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선교사로서 남은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나는 선교지를 두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75년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멜타리가 지은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 교회 부흥의 역사를 언급할 때 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부흥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의 티모르 지역의 꾸빵섬 소에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핍박과 고난의 시대에 당신의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1965년에 바탁족을 위한 성찬식을 집례하는 가운데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 이정건 선교사
발리는 회교권인 인도네시아에서 회교가 아닌 힌두교가 왕성한 곳이며 온갖 잡신과 정령숭배로 인해 영적으로 찌든 암흑의 섬입니다. 지금도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곳을 여행할 때 가급적이면 어른과 달리 귀신의 영향력을 크게 받는 어린 아이들을 동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기적을 베풀어 사람들을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이끄셨습니다. 이곳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집단 개종과 회개의 열매들을 나타냈는데 사람들이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을 깨뜨리고 불로 태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중심에 놓았던 우상들을 제거하고 거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놓았습니다. 교회는 자연히 부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사도행전 19장 17-20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 “병자들이 나으며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고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마술책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태우는데 그 책값을 계산하니 은이 오만이나 되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말씀이 발리섬의 바탁 부족에게서 일어난 회개의 역사와 오버랩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으로 선교하러 가기로 결심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선교학회 모임에서 늘 인도네시아 지역연구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뜻이 아닌 당신의 뜻대로 나를 발리섬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지리적으로 한국에서 땅 끝인 파라과이로 보내셨고 지금까지 22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발리섬에 왔습니다. 마침 이곳에서는 11월 26일-30일까지 인도네시아 고신선교부 정기총회 및 연차 모임이 있었고 나는 고신선교사회 회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은 본부장님과 후원교회 목사님 몇 분이 가시기로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실 수 없게 되어서 우리 내외가 대신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가게 된 여행이었고 항공권을 구하기 어려웠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11월 26일 오후 5시 55분에 무사히 대한항공 KE929편에 탑승하여 발리로 날아갔습니다. 7시간의 비행 끝에 발리의 Denpasar 공항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습니다. 입국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전혀 듣지 못한 채 갔었기 때문에 비자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겨우 공항을 나서니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밖에서는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강원준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반가운 해후를 했습니다.


강원준, 허경애 선교사님은 1993년 3월 23일에 인도네시아로 파송되어 18년째 사역하고 있는데 그동안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15년간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주로 선교사님들을 지원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3년 전에 이 사역을 그만 두시고 발리섬에 오셔서 발리인니복음주의신학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발리소망비전센타를 건축하시고 선교관을 통해 지원사역과 보육원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센타는 공항에서 40분 거리에 있는데 벌써 전 주간에 포항충진교회 단기 선교팀 11명이 다녀갔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얼마나 잘 섬기시는지 두 내외분은 다른 분들을 섬기는데 탁월한 은사를 가지신 귀한 선교사님들이셨습니다. 새벽 2시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니 아직도 주무시지 않은 사모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피곤한 우리는 특별히 마련된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한 밤을 보냈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그 전날 먼따와이에서 사역하는 홍수희, 정필녀 두 싱글 여선교사님들이 도착해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홍수희, 정필녀 두 선교사님은 각각 2001년 12월 19일, 2003년 11월 3일에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는데 작은 거인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이들은 수도 자카르타에서 15시간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오지인 먼따와이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지난 10월 15일에 이 섬에 큰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피해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죽음의 현장을 오가며 구호활동에 전념했는데 그 와중에 만난 위험한 회오리 풍랑가운데 죽음 직전까지 갔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고 오히려 섬주민들을 돕는 천사로 활동했습니다. 