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감사절 기원 및 변천사

▲ 이기업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보스톤 대학교 대학원 예배학(S.T.M.)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Th.M.)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구약학 박사과정 (Ph.D.) 코스웤 마침전, 미국 시카고 개혁교회 (CRC교단)담임목사 현, 한국동남성경연구원현, 대학교회 담임목사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해석이 다양하지만 가장 전통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1620년 9월 6일에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영국의 순례자들 (Pilgrims) 102명이 영국에서의 신앙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 (Mayflower)를 타고 출항하여 60일간의 항해기간을 마치고 같은 해 1620년 11월 20일에 신대륙의 플리머스(Plymouth)항에 상륙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신앙과 시민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대륙인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하여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한 순례자들은 추위와 식량의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 해 봄을 맞기도 전에 총 102명 중에 절반가량인 44명이 죽게 되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왐파노악(Wampanoag) 인디언 원주민들로부터 뱀장어를 잡는 방법과 옥수수 재배법 등의 도움을 받아 곡식을 파종하여 여름에 대풍작의 소출을 거두게 되었다.1) 이에 순례자들은 1621년 12월 13일에 자신들을 도운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크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큰 잔치를 마련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53명의 순례자들과 인디안 추장 마사소이드와 90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이 3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공되었다.2) 당시 순례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호박, 옥수수, 스콰시, 생선, 조개 등을 대접했고 인디언들은 이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추수감사절 축제에 참가하여 함께 즐겼다고 전한다. 이것이 최초의 미국 추수 감사절 축제에 관한 미국의 전통적인 견해이다.


추수감사절”은 1621년 영국 순례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최초로 거둔 수확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렸던 일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처음에는 11월 넷째 목요일로, 3일간 계속된 축제이었다.


그 후, 당시의 첫 개척지 플리머스 지역의 초대 지사였던 윌리엄 브래드퍼드 (William Bradford, 1590-1657)는 감사절을 지킬 것을 이렇게 선포했다3): “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여러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다…나는 모든 순례자들 (Pilgrims)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라”고 감사절을 지킬 것을 권고하며 선포했다.


첫 이주지였던 뉴잉글랜드 지방의 순례자들을 중심으로 축하되던 감사절은, 미국의 독립 후인 1789년 11월 26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에 의하여 전국적 국가공휴일로 제정되어 선포되었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폐지했다.4) 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게 된 것은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이다. 1863년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국민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고 있을 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 단합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감사일 (Thanksgiving Day)로 공식 발표했다5): “국내외에 흩어진 모든 미국민이 이 날은 하늘 아버지의 선한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6) 현재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939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감사절을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변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7) 지금까지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변천사를 통해서 볼 때, “추수감사절은 성경적 근거에 기초하기보다는 미국교회적 배경에서 기원한 것이다”8) 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원의 역사는 어떠한가? 한국 기독교에서는 추수감사절은 1904년부터 지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1월 첫째 주일을 감사절로 정하였다. 미국 선교사의 영향으로 제 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徐景祚, 1852.12.14~1938.7.27) 장로/목사의 제의로  한국교회에서도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했다. 다른 교파 선교부와 협의하여 추수감사절의 날짜를 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정하여 장로교 단독으로라도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로 했다. 그 후,“1914년 주한 각 선교부의 협의 아래”9)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로 하였다.10)


그 후, 수요일에 지키던 추수감사절을 주일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 일각에서는 한국농촌의 실정에 맞는 시기인 추석을 전후해서 한국교회의 토착화된 추수감사절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와 교파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그 기원과 발전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추수감사절에 관한 기원은 청교도들의 신앙이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문화적 산물로서 만들어진 절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농경문화적 개념에서 기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지킨 날에 대하여 살펴보면, 미국의 청교들에게서도 그렇고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킨 날이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으로 많이 바뀌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문제는 추수감사절에 대한 그 기원과 발전과정 그리고 그 명칭과 날짜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력(예배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현대교회에서 중요한 교회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감사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1년간 베풀어주신, 그 은혜와 복 때문에 얻게 된 소출을 가지고 특별한 감사를 하나님께 표현하는 특별감사 예배의 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전통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좋은 전통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2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는 절기의 명칭 문제가 적당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질문은, 우리가 1년간의 특별감사를 표시하는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이 언제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이다. 즉 이것은 본고의 핵심 이슈로서 감사절의 ‘명칭문제’와 ‘그 날짜’에 대한 문제이다.

