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무를 많이 베었습니다

키가 큰 이 나무는 땔감으로 밖에 사용할 수없는 종류로써 100년은 넉넉히 된 것 같은 모습으로 인도 칼빈신학교 담장을 가운데로 반은 칼빈 것이고 반은 길이 나는 정부 것인데 저희들이 이곳에 이사를 왔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제사도 이곳에서 드리고 얄궂은 것을 달기도하고 평일 땐 소나 짐승들을 많이 묶어두기도 해서 여간 기분 나쁘고 불편한 정도가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 나무가 학교 식당 지붕을 덮칠 것 같은 기세다. 그런데 저희 칼빈신학교가 생긴 후 이곳에서 제사나 자기들의 신을 경배해도 약발(?)이 받지 않는다고 약 13년 전 마을주민들이 의논하여 나무를 잘라서 자신들이 나누어 가지겠다고 찾아왔기에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그 큰 나무의 딱 반을 기계로 잘라서 가져가서 자기들끼리 나누었습니다. 그 후 저희들은 이 나무가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지만 이렇게 상처를 입었는데 살아날까? 반신반의 했는데 뜻 밖에 잘 자라서 학교 쪽으로 기운채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희들이 이 나무를 잘랐습니다. ▲ 베어낸 나무를 땔감으로 쪼개는 학생들...

이유는 나무가 학교 쪽으로만 기울면서 식당지붕을 내리칠 것 같은 기세이기도 하거니와 요즈음 실린더가 부족하여 120명의 하루 세끼 더운밥과 반찬들을 해대는 것에 어려움이 있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면서 삼바도 따뜻이 데워서 먹어야할 형편이 되므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잘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나무로 땔감을 하여 밥을 지었더니 생나무라서 잘 타지가 않는데 수없이 떨어지는 이 나무의 잎사귀들이 불쏘시개가 되어서 일단은 많은 연기를 내면서도 불이 붙었습니다.


▲ 불을 때면서 웃음이 만발한 임정숙 선교사 그리고 일지감치 조금씩 모아두었던 잔가지들을 섞어가면서 불을 때었더니 나름대로 장작불밥이 되어 밥맛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아침과 초저녁 연기로 말미암아 모기떼들이 사라져가는 기적을 즐기고 있습니다. 신학생들도 대 만족을 하면서 정규수업 후 오후 4시가 되면 서로 앞 다투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지를 베곤 합니다. 사진의 이 학생은 이름이 페카인데 너무나 열심히 나무를 벨뿐만 아니라 나무 베는 기술 또한 뛰어 납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도 마치 원숭이처럼 자연스러우며 굵은 밧줄로 위의 가지를 묶어서 베는 가지를 잘라도 아래지붕이나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며 밧줄을 당기는 나무아래의 학생들에게 신호를 주는 방법도 마치 나무꾼처럼 “아유레디? 홀드, 혹은 루즈 노노 바인딩 ” 하면서 정말 잘 합니다. 낫으로 나무를 찍는 방법도 특별 합니다. 이곳엔 도끼가 없어서 기역자 모양의 낫처럼 생긴 이것으로 치면서 가지들을 잘라내는데 아래서 쳐다보는 저에게는 신기하기도 하고 이 학생들의 과거가 어쨌기에 이런 일이 이렇게 능숙한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학생들은 떨어지는 나무에서 잔가지와 큰가지를 불 때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데 이것 역시 별 기구 없이 그 낫을 나무에 올려놓고 다른 나무로 내려쳐서 자르는데 마치 놀라운 묘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랑 언니 오빠 그리고 막내인 저도 함께 집에서 가까운 싱메산으로 나무를 하러간 적이 있습니다. 딱 한 번의 기억인데 고스란히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어머니는 무조건 나무를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솔가지를 긁어서 모으기도 하셨고 마른가지를 찾아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이셨으며 언니는 어머니 뒤를 따라 다녔습니다. 아마도 그러면서 어머니가 남긴 조각들을 주워 담았다는 기억이 어렴풋합니다. 오빠는 어느 쪽으로 가야 빠른 시간에 일을 끝낼 가를 궁리하면서 이쪽저쪽 떨어진 나무가 많은 방향을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고 저는 그냥 솔방울이나 주워 담은 것 같은데 초등학교 1,2학년 때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름대로 왜 이렇게 나무를 해야 하는지를 좀 슬퍼했던 것도 같고 우린 아마 가난한가봐 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또 나무의 기억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양호선생님이 미국서 원조 온 밀가루와 옥수수와 우유로 빵을 만들어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급식을 배급해서 먹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년 중후반이었는데 그때 저는 어렸지만 양호선생님의 불때는 것을 도왔던 기억이 있는데 비록 급식 받는 아동은 아니었으나 불 때는 것을 도운학생으로서 한 덩이 씩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한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미국에서 원조 온 것을 우리가 먹는구나. 나는 자라서 부자가 되어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의 어린이들을 많이 도와줘야 하겠구나.” 그 당시 저는 믿음은 없었지만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인도하시는 어머니의 기도에서 많은 것을 느끼면서 자랐나 봅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져서 지금 인도에서 약 천명의 가난한 아동들에게 복음과 떡을 나누고 (사진은 올해 아동들의 가정에 나누어줄 쌀 포대입니다) 또 남편 윤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백 명이 넘는 영적군사들을 양육하고 있는 지금의 형편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하시고 작성하신 계획대로 되어졌음이 감격스럽고 감사가 넘치는 마음이 되면서 주님의 은혜가 한량없음이 오늘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틀림없이 우리 인도 칼빈 신학생들 중에 세계를 향한 선교사가 나올 것이며 우리주일학교 아동들 중에 목사, 교사를 비롯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올 것을 믿는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요즈음 나무로 불을 때서 밥하는 것을 도우면서 하나님께서 주신은혜를 한국의 후원자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며 동일한 은혜가 그곳에도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위험에서 보호받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에 통일되기를 기도하면서 대통령과 정부 모든 관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깨어 기도하고 회개하여 우리나라가 또 다시 원조 받는 나라가 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영육간에 원조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올해도 인도와 칼빈신학교와 주일학교를 위하여 함께 해주신 보내는 선교사 되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서 희망차고 더욱 복된 새 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인도 칼빈신학교 선교사 윤지원 임정숙드림 2010년 11월 30일 밤에 ▲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쌀을 구입했다.
▲ 지난해 쌀을 받으러 신학교를 방문했던 주민들... ▲ 쌀을 나누는 데는 학생들의 봉사가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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