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주로 입양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고려되어 왔다. 입양을 한 부모는 선행을 한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듣고, 입양인의 날 등에서 들리는 입양인들의 미담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주기도 했다.

입양되어 성인이 된 입양인들의 성공적인 이야기들은 입양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더하여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우주항공연구소(NASA)의 수석연구원인 스티브 모리스 씨이다.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필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와 함께 자라지 못한 이들이 한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해왔다. 그는 적극적으로 국내 입양 및 해외 입양을 통해 국내의 고아들이 가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돕티서클은 지난 12월 9일 네덜란드 하우튼(Houten)시에 위치한 이네아(INEA)건물에서 단체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개최했다.
어돕티서클은 지난 12월 9일 네덜란드 하우튼(Houten)시에 위치한 이네아(INEA)건물에서 단체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와는 반대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입양된 사람들이 입양 부모로부터 겪는 성적인 학대, 유기, 법적조치 미비 등으로 사회적 보장을 받지 못하는 부정적인 사례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준비 안 된 입양은 입양인의 삶을 망가뜨린다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입양에 대한 염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입양에 대한 논쟁이 입양의 당위성 및 부작용으로 흘러가지만, 정작 필요한 입양에 대한 담론인 기 입양인에 대한 돌봄과 치유에 대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개혁파교회 성도 한유근(네덜란드 명 프레디 프라임)씨는 총대를 메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입양인들을 위한 어돕티서클(Adoptiecirkel)을 최근 설립했다. 그 역시 입양인으로 5년 전 친부모를 한국에서 찾았다.

어돕티서클은 지난 129일 네덜란드 하우튼(Houten)시에 위치한 이네아(INEA)건물에서 단체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은 세계 각지에서 입양되어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50여 명의 입양인들이 참석했다. 네덜란드의 국제입양아를 돕는 단체 이네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타나(Tenne) 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양인들에게 접근한 의미 깊은 행사였다고 행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본지는 단체의 설립자인 한유근 씨가 가진 입양인들의 어려움과 해결책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유근 씨는 네덜란드 개혁교회(NGK) 성도이며, Accusense Benelux BV사와 Nedseal BV를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4세에 네덜란드로 입양됐고, 현재 그는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네덜란드 중부 오버레이설주에 거주하고 있다.


기자: 안녕하세요, 어돕티서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유근: 이 단체는 기독교 단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단체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만든 개인적인 동기는 저의 신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12절이 단체를 만드는데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저는 이웃을 돕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많은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도 입양 트라우마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금의 삶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돕티서클 대표 한유근 씨
어돕티서클 대표 한유근 씨

기자: 다른 입양인들의 삶은 좀 어떤가요?

한유근: 저는 많은 입양인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이들은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입양인들이 겪는 어려움으로는 구체적으로 외로움, 고향에 대한 무지, 정체성 혼란, 양부모가 강제적으로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는 문제, 네덜란드인으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문제, 입양되기 전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등이 있습니다.

기자: 잘 이해가 어렵습니다.

 

한유근: 사람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자라는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어떤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도 중요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의 DNA가 있습니다. 우리 모임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입니다. 40년간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꾹꾹 눌러온 자신의 어려움이 어느 순간 물속에 눌러 놓은 풍선이 물 위로 솟구쳐 오르듯수면위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네덜란드사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한국의 식물을 열대지방에 심으면 다 잘 자라지 않는 것처럼, 한국 사람의 DNA를 네덜란드에 이식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잘 자랄 수는 없습니다. 성인으로 성장하는 아이는 계속해서 맞지 않는 옷을 입길 강요당할 수 있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입양 부모들은 입양인들에게 너는 네덜란드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입양인들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입양부모의 가정에서는 자신의 타고난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대신, 요구받은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기자: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되나요?

한유근: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발전시켜 살아가는 것은 사람의 성장에 있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방법 대신 주입 받은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면 대신 다른 사람을 따라 살아가려 하고, 남들보다 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삼으려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지요. 이런 일들은 잘되지 않아 실패를 겪기도 합니다.

양부모가 본래 입양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인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입양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아이도 인격을 가진 존재로 계속해서 내가 아닌 모습을 강요받은 삶을 살면 마음도 몸도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기자: 자신의 아닌 남의 인생을 계속해서 살길 강요받는 그런 어려움이 있군요, 이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나요?

한유근: 이런 극심한 고통을 통해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들은, 정상적인 삶이 아닌 생존모드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크게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로 얼어붙게 되지요. 입양인들은 사람들을 잘 신뢰하지 못하거나, 인간관계를 길게 유지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렵고 예방도 힘듭니다. 입양인들은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문제가 가득한 삶을 발견하게 되고 어려움을 맞닥뜨립니다. 이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였던 세탁된 중국인(afwas Chines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기자: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있으셨는지요?

한유근: 저도 중년이 되어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한 때부터 이런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생명을 볼 때,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무엇이 내 삶에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경험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셨나요?

한유근: 제 아내가 옆에서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시기도 하셨고요.

 

기자: 그래서 한 유근 씨도 주변의 입양인들을 돕고자 하시는 것이군요?

한유근: 그렇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입양인들을 전문적으로 돕고 싶었습니다. 저는 비즈니스에서 작은 성공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리더십을 발휘하며 네덜란드 사회에서 활동해왔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의 사격협회에서 저는 10년간 의장을 맡고 있지요. 이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능력을 통해 주변의 입양인들을 도우려 이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전문 코치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코치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힘을 길러 스스로 문제해결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코치는 교육기관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한 이후 자격을 받습니다.

코치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도 아니고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를 강화시키는 트레이너도 아닙니다. 코치는 인간관계, 경제, 법률, 심리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인간이 입양의 트라우마를 돌아보고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지금 우리는 5명의 코치와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30~50명 정도의 코치와 일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기자: 좋은 생각이시군요, 한국에도 입양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입양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한유근: 우리 입양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합니다. 조상을 찾고 싶어 하지요. 우리의 타고난 DNA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 주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의 뿌리에 대해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보세요. 당신을 입양한 부모에게 뿌리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 보시길 추천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해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최상의 상황에서 살지 못할지라도 너무 절망하지 마세요. 트라우마가 당신을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어려움 뒤에 어떤 체계적인 문제가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원하는 삶이 아닐지언정, 이미 가지고 있는 생명과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문제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당신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문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부모님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대에서 이 문제를 끊어 버리시길 바랍니다.

기자: 긴 시간 인터뷰 고맙습니다.


어돕티서클 봉사자들과 함께
어돕티서클 봉사자들과 함께

고아를 가정으로 입양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해외 입양을 경험한 많은 이들은 입양가정에서의 불우한 경험이나, 자신의 뿌리와 단절된 것이 가져다주는 정체성의 혼란 등을 경험한다.

필자가 아돕티서클에서 만난 한 인도네시아 출신 입양아는 정상적으로 살던 인생을 40대가 넘어 갑자기 살기가 어려워져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도 부모를 찾고 지속적으로 코칭을 받는 것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아를 입양하는 것 못지않게, 입양된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 뿌리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성인이 되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 곁에서 손을 내밀 수 있는 어돕티서클과 같은 단체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개혁주의 신앙은 세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스려지고 있지만, 죄와 죽음의 권세 역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고 가르친다. 자신도 입양의 아픔을 겪었던 개혁파 교인 입양인 한유근 씨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은, 실패한 입양인들의 삶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이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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