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데반 황

  학력과 경력
  연세 대학교 전자 공학 졸  
  필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펜실베니아 비블리컬 신학교 신학 석사 
  미 장로교(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목사
  미국에서 7년간 청년 및 유학생 중심의 목회
  현재 저작 및 번역 사역

  저작
  <어린이 산상수훈> (토기장이, 2010)
  <사랑의 15가지 속성> (토기장이, 2011)
  <주님은 나의 최고의 선물>(평단 아가페,2011)

  번역도서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주님은 나의 최고봉 (토기장이, 2009)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 (토기장이, 2009)
  외 11권의 역서가 있음
서론

필자는 한국의 이슬람 공식 사이트 www.quran.co.kr 에 실린 글들을 기초로 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이슬람의 허구를 지적하고자 한다. 특히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사건에 대해 성경와 쿠란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 본 진실을 증빙 자료들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을 변호하고 쿠란의 거짓을 폭로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쿠란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크고 확실한 사건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함으로써 쿠란 자체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며 따라서 쿠란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은 믿을만한 내용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본론

1. 한국 이슬람교 공식 사이트

www.quran.co.kr

한국에서의 이슬람 활동은 해마다 더욱 활성화되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또한 쿠란이 공식적으로 한글로 번역되어 한국 사회에 신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성 꾸란과 의미 번역의 출판: 두 성지의 수호자 파하드 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으로 번역 편집되어 만들어진 한국어 쿠란은 인터넷 상에서도 pdf 파일로 무료 보급하고 있다. (주 - http://www.quran.or.kr/Korean%20Quran.pdf) 


아래 도표는 한국의 이슬람교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 믿음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이해한 가운데 쿠란과 성경이 주장하는 차이점을 요약하고 있다.

 

대상

기독교

이슬람

신은 하나의 신으로 통합되는 삼위이다. 이 한 분의 신은 소위 삼위일체라 불린다. 삼위일체의 각 신들은 모두 동등하며 똑같이 영원하고 같은 존재다. 이러한 이유로 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써 설명된다.

 

신은 오직 한 분이며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하며 기초적인 단어다. 그 분은 자식이나 부모가 없으며 어느 것과도 동등하지 않으시다. 이슬람에서 신은 알라, 자비로우신 분 등 99가지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예수

삼위일체의 제2위로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되면서 동시에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신의 사도 중 한 명으로 매우 높이 평가된다.

성령

삼위일체의 제3위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천사 가브리엘을 가리킨다.

 

마리아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전지전능한 신인 예수를 낳았다.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 중에서 선택되어 신의 명으로 아버지없는 의로운 선지자 예수를 낳았다.

말씀

신의 일부분이지만 또한 완전한 신으로 신의 아들인 예수가 되었다.

신의 말씀 '있어라'는 마리아가 남성의 개입 없이 예수를 낳게 한다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성경

100% 모두 신의 오점 없는 말씀으로 받는다.

 

무슬림들은 모세에게 계시된 토라, 다윗에게 계시된 자부르, 예수에게 계시된 인질,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꾸란을 비롯하여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모든 성서의 존재를 믿는다. 그러나 꾸란을 제외한 모든 성서들은 인간의 손으로 수정되었으며 성경은 오직 꾸란에 의해 확증되는 부분만 옳다고 믿는다. 꾸란의 절과 확연히 상반되는 내용들은 인간의 손으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무함마드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거짓 메시아라고 믿는다.

전 인류에게 보내진 신의 마지막 사도다. 그 분이 신의 첫 계시를 받기 전에는 진실되며 신뢰받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분은 모든 생명체에 신의 자비로써 보내졌다.

 

꾸란

성경의 복사본이라는 믿음에서 무함마드가 쓴 책이라는 것까지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또 어떤 이는 무함마드와 공모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작품으로 믿기도 한다.

신이 인류에게 계시하신 마지막 성서다. 꾸란은 신으로부터 보호받아 인간의 개입으로 수정되지 않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꾸란의 문학적 위치는 어느 곳에서도 그 비등함을 찾을 수 없다. 오늘날까지 아랍어로 쓰인 어떤 위대한 작품이라 해도 꾸란에 견줄 수 없다. 꾸란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의 지도서로써 심판의 날까지 인간의 개입으로부터 안전히 보호될 것이다.

예수의 메시지

신에 의해 보내진 예수는 아담의 죄로부터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의 희생 없이는 전 인류가 아담의 죄로 파멸되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선행 없는 믿음이다. 

