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오순절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때는 우리 민족에게 소망이 없던 시대였다. 조선왕조는 쇠퇴기에 있었고, 중국과 일본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각축을 벌이다 차츰 일본의 지배와 침탈이 노골화 되어가던 때였다. 백성들의 경제적 빈곤은 극에 달했고,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영적으로도 기근상태였다. 민간에서는 불교나 유교가 미신종교와 다를 바 없이 되어 있었고, 사대부나 지배층에서의 유교는 분열과 당쟁의 마당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당시 종교는 백성들에게 아무런 비전도 위로도 주지 못했다. 영적인 빈곤 그 자체였다. 당시의 영적인 상태는 비를 기다리는 메마른 들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어디서 불씨 하나만 떨어져도 순식간에 타오를 수 있는 겨울산과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당시는 복음이 들어온 지 30년 (한국선교의 기년을 1876년으로 잡을 때) 이 되어가던 때였다. 앞서 천주교가 엄청난 순교의 피를 뿌리며 복음의 길을 예비하였고, 기독교에 대한 민중의 관심과 기대가 커가던 때였다. 이 상황에서 평양중심의 장대현교회에서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다.

특별히 필자는 평양대부흥의 양상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의 양상과 매우 비슷하다는데 주목한다. 그 시작과 전개과정이 매우 전형적(typical)이다. 기도회, 성령강림, 회개, 사도들의 가르침, 교제와 나눔, 복음전도와 양적인 부흥의 순서다. 평양대부흥운동도 선교사들의 기도회와 회개, 그리고 사경회, 이어 회개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전도와 양적인 성장으로 이행되었다.

 

몰역사성?
일부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의 부정적인 면으로 신앙의 개인주의화, 몰역사성에 대한 지적들이 있다. 복음주의 신앙은 일시적으로 개인주의, 개인구원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역사의식을 갖기 전에 인격적인 변화가 앞선다. 아니 앞서야 한다. 복음에 대한 고백과 중생의 경험 없이 하나님나라를 바로 이해하고 역사적 사명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경우 사회운동가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될 수 없다.

필자는 대부흥운동이 곧 이어 일어난 3.1 독립운동과 깊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흥운동으로 힘을 얻은 기독교는 3.1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부흥운동이 몰역사성을 가져왔다는 주장의 반증이다.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이라야 하나님나라의 안목으로 역사를 보게 된다.

오히려 몰역사성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타난 현실타협과 신앙의 변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자들은 현실도피적인 신앙으로 변질되기 시작했고, 개인구원보다 사회적인 봉사와 변화를 강조하던 그룹들은 복음적인 신앙을 사수하기보다 현실과 타협하는 양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친일파가 되거나 신사참배의 방조자가 되어 교회가 순수성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신앙적인 경향을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신본주의는 개인구원과 신앙의 정조를 강조하고, 인본주의는 사회적 관심이 높고 신앙보다 사회정의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



7-80년대 고속성장에 대한 반성
한국교회는 7-80년대에 세계가 놀랄만한 큰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부흥은 초대교회의 부흥 모델과는 다르다. 1907년의 부흥은 오순절의 부흥운동과 거의 같은 양상으로, 순서도 거의 동일하게 전개되었으나 7-80년대 한국교회 부흥은 회개와 사경과 나눔과 성장의 순이 아니라 주로 전도와 양적 성장의 순으로 이행되었다. 부흥이라기보다 양적인 성장이었다.

여기다 기복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다. 당시 “잘 살아보세”의 경제성장운동과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라는 기복성향의 종교성이 맞아떨어지면서 이것이 교회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셨지만, 한국교회는 회개를 강조하지 않았다. “어서 나오게, 아무나 오게”만 강조되었다. 세례를 베풀면서도 회개의 확인과 믿음의 고백이 아주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오히려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종교 인구는 14% 이상 증가했는데 한국기독교는 역으로 그 비율 이상으로 감소하였다.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기독교 인구는 860만이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고, 샤마니즘은 급격히 부흥(?) 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책임이 크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보니 자신들이 세상에 있을 때 추구했던 것들 곧 부귀와 건강, 만사형통을 동일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신앙의 목적이 같을 바에야 좁은 길보다 넓은 길을 택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래서 샤마니즘은 크게 일어나고, 기독교의 성장은 멈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복적인 신앙은 윤리에 관심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윤리적인 일에 모범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적인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 중심에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특히 정직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풍조가 교회 안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지도자들의 수준저하이다. 아무나 목사 되는 세상이다. 신학교가 수 백 개나 있고, 연간 목사후보생이 일만명 가량이나 양산된다. 거기다 7-80년대 부흥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등의 스캔들로 성직자의 권위가 추락하였다.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새로운 부흥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도자들이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100주년 기념행사를 어떻게?
평양부흥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는 교회와 교인들을 동원하는 행사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회개를 위한 행사여야 한다. 목사들이 모여 자신의 갱신, 목회의 갱신, 교회정치의 갱신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대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을 다중을 동원하거나 수적인 성장으로 흉내 내려 해서는 안 된다.

Again 1907은 사도행전의 전형적인 모델을 따라 기도, 회개, 사경(査經), 친교와 나눔의 순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특히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부흥운동이 회개운동이 아니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특히 우리 교단의 영적 분위기는 너무나 메말라 있다. 각 지방에서 목사 장로들이 모여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를 열망한다. 그리고 올 연초에 시작된 [미래교회포럼]에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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