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고신 총회(총회장 권오정 목사)는 지난 5년 동안, 부도가 난데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임시(관선)이사까지 파송되어 있는 학교법인 고려학원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총회 소속인들은 이같은 상황까지 오게 된 데 대해 당혹감과 수치심을 가졌고, 나아가 관계자들의 책임을 성토하기도 했다. 총회 일각에서는 원인규명과 책임처벌이 먼저 필요하며, 종국적으로 교회가 병원경영에 손을 놓을 것을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을 위해’ 조속한 임시이사 체제 종결과 정이사 체제 전환이 우선이라고 부르짖어 왔다.

최재호 기자

이같이 상이한 입장이 존재함에도 총회 집행부는 먼저 정이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고, 지난 연말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법인의 임시이사체제 해소를 위해 제시했던 총회 은급비 20여억 원과 김해복음병원 배서 어음 12억 6천만 원 해소를 위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고신대학교 김성수 총장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또 다른 요구조건인 학내 구성원들의 합의서를 도출해 내는 막바지 과정에 있다. 최근들어 그동안 책임규명과 제3자 인수를 요구해왔던 이른바 ‘개혁파’까지도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등 이달 말까지 정이사 체제 전환을 위한 고신의 노력은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년을 끌어오던 임시관선이사 체제가 끝나고 고신총회 인사들이 학교법인 이사진을 구성하게 되는 소위 ‘학교법인 정상화’가 이뤄지면 모든 문제는 정리되는 것일까. 한껏 고무된 고신의 분홍빛 희망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사실 이 시점에서 집행부의 염원에 대해 드러내놓고 문제제기를 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학교법인 사태를 두고 ‘교회의 바빌론 유수’라던 고신의 신학자들이 숨죽인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며, ‘복마전’같은 복음병원 문제를 바로잡자던 이들의 목소리도 언제부턴가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내재되어 있다.


1. 이사회 구성 등 로드맵 부재
먼저 현실적인 문제점부터 짚어보자.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교단의 요구대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한 기독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총회장 권오정 목사가 사석에서 총회가 파송할 목사 이사의 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다른 임원은 이견(異見)을 표시했다고 한다.

총회의 기대처럼 1월 말 ‘정이사 체제’가 된다고 해도 가장 기본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총회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많은 혼란이 예상되는 것이다. 이사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과거처럼 경영에 간여할 수 없게 된 사립학교법 아래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 구체적인 이해와 이에 기초한 계획이 부족한 것이다.

게다가 법인 이사회가 대학이나 병원의 경영문제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설혹 병원에서 수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수익금을 전용(轉用)할 수도 없지만 집행부는 이같은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교법인 문제에 깊이 간여한 한 목사는 “사학법이 개정되어 학부와 신학대학원은 대학 총장이, 복음병원은 병원장이 모든 행정과 인사문제를 책임지게 되며 이사회는 이같은 책임자의 결정사항을 승인하거나 거부할 권한이 있는 정도인데, 총회 집행부는 마치 총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면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교법인을 되찾고 난 후의 문제가 더 크고 중요한데도, 거시적 관점에서의 논의나 전반적인 로드맵 수립은 뒷전”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2.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원인(책임) 규명
지난달인 12월 13일 정상화준비위원회에서 학교법인 사태 관련 백서(白書)를 발간하기로 결정한 바 있었다. 이같은 결정은 과거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해 온 고려학원 문제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주장에 따라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학교법인 문제는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추궁이 없이는 결코 ‘정상화’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현실적인 논리로 따져 보아도 그러하다. 이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으며 또 어떤 경로를 통해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를 밝히고, 이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학교법인을 제대로 운영해 갈 수 있다.

둘째로 총회나 학내 공동체의 일치된 의지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라도 일점의 의혹이나 잘못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또 그 과정에서 부당한 물질적 이득을 얻은 자는 배상해야 하며, 잘못된 행정이나 인사가 있었다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즉, 사태의 원인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발전적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며, 총회차원의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단 학교법인 이사회가 일단 교단의 손으로 넘어오고 난 후에는, 화합과 협력을 통해 학교법인을 말 그대로 ‘정상화’시키는 일에 몰두하여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리란 것을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또 어렵사리 찾아온 학교법인을 과거사(過去事)에 발목 잡혀 재차 어려움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등장할 수 있다.

어쨌건 현실논리에 밀려 과거규명과 회복이 힘들어질 것이 예상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같은 논리가 현실적으로 타당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매듭을 풀고 가는 것이 옳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이 참에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하는데 너무 서두르고 있다. 이래서는 언젠가 터질 문제를 보듬어 안고 가는 셈이다.

3. 예장 고신은 거룩한 교회가 아닌가?
예장 고신이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세상’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의(義)를 가졌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임시(관선)이사가 파송되고 또 부도상황을 맞았다는 점을 교회는 직시(直視)해야 한다. 그 자체로도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바른 자세다.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교회가 행정 인사 경영 등 전반에 걸쳐 이런저런 편법과 불법, 탈법을 일삼다.

세상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은 예장 고신 스스로가 자신이 참 교회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마땅한 일이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친인척을 학교법인 직원으로 밀어 넣고, 학교와 병원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어찌 교회와 교회의 스승으로서 할 일이었던가를 깊이 반성하여야 옳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응분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신은 참된 회개(진정한 참회와 잘못을 바로잡는 행동) 없이, 수차례의 낭만적인 ‘회개행사’를 거듭했을 뿐, 결코 학교법인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직원들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임금을 못 받고 거리로 내몰려 생계의 위협을 받는데도 고신 총회와 책임있는 지도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해 왔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체불임금을 못 받고 가족의 생계문제에 봉착해,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던 일부 직원들이 수년 전 총회장소로 올라와 쇠사슬을 몸에 감고 총회 개회를 원천 봉쇄하던 초유의 일도 있었다. 또 다른 어느 해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총회에 항의하며 총회장소 앞에 인분(人糞)을 끼얹는 일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항의자를 몰아내고 책임도 못질 거짓말로 체불 임금 지급을 약속하고, 뿌려진 인분을 닦아내고 ‘성총회’는 진행됐다.

이런 과거가 엄연히 살아있는데도 학교법인을 되찾아와 교회의 시대적 사명 운운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리고 감사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 빼앗겼던 학교법인을 되찾았다고 봉헌(?)할 것인가. 개인이 감당치 못할 ‘복’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그에게 화요 저주가 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예장 고신 집행부나 교단의 지도자들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을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교회됨의 의미와 사명, 존재방법을 잠시라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예장 고신은 학교법인 사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임시(관선)이사 체제를 정이사 체제로 회복하는 것보다 그래서 고신총회의 재산이라고 재천명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과거 교회로서 합당치 못한 일들을 찾아 회개하고 바로잡으며 오늘 교회로서 하나님의 뜻 앞에 바르게 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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