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을 위해 다른 모임을 구성하라.

   
▲ 이성호 교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
고려신학대학원 졸.
Calvin Theolgical Seminary
(Th. M. 및 Ph. D)
합동신대원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역임)
고려신대원 역사신학 교수(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영어에 대한 집착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영어교육의 열풍은 심지어 초등학교 어린이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교회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영어예배가 조금씩 도입되고 있는 형편이다. 영어예배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향한 것이면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교회의 선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므로 격려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한국인,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예배라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영어예배가 뭐가 그리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예배를 통해서, 불신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회로 보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가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할 것이다. 실제로 영어로 된 성경공부 교제나, 찬송 중에서 아주 좋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가지고 교육을 시킨다면,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심도 깊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이 영어예배는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심각하게 우려 되는 사항이 있다. 우리가 신조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21장은 예배와 안식일에 관한 장이다] 3절은 기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영어예배와 관련하여 중요한 구절은 "소리를 내어 기도할 때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한다."는 항목이다.

이 구절은 물론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여야 한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예배에서도 심각하게 타락하였는데,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예배(미사)를 라틴어로 드리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아무 뜻도 모르는 체, 신부나 일부 성가대가 노래하는 설교나 찬송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맞서서, 종교개혁가들은 모국어로 성경을 읽으며, 모국어로 찬송과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국어로 된 예배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회복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이해했던 것이다.

이런 개혁주의 신앙에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어예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영어예배 운동은 종교개혁 이전의 타락한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어예배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속에서 과연 참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길러질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영어예배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예배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영어를 습득하게 하려는 부모들의 이기심을 교묘하게 충족시키는 것이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은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뭔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어예배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영어예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교회가 어떠한 영어 프로그램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예배에 한해서 우리에게 규범적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회의 현상에 지조없이 휩쓸려서도 안 되지만, 너무 무감각해서도 안 된다. 영어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회가 성경과 신조에 벗어나지 않는 한, 이것을 건전한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영어 성경공부나 영어찬송 배우기 정도는 허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차라리 주말에 영어 기독교 학교를 여는 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어린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차라리 그것을 교회에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앙있는 좋은 영어교사만 확보할 예산을 갖춘다면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교회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은 예배의 차원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고, 교육이나 사회적 봉사(저렴한 영어 교육을 시킨다는 점에서)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어를 중심으로 해서 이런 역량들이 쌓인다면, 궁극적으로 교회가 할 일은 영어 뿐만이 아니라 전 과목을 기독교 교사가 가르치는 기독교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교회와 더욱 더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미래의 교회가 살아남는 가장 효과적인 길일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이 일에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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