이 두 싱글 여선교사님은 먼따와이 사랑 신학대학교를 통해 지도자를 길러내고 청소년 사역을 통해 미래의 꿈나무들을 양육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그 멀고 위험한 길을 달려온 두 선교사님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11월 27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사모님께서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한국식단을 마주하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맛있게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마침 미국의 리버티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교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차남 신우군이 휴가를 맞이하여 집에 와 있었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고 참으로 듬직한 아들을 두신 두 분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다른 선교사님들을 기다리는 동안 강선교사님과 아들의 안내로 부근의 관광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따나 롯(Tanah Rot)이라는 곳인데 인도에서 해상을 통해 힌두교가 전래되어 처음으로 정착한 곳으로 힌두교도들이 성지로 삼는 곳입니다. 많은 관광객과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는데 특징은 바다위에 떠 있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이 돌섬위에 사원이 건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둘러보면서 그들이 자기들의 신을 향한 정성스런 예배가 생활화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의 살아계신 하나님께 가지는 열심과 정성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선교센타로 돌아와서 조금 있으니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님 부부와 박종덕, 신유현 선교사님 부부가 자타르타로부터 도착했고 홍영화 선교사님과 김재룡, 박은미 선교사님 부부가 말랑으로부터 도착해서 홍영화 선교사님 사모님인 지선경 선교사님만 사역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외에는 모두 11명의 인도네시아 선교부 선교사님들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 고신선교부(KPIM)은 매년 6월과 11월 이렇게 두 차례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기총회 및 연차회의로 모였습니다. 오전 11시 30분에 우리는 발리소망비전센타 입주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미 얼마 전에 현지인들과 드렸지만 선교사님들과 다시 한 번 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와 설교는 현지선교부장 김종국 선교사님이 해 주셨는데 시 23:1-6을 읽고 “여호와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해 주신 후 함께 기도하며 이 선교센타를 향한 하나님의 복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본부와 선교사회에서 마련한 경비 지원금을 전달했습니다.


예배 후에는 모두 강선교사님 가족이 준비해 주신 토종닭 인삼백숙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닭은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덩치는 작고 말랐으나 맛은 한국의 삼계탕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자동차 몇 대에 나누어 타고 수련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이동 수단으로 주로 8인승 밴을 운전수를 딸려서 빌리는데 하루에 70불 정도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수련회 장소로 사용된 숙소는 Candi Beach Cottage라고 부르는데 발리섬에서도 동쪽에 위치해 있고 강원준 선교사님 댁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마침 이 호텔에서 전 주간에 인도네시아 주재 합동측 GMS 선교사 수련회가 있었는데 80여명이 넘는 선교사님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숫자적으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선교부이나 우리 고신선교부와 잘 지내며 교제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이 호텔은 정말 자연 경관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데 발리섬 자체가 아름다운 산호로 구성되었다고 들었듯이 이곳도 진귀한 산호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즈음에 기내 방송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지상의 마지막 낙원인 아름다운 발리섬에 도착했습니다”라고 했을까요. 잘 정돈된 녹색잔디가 펼쳐진 이 호텔 정원에는 꽉 들어 찬 야자수 나무가 즐비했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에는 진귀한 산호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비록 우기철이라 무덥고 습한 기운이 얼굴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지만 시원한 에어콘이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이곳에서 2박 3일간의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마치 신혼여행을 온 듯 했습니다. 실제로 이 호텔은 허니문을 즐기는 신혼부부가 많이 투숙하는 호텔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잠깐 모임을 가지고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에 각자 방을 배정받아서 짐을 풀었습니다. 401호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식사 시간까지 자유 시간을 즐겼습니다. 저녁 6시에 모여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내왔는데 맛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전 주간에 이곳에서 모임을 가졌던 GMS 선교사님들이 김치를 많이 남겨두고 가서 그것과 함께 먹는 인도네시아 발리 음식은 꿀맛 같았습니다. 식사 후에 7시 30분부터 인도네시아 고신현지선교부 정기총회 및 2010년 연차회의를 시작했습니다. 1부 예배의 사회 및 설교는 선교부장인 김종국 선교사님이 했습니다. 김선교사님은 로마서 15:1-7을 낭독한 후 “진정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진정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하나됨의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님은 현직 고신선교사로서 가장 오랜 사역의 경험을 가진 선교사님들입니다. 