 

필자는 이러한 소위 “추수감사절”에 관한 2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현대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소위 “추수감사절”과 유사한 감사절기를 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추수감사절이 1년간의 소출에 대한 감사인 것처럼,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1년간의 소출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 (장막절, 수장절)에 관한 말씀을 구속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필자는 본고에서 소위 “추수감사절”에 대한 명칭과 날짜 문제를 해결하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중심의 교회력에 기초한 우리의 감사절의 명칭과 날짜를 제시하고자 한다.

 

옛 언약 백성들의 추수감사절로서 초막절

소위 현대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이 1년간의 소출과 복에 대한 감사라면, 이것과 동일한 감사의 정신과 의미를 담고 있는, 즉 1년간의 소출과 복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도록 명령하신 감사절을 하나님의 계시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하나님의 첫 번째 계시인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애굽에서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평생에 대대에 영원토록 지켜야 되는 3가지 감사절기가 있었다. 신명기 16:16-17절에 따르면,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 16:16-17)라고 명령의 말씀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유월절 (무교절), 맥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 (장막절/수장절), 이 세 차례의 감사절을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빈손이 아닌, 각 사람에게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감사절을 지켜야 했다. 

초막절에 관한 대표적인 본문은 구약성경의 3곳에 나타난다. 레위기 23:33-44; 신명기 16:13-17; 민수기 29:12-40절이다. 초막절의 규례를 기록한 이들 본문에 따르면, 초막절은 4가지 특징들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초막절은 성회로 모이는 절기이다. “일곱째 달 열 닷샛날” (레23:34)에 지켜야 하는 절기로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일곱째 달은 유대력으로 ‘티쉬리’라고 불려진다. 우리 달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한다. 초막절은 티쉬리 15-21일까지 (7일간) 지켜진다. 그러나 안식일에 시작하여 안식일에 끝나기에 실제로는 8일간의 절기가 된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은 안식일로서 그 절기를 마무리하는 “장엄한 대회” (민 29:35)로 지킨다.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거룩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매일 드려지는 초막절의 세부 절차와 규례는 민수기 29:12-40절에 기록되어 있다. 즉 초막절은 거룩한 제물들을 준비하여 온 언약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거룩한 집회, 곧 성회로 모여야 한다. 

둘째, 초막절은 즐거워하는 축제의 절기이다. 레위기 23:40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신명기 16: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라고 말씀한다. 즉 공동체적 축제이다. 그리고 신명기 16: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무노동과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모두가 함께 모여서 즐거워하는 축제이다. 

셋째, 초막절은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주하면서 받은 모든 복을 기억하며, 받을 복을 기대하며 지키는 감사절기이다. 레위기 23:40절에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초막의 주된 ‘건축재료’이다. 그리고 레위기 23:42절에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라고 말씀한다. 초막 (a booth or hut; sucha)은 텐트 (ohel)로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실제적으로는 태양의 열, 바람, 비 (시 31:21; 사 4:6; 욘 4:5)를 막는 역할을 한다. 의미론적 관점에서, 초막에 거하게 한 것은 단순히 광야에서 방황하던 옛 기억을 상기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결핍과 부족 그리고 불순종의 광야 생활에 대한 회고는 결코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것은 위험한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돌보심, 보호에 대한 기억을 이스라엘의 미래 세대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 돌보심, 보호를 의미하는 각 개인이 거주하는 초막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돌보심, 보호를 의미했던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기둥과 불기둥 (또는 성막)을, 개인적으로 가까이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하면서 실제 개인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체험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11)

더구나 이 초막절에 사용된 초막들 (booths)은 사막의 앙상하고 비참한 가시나무와 같은 관목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초막은 야훼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 (신 8:7)이며,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 (신 8:9)이며,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신 8:10)고 하신 땅에서 난, 열매 있는 과목들의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 가지, 시내 버들로 초막이 만들어진다. 이점에서 초막의 재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풍성하게 하신 축복의 충만함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 풍성한 축복을 상징하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초막에 거하면서 자기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상기하고 즐거워하며, 감사의 축제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을 전투를 통해 차지하고 경작하고 재배하는 노력과 수고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노동과 수고도 하지 않는 안식일에 시작하여 안식일에 끝맺는 초막절을 통해 무성하고 풍성한 초막의 재료들을 초막 안에서 거주하면서 바라볼 때, 노동할 때 노동하고, 안식할 때 안식하는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에 대한 결과로서, 이스라엘이 현재 누리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적 축복이라는 것을 현재의 초막 안에 거하면서 그것을 상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에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주하면서 하는 ‘초막체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다. 

