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2023년 성탄 메시지

성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비천한 육신을 취해 이 땅에 빛과 생명을 회복한 사건이다.

한국교회는 종의 형체를 취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본받아 항상 낮아져 섬겨야 한다.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사무총장 김윤태 박사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사무총장 김윤태 박사

1225일 성탄절은 육신을 취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4세기 중엽 로마 가톨릭 주교가 예수 탄신일을 지정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1225일은 로마의 태양신 숭배의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성탄절 제정은 처음부터 논란을 야기했다. 우상 숭배일을 명칭만 개칭(改稱)한다 하여 이방 축제의 관습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탄절 제정의 역사적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날을 숭배하는 미신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타락한 세속 문화와 구별된 거룩한 성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서구 전통의 그릇된 성탄 문화에서 꼭 되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가 그것이다. 성탄의 본질은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육신을 취해 이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1:18)으로 오신 사건에 담겨 있다. 그런데 아기 예수를 품고 있는 마리아 숭배가 지배적 이미지가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베 마리아Ave Maria(기쁘다 마리아여!)’ 성가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베 마리아, 은총이 가득한 자여,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서 복되시며, 복되도다 네 태의 열매 예수시여. 거룩한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시이여, 우리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아멘.’ 이 곡에는 마리아가 구원의 중보자다. 성탄 축하의 경배 대상이 마리아가 되고 있다. 이는 성탄 축하의 경배 대상인 그리스도의 존영(尊榮)을 부정하는 것이며 인간을 신성화하는 우상 숭배가 된다. 자애롭게 보이는 아기 어머니 마리아의 이미지 확대는 성육신의 위대한 사건을 왜곡하는 로마 가톨릭 전통의 폐습이다. 이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그리스도의 성탄(聖誕)에 대해 샬롬나비는 이단 사상과 함께 세속화하는 성탄 문화를 경계하면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완성한 인류에 대한 화해와 용서, 사랑과 평화의 이념을 다음과 같은 성탄 메시지에 담고자 한다.

 

1. 성탄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만유를 통일하여 그 가운데 임하신 성육신 사건이다.

육신을 취하신 그리스도는 아버지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1:18)이다. 육의 몸을 취하신 독생자 예수께만 경배하는 성탄절이므로 결코 이교적인 세속 문화와 섞을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가 성탄절을 우주 만물의 통치자 만왕의 왕(17:14)의 권위에 굴복하여 찬양하기보다는 육적 쾌락의 시간으로 즐긴다. 신자들도 덩달아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배우기보다 세상 문화에 점점 함몰당하는 실정이다. 위대한 성탄 사건을 바르게 선포해야 할 교회와 성도가 세속 문화에 함께 들떠 성탄을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창세 전 이미 하나님 아들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8:22-25)가 피조물의 형체를 취하신 것은 저주와 심판이 덮인 땅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은 창조주와 심판주가 되신다. 성탄은 옛 구습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영원한 새언약의 성취를 이루신 사건이다. 심판의 역사와 함께 그리스도는 그의 몸인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다. 그 교회를 통해 증오와 복수가 난무하는 이 땅에 용서를, 자만과 오만이 뒤덮고 있는 이 사회에 겸손을, 탐욕과 이기심에 가득한 인간들에게 이웃 사랑을 완성하시고자 오셨다.

세종시 보람동 금강수변공원 내 세종 빛 축제장을 찾은 시민들 수만개의 전구로 이뤄진 성탄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2023.12.21
세종시 보람동 금강수변공원 내 세종 빛 축제장을 찾은 시민들 수만개의 전구로 이뤄진 성탄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2023.12.21

2. 예수 성탄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처녀 잉태를 통해 영생을 이 땅에 베푸신 표적이다.

세속적 쾌락 문화가 성탄 문화까지 장악하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성경 진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2:7)는 시편 말씀은 그리스도 탄생이 성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신 사역임을 분명히 알려준다. 혈육의 방법으로 예수의 성탄은 결코 알 수 없다.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신 생명의 창조주께서 하늘에 속한 영생의 영광을 처녀 잉태로 보여주신 무한한 은총과 긍휼의 계시 사건이다. 하지만 현대 신학과 교회는 점점 예수의 처녀 잉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강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사야 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에 나타난 처녀를 굳이 여자로 번역하고 성경 본문을 바꾸려고 한다. 처녀 잉태 사건을 인간의 상식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는 성탄의 거룩한 본질을 망각하게 하고 단지 이 세상의 기쁨과 쾌락을 위해 세상 축제로 보내려는 타락한 본성의 심산이다.

 

3. 성육신의 로고스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본체이며 만물 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다.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1:1)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고 육의 몸을 취해 신적 능력마저 스스로 비웠다. 그리고 종의 형체를 가져 죄인의 모양으로 드러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정하신 뜻에 복종하였다. 이 복종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보다 강한 권력에 수치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믿음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만 부끄러운 십자가를 기쁨으로 참’(12:2)을 수 있는 신적 능력을 가진 분이다. 인간이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을 하신 분이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은 처녀의 몸에 잉태하여 출생케 할 그리스도에 대해 기묘자요 하나님의 조언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평강의 왕’(9:6)으로 약속하셨다. 성육신의 그리스도는 육의 몸을 취하신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만물의 창조주로 하늘과 땅의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의 주관자’(1:15-18)이심은 성탄에 대한 불변의 토대다.

