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에게 중요시 되는 ‘정서론적 자아’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생각해야..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돼!!

신학적 부재가 오늘날의 문제들을 야기...

연초 본지 기자는 '한국교회 트렌트 2024'를 읽던 중 현재도 온라인 예배만 참석하는 성도들이 아직도 10% 이상 된다는 데이터를 읽게 되었다. '한국교회 트렌트 2024'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술하며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잘 내놓았으나, 개혁파 입장에서 따를 만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에 지난 2024년1월6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이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부총장/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인 이상원 교수와 해당 사안에 대해 1시간 넘는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짧게 2편으로 요약하였다. 

이상원교수.
이상원교수.

Q. 아직도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일부 존재하며, 또 이렇게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취사선택(取捨選擇)하듯 골라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처럼 앞으로도 온라인 예배와 오프라인 예배를 병행하여 드려야 한다는 의견들도 존재하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답 할 수 있을까요?

이상원 교수: 최근에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의 흐름을 진단한 후, 대안으로 이러한 흐름에 적응하는 방법이 제시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예배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대안적 방법이 제대로 분석해 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철학의 흐름을 쭉 살펴보면 철학이 현대 쪽으로 넘어오면서 인류사회를 건설적으로 세워가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해체 시켜가는 쪽으로 스트림이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들어 20세기와 21세기를 주도하는 시대적인 사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볼 수 있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주의와 신사회주의 이 세 트랙이 현대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이 트렌드가 모두 이 사회를 조화롭게 세워가는 방향이 아닌 오히려 사회를 해체 시켜가는 방향으로 사조들이 진행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경우는 객관적인 진리 세계를 다 해체 시켜 단편화, 상대화 시킨다. 그로인해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절대적인 권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게 만들었다. 절대적인 구원의 길과 그러한 규범 등은 존재하지 않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사회의 권위 체계를 기득권자의 자기 합리화로 보고 해체 시키려고 한다. 법도, 종교, 윤리, 도덕도 해체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 신사회주의 질서는 성, 결혼, 남녀 간의 성질서도 해체 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현대 사조의 흐름이 이 사회를 파편화 시켜가는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흐름은 사탄적인 것이고, 굉장히 위험한 흐름인데 사람들이 이 흐름에 쓸려가고 있다. 목사들은 그 흐름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성도들을 깨닫게 해서 그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이니깐 그냥 다 같이 따라가자’라고 말한다면, 또 교회도 이 흐름에 따라 적응하면서 따라가고자 한다면 교회도 약화 되고 해체 될 수밖에 없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현대 사조 흐름에 맞서는 것이다. 다음세대들에게 절대적인 진리가 실재하고 규범이 실재한다고 강조하면서 세상 사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에 가면 또 다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교회 안에는 권위도 있고, 섬김도 있고, 절대적인 진리도 있고, 공동체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조의 흐름과는 매우 선명하게 대조되고 대비되는 교회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현대의 흐름에 발맞춰보자고 하면 교회는 각기 해체의 길로 접어들고 교회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현대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정서론’

마르크스주의나 네오마르크스주의도 문제이지만, 현대 자유주의 진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가장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조가 ‘정서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대 자유주의 사회, 현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한 현대 사회는 ‘정서론적 사회’ 라고 할 수 있다. ‘정서론’이라고 하는 것은 19세기 말 영국 캠브리지에서 형성된 철학이다. 정서론은 ‘무엇이 진리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진리다!’ 라고 응답한다. 직관론자들은 직관적으로 느낌이 오는 것을 진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직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감성’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을 보고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직관론에서 정서론으로 발전하는 것인데, 현대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나의 직관, 나의 감정, 내가 보고 느끼는 것, 내가 좋고 싫은 것, 그 판단이 너무 깊고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좋고 싫은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옳고 옳지 않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복이고 쾌락이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판단할 때, 자신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지를 생각한다. 만일 그것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하면 비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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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와 정서론적 자아

MZ세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서론적 자아이다. 자신에게 주관적으로 평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를 생각할 때 (성경적이고 신학적 판단이 아닌)자신에게 편한 방향, 스스로에게 감정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교회,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출석할 교회를 선택하고 예배를 선택한다. 교회 안 다음세대들에게 그런 정서론적 사고가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서론적 자아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기독윤리의 관점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기독윤리는 내 개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행복, 편안함, 좋은 느낌을 쫓는 것 등), 대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이웃의 복지를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내하고 절제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는 것이 기독교인 생활의 본질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생활 본질은 정서론적 자아와 대척점에 있다. 기독 진리는 객관적인 진리이다. 개인의 느낌에서 진리를 찾는 것도 진리와 반대되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 감정에 앞서서 그리스도의 몸과 공동체를 등한시 하고 교회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교회들도 세상 풍조를 따라가며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세대들에게 이러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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