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림과 함께 다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 임경근 목사
   고신대(B. A.)
   고려신학대학원(M. Div.),
   깜뻔(Kampen) 개혁교회신학대학원(Drs.),
   아뻘도우른기독개혁교회신학대학원(Th. D.)
   현재 분당 샘물교회 교육목사와
   샘물기독학교(유.초) 교목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외래교수
1. 성탄절의 추억

성탄절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추억이 몇 가지 있다. 성탄절을 앞둔 12월 초면 친구 몇 명과 함께 쌀쌀한 날씨에 맞서 두툼한 잠바와 장갑, 빵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가까운 산에 오르곤 했다. 예배당에 세울 좋은 크리스마스트리(Christmas Tree)를 잘라오기 위해서였다. 한 때 벌목이 불법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시골에 살던 우리에게 성탄절을 위해 한 그루 나무를 잘라오는 일은 치외 법권처럼 여겨졌다. 산에서 잘라온 나무는 교회 한쪽에 세워진다. 그리고 하얀 솜과 반짝이 줄로 장식하고, 색색 종이로 예쁜 종, 별, 지팡이, 산타할아버지 모양을 만들어 달면 예배당은 성탄 분위기로 가득해진다. 물론 시시각각 여러 색깔로 바뀌는 반짝이는 전구 세트까지 걸쳐놓으면 금상첨화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보다 더 추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성탄절 축하 전야 발표회다. 율동, 중창, 암송, 합창, 연극 발표는 시골에서 누릴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문화행사였다.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성탄절 준비 기간은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에 추운 예배당에 장작(혹은 톱밥) 난로를 피워놓고 노래, 암송, 율동, 연극을 연습하는 시간은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성탄절 당일 새벽에는 성도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새벽 송을 불렀다. 기다리던 눈은 오지 않고 살을 에는 칼바람만 씽씽 부는 시골길을 걸어야 하는 새벽 송은 고생이면서도 즐거움이었다. 때로는 십리이상 떨어진 성도의 집에까지 걸어가 찬송가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찬송을 마치고 그 댁에서 준비한 따뜻한 식혜를 골목에 서서 호호 불며 마셨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요즘도 성탄절을 앞둔 교회는 여러모로 바쁘다. 교회 건물을 반짝이는 아름다운 전구로 장식해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성탄축하 전야 축제도 여전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탄행사의 비중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참여하는 성도들 마음도 예전만큼 즐거워하고 기대하는 것 같지 않다. 멀티미디어의 등장으로 교회 밖에서도 재미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2. 오신 예수님

한 달 전부터 시작된 성탄절 준비와 성탄절 전야의 축하 모임, 그리고 성탄절 새벽과 아침의 성탄 예배까지 모든 것들이 2천 년 전 오신 예수님에 대한 회고와 그 의미에 집중된다. 새벽 송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 혹은 “그 어리신 예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우리 구주 나신 날”, “저 들밖에 한 밤중에”, “천사 찬송하기를” 같은 찬송을 부르는데 모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주제이다. 오신 예수님에 대한 찬송은 찬송가 106장~126장까지 총 20편이나 있고 성탄 전 후 주로 즐겨 부른다.

        

성탄절 축하 행사도 오신 아기 예수님이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의 메시지’, ‘천사들의 합창’, ‘동방에서 온 점성술사들의 소동과 경배’ 등이 주 소재다.

        

성탄절을 통해 예수님이 왜 오셔야 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이며, 그 결과 우리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확인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요즘은 성탄절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버리고, 성탄절도 일반 공휴일 가운데 하나처럼 인식되어버려 참으로 씁쓸하다. 이제라도 주인공이신 오신 예수님을 되찾는 일이 시급한 일임에 틀림없다.


