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호 제 3차 로잔대회 후기]

지난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세계선교대회를 마친 다음날, 일부 참석자들이 케이프타운에서 나눈 이야기를 모았다. 서재석(Young2080 대표), 황병구(한빛누리 본부장), 이강일(IVF 복음주의연구소 소장), 김성한(IVF 미디어 총무), 조준모(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 이대귀(기독 뮤지션), 안정인(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이 이야기 마당에 참여했다. 새롭게 배우거나 깨달은 것 조준모: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The whole church brings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라는 모토가 가슴에 와 닿았다. 마지막 날 패트릭 펑(국제OMF 총재)이 얘기한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주체인 ‘모든 교회’를 남성 중심에서 여성으로, 기성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서구에서 동방으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가는 도식으로 계속 이해한다면 권력 이동에 집착하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경쟁이 아니라 파트너십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해(reconciliation)’라는 주제를 보며 ‘온전한 복음’이 74년의 맥락에서 더 깊어진 것을 느꼈고 ‘온 세계’에 있어서도 복음을 ‘읽고’ 배우는 이들은 물론 ‘듣고’ 배우는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김성한: 우리 테이블에서는 인도에서 온 두 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한 분, 그리고 나까지 넷이 모임을 했는데, 생활방식에서 가장 튀는 사람이 나였다. 카메라로 사진 찍고 트위터로 중계하고 있는 나를 보고 인도에서 온 형제가 무척 신기해 하더라. 그 순간 깨달은 것은 내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불평등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삶의 양식으로서 선교’를 말로만 이야기해 왔다는 거였다. 그 친구가 나중에 노트북을 꺼냈는데 한국에선 아무도 쓰지 않을 듯한 두꺼운 구형 노트북이었다. 강연보다 로잔대회에 모인 이들에게서 배운 것이 많았고, 참석자들도 그런 걸 배워야 한다고 본다. 이강일: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74년에 한 축을 이뤘던 남미의 복음주의자의 경험이 꾸준히 지류처럼 흘러 왔다는 사실이다. 화해를 주제로 한 공식 대화 모임에서 로널드 사이더가 일반 참석자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그 그룹이 비록 40~50명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면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가져가고 있고, 수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흐름을 가지고 이 안에서 지속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게 반가웠다. 안정인: ‘다양성’이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주강사를 세우거나 프로그램을 구성함에 있어서 인종, 성별, 연령을 고려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이 전체 스피커의 30%가 넘고, 젊은이들과 여성의 참여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반가웠다. 하지만 전체 로잔대회의 기조와 한국 대표단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난 한국 교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없는 부류에 속한다. 연배가 있는 남성 목회자가 아닌, ‘젊은’ ‘여성’ ‘평신도’인데, 한국 교회에서의 핸디캡이 도리어 여기서는 격려받는 요소였다. ▲ 한 테이블에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배치돼 대회 기간 동안 함께했다.

황병구: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 내 문제들이 절실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글로벌한 이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온 세상 사람들이 흘릴 눈물을 생각하면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너무 지엽적이었다. 복음 전도의 시급성이 있지만 사회적 책임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의 문제가 풀려서라기보다는 세계의 필요에 더 민감해져서 그 절실성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서재석: 서약서 문안이 마지막 날 나왔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미리 준비했던 거라면 대회 초반에 나누어 주고 적극적인 의견을 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대회 중에도 계속 업데이트를 해서 나름 최종본으로 나누었고 행동 서약이 담길 2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았지만, 진정 피드백을 원했다면 참석자들이 초안이라도 들고 대회에 오도록 해야 했다고 본다.

 

이강일: 이 운동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운동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1974년에는 대표적이었던 인물이 빌리 그레이엄, 존 스토트, 그리고 사회적 책임 부분을 도와 줬던 사무엘 에스코바, 르네 빠띠야 이렇게 세 축이었다. 이번엔 더글러스 버셀이라는 펀드레이징과 프리젠테이션에 탁월한 미국 선교사, 린지 브라운이라는 IFES(국제복음주의학생회)의 온건한 중도 성향의 학생운동단체 영국 출신 지도자, 그 다음이 크리스토퍼 라이트인데 이 사람이 존 스토트 역할을 한 거다. 사무엘 에스코바와 르네 빠띠야 등의 위치가 안 보인다. 그 자리가 빠진 상태로 진행된 것인데, 다행히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총체적 시각으로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소화해 준 셈이다.