신명기 16:13절에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말씀한다. 신명기 16: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yh,ªl{a/ hw"åhy> ^úk.r<b'y> yK)라고 말씀한다 (미완료). 이것은 모든 소출과 모든 일에 복 주심과 복 주실 것에 대한 감사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받은 모든 복을 기억하고 받을 모든 복을 기대하는 믿음의 감사절이다. 

마지막 넷째, 초막절은 구원의 복을 기억하여 감사하는 절기이다. 레위기 23:42-43절에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초막절은 출애굽의 구원사건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은 언약공식 (covenant formula)의 축약형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를 의미한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은혜로 맺은 언약 관계와 출애굽의 구원 사역에 대한 감사이다. 

이상의 초막절에 관한 4가지의 특징이 바로 구약 백성 이스라엘의 초막절 감사 절기를 지키는 그 주된 동기와 의의 (the main motive and significance)였다.

 

해석학적 열쇠로서 그리스도의 새 출애굽 사역 (New Exodus; 2ndExodus)

그렇다면, 신약성도는 초막절 감사절기를 꼭 지켜야 하는가? 지킨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날에 지켜야 하는가? 이 문제는 구약 율법과 신약의 복음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구약의 율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어거스틴이 십계명에 대하여 ‘도덕법’ 개념을 사용한 후,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을 의식법 (ceremonial law), 시민법 (civil law), 도덕법 (moral law)으로 구분해왔다. 의식법과 시민법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기에 신약성도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도덕법은 구약성도나 신약성도가 함께 지켜야 하는 영원한 행위의 규범이다. 심지어 더 나아가 구약성도가 지켰던 도덕법보다고 신약성도는 예수님께서 내면의 부분까지 지키도록 심화, 갱신해주셨기 때문에 행위의 규범으로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율법의 3가지 부류 가운데서, 초막절 감사절기는 제사법과 관련되어 있기에 의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의식법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해주시고 완성해주셨기 때문에 신약성도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킬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신약성도들이 초막절에 관한 그 의식법의 율법을 성경으로부터 폐기 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된 율법은 행위의 규범으로서는 그 기능이 다 했지만, 그 율법이 제정 될 때에 반영되고 의도되었던, 율법의 정신은 복음 안에서 신약성도가 그대로 유지해야 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초막절 감사절기를 지키기 위해 초막을 짓고 일주일간 70마리의 수소와 그 외의 수많은 짐승과 제물을 드릴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초막절 감사절기가 의미했던, 1년간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복과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를 드리는 특별감사절에 대한 필요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경험한 신약성도인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꼭 필요한 응답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정신은 옛 언약 공동체나 새 언약 공동체가 공히 전수해서 지켜야 하는 언약백성의 공통된 삶의 자세와 신앙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언약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지켜야 했던 초막절의 감사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2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소출과 모든 일에 복 주심과 복 주실 것에 대한 감사이다 (레 23:39-40; 신 16:15, 17). 또 다른 하나는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레 23:43). 그러므로 옛 언약의 백성이 영원히 대대로 지켜야 했던 초막절의 감사의 내용이 모든 일에 복 주심과 출애굽에 대한 감사였다면,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출애굽 (New Exodus; 2ndExodus)의 구원 사역에 대한 감사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모든 일에 복 주심에 대한 감사, 곧 범사에 대한 감사이다. 전자는 구원에 대한 절대적 감사라면, 후자는 범사에 복 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그러므로 구약성도의 초막절 감사절기를 지키는 감사내용은 신약 성도도 동일하게 지켜야 하는 감사의 내용이다. 