3. 오실 예수님

그러나 오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오신 예수님에 대해 분명한 지식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도신경에서 “하늘 우편에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식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과거 오신 예수님에게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아기 예수로 오셨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 기간이 무려 2천년을 넘겼다.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그 분은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4. 대강절(대림절)

교회는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성탄절’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는 의미에서 대강절(待降節, Advent) 혹은 대림절(待臨節)을 지켜왔다. 본래 대강절의 영어 표기는 ‘Advent’로 그리스어의 ‘Parousia’(재림)의 라틴어 번역에서 유래했다. ‘Advent’라는 단어 자체는 단순히 ‘오심’(coming)이라는 의미이지만, 보통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다. 첫 번째 의미는 유대인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본래적 의미이고, 두 번째 의미는 오늘 그리스도인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성탄절이 성탄일 하루를 의미하는 반면 교회가 역사적으로 지켜온 대강절은 어떤 특정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대강절은 서방 기독교의 일 년 교회력의 시작으로 12월 첫 주부터 시작해 성탄절이 있는 그 주까지 4주간을 대강절로 지킨다. 대강절 기간에 교회는 ‘구주’(Savior)로 오신 예수님의 ‘초림’과 ‘심판자’(Judge)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고 설교를 한다. 서구 교회는 이 절기를 지금도 지키고 있다. 유럽교회 중에는 교회에 네 개의 초를 세워놓고 한 주에 하나씩 초에 불을  밝혀 나가는 전통을 가진 교회가 있다. 첫 주에는 한 개, 둘째 주에는 두 개의 촛불을 켜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매 주 색깔이 다른 촛불을 밝히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경건한 자세를 훈련하는 의미에서 금식과 참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필자가 경험했던 네덜란드 교회는 대림 절기를 매년 꼭 지킨다. 이 기간을 위해 모든 가정이 가정예배 시간에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 나눠준다. 성도들은 이 책자의 도움으로 가정예배에서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묵상하며 기다린다. 경건한 전통이 아닐 수 없다.


5. 한국 교회에 생소한 대강절

대강절이 한국에는 생소한 개념이다. 필자는 대강절이라는 단어를 성인이 될 때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한국 교회가 지키는 절기는 성탄절, 부활절, 맥추ㆍ추수감사주일이 모두이다. 성령 강림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드물고, 대강절을 지키는 교회는 더 없다. 이런 분위기는 로마 천주교회의 절기에 대한 과도한 의식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독특한 그 나라의 기독교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성도에게는 늘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깨어 있는 신앙이 꼭 필요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부흥회에 가면 말세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설교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설교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지면서 예수님이 가능한 늦게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좀 형편이 좋아져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질수록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점점 약화되는 것 같다. 그러나 좋은 컴퓨터, 똑똑한 스마트폰, 끝없이 발전을 거듭할 것 같은 IT산업, 생명공학. 우리는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자칫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지 않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 조금 있다가 오시면 안 될까요? 이제 집을 샀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넓은 새 집에서 좀 살아보고......” “예수님, 집값이 곧 오를 텐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수님, 저도 진급을 해 보고......” 이것들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 말이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11:21”). 대강절을 앞둔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고백하는 한 달을 보냈으면 좋겠다.


5. 대강절 제언

필자의 큰 딸 이름은 ‘예림’이다. 예수님을 뜻하는 ‘예’와 임할 ‘림’(臨)을 모아 만든 이름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뜻으로 우리 부부의 신앙고백을 담은 이름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다. 마치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과 같다.


한국 교회가 대강절의 의미를 살려 예수님의 초림과 특별히 재림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겠다. 올 해 달력으로는 11월 28일 주일이 대강절의 시작이다. 교회에서는 매 주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생각하며 그에 맞는 설교를 4주 동안 하면 좋겠다. 각 성도들은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 이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고 개인 경건 생활을 위한 큐티 본문도 이렇게 조정하면 좋을 것이다. 대체로 큐티 본문은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것에 집중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을 묵상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책자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가정별로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강절을 앞두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고 기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과 구별되고 정결하게 될 것이다. 대강절을 앞두고 앞으로 한 달은 예수님의 재림을 묵상하는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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