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또 다시 혼란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에서 소요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3일, 키르기스인들이 소수민족인 우즈벡인들을 살해하고 마을을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에게 폭도들에 대한 발포를 명령했으나 폭력사태는 통제되지 않는 상태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1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000명 이상이 부상 당했으며,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도정부 수반 로자 오툰바예바는 곧바로 지난 4월 키르기스를 떠난 쿠르만벡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정부는 폭력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4시간 통행금지령을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에 발표했으며, 예비군을 소집했다고 러시아 국영 뉴스 RIA가 보도했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키르기스 폭도들이 13일 잘랄라바드와 가까운 수자크라는 마을에서 30명의 우즈벡인들을 살해했다. 그들은 또 다른 우즈벡 마을을 공격했으며 아직 사상자 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우즈벡인들은 약100명 정도의 키르기스인들을 인질로 잡아 사태를 확대시키고 있다.

소요사태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인 오쉬에서 10일 시작됐다. 오쉬는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키르기스와 우즈벡 접경지대로 다수인 키르기스인과 소수 우즈벡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 지역은 1991년 양국이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번 사태는 두 민족 청년들 간 싸움에서 촉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총기가 사용되면서 민족 분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 지역을 기점으로 쿠르만벡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이 사태를 조장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AP통신에 따르면 오쉬는 현재 방화와 약탈로 완전히 혼란한 상태다. 계속해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피난을 떠나지 않고 도시에 남아있는 거주자들은 음식과 식수 부족을 겪고 있다.
비쉬켁에 거주하고 있는 톨쿤 우마라리에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우즈벡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이라며, 폭력사태를 멈추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을 비난했다.

BBC는 수천명의 키르기스의 우즈벡인들이 국경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우즈벡 정부는 키르기스에서 7만5000명 이상의 난민이 피난을 왔다고 밝혔다. 대부분은 여성과 노약자들이며 다수는 총상을 입었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유엔, "키르기스 소요사태 배후에 바키예프 아들"

키르기스 소요사태가 15일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던 키르기스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러는 가운데 이번 유혈 사태가 키르기스인들과 우즈벡인들의 오랜 긴장관계를 자극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직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인도주의 단체들이 구호품을 가지고 키르기스 남부로 들어가는 가운데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은 지난 주 목요일 키르기스 남부 최대도시 오쉬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분리주의 그룹이 계획적으로 조직한 다섯 번의 공격으로 촉발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으로 최소 100명의 사망자와 100,000명 이상의 우즈벡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번 사태는 세심하게 조직되었으며, 목표가 분명했다”고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은 말했다. 단순히 우발적인 민족 분규가 아니라는 것이다. 키르기스 정부 관료들은 쿠르만벡 바키예프 전 대통령이 이번 사태와 관련되어 있다며 그를 비난하고 있다. 이제 비교적 안정된 키르기스의 거리에서는 바키예프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우즈벡인 라브샤노이 카리모바라는 바키예프의 그림자가 키르기스 가운데 계속 남아 있는 한 키르기스인과 우즈벡인들 간의 폭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즈벡인들은 이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녀들, 우리 자녀들의 자녀들은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한다”고 카리모바는 말했다. 바키예프는 지난 4월 벨라루스로 망명했다. 그의 정적들은 그가 키르기스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는 끝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바키예프의 친인척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업들로 인해 그는 오랫동안 키르기스 남부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미군기지와 러시아군지기의 관계자들은 바키예프가 다수의 키르기스인들과 소수의 우즈벡인들 사이에 충돌을 야기시켜 과도정부를 약화시키고, 권력을 회복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바키예프는 이번 사건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키르기스 남부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과의 국경지역은 오랫동안 민족 분쟁이 있어왔고, 바키예프는 1990년 그 지역 도시 중 하나인 잘랄라바드에서 공무원으로 정치계에 등장한다. 키르기스인들과 우즈벡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지역이 바로 잘랄라바드이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키예프가 키르기스인들과 우즈벡인들을 자극시켰다”고 과도정부의 고위관리는 말했다. 남부에 있는 자신의 친인척들을 통해 불안정을 조장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바키예프는 “나의 형제들과 자녀들은 모두 피신한 상태”라고 벨라루스 통신을 통해 말했다. 13일 영국에 억류된 바키예프의 아들 막심이 이번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키르기스 당국은 “키르기스 영토에서의 범죄를 저지른” 이유로 런던에 막심 바키예프의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막심 바키예프는 망명국 정부의 보호를 요청했다. 사태가 안정된 15일, 정부와 구호단체들은 우즈벡 난민들을 돕기 위해 오쉬 공항에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을 보급했다. (미션투데이제공)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