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춘식 목사/ 문학평론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선교학교수(Ph. D). 남미 원주민선교사 28년, 라틴아메리카선교연구원장, 자유문학 시등단(1990). 자유문학상, 월간고신문학상, 미주문학상, 4회 안데스문학상대상, 3회 들소리문학상대상수상. 시집: 5권 출간 「저녁노을에 걸린 오벨리스크」(예영), 「풀잎 속의 잉카」(문학수첩),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라틴타임스), 「지금 손 안에 피는 꽃」(예영), 「슬픈 망고」(예영). 저서: 󰡔현대교회를 위한 선교교육󰡕, 󰡔중남미 선교전략󰡕 등 30여 편의 선교학 논문발표
논평: 윤춘식 교수 / 목사, 문학평론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선교학 교수 정년은퇴, 총회·파송 남미 아르헨티나선교사 28년 사역, 현 GMTI 선교교육원장

평양신학교 신학교육을 계승한 고려신학교 신학교육에 관한 연구』논평

전도서 1010절은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황권철 목사는 고희 가까운 때에 청년처럼 철 연장의 좌우의 날을 갈아온 롤 모델입니다. 이 글은 황권철 목사의 에반겔리아대학교(총장 김성수 목사)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2023)평양신학교 신학교육을 계승한 고려신학교 신학교육에 관한 연구에 대한 논평입니다. 지난 79일 행한 학위취득 축하감사예배 때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사적으로 말하면 고려파의 역사와 초기의 정신사(初期_精神史)를 다룬 학위논문이 많지 않은 것이 고신의 현실입니다. 더구나 고려파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고신 초창기의 신앙 인물들을 탐구하며 폐교된 평양신학교의 맥을 이어나간 고려파 전통에 착안한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정리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노력의 대가와 수고의 열매를 오늘에 되살려 고신교단(총회)의 가치관을 계승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미래를 향해 문을 여는 제안들은 찬사 받아 지당합니다. 이 논문 외에도 목회현장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도와 복음화 실천을 위한 서적편찬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박사학위 논문을 직접 지도하고 심사한 두 분의 교수께서도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지도교수 강 교수는 황 목사와 고려신학대학원 41회 동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성수 총장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저와 함께 1년 동안 같은 반에서 신학을 배운 동지입니다.

우리들 삶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축하를 받는 주인공은 황 목사님입니다. 황 목사님과 저는 마산 동광교회의 전도사와 강도사로 1981년에 만났습니다. 황 목사님은 남미 선교지에 방문해서도 4개국을 같이 순회하며 복음을 증거한 라틴 선교의 지원자입니다. 그 친분은 무려 42년이라는 세월을 지속해 왔습니다. 황 목사님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상담학)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문학)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신대학 대학원에서는 복음서의 비유와 관련하여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의 비평'을 다루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관한 비유를 해박하게 풀이하여 석사 논문으로 썼던 것입니다. 학문적 역량과 신학적 기반을 보여줍니다.

『평양신학교 신학교육을 계승한 고려신학교 신학교육에 관한 연구』 에반겔리아대학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 (2023)
『평양신학교 신학교육을 계승한 고려신학교 신학교육에 관한 연구』 에반겔리아대학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 (2023)

미술계에서는 초대 작가가 되려면, 국전이나 정평 있는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 때 [초대 작가]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화가로서 대상을 받는 자에게나 혹은 문필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경()이라고 부르는 칭호도 받게 됩니다. 일생에 '대상' 한 번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매년 실시하는 대회에서 입상을 해도 연속 다섯 번 입선해야 비로소 대상 한 번에 버금가는 초대작가 반열에 들어갑니다. 유명한 화가라도 다섯 번 입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상을 받지 못하는 화가들은 통상 15년 내지 20년 동안 다섯 번 입선해야 초대작가 반열에 오릅니다. 여러분, 석사학위 과정 다섯 번 하기보다 박사 학위 한 번 하기가 더 힘듭니다. 미술계에 비유하자면, 황 목사님은 세 번 입선한 뒤, 올해 단번에 대상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에반겔리아대학교는 고신교단의 신앙과 신학적인 역사의 맥을 같이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재미총회가 직영하는 상아탑입니다.

황 목사님의 논문 전체의 얼개는 아주 짜임새 있고, 조리 있게 편집되었습니다. 첫째, 선택한 학과에 공헌하며 은퇴 후에도 장기적인 커리어를 갖고서 고려파 연구소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둘째,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인 개발에 즐거움을 얻도록 합니다. 셋째, 학문분야에 영적, 지적인 가능성이 있음을 공적으로 인증합니다. 이 논문은 고려신학교 초기의 커리큘럼과 영성과 전통을 평양에 있었던 장로회신학교에서 물려받았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반대라는 당대의 적그리스도적인 이슈에 맞선 순교자 신앙과 그 전통을 파수한 고려파의 초기 전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냈습니다.

