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튤립혁명으로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을 몰아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자신이 반정부 시위대에 위해 쫓겨났다. 레몬혁명 또는
핑크혁명이라고도 튤립혁명(Tulip Revolution)은 2005년 2월 27일과 3월 13일 두 번에 걸쳐서 행해진 키르기즈스탄의 의회 선거
이후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키르기즈스탄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전국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국적으로 반정부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5년간 장기 집권했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피했고, 니콜라이 타나예프 총리
역시 사임했다. 이후 선거를 거쳐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뉴욕타임즈는
이번 키르키즈스탄 사태를 놓고 튤립혁명 이후 5년 만에 일어난 또 다른 혁명으로 인해 키르키즈스탄은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지만, 이 새로운 정권이
얼마나 안정적일지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바키에프 대통령은 두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첫째는 명백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시위가 일어난 날 아침 반정부 인사들을 체포한
것이다. 후에 풀려나기는 했으나 이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로 인해 때는 이미 늦었다. 둘째로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잘못된 계산을 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대처했던 방법으로 인해 바키예프는 더 이상 권력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됐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충돌한 경찰은 시위대에 비해 훨씬 많았다.
지난
3월 23일, 튤립혁명 5주년 기념일 당시 바키에프 대통령은 키르기즈스탄에 적합한 인권과 민주주의 도입에 대해 연설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못되어 ‘제 2의 튤립혁명’이 일어났다. 바키예프는 민주주의와 경찰 개혁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므로 그의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부패근절과
경제운영에 실패했으며, 요직에 자신들의 친척들을 대다수 등용시키므로 자신이 축출시켰던 전 대통령에 비해 훨씬 권위주의적으로 정국을 운영했다.
한편
키르키즈스탄의 이번 사태는 가난한 국가에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에 상당한 함의를 제공한다. 미국은 키르키즈스탄 북부 마나스
기지로부터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낸다. 뉴욕타임즈는 미국의 마나스 기지 사용이 “마나스 기지가 폐쇄되기를 바라며 키르키즈스탄에 2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는 러시아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결국 러시아는 바키에프 대통령이 선임자와 같이 러시아로의 망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4월 8일 오툰바예바는 미국이 마나스 공군기지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키르키즈스탄의
이번 사태는 중앙아시아의 나머지 국가들을 긴장시켰다. 5,000명 남짓한 시위자들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킨 두 번째 사건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키르키즈스탄의 이웃국가들은 더 이상 권위주의 정원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키르키즈스탄의
국민들이 이번 두번째 혁명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미션투데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