출애굽 공동체이며, 옛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1년간의 소출에 대한 감사와 구원에 대한 은혜에 응답하는 감사절인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과 같은 감사절기를 신약성도인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사한 감사절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현대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소위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 출애굽 (New Exodus) 사역의 결과로서, 옛 언약 백성의 감사절기였던 초막절과 현대교회가 지키는 소위 “추수감사절,” 이 둘 사이에는 감사의 내용과 정신면에 있어서 연속성 (continuity)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소위 “추수감사절”의 명칭은 정당한 것인가? 추수감사절에 대한 명칭 문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대로 그 절기 명칭은 17세기의 신대륙에서 생성되었던 것으로, 매우 미국의 문화적이며, 특히 추수와 관련된 농경문화적인 절기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는 농경 사회가 아니라, 산업사회이며, 그것도 최첨단의 산업사회이다. “추수감사”라는 그 명칭이 비유적 의미로는 가능할지라고, 문자적으로 볼 때 “추수감사절”이라는 용어는 매우 퇴조된 문화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널리 두루 사용되기에는 보편성이 결여된 용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중심에 기초한 교회력의 절기이름 대신에 퇴조된 문화적 배경에 근거한 “추수감사절”이라는 보편성이 결여된 용어가 교회력의 절기명으로 사용되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추수감사절” 격인 구약의 초막절은 율법의 3분류 가운데 의식법에 해당한다. 의식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취하셨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성도인 우리는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 즉 행위의 규범으로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그 율법이 지닌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그 정신은 그대로 새 언약 공동체인 교회인 우리에게 유익한 전통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율법과 신약 복음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학적인 설명을 더 자세하게 논할 필요가 있다. 로마서 10:4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te,loj no,mou) 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는 의식법인 초막절 감사절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행위의 규범을 마치도록 하셨다. 하지만 그 초막절의 주된 감사제목과 내용인, 구원에 대한 감사와 모든 일에 복 주신 범사에 감사라는 이 두 감사의 제목은 유효하다. 이것이 초막절의 2개 감사의 기둥 (two pillars of thanksgiv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감사정신은 그대로 새 언약 공동체에도 적용 및 계승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의 구약 율법에 대한 해석학적인 실천 및 적용방식이다.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지켰던, 구약의 초막절 감사절기를 가장 잘 계승하는 신약의 감사의 전통이 소위 “추수감사절”이라면, 이 감사절을 새 언약 백성인 신약교회인 우리는 언제 이 감사 절기를 지켜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우리는 대강절에 지켜야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강절의 절기 (Advent Season)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새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성육신 하신 성탄절을 앞둔 4-5주간을 지키는 절기이다. 대강절의 문자적인 의미는 우리 주님과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의미이다. 대강절은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교회력의 시작의 절기이다.  

교회력의 성탄절 사이클에서의 주된 사건인, 예수님의 초림하심을 일컬어서 히브리서 9:26절은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evpi. suntelei,a| tw/n aivw,nwn)고 말씀한다. “세상 끝” (evpi. suntelei,a| tw/n aivw,nwn)12)은 일반적으로 시간적인 마지막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이 세대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옛 세상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초림하심은 옛 세상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예수님 이후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옛 질서의 마지막에 오셔서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시고 완성하신 분이시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마침” (te,loj no,mou)13)이 되셨다. 율법을 성취하셨다. 율법의 역할과 기능을 종결시켰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초막절의 2가지 감사정신을 담고 있으면서도, 신약교회인 우리가 지켜야 할 ‘새로운 감사절기’ (a new thanksgiving day)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추수감사절” 대신에 “대강절감사”로!

구약 초막절과 현대교회가 지키는 소위 “추수감사절” 사이의 감사의 내용과 정신에 있어서 연속성이 있었듯이, 구약 초막절에 대응하는 감사절기로서 신약 교회에 의해 지켜지는 소위 “추수감사절”을 대강절에 지켜야 된다는 확언과 제안을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개념과 의미’를 상호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비교가 가능한가? 

