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
"한국을 동양 처음의 예수교국으로 건설하는 것"이라고 언명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첫 번째 공식 외교문서,
"대한민국의 소망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

 

홍성철 교수(코닷 사설위원, 죠지뮬러 바이블 칼리지 교수, 칼빈대학 대우교수)
홍성철 교수(코닷 사설위원, 죠지뮬러 바이블 칼리지 교수, 칼빈대학 대우교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관객동원 200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록 영화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신앙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그의 애국심과 성실성 그리고 탁월한 외교력 등의 다양한 면모를 제대로 파헤친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조선은 유료국가였고, 고려는 불교국가였지만, 본고에서 필자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나라였음을 논의하고자 한다.

 

기독교로 회심한 이승만

18954, 20세 이승만은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 들어가 영어와 서구문명, 기독교를 접했으나 당시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배재학당 입학 시 어머니와 '야소교'는 믿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24세 이승만은 박영효 추종자들의 쿠데타 음모에 가담되어 “18991월 경무청 구치소에 구금되었고 그해 7월에 개정된 평리원(고등법원)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한성감옥서에 장기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선교사들의 집중적인 탄원으로 고종 황제의 감형 특사를 세 차례 받아 57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190487일 석방되었다”(유영익,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조각, 2013, p. 90). 체포 직후 이승만은 경무청 구치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그 뒤로 사형을 예상했기에 정서적으로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되어, 이승만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로 회심했다.

'건국전쟁'에 담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미국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다큐스토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건국전쟁'에 담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미국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다큐스토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

이승만은 한성 감옥 수감 중 신학월보라는 잡지에 논설들을 실어 일종의 기독교 민족 개조론과 기독교 국가 건설론을 제창했다. 1903(이승만 28) 8월에 발표한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라는 논설에서 이승만은 한국의 전통 종교인 유교를 사람의 도로, 기독교를 하나님의 도로 규정한 다음 옛적에는 사람의 도로 다스리던 것을 지금은 하나님의 도로 감화시켜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었다(Ibid, p. 91). 이승만은 쇠퇴일로에 접어든 한민족이 소생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원천이 예수교에 있다고 보았다.

이승만은 19123월 미국으로 피신했다가 1913(38) 2월에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은 호놀룰루에 도착한 지 2개월 만에 한국교회핍박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이승만은 한국이 개국하고 통상한 지 불과 30년 만에 전국의 교인 총수가 37만 명, 외국 선교사 수가 약 300, 예배당이 500, 교회학교가 926, 병원이 13곳으로 늘었다고 기독교의 '흥왕'을 소개하면서 한국은 장차 일본과 청국 등 주변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Ibid, p. 91).

1919(44)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이승만은 여러 곳에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국무경, 국무총리, 대통령 등 정부의 수반으로 추대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수립된 최초의 임시정부인 노령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국무경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이 4월 초 미주 교포 사회에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의 한 미국인 신문기자가 이승만을 찾아와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에서 이승만은 "이번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주의는 한국을 동양 처음의 예수교국으로 건설하는 것"이라고 언명했다(Ibid, p. 93). 이승만은 그 뒤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기독교 건국 정책을 계속 드러냈다. 예컨대, 1946(71)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영원히 자유 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누리도록 노력합시다"라는 내용의 식사를 낭독했고, 1948531일에는 임시 국회의장으로서 제1대 국회(제헌국회)를 개원하면서 목사인 이윤영 의원에게 하나님께 먼저 감사 기도를 드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어서 724일에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세한다"라고 선서했다."(Ibid, p. 97.)

국가의 정체성은 헌법에 명시된다.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제헌국회 개원사진-출처: 이승만기념관
제헌국회 개원사진-출처: 이승만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7

1919년 임시정부, 즉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인 임시정부 헌법 제7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신의 의사(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나아가 인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神人一致中外協應하야 漢城起義한지 三十有日平和的 獨立三百餘州光復하고 國民信任으로 完全히 다시 組織臨時政府恒久完全自主獨立福利我子孫黎民世傳키 위하여 臨時議政院決議臨時憲章宣布하노라.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7조는 대한민국은 무엇에 따라 건국되었다. 신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나라이다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첫 번째 공식 외교문서 191946일 자 신민일보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예수께서 통치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이념이 서려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헌법 뿌리는 하나님 나라이다.

19198월 임시정부의 제1호 외교문서에서는 미국 국민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투쟁하였고 기독교와 인도주의를 받들고 있다. 우리의 주장은 하나님이나 사람의 율법 앞에 떳떳한 것이며, 우리의 목표는 일본의 압박을 면하고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며, 우리의 목적은 아시아의 민주화이여, 우리의 소망은 기독교를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호소가 귀 국민이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김국헌, 대한민국 건국사 (도서출판 거대넷, 2016, 35).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첫 번째 공식 외교문서를 보면 대한민국의 소망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밝힌다. 곧 대한민국이 예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그런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에 의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나라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헌법에 따라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 신본주의 국가로 시작한 나라다. 이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면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 된다. 한국교회는 이것을 교회에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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