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 임경근 목사
고신대(B. A.)
고려신학대학원(M. Div.),
깜뻔(Kampen) 개혁교회신학대학원(Drs.),
아뻘도우른기독개혁교회신학대학원(Th. D.)
현재 분당 샘물교회 교육목사와
샘물기독학교(유.초) 교목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외래교수
1. 좋은 추억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예배에 참석했다. 주로 주일 저녁예배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어른예배라고 불렀던 주일 오전예배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예배처럼 여겨졌고 왠지 나 같은 어린 아이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일 오전 9시 주일학교를 마치고 나면 어른들이 오전예배를 드리는 동안 교회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성경을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이제는 나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두꺼운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어른예배에 당당하게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했다. 그 후 참석한 어른예배는 지루하다거나 설교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커서 혹 설교 중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내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딱딱한 마룻바닥에 엎드려 설교를 공책에 요약해 적었던 경험은 지금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 아이들을 제외시킨 요즘의 예배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사라졌다. 영유아들은 아예 본당에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고 격리된(?) 유아부 혹은 영아부실로 안내된다. 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영유아 본당 접근 금지령’은 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강력하다.

혹자는 영아부, 유아부실이 어린 아이와 부모를 배려(?)한 특별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곳이 예배공간인지 놀이터인지 혼란스럽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머니들은 간간히 잡담을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오늘은 예배에 집중하리라 맘먹은 어머니가 오히려 시험 드는 환경이다. 어린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은 아이가 자라 혼자 유치부에 가는 날을 그래서 부모가 영,유아실을 벗어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예배드려야 하는 날이 다시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성도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 중에 영,유아실 분위기 탓도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특별 공간인 영,유아실을 졸업한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나이의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중학생이 되면서 어른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예배 참석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였고 중학생에게는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뿌듯한 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중고등학생들이 주일 공식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은 따로 모여 자기들만의 예배를 드린다. 현재 우리의 주일 예배는 각 세대별로 단절되었고 주일 공식 예배는 어른들만 참석하는 ‘어른을 위한, 어른에 의한, 어른만의 예배’가 되고 말았다.

3. 분리의 역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을 제외시키고 어른들만 예배드리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교회는 그 동안 어떻게 예배를 드려왔을까? 아이들은 언제부터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었는가? 대체로 주일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온 가족, 곧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특별히 칼빈의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언약신앙 안에서 유아세례를 통해 성도의 자녀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어릴 때부터 어른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다. 그것은 장로교회 예배지침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고신교회의 예배지침 9장 34조 1항에 보면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한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이 선언에 의하면 온 가족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함께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셨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중고등부, 심지어 청년들까지 주일 오전예배를 어른들과 따로 드리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위 선언에 이어지는 예배지침을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유년 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반드시 당회원이 출석하여 인도하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초등학생들을 위한 주일학교가 생겨났고 점차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주일학교가 생겨났다. 주일학교는 18세기 영국의 로버트 레이크스(R. Raikes)가 문맹퇴치와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시작하여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한국에도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일학교는 본래 불신자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일에 있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성도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예배로 발전했다. 주일학교가 발전하면서 유년부 아이들이 어른과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당회원이 출석해 인도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이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될 때 생겨날 영적인 문제를 감독하고 지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 최소한의 장치마저 제대로 지키는 교회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예배보다 더 큰 문제는 중고등학생들까지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 교육의 효율성을 근거로 중고등부 아이들도 독자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교회가 따라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까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고착시키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배지침에는 이렇게 선언되어 있다.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를 제외한 주일학교의 별도 예배는 허용되지 않으며 중등부 학생 이상은 반드시 일반 공식 예배에 참석하여야 한다.”(예배지침 9장 34조 2항)

우리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교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다음세대를 신앙으로 양육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배제, 격리시킨 예배가 바람직한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면 안 되는 근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4. 분리모델 vs. 통합모델.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는 경우를 ‘분리모델’이라 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통합모델’이라고 명명하겠다. 이후에는 분리모델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통합모델의 유익에 대해 정리해 보려한다.

1) 아이의 한계 vs. 훈련의 기회: 분리모델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긴 예배 시간을 참아낼 수 없다는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이들의 집중시간이 어른보다 짧다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지만 이점은 부단한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하고 자녀들이 예배를 방해하지 않고 집중하여 앉아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부모는 이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예배 시간동안 떠들거나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만을 위한 예배를 두었다. 그러나 이는 당장 조용한 예배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부모가 자녀들에게 예배를 훈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교회가 부모대신 주일학교에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들만의 예배를 통해 나쁜 쪽으로 강화되었고 결국 공 예배와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게 된다.

2) 예배 방해 vs. 교회의 미래: 거룩한 예배가 아이들로 인해 방해받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어른이 있다. 약간은 이해가 가나 예배 가운데 아이들로 인해 생기는 약간의 소란과 움직임은 어른들이 받아주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소음과 소란은 교회에 생명이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조용하긴 하겠지만 미래는 없다. 어린이는 교회의 미래다. 예배의 통합모델은 현재뿐만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3) 해득력 부족 vs. 공예배의 유익: 아이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설교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맞는 언어로 쉽게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다. 아이들의 수준은 나이에 따라 차이가 많다. 설교자가 모든 연령대에 맞는 설교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과 같은 설교를 들을 수 없을까?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어른들이 참석하는 부흥회에 따라다녔고 설교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없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설교를 이해하고 그만큼 은혜를 받을 것이다. 통합모델에서 비록 설교가 어려울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성령님께 맡기고 부모는 자기 책임을 다하는 자세도 유익이 크다. 부모는 자녀를 교회로 인도하는 책임을 다하며 성령님께서 그때 자녀들에게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예배를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설교를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 공 예배를 통해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분리모델에서는 배울 수 없다. 사실 아이들은 설교에서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파악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4) 교육의 실리 vs. 세대의 통합: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따라 나눠 어른과 분리해 예배를 드리면 교육의 실리를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분리모델에서 원치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친구들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합모델에서 아이는 부모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해 교육 받는다. 부모 역시 자녀가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하여 더욱 바른 신앙의 본을 보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분리되어 예배를 드리면 신앙의 내용과 문화에 있어 세대별로 분리, 단절되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며 신앙의 전수 또한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 예배를 분리해 드림으로 부모들의 신앙문화와 자녀들의 신앙문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신앙은 지식을 넘어 삶으로 통합되는데, 신앙교육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예배를 따로 드림으로 신앙전수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통합모델에서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같은 설교를 듣고 예배 후 집에서 설교에 대해 토론을 할 수도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이해한 바를 확인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신앙교육을 할 수 있다.

5.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를 바라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통합모델을 다시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회중의 일원임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어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동시에 어린 아이들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멀리하시고 어른들만 가까이 하시는 분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공 예배에 참석하면 부모를 포함한 주위 어른들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어른들이 만나고 믿는 하나님을 아이들도 배우고 만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서 아이들도 배운다. 이렇게 세대를 통합하는 예배 모델이 경건한 가정을 세우고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필자의 가족은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주일 공 예배를 드린다. 지금 네 살 된 막내가 1-2살 이었을 때 소리를 내기도해 눈치도 봐야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이제 한 시간 반 정도는 거뜬히 견딘다. 예배 때 반복해서 부르는 찬송을 아이들도 좋아한다. 유치원 나이의 셋째 아들도 담임목사님의 주일설교가 좋다면서 유년 주일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해프닝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와 형제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 교회도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다시 회복하면 좋겠다. 특별히 세대 간의 단절로 인해 신앙교육의 위기가 점점 커져가는 이때에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통합모델은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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