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전 1:3-12 -

   
   ▲ 황원하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Pretoria University(Th.M.)
   Pretoria University(Ph.D.)
   대구서남교회,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강사
이 글의 목적은 본문을 정확하게 주해한 후에 설교자들이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설교 대지를 만들 수 있는 지를 모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본문의 위치와 구조를 파악하고(I), 본문을 상세히 주해한 후(II), 주해에 근거한 설교 대지를 제안할 것이다(III).


I. 본문의 위치와 구조


1. 본문의 위치

베드로 전서는 크게 서두(1:1-2), 본론(1:3-5:11), 그리고 결어(5:12-14)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서두(1:1-2)는 당시 그리스-로마 서신서의 전형적인 틀에 따라 발신자, 수신자, 인사말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으로, 본론(1:3-5:11)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1:3-2:10)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거론되어 있고, 뒷부분(2:11-5:11)에는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결어(5:12-14)는 인사말과 축복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루는 부분(1:3-2:10)은 다시 다음과 같이 나뉜다. 그것은 1) 구원의 의미(1:3-12), 2) 구원받은 자들의 삶(1:13-21), 3) 구원받은 자들의 성장(1:22-2:3), 그리고 4) 구원의 교회 공동체적 성격(2:4-10)이다. 이러한 네 가지 서설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되며, 그리스도인의 윤리(2:11-5:11)에 관한 논의의 확고한 신학적 기초가 된다.


2. 본문의 구조

본문을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5절; 6-9절; 10-12절


첫 번째 문단인 3-5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두 번째 문단인 6-9절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시험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때 6절 문두에 있는 “엔 호”(그러므로)는 앞 문단(3-5절)과 뒤 문단(6-9절)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 문단인 10-12절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이 살피고 연구한 것인데 복음 증거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때 10절 문두에 있는 “페리 헤스 소테리아스”(이 구원에 대하여는)는 이 문단에서 다루려고 하는 내용이 이미 앞에서(3-9절) 논의했던 구원에 관한 것임을 가리켜준다. 따라서 본문을 위와 같이 세 문단으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개의 문단이 각기 단절되어 있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창출한다.


II. 본문주해


1:3-5 구원의 의미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큰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고 말한다(3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근거하여 아무런 공로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을 구원해 주셨다는 뜻이다(참고. 출 20:6; 34:7). 베드로는 여기서 구원에 대하여 “거듭나게 하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의 주체성을 드러낸다(참고. 1:23). 그리고 우리가 거듭났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가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따라서 구원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구원의 결과로 얻은 산 소망은 유업으로 연결된다(4절). 유업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과 관련된다(창 12:7).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지칭한다(막 10:17).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유업에 대하여 세 가지 부사(negative compound)를 사용하여 서술한다. 하나님의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한다. 이 세 가지 부사는 이 유업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궁극적인 유업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산업과 잔의 소득이시다(시 16:5).


베드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유업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5절). 특히 여기서의 동사가 현재분사 형태인데 이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구원의 현재성은 4절에서 하나님이 하늘의 유업을 지키신다는 구원의 미래성 사상과 조화를 이룬다. 즉 구원은 미래성과 현재성을 함께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방편은 믿음이다. 그런데 베드로 전서에서의 믿음이란 단순한 신뢰가 아니라 전적인 의탁 혹은 적극적인 순종이다(1:14, 22; 2:8; 3:20; 4:17). 따라서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즉 최종적인 구원이며 완결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1:6-9 구원받은 자들의 기쁨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한다(6절).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그들에게 나타내셨다는 사실과 그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의 완성된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에 관한 지식에 근거한다. 특히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시험 중에도” 기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험”(trials)은 서신의 수신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참고. 4:12). 본 서신의 수신자들이 받은 박해는 정부의 ‘칼’을 통한 것이 아니라 주로 불신 이웃들의 ‘말’을 통한 것이었다(2:12; 3:13-17; 4:14-16). 그들은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적인 따돌림, 비방, 매 맞음 등의 고난을 겪었다.


베드로는 이어서 시험의 목적을 서술한다(7절: these have come so that.....). 이러한 서술은 시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 변화를 위한 것이다. 즉 시험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여기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믿음을 금에 대조한다. 불로 금의 불순물을 제거하면 순수한 금이 된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한 금이라도 결국 없어지고 만다. 시험은 믿음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믿음이 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한 믿음은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 귀하다. 따라서 믿음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시험은 유익하다. 그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그러나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다(8절). 사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의심을 야기한다. 하지만 수신자들은 베드로의 말씀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본 것과 같은 경험을 가지게 된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말씀으로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예수님을 본 것과 같은 경험을 가지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현존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어지는 유업이나 칭찬과 같은 외형적 보상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자체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길 때, 그들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9절). 여기서 영혼이라는 용어는 육체와 대조되는 개념이 아니다. 베드로 전서에서 영혼은 전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1:22; 2:11, 25; 3:20; 4:19). 따라서 영혼의 구원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지칭한다.


1:10-12 구원과 선교

베드로는 구원이 과거에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살핀 것이라고 말한다(10절).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계획을 미리 알리셨다. 그리고 이제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었다. 특히 베드로는 때의 성취에 대하여, “너희에게 임할 은혜”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를 받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들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11절; 참고. 삼상 10:6; 요 15:26; 벧후 1:19-21).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의 증언을 통하여 그분이 누구이며, 그 때가 언제인지를 상고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그분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영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위하여 예언하지 않았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위하여 예언하였다(12절). 여기서 베드로는 선지자들의 행위를 “섬김”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종의 행위이다. 베드로는 또한 그들의 섬김이 “자기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데, 이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행복한 자들인지를 보여준다(참고. 행 2:25-26; 고전 9:9-10). 선지자들이 살핀 것은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III. 설교대지

이제 지금까지의 본문 주해에 근거한 설교 대지를 다음과 같이 제안함으로써 글을 마무리 하겠다. 설교의 제목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라고 정하였다.


1.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받았다(3-5절).

3-5절은 구원받은 자들이 받는 상(reward)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당신은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3절). 2) 당신은 하늘에서 유업을 받을 자가 되었다(4절). 3)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을 지켜 주실 것이다(5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이처럼 엄청난 약속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들은 세상이 주는 것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사라지거나 시들지 않고 참되고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당신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약속들을 누리고 있다.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소망이시며 하나님의 유업이시며 당신의 보호자이시다.


2.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항상 기뻐한다(6-9절).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한다. 심지어 어려움 앞에서도 기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혜는 세상이 주는 어려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어려움들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시험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시험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들어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해 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순수하게 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3. 이제 우리는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10-12절).

우리가 받은 구원은 과거에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살핀 것이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살핀 것은 이제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주어진 선지자들의 예언은 복음 전도자들의 바른 해석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할 차례이다.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도 우리와 같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해야 한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