 

4. 평강의 왕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영원한 화평의 나라를 세우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맡긴 영원한 나라(22:29)를 이 땅에 완성하셨다. 예수 성탄의 위대함은 지극히 높은 보좌의 하나님 영광을 숨기지 않으시고 이 땅에서도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자녀들에게도 평화(샬롬)’(2:14)를 충만케 하신 것이다. 이 영원한 화평의 통치자는 어떤 물리력도 동원하지 않는다. 로마군의 창칼로 육신의 목숨을 끊어버린다 해도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이 화평의 나라를 여호와는 일찍이 약속하셨다. ‘칼은 보습이 되고 창은 낫이 되어 나라들이 칼로 치지 않고 전쟁 연습도 하지 않’(2:4; 4:3)는 나라가 도래한다. 그리스도의 화평 공동체인 교회는 물리력으로 세계와 인류를 지배하려는 의도와 행위에 대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규율 지배의 모든 사회에서도 어떠한 폭력도 교회는 거부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총칼 없는 전쟁 상태인 우리 사회 상황에 성탄의 평화 선언은 너무도 절박하다. 자신의 이념에 동조한다고 수용하고 그렇지 않다고 배척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화평을 부정하는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5. 예수는 모든 아브라함 후손들에게 만물의 통치자와 심판주로서 의()의 왕이 되신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사망자는 20231121일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포함 15,000명 이상이다. 14,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그 중 5,000명은 어린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도 2023107일 충돌 이래로 약 1,200명이 사망했다. 서안 지구의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인 61명이 사망하고 최소 3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 속한 같은 혈통들이 벌이는 전쟁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통치자임을 하루속히 깨닫기를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 예배(4:23-24)는 예루살렘도 사마리아도 아닌 성육신하신 자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스라엘과 범중동의 대립은 분명 참 이스라엘로 회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통치자가 되는 약속한 그날을 간절히 기원하도록 만든다.

 

6. 전쟁 피해자들을 우리의 형제처럼 여기고 평화적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2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38월 말 집계 군인 사상자가 50만 명에 육박한다는 추산이 나온다. 러시아군 30만 명, 우크라이나군 20만 명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러시아군 사망자 12만 명, 부상자 17~18만 명, 우크라이나군 사망자 7만 명, 부상자 1012만 명이 나온 것으로 분석한다. 현재 동부와 남부에서 펼쳐지는 우크라이나군 반격 작전에서 러시아의 다층 방어선 앞에는 사상자가 수 천 명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재림하기 전 재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바 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24:7)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일을 염려하기도 하셨다.(24:20) 전쟁터에서도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세계 모든 교회는 기독교 전통에 속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종전의 협상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 나라의 전쟁 중단을 성탄에 즈음해 더욱더 촉구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 모두에게 땅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지체’(2:14)로 여기고 모두에게 평화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7.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고통 받는 북한 성도가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비천한 모습으로 낮고 천한 곳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25:40)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시대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지극히 작은 성도, 가장 비천한 성도가 누구냐는 질문의 답은 남한에 복음을 전해준 신앙 선배들의 후손으로 극한의 상황에 처한 북한 성도다.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성경을 소지했다 발각되어 수용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북한 성도들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환자 관리라는 명분으로 지체들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어떤 치료도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사고라는 이름으로 수용소를 폭파시키는 현장에서 죽어갔던 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배들의 후손들이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11:37) 현장이 바로 북녘땅 우리의 지체들이 고통받는 곳이다. 비천한 육의 몸을 취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은 무엇보다 북한 지체들을 위한 구체적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한의 모든 성도가 북한 성도를 위해 구체적으로 연보하는 선교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연보를 한다고 해도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물질보다는 어떻게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지 기도하고 전문 사역자들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지혜를 구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아낌없는 후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8.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새터민 동포를 돌봐야 한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8:48)으로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미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참 빛과 생명을 전하셨다.(4:40)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영생의 생명수를 그들에게도 주시고자 비천한 모습으로 육신을 취하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북한 성도에게 무한의 빚을 지고 있다. 절대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북한에서 먼저 뿌리를 내렸다. 성경학교와 신학교의 출발은 북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 전파의 섭리는 북한 교회와 성도를 고난 가운데서 연단하시면서 남한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유대인을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허락하신 것처럼 북한 교회와 성도를 극한 고난 가운데 두시면서 남한 교회에 영적 축복과 물질적 풍요까지 베푸셨다. 이에 탈북 새터민(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주민)에 대한 선교와 구제와 돌봄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을 넘어 비양심이 된다. 모든 새터민들에게 한국 교회는 항상 그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세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분단으로 언어 사용을 비롯해 일상적 생활 습관 및 사회적 규범 등에서 적응의 장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교육의 어려움과 기술력 부족, 불평등 고용 및 차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탈북의 기쁨도 잠시 가족을 두고 온 고통의 트라우마가 생존을 위협한다. 정착에 필요한 언어교육과 기술교육은 물론 상담 서비스와 심리치료 등 가능한 지원책을 가동해야 한다.

 

9. 기득권에 안주한 일부 한국교회는 성탄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그리스도가 임하는 날이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3:3)과 같다고 예언하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4:4)으로 오신 사건이다. 이 메시지는 한국 교회가 받아야 하는 경고의 말씀이다. 한국 교회의 부패와 이미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교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현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2:11)의 경고 앞에 한국 교회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지키고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이렇게 경고하신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며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다.”(1:10) 당장 치부(致富)를 중단하고 불법 세습도 멈춰야 한다. 일만 악의 뿌리인 돈과 적그리스도적 교권을 당장 내려놓으라는 경고가 바로 비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다.

 

20231222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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