1983년 10월 20일에 파송 받았으니 벌써 27년이 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선교사중 한 사람으로서 인도네시아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입니다. 10년간 복음장로교단 총회장을 역임했고 인도네시아 장로교 신학교 교장과 교수로 지금까지 사역해 오면서 수많은 사역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인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파송하는 일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선교지에서 구체적인 선교동원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김종국 선교사님은 인도네시아인을 사랑하여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하여 사역함으로 인도네시아인으로 성육신하여 선교하는 모습을 현지인들이 모두 알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10분정도 휴식시간을 가진 후 이어서 2부 정기총회 및 연차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순에 따라서 회원점명, 개회선언, 회순통과, 서기보고, 회계보고, 회칙수정, 임원선거, 신구임원교체, 각선교사 사역보고 및 결산보고, 각선교사 사역계획 및 예산보고, 신안건 토의, 회의록 채택, 폐회의 순으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모두들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아끼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진행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우리 고신 선교위원회에 소속된 모든 현지 선교부가 이렇게 아름답고 성숙된 선후배의 관계의 모델을 인도네시아 고신선교부를 보고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모임을 보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분위기 좋다고 자부했던 내가 속한 파라과이 선교부를 생각하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선 회원 점명을 하고 시작된 회의가 선교사회 회장의 자격으로 참석한 필자 부부에게 언권을 주고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예 회의를 마치는 시간을 정해놓고 회의를 시작한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10시에는 끝내도록 시간을 정해놓고 회의를 하니 간결하게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면서 본부장님이 부탁한 선교부내의 팀사역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선교부는 이미 적절한 지역배치와 함께 팀사역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한 번 더 강조를 한 셈입니다. 또한 현지선교부에 속한 선교사님들의 재산권에 대해 질의했는데 현재 인도네시아법에는 외국인이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교단에 재산을 귀속해 놓은 상태이며 이 방법이 제일 안전하다고 보고를 들었습니다. 이날 밤 회의는 회칙수정까지 마치고 정회를 했습니다. 


다음날인 27일 토요일이 밝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벌써 동쪽에서 찬란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든 아내를 깨우지 않고 혼자 해변가를 거닐면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위에 솟아오른 산호바위에서 파도에 씻겨 떨어져 나온 진귀한 몇 개의 산호를 집어 들고 방에 들어와서 깨끗이 씻어 말렸습니다. 전날 약속한대로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가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피곤한지 먹는 것도 싫고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식당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띠였는데 호텔측의 말로는 이분들은 아침은 호텔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 외의 식사는 관광을 하면서 대충 때운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최춘영 선교사님이 내 아내를 위해 맛있는 빵을 따로 챙겨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보기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두가 천성적으로 친절이 몸에 밴 듯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난 호텔 종업원이나 택시 운전수만이 아니라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으면서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은 말하기를 저 웃음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는지 아무도 모르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귀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일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비록 사역지는 달라도 본성적인 선교사의 직감으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품어야 하고 알면서도 속아주어야 하고 인내하며 복음으로 그들이 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것은 어느 선교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사역하는 파라과이 사람들이 그들 얼굴 속에서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9시부터 속회되었습니다. 회의 장소는 어제에 이어 호텔 건너편 별관 회의실이었는데 에어콘이 시원하게 가동되어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회의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1부 예배의 사회와 설교는 김재룡 선교사님이 요한1서 2:7-11까지의 본문을 가지고 “미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주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역설적으로 더 강하게 드러내는 은혜롭고 강한 메시지였습니다. 김재룡, 박은미 선교사님 부부는 2004년 2월 14일에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는데 젊고 재능이 많으며 끼가 많아서 기타를 치며 찬양 인도를 할 때는 우리 모두를 열광케 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홍영화 선교사님과 함께 살렘신학대학에서의 교수 사역, 현지교단과의 협력사역, 와길 유치원과 중학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6년의 사역기간동안 성실하게 언어훈련을 받았는지 현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배 후에 전날 밤에 이어 회의가 속회되었는데 임원 선출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선교부장을 돌아가면서 하지 않고 투표에 의해 선출한 점입니다. 이것은 현지 선교부 리더십 강화를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순서적으로 자기 차례가 되어 부장의 직임을 맡게 되면 책임감이 결여되며 리더십 인정이 안 되지만 내손으로 뽑을 때 비로소 권위가 주어지고 역량 있는 선교사가 뽑히므로 그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의 결과로 인도네시아 현지 선교부장에 홍영화 선교사, 서기에 홍수희 선교사 그리고 회계에 최춘영 선교사님이 선정되었습니다. 나는 참관자로서 언권만 있고 투표권이 없으므로 선거관리 위원장을 맡고 언어훈련 기간중이어서 준부원이므로 투표권이 없는 박종덕 선교사가 집계를 맡아서 수고했습니다.


