중국 당국의 주요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할수록 일을 더 많이 한다'는 리보의 발언은 빈부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당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공동 부유가 실현되지 않은 것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앞서 지난 5월 코미디언 '하우스'가 토크쇼에서 시 주석의 발언을 패러디했다가 퇴출당하고, 그의 소속사는 1470만위안(267천만원)의 벌금·몰수 처분받았으며, 그에게 토크쇼 무대를 제공한 극장도 10만 위안(18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하우스는 토크쇼에서 유기견 두 마리를 입양했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유기견들이 다람쥐를 뒤쫓는 모습을 보면서 '태도가 우량하고 싸우면 이긴다(作風優良, 能打勝仗)'는 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는 시 주석이 2013년 당 대회에서 강군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당의 지휘를 따르고(聽黨指揮) 싸우면 이기며(能打勝仗) 태도가 우량한(作風優良)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후 소셜미디어(SNS)에 그가 인민군을 모욕했다는 비난이 쇄도했고,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들은 "일방적인 웃음만 추구하다 선을 밟으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마음속에 두려움을 갖고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코미디언들의 잇따른 수난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농담도 가려서 해야 하며, 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여유가 사라진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p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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