옛 언약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킬 때, 유대력으로 티쉬리 (9-10월)의 15-21일까지 지켰다. 그리고 티쉬리의 1일을 신년 (나팔절)으로 지켰다. 이 말은 유대 종교력의 티쉬리 월은 한 해의 시작하는 절기이었다. 유대력에서 티쉬리는 시작하는 절기이지만, 1년의 밭의 포도와 무화과, 올리브를 추수하는 절기, 곧 연말에 해당한다. 즉 농산물의 연말추수를 의미한다. 이 때는 경작하는 시기이며, 밭의 포도, 무화과, 올리브 추수를 한 시기이다 (레 23:39,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 닷셋 날부터 이레 동안”)14) 즉 초막절은 1년간의 소출에 대한 감사절이었다. 초막절이 있는 티쉬리월이 유대력의 시작이면서, 1년간의 소출에 대한 감사절이었듯이, 교회력에서 대강절도 교회력의 시작이면서 세속 월력의 연말에 해당한다. 시간적 측면에서 초막절과 대강절은 병치 (parallelism)를 이룬다. 그래서 대강절은1년간의 받은 복을 결산하여 감사할 수 있는 교회력의 절기 중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약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구속 사역을 기초로 한 6가지 교회력 시스템이다. 곧 대강절(Advent)→성탄절(Christmas)→주현절(Epiphany)→사순절(Lent)→부활절(Easter)→성령강림절 (Pentecost)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연속적인 절기는 그리스도의 주된 구속사역인 성탄절과 부활절을 중심으로 2개의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 성탄절 사이클은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과 축제의 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이 이어진다. 그리고 부활절 사이클은 준비의 절기인 사순절을 지나서, 축제의 절기인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이 이어진다. 여기 언급된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로 구성된 교회력의 시작은 바로 대강절이다. 세속달력은 1월1일이 시작이지만, 교회력의 시작은 대강절 첫 주일이 그 한 해의 시작이다. 대강절은 세속 달력의 관점으로 시기적으로는 연말이다. 즉 1년간의 베풀어주신 소출과 모든 받은 복을 결산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지막”이 되셨다. 세상의 끝과 마지막이시며, 율법의 끝과 마지막이 되신,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리는 대강절은 지난 한 해 동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anamnesis)좋은 시기이며, 새로운 한 해를 내다보면서 시작하는 교회력의 시작 시점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는'(prolepsis)가장 적절한 시기가 대강절이다. 초막절에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일에 복 주실 것 (미완료; 신 16:15)을 내다보면서 감사했다. 이와 같이 지난 과거에 대한 감사와 미래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는 감사가 바로 초막절이었는데, 이러한 이중적인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교회력의 절기가 바로 교회력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연말이 되는, 대강절이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옛 언약 백성들이 지켰던 초막절 감사절기를 새 언약 백성인 교회인 우리가 지킴에 있어서 고려할 것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지막’이 되시며, ‘세상 끝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의식법인 초막절 규례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행위의 규범으로 우리가 지킬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 율법의 정신과 제정자의 의도는 적용 및 계승되어야 한다. 초막절의 제정 정신이 무엇인가? 초막절에 대한 그 의식법의 제정 의도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 감사 내용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는 출애굽 구원에 대한 감사요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일에 대한 복 주심 곧 범사에 감사이다. 이 감사의 정신을, 1년의 마무리 시점이면서 교회력의 시작의 시점이 대강절에 구약의 초막절을 신약 성도인 교회가 지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그리스도 중심의 절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추수감사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11월 셋째 주일을 소위 “추수감사절”로 지킬 필요도 없다. 감사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되 교회력의 시작의 시점이며, 한 해의 마지막에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 (구원론적 감사)와 모든 일에 복 주심에 대한 감사 (범사의 감사)하는 가장 적절한 절기는 바로 대강절 (2010년도 기준: 11월 28일)임을 알자. 대강절 첫 주일에 새 출애굽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가 되게 하자. 그리고 1년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복을 기억하며, 그리고 다가오는 새로운 한 해에도 복과 은혜를 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즉 범사에 복 주심에 대한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오면서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65세)가 7년 만에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몇 차례의 가택 연금을 포함하면 총 15년간 가택연금을 받아왔다. 세계 각국 정상은 환영의 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정은 나머지 정치범들의 석방도 촉구했다. 그리고 1866년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144년 만에 귀국한다고 보도를 듣고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자유와 해방 그리고 회복과 귀환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반갑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아 해방을 받은 것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그리고 지난 한 해 동안 주신 복을 기억하고 다음 해에 주실 복을 기대하며 믿음과 힘을 다하여 정성껏 준비하여 감사하자. 