이번에 현지선교부장을 맡은 홍영화 선교사님은 부인 지선경 선교사님과 함께 1990년 10월 15일에 파송된 만 20년이 넘은 베테랑 선교사입니다. 선교지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살렘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사역하며 지도자들을 키우고 엘리오스 교단과 연합하여 교회개척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 와길 유치원과 중학교, 그리고 미전도 종족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홍선교사님은 언제나 변함없는 늙지 않는 동안을 가지고 있고 항상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사람을 대하나 업무에는 치밀하고 빈틈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앞으로 교단 선교를 위해 큰 몫을 담당할 재목으로 여겨집니다. 앞으로 2년간 현지 선교부의 책임을 맡아서 전체 부원들을 한데 묶어서 협력 사역과 아름다운 교제의 폭을 넓혀 가리라 생각합니다.


이어서 계속된 회의에서 신구임원들의 교체로 리더십이 바뀌었습니다. 사역보고및 결산보고는 홍영화, 지선경 선교사, 김재룡, 박은미 선교사, 박종덕, 신유현 선교사, 강원준, 허경애 선교사, 홍수희, 정필녀 선교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의 차례로 보고를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감동 깊었던 것은 먼따와이 천재지변 때 김종국 전부장이 그 멀고 위험한 길을 구호품을 들고 홍수희, 정필녀 선교사님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왔다는 점입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뻔한 위험에도 노출이 되었었지만 부원들을 아끼고 챙기는 선배선교사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발리의 발리소망비전센타 건축을 위해 인도네시아 선교부에서 7,000만 루피아(800만원 가량)를 지원했다는 것은 현지선교부 내의 동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회의는 잠깐 정회되었고 오후에 다시 모여서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모두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서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님 부부는 우리 부부에게 그 섬의 일부를 관광할 수 있도록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유화 작품들을 그려서 전시하면서 파는 Dewa Puta Toris라는 화실인데 입구는 작았지만 그 속에는 너무나 넓었고 1층과 2층에 작품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마치 인도네시아 전역의 모든 유화들을 다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겔러리 입구에는 몇 명의 젊은 화백들이 연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림에 대해서 조예가 깊지 않는 내 눈에도 광장한 작품들이었고 작품당 가격이 수천 달러를 홋가하는 작품들로 빼곡이 차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내게 늘 반복되는 행동은 누가 그림 한 점을 사준다 해도 옮겨 다녀야 하는 선교사의 삶에 어울리지 않아서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들른 곳은 은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투박한 은을 그렇게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게 만들어서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탄복이 절로 났습니다. 나는 돈도 없거니와 보석류에는 본래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김선교사님이 눈치를 채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셔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음 코스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끓었고 상인들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춘영 선교사님은 아내에게 예쁜 실크 목도리를 선물로 사 주었습니다. 나는 본래 어디 가든지 종을 사 모으는 취미가 있기 때문에 기념이 될 만한 종이 없나 살폈지만 별로 마땅한 것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음산한 힌두교신을 조각한 것들만 있어서 수집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발리섬에 관광 오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들러서 맛을 보고 가는 오리 요리집이었습니다. 이 식당 이름은 Bebek Begil이라고 하는데 일명 Dirty Duck Diner 식당입니다. 직역하자면 ‘더러운 오리만찬 식당’인가요? 하여간 이 식당에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데 잔뜩 기대하고 음식을 시켰는데 보기에는 별로 시원찮게 보이는 오리구이였습니다. 그런데 먹어보니 기름이 짝 빠진 구이로서 양념 맛이 일품이라 그 양념과 함께 먹을 때 제 맛이 살아나서 끝없이 먹게 되는 그런 요리였습니다. 김종국 선교사님 부부가 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저녁을 좀 일찍 먹은 셈이라 배불리 먹은 뒤에 호텔에 돌아오니 다른 선교사님들은 그제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니 또 먹고 싶은 충동이 들어서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갈 때는 적어도 2킬로그램의 몸무게는 족히 불어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모두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조금 쉬었다가 8시 40분부터 마지막 회의를 속회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새해의 선교사역 계획과 예산에 관해 논의했는데 올해의 사역과 별 다른 것은 없으나 좀 더 선교사역의 영역이 넓어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따와이 사랑신학대학교의 교수요원의 지원을 위해서 강의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선교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강의를 해주기로 약속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여기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물질이 만만치 않음에도 내 사역처럼 돌보려는 마음이 역시 협력사역의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계속 지원이 필요한 먼따와이 섬의 자연재해 피해자를 위한 구호사업을 위해서 각자가 주머니를 