황 목사님이 진지하게 다룬 고려파와 고려신학교의 초기 모습은 이른바 구속사 신학 또는 구속사적 성경해석이 신학계에 본격화되기 이전이었습니다. 황 목사님은 '구속사'라는 신학용어가 너무 귀중하기에 그것을 고려파 초창기와 고려신학교 초기 신학사상에 대입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구속사를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곧 세 박사가 강조한 신학으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고려파 역사에서 구속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도입한 학자는 박종칠 교수(구약학, 교회사)와 고재수 교수였습니다. 고재수는 네덜란드 개혁신학의 요람인 캄펀신학교에서 구속사적 성경연구 방법을 배운 것을 전했습니다(고재수, 구속사적 설교의 실제, CLC. 1991, 참고). 고재수(Niek H. Gootjes)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로 목회하다가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1980년부터 1989(9년 간)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 후 캐나다 해밀턴 지역에 있는 개혁신학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쳤습니다. 박종칠과 고재수는 1985년부터 약속한 듯이 각각 중요한 서적을 출간합니다. 박종칠은 구속사적 성경 해석(CLC. 1986), 고재수는 <구속사적 설교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홍반식 박사, 이근삼 박사 그리고 오병세 박사를 '동방박사 3'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1986년경에 이르면, 이들은 고려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시작한 이후 약 25년 간 한국 신학계를 이끈 중진 신학 교수가 되어 있을 시기입니다. 한국 신학계에서 중후한 궤적을 갖고 있는 저명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박종칠의 문헌과 다른 저술인 바이블 제네시스(2021)는 저자 자신을 가리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권위자, 필생의 역작'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때 세 분 박사님들은 구속사적 성경 해석에 관해서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초판(1986) 서문에서 그가 담은 성경해석 방법은 네덜란드(화란)의 개혁주의자 스킬더(H. J. Schilder)'구속사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는 감사의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박종칠과 고재수 교수가 구속사 논의를 구체적으로 명문화 할 때, 위의 세 박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세 박사와 구속사 연구를 연결시키려면 구속사적 성경 연구를 접목시키는 단초 곧 실마리를 미리 제시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고려파 신학계의 구속사 언급에 박 교수가 실종됨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참고문헌에는 박종칠 교수가 쓴 구속사적 성경 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박사 학위는 지도교수를 통해 논문 제출자가 독보적인 독립연구로 인정을 받습니다. 황 목사님께서는 이 방면에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있기에 보다 깊은 연구를 계속하리라고 믿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논문이 고려파 초창기 신학과 고려신학교 교육이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역사와 전통과 영성을 계승했다고 밝히는 것은 기여할만한 학문적 업적입니다. 고려파와 고려신학교가 개혁주의 전통을 계승한 박윤선의 주경신학에 이르는 헌신과 그에 대한 인물연구는 큰 성과를 거두리라 확신합니다.

본 논문의 <개요>에 전개하는 ix 페이지와 <구속사 신학의 이해>에서 본 '한상동의 영성과 박윤선 신학의 조화와 신학의 뿌리'를 논구한 105쪽은 동방박사 3인의 신학 안에 마치 구속사의 관점이 들어 있고 심화되어 있다고 기술합니다. 시대를 앞당기는 논리비약 또는 시기상조입니다. 당시 고신의 세 박사들이 구속사 신학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논문의 장점은 홍반식의 제사장적 선민사상, 이근삼의 왕의 나라 주권사상, 오병세의 선지지적 언약사상을 일목요연하게 구분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획기적인 발견이며 지적인 성과입니다. 이러한 탁월한 방법론적 분류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이 더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개혁주의를 축으로 하는 세 박사의 신학 이론이 때때로 또 다른 동심원을 둔 외부의 원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공유되고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도식화'(diagrammatically)를 시도하면 더 뚜렷해집니다. 이들이 개혁주의라는 축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신학의 진수를 자전거의 체인처럼 상호 공급하며 발전시켜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근삼 박사는 대학부 과정과 신학대학원 과정 클래스에 들어와 기도 할 때, 제 기억으로는 거의 5년 동안이나 "은혜를 베푸셔서"로 시작했습니다. 그 말로 시작하지 않은 강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은혜를 강조한 신학자였습니다. 이근삼의 주권신학에는 은혜사상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오병세 박사의 학위 논문(콩코디아신학교)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의 왕직 연구> (본 논문 130)는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언급하면서 왕직 개념을 고수합니다. 이것은 그의 사해사본 연구와 시편 연구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오병세는 구속사 연구보다는 구약성경 가운데서 고고학 방면에 더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반식 박사는 후학들에게 그의 수려한 명성만큼 많은 저서와 인물됨의 자료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홍 박사의 경우는 우리가 전수 받은 대로 거의 동일한 스토리가 거듭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애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황 목사님은 홍 박사에 대한 인물 연구를 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세 박사의 정체성은 고려파 학계의 1세대가 아니라 1.5세대였습니다. 황 박사님은 그들을 2세대로 규정합니다.

이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에센스는 고려신학교와 초기 고려파가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신학정신을 계승하려했다는 점입니다. 이 논문의 의의는 고려파 초기의 개혁주의 신학의 역사성과 초기 정신사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 자리에서 논문 자체에 관해 언급하는 순서를 맡은 네 사람은 한 밥솥에 밥을 먹은 고려파의 식구이며 동역자입니다. 새로운 학자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됨을 그가 목회하는 밀알교회와 함께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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