Abstract

감사절에 대한 본고를 요컨데, 현대교회가 지키는 소위 “추수감사절”은 17세기 미국 문화적인 절기 개념이다. 농경문화 중심의 절기이다. 그리스도 구속 사역 중심의 교회력 절기와는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현대 교회에서 중요한 감사절기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필자는 본고에서 구약의 초막절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으로서 현대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을 재조명했다. 초막절에 대한 율법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함으로 문자적으로 행위의 규범으로서 기능은 다했지만, 그 율법 정신과 제정 의도는 신약성도가 여전히 적용 및 계승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 사이에 해석학적 적용과 실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초막절의 감사정신인 구원에 대한 감사와 범사에 복 주심에 대한 감사를 소위 “추수감사절”로 계승 적용하되, 그 절기명의 용어와 감사절을 지키는 시간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리스도 중심의 감사절기로서 교회력의 시작 절기이며, 세속 월력의 연말에 해당하는 대강절이 1년간의 감사를 하는 가장 적합한 시점으로 여겨진다. 그 절기 명칭도 “추수감사절”보다는 ‘대강절감사’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려된다.

==============================================================

1)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ireved 18 November 2010.

2) Edward Winslow. “Primary Sources for 'The First Thanksgiving' at Plymouth”. Mourt's Relation. Pilgrim Hall Museum.; http://www.pilgrimhall.org/1stthnks.htm.  Retrieved 26 November 2009. Retrieved 18 November 2010; recited from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rieved 18 November 2010.

 

3) William Bradford, Of Plymouth Plantation: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rieved 18 November 2010.

4)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을 중단하였다. 그 뒤로 추수 감사절은 일부 주에서만 비 공식적으로 지켜지게 되었고, 그 기념일도 주마다 달랐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8월 1일을 추수 감사절(Lammas Day)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 승천일(목요일)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rieved 18 November 2010; http://en.wikipedia.org/wiki/Lammas. Retrieved 18 November 2010.

5)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rieved 18 November 2010.

6)“험하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초라한 경제력을 가졌던 우리 조상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편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위험은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덕에 대하여 헌신과 봉사 정신으로 감사를 올리자”(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 가을 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슬기와 경건이 드러난 전통이다”(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7) http://en.wikipedia.org/wiki/Thanksgiving_(United_States). Retrieved 18 November 2010.

8) 이상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이상규 교수와 함께 읽는 16세기 이후의 교회사 (서울: SFC 출판부, 2004), 239.

9) 이상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240.

10)http://cafe.daum.net/nanum392766/QxzF/23?docid=1Jizp|QxzF|23|20100923190634&q=%C7%D1%B1%B9%   B1%B3%C8%B8%C0%C7+%C3%DF%BC%F6%B0%A8%BB%E7%C0%FD%C0%C7+%B1%E2%BF%F8. Retrieved 18 November 2010.

11) C. F. Keil and F. Deltzsch, The Third Book of Moses, Leviticus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Inc., 1996),619를 참고하라.

12) sunte,leia, aj, h` completion, close, end ; 6회 사용 (마 13:39f, 49; 24:3; 28:20; 히 9:26); 시간적 마지막을 의미함.

13) te,loj ga.r no,mou Cristo.j eivj dikaiosu,nhn panti. tw/| pisteu,onti te,loj, ouj, to, [Cf. teleology.]: 41회 사용; 결론 및 결과, 목표, 완성, 완결을 의미함. 총 41회 사용 (마 10:22; 17:25; 24:6, 13f; 26:58; 막 3:26; 13:7, 13; 눅 1:33; 18:5; 21:9; 22:37; 요 13:1; 롬 6:21f; 10:4; 13:7; 고전 1:8; 10:11; 15:24; 고후 1:13; 3:13; 11:15; 빌 3:19; 살전 2:16; 딤전 1:5; 히 3:6, 14; 6:8, 11; 7:3; 약 5:11; 벧전 1:9; 3:8; 4:7, 17; 계 2:26; 21:6; 22:13). 

14) 옛 언약 백성들에게 3대 감사절기는 모두가 추수와 관련되어 있다: 유월절 (니산월, 3-4월, 보리추수 후), 오순절 (시완월, 5-6월, 밀추수 후), 그리고 초막절 (티쉬리월, 9-10월, 곡물 파종을 위한 경작, 밭의 소출 추수 후).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