한국 교회의 과제

황병구: 한국에서 참가하신 목회자 그룹과 신학자 그룹은 로잔운동이 한국 교회에 잘 소개되지 않은 걸로 인식하고 있지만, 평신도 운동가 그룹과 선교사 그룹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로잔’이라는 브랜드로 유통되지 않았지만, 지난 20년간 로잔정신이 반영된 대중적인 신앙서적도 번역되었고, 선교한국이나 학원복음화운동 등 복음 전도를 위한 연합 운동은 물론, 의료‧교육‧법률‧언론‧시민사회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전문 운동들이 일어난 것을 로잔운동의 영향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지역 교회와 교단의 무지가 문제인 것이다. 신학자들은 로잔언약을 연구책자 중 하나쯤으로 취급하고, 지역 교회 목회자들은 교회 성장이란 과제가 현안이었으니 자연히 로잔정신을 소화하는 것은 파라처치의 몫이 되고 말았다. 다만 현재 사역 전선에 있는 청년‧학생 운동과 선교 운동, 기독 대학 등이 과연 로잔운동의 내용을 숙고하며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

 

서재석: 이번에 참석한 네 그룹은 사실 서로 조금씩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가는 것 같다. 네 그룹간의 소통도 과제 중의 하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로잔이 운동이고 정신이라면 조금 더 쉬운 말과 개념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부족하고 참석자의 이해와 관심이 서로 다른 것도 문제다. 로잔정신을 가지고 성도들을 각성시킬 쉬운 해설집이나 적용집이 나오는 것이 개인적 바람이다. 일반 성도들은 물론 <복음과상황> 독자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장년들에게도 로잔에 대한 분명한 소개가 있어야 하는데, 참석자들이 각자 다양한 주제를 소화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모호한 것이 아쉽다.

 

이대귀: 목회자들은 로잔에 대한 소개를 지역 교회에 소극적으로 했을뿐 아니라 ‘사회참여’라는 단어에 선입견도 갖고 있다. 교회의 의무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정치적인 이슈들과 연결되기에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처럼 ‘화해’라는 주제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한 듯하다.

 

황병구: 평화, 화해, 협력이라는 단어 역시 보수적 목회자들에게는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연상되면서 종교다원주의와 맥락이 닿아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이번 대회 첫날부터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진리로 선포하고 대회를 열었던 것은 이런 의심의 무장을 해제시킨 효과가 있었다.

 

이강일: 목회자들의 문제에 기여하려면 성경신학자와 조직신학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복음주의 전통 속에서 사회적 책임과 화해의 사역이 어느 영역에서 동반가능한 일인가, 회심과 구원의 영역이냐, 성화와 제자도냐, 교회성장과 선교냐 뭔가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여전히 힘든 과제로 남을 것이다.

 

조준모: 한동대학교를 통해 관찰한 바로는 사실 복음의 총체성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다소 약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선교하시는 분들이 ‘총체적 선교’를 언급하면서 그 매듭이 풀리며 반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총체적 선교라는 이야기가 회자된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총체적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전공과 영역에 상관 없이 누구나 열심히 선교할 수 있다는 인식의 진전도 가져왔다. 지역 교회에서도 복음의 총체성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총체적 선교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 적절할 듯하다.


