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대한기독교사진가협회 운영위원이며 JTN TV 발행인 정기남 목사의 작품이다.

                    봄 꽃      정기남 목사


IMF라는 괴물에게 삶을 빼앗긴 사람들은 낙엽처럼 거리를 뒹굴었다.
밤이 되면 서울역 지하도엔 많은 노숙자들이 모여들었다.
두꺼운 종이상자를 바닥에 깔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문지 몇 장을 이불 삼아 머리까지 덮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쓰러진 술병 옆에서 잔뜩 웅크린 채 코를 골았고,
담배 연기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때에 절은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선한 얼굴의 아이 엄마가 있었다.
그녀에겐 여덟 살쯤 돼 보이는 딸아이와 그보다 어린 아들이 있었다.
엄마는 잠든 아이들에게 자신의 외투마저 덮어주고는
조그만 몸을 나뭇잎처럼 떨며 찬 바닥에 누웠다.
어떤 날은 담요 밖으로 눈만 간신히 내민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기도 했다.

하루는 어린 딸이 까칠한 얼굴로 엄마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컵라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엄마, 나 배고프지 않아. 엄마도 먹어……."

아이는 자기 그릇에 있던 라면을 엄마에게 덜어주고 있었다.
엄마의 라면 그릇에선 하얗게 김이 피어 올랐다.
그런데 엄마의 그릇 속엔 라면 대신 뜨거운 물만 가득 담겨 있었다.
어린 딸이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는 라면을 먹는 척하려고 뜨거운 물만 담아 놓았던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그릇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고개 숙인 엄마는 울었고, 어린 딸의 두 눈에도 눈물방울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사나운 겨울, 어두운 지하 콘크리트 바닥에서 봄꽃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머지않아 꽃이 피는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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