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나라를 여행하려면 어떻게 준비하지

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걷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나이 들어서는 그것만큼 더 좋은 운동이 없다 해서 매일 만 보 정도를 걷는다. 걷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묵상하기도 하며 때로 기도하기도 해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누구랑 함께 걸으면 또 다른 재미도 있을 것이다.

평지를 걷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기쁨을 두 배로 하기 위하여 산으로 발길을 옮기기도 한다. 산행 후 귀가하여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희열을 맛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날 급한 마음으로 신발 끈을 매야 하는 등산화를 두고 착용하기에 수월한 운동화를 신었다. 등산화보다는 편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산을 오르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는 나에게 계속하여 발바닥을 찌르는 그 무엇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모래알이었다. 등산화는 꽉 졸라매니까 모래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운동화는 모래가 들어와 발걸음을 어렵게 했다.

작은 모래알 그것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게 할 줄이야 몰랐다. 그렇다. 사람은 작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지만 언제나 작은 것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작은 질병이 생명을 앗아가는 큰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작을 때에 손을 보아야 한다.

나는 몇 번이고 신발을 털어 내야만 했다. 우리의 죄도 그러하리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를 괴롭게 하고 그것을 털어 내지 않으면 그것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이 될 것이다. 어쨌든 준비하지 못한 나의 작은 실수로 인하여 하산하는 그 몇십 분 내내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차라리 끈을 묶어야 하는 등산화를 신었어야 하는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어떤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그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임금이 그에게 전국을 살피고 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먼 길을 떠나면서 임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임금은 그에게 "먼 길 떠날 준비가 다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그 신하는 ""라고 대답하고 오랜 세월 충실히 그 임무를 완수하고 임금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임금은 큰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워 있었다.

신하가 문안을 드리자 임금은 말했다.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다 되었네" "아니 어디로 가신단 말입니까?" "아주 먼 길을 가려네" "그리하시면 떠날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몇십 분의 등산길도 철저한 준비 없으면 고통스러운데 일생을 살아가는 데는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12일의 짧은 여행길도 준비를 철저히 한다. 그러나 영원한 여행길을 위하여서 아무 준비도 없이 살아간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겠는가? 성경 누가복음 14장에는 계산하다 라는 단어가 나온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14:28)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14:31)

계산기 갈무리/ 사진@김대진
계산기 갈무리/ 사진@김대진

계산은 헤아리는 것이기에 두 구절 다 계산, 즉 셈하여 보라는 뜻이다. 살면서 셈하여 볼 날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이제 좀 더 다른 셈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때로 부고장을 받으면 이ㅇㅇ 80세에 작고, 김ㅇㅇ 90세에 별세, 등등의 숫자가 더 눈에 띄기도 한다.

아무리 백세시대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직은 희망 사항이고 아직은 80에서 90세 정도가 대부분인 것 같다. 시편 90:10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옛날 어른들보다는 십여 년 정도 수명이 길어진 것 같다.

인생은 태어나서 25년 혹은 30년 동안을 준비하는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30년 혹은 40년은 열심히 일하는 시기를 보낸다. 그러므로 준비를 게을리한 사람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알차게 준비한 사람은 남은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은퇴를 한 후에는 또 다른 셈을 하게 된다. 누가 80세에 돌아가셨다고 하면 아 나는 이제 몇 년밖에 남지 않았구나하는 계산이다. 살아보면 십 년의 세월이 언제 지나갔는지 쏜살같다고 여길 때가 많은데 오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 셈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건강해서 오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보아도 우리는 백 년을 채 살지 못한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 너무나 소중해 보이기도 한다. 등산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하지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하물며 이 세상의 저 너머의 영원한 나라를 여행하려 한다면 어떻게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은 살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죽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잘 죽기 위하여서이다. 잘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길이다. 참으로 사는 것은 영원한 삶이다. 영생이다. 잘 죽은 그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도 끝 날까지 남을 것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이 세상은 준비하는 기간일 뿐이다. 여러분은 계산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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