털어서 모아서 성금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동역자의 정신이 우리 모든 KPM 지역선교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지금 모두 5가정과 2명의 싱글여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데 모두 2가정씩 짝을 이루어 사역하고 있으나 발리의 강원준 선교사님 가족과는 아직 동역자가 없어서 이번에 한 가정을 더 파송해 주실 것과 계속되는 보육원 건축공사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지역선교부 재조직을 위해 언어가 같은 말레이시아 지역을 인도네시아와 합하는 문제를 고려해 주실 것을 본부에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본부의 홈페이지를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고 선교본부의 리더십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난지역을 위한 본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 신속한 지원을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차기 모임 장소는 2011년 11월 둘째 주간에 중부 자바에서 모이기로 하고 아직 회의록을 채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회의를 마무리 할 수가 없어서 다음 날 주일 아침 예배 전에 마무리 짓고 폐회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은 선교지에서 맞은 주일이었습니다. 이날 주일예배 겸 폐회예배 사회는 현지선교부장인 홍영화 선교사가, 기도는 허경애 선교사가, 설교는 선교사회 회장이라고 나에게 부탁했습니다. 나는 35년 전에 받았던 그 본문 사도행전 19장 17-20을 가지고 “진정한 부흥은 말씀의 부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인도네시아에 진정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함께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에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굳이 다시 이곳을 돌아올 필요를 못 느껴서 호텔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그리고 간편한 복장으로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벤을 두 대 빌려서 그 유명한 Kuta 해변에 갔고 단체 사진을 찍은 후 Jimaran으로 이동하여 내가 저녁으로 한 턱을 쏘았습니다. 모두들 즐거워하며 불에 구운 해물요리를 맛보았습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조개구이를 이 날 처음으로 먹어봤고 게와 새우 그리고 생선을 구운 것을 먹으면서 해변에서 구운 생선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던 주님을 떠 올렸습니다.


내일 헤어질 것을 아쉬워하며 다시 마지막 밤을 강원준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발리소망비전센타에서 함께 보냈습니다. 한 쪽에서는 두 싱글 여선교사님들과 홍영화, 김재룡 선교사님들이 윷놀이 판을 벌였고 또 다른 쪽에서는 나와 강원준, 박종덕 선교사님과 함께 마침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박종덕 선교사님은 축구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습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지난번 월드컵 대회 때 전 인도네시아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여 축구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는데 해설을 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종덕, 신유현 선교사님은 2010년 2월 17일에 파송 받았는데 언어훈련에 집중하여 9개월이 채 안된 지금 서툴지만 벌써 인도네시아어로 설교를 하며 인니교회 주일학교 교재를 편찬하는 등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신유현 선교사님은 내가 2005년에 신대원 초빙교수로 강의할 때 선교동원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는데 선교지에서 만나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회 및 설교는 박종덕 선교사님이 했는데 그는 누가복음 15:1-10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적지 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물질은 대체가 되나 사람은 대체가 안 된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한 영혼을 섬기는 일이 곧 세계를 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선교사님은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며 아버지를 전도하던 일,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받은 일, 자신의 간을 교회의 집사님에게 기증한 일 등을 간증할 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이런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인도네시아는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사역지로 돌아가는 항공시간이 다르므로 제각기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우리는 밤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우리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는 김종국 선교사님 부부와 박종덕 선교사님 부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비싸서 감히 투숙할 엄두조차 못내는 유명한 호텔 몇 곳을 살짝 들어가서 아름다운 경치와 시설들을 둘러보았고 마지막에는 김종국 선교사님이 저와 제 아내에게 전문 마사지를 받게 해주어 쌓인 피로를 풀어 주었고, 강원준 선교사님 가족은 우리를 공항으로 전송하기 위해 그 늦은 밤에 픽업을 하기위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 내외를 실은 대한항공 KE 930편은 거의 새벽 1시 30분이 넘어서 하늘을 향하여 날아올랐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선교사님들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섬김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갚지 못하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선교사님들 가정과 사역에 복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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