▲ 74년 로잔대회 뒷 이야기를 들려준 르네 빠띠야(왼쪽)와 사무엘 에스코바. 김성한: 남미 교회에는 Integral Misson(총체적 선교)이라는 개념이 있고,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 두 가지가 따로 놀지 않는다. 심지어 Carismatic(은사 운동)까지 포함된 총체적 교회다. 우리에겐 좋은 모델이고 한국 교회는 역사적으로 보면 그에 더 가까운 형태인데 그간 남미 교회를 벤치마킹하지 않고 서구적 모델을 빌어 교회가 성장해 왔다. IVF에서 남미 쪽 지도자들을 강사로 초대도 하고 교류도 했지만 큰 흐름에 영향을 줄 정도는 못되었다. 황병구: 이런 논의들이 일부 단체나 교회에서 관심 그룹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또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특정 그룹의 이슈가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하게 경험해야 할 제자훈련의 여정으로 소화되어야 한다. 그 동안 QT나 제자훈련 교재나 학생 선교 단체의 기본 커리큘럼에서는 도외시한 주제들이다. 학생 단체들이 학생 운동을 못하고 상담, 치유 등 학생 목회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강일: 통전적 복음이라는 로잔 언약을 공유해 오던 사람들이 복음주의 진영의 엘리트들에 머물렀다는 반성도 생긴다. 계속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 단계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늘 과제로 남았고, 동의하는 후배들도 적용 단계에서는 서툴렀다. 전반적인 배움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부분적인 특강이나 일부 전문 강사들의 몫이 되면 안 된다. 풀뿌리에 있는 이들이 이런 내용을 강의로 들으면 참 좋기는 한데 부담과 당위로만 남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이 경향을 바꾸는 동력이 필요하다. 김성한: 그 교육이 이뤄져야 할 곳이 예배다. 초대교회의 예배가 분배의 문제, 화해의 문제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공동체라는 것을 예배를 통해 확인했다. 제자도를 배우는 곳은 예배여야 하는데 우리는 제자도를 예배가 아닌 훈련 프로그램으로 배우니까 계속 엇나가는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어떻게 예배라는 틀 안에 그 요소들을 담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내가 바라기로는 은혜와 평화와 은사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길 가운데 함께 일어나야 하고고 그걸 가장 분명하게,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현장이 예배여야 한다. 조준모: 교회 안에서 신앙이 개인화되니까 복음도 부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복음의 총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예배에 있어서도 공동체 의식이 너무 많이 없어졌다. 예배가 상당히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찬양 시간에도 개인적 표현에 빠져 있고 그걸 부추기는 문화가 지난 10여 년 동안 지배적이었다. 함께 성경을 고백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찬양이 필요하다. 마지막 날 예배에서 이 부분을 살리려고 예술적 노력을 기울인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 너무 어려운 곡보다는 아는 곡으로, 함께 드릴 수 있는 곡으로 애써 선곡을 한 거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부분인데 거기에 비하면 한국 교회의 예배는 찬양팀과 성가대 중심이고 회중은 지켜봐야 하는 구도가 굳어져 버렸다. 함께 드리는 공동체적 예배가 경험되지 않으니까 우리의 신앙과 신학도 상당히 개인주의적이고 복음에 대한 이해도 단편적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대귀: 예배에서 찬양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번 대회에 있어서도 사회 참여나 화해에 대한 내용이 제대로 담긴 곡은 없었다. 남미 팀이 특송한 노래가 거의 유일했다고 본다. 이번에 경험한 곡들 자체도 우리의 현실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이 조만간 해결되어 예배가 공동체적으로 성숙된다고 해도 총체적 복음을 공유할 수 있는 신학적 가사가 담긴 곡이 없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다. 안정인: 실질적인 문제로 성별과 연령에 대한 한국 교회의 과제를 한번 더 언급하고 싶다. 이번 대회에 여성과 청년, 평신도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한 것은 과소 대표되어 있는 그룹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대표단에서는 이러한 비율이 거의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복음주의 권에도 여성과 청년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국 교회에서도 성별이나 연령으로 제한을 받기 보다는 누구든 은사에 따라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기본 방향이 확인되어야 한다.
평가식 후일담을 모아놓고 보니 까칠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편집 과정에서 독자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모았다. 이야기는 한동안 더 계속되었고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눈 이야기까지 덧붙이자면 책이 한 권이겠지만 다음 이야기들은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실질적 기여를 나누면서 이어가자는 약속으로 마무리 되었다. 커피값 계산은 가장 연장자였던 서재석 전 편집장님이 하셨다.

정리: 황병구 본지 편집위원장 hwang1203@yahoo.co.kr

 

 

좌담 참석자들이 뽑은 대회 Best 5
1.  회중 모두가 참여했던 개폐회식 예배, 한국 교회가 많이 배워야 할 부분.
2 . 지구촌 인종과 의상이 다 모인 200여 국의 모임 그 자체, 우물 안 개구리들이 경천동지할 경험.
3 . 6명이 한 조가 된 주 집회 현장 테이블 그룹, 6개국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해 가는 멋진 과정.
4 . 남녀노소 차별 없는 식사시간, 누구나 줄을 서고, 계단과 바닥이 모두 식사처가 되는 평등 경험.
5 . 메시지를 능가하는 퍼포먼스와 스크린에 펼쳐진 예술적이고 신비함이 넘치는 이미지들.


참석자들이 뽑은 Worst 5
1.  느려 터진 인터넷, 한국 참가자들이 가장 고생했을 듯.
2.  주일에 시작해서 주일에 마치는 낯선 일정, 여러 한국 목회자들이 참석 포기.
3.  스크린에 영어 자막이나 한국어 동시통역을 요청했어야 한국 측 어르신들이 고생 덜하셨을 텐데….
4.  한국 상황이 탈북소녀의 간증 하나로 인상 지워진 것은 한국 교회의 평화적 노력이 무시되는 결과.
5.  비싼 참가비와 고급 환경은 대회가 강조한 검소한 삶의 양식과 모순되는 적용.

(복음과상황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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