예수는 신에 의해 유대인에게 보내진 한 명의 사도이며 모세의 순수한 참종교를 회복시키고 고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규범의 일부를 경감시켜 주고자 했다. 예수는 유대인에게 믿음뿐만 아니라 선행도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예수가 죽은 자를 살리고 장님과 나병환자를

치료한 것

 

모두 믿는다. 예수는 이 기적들 모두를 행했다. 신의 아들이며 또한 동시에 완벽한 신이며 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모두 믿는다. 이 기적들은 신의 뜻으로 행해졌다. 마치 모세나 노아, 고대의 다른 예언자들이 신의 뜻에 의해 기적을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십자가 죽음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굴욕을 주며 십자가에 못박았다. 예수는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학대당하고 살해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보이게 꾸며졌을 뿐이다. 신은 예수를 그 분 가까이로 승천시켜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구제했다.

예수의 재림

현재 예수는 세기말 무렵에 도래할 것이라 기대된다.

예수는 죽지 않고 신에 의해 승천했다. 그는 심판의 날 직전 지구에 내려와 거짓 메시아를 없애고 평화와 정의를 설립할 것이다. 예수는 돼지를 죽이고 십자가를 부수며 전 인류를 이슬람으로 초대할 것이다.

 

원죄

전 인류는 아담의 죄를 안고 태어난다. 오직 신의 죄 없는 자손의 죽음만이 원죄를 제거할 수 있다.

단 하루만을 살았던 사람이라도 깨끗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오직 예수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세례만이 원죄의 운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원죄 따위는 없다. 인류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인간이 불신하여 신의 자비를 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국으로 가도록 운명지어졌다. 인간의 죄가 하늘의 높은 곳을 전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 해도 신은 쉽게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신에게 있어 용서의 문제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신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그 이상의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신은 피조물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기 좋아하며 가장 사소한 선행에도 커다란 보상을 주신다. 신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갖고 선행을 해야 한다. 

아담의 회개

 

아담의 죄는 너무나 큰 것으로 신은 단순하게 그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았다. 아담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히려 죄 없는 순수한 신인 예수의 피를 필요로

아담은 그의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개했다. 

주여 저희가 저희 스스로를 욕되게 하였나이다 당신께서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지 아니 하시고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아니 한다면 저희는 잃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신은 아담을 용서해주셨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모두 임종 시까지 용서의 문이 열려있다. 인간과 신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신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에 악행을  멀리한다면 신은 그들을 용서하신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만큼 신이 좋아하시는 것은 없다.

 

구원의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에 대해서도 예수의 보혈의 피를 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오직, 믿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신을 믿고 그 분의 사도들을 믿고 그 분의 명에 순종한다면 신은 사람들이 행하는 조그마한 선행을 몇 배로 늘려주시며 악행을 지워 주신다. 심판의 날까지 신의 자비는 사람들의 선행이 악행을 압도하도록 이끌어 주시며 천국과 기쁨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다. 천국은 상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곳으로 영원히 그 곳에서 거주하게  된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의 선행은 필요 없고 오직 보상만이 있을 뿐이다.

 (주 -  http://www.quran.or.kr/Islam/chris2.html )

 

필자는 위 내용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는 쿠란과 성경을 비교 분석할 생각이다.


먼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이슬람교의 공식 사이트에서 분석한 내용 요약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성경: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굴욕을 주며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는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다. 


이슬람교 쿠란: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학대당하고 살해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보이게 꾸며졌을 뿐이다. 신은 예수를 그분 가까이로 승천시켜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구제했다.


요약하면 성경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실을 절대적으로 말하며, 반면 쿠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어떤 것이 진실을 말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쿠란의 주장

쿠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쿠란 제 4장 니싸아 157절을 보면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의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 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고 한다. (주 – 한국 이슬람 공식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한국어 쿠란에서 인용하였다.) 한국 쿠란을 번역한 이슬람.이슬람기금.선교와 지도부 장관 출판청 총감독인 쉐이크 살레 븐 압둘아지즈 븐 무함마드 알 쉐이크는 한국어 성쿠란 내에 쿠란 제4장 157절의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 놓았다. “예수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던 주요 3년을 제외하면 그의 생애는 물론 그가 탄생해서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또한 성장이후 그 후 사생활은 너무나 신비에 싸여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관하여는 더욱 그렇다. 정통 기독교 학파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생을 마쳤으며, 장사 지낸지 3일 후에 상처 입은 그대로 일어나 주위를 걷다가 그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은 후 그의 몸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학파는 예수가 십자가에 살해되었다고 믿지 않고 있다. ‘바실리단’ 학파는 예수 대신 어떤 누가 십자가에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 한편 ‘마르시오니트’ 복음 (A.D 138)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것까지 부정하고 단지 그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 - 한국어 쿠란, p 167; 쿠란 4:157절 하단 주석에서 가져왔다.) 즉, 쿠란은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추측이며 단지 예수께서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예수님께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려는 여러 다양한 ‘설(theory)’을 끄집어낸다. 어떤 무슬림들은 로마 군인들이 바라바를 예수로 오해하여 그를 체포해서 감금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바라바는 사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은 바라바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서 제자들을 만났는데 (눅 24장), 사실 그때 예수는 군병들이 엉뚱한 사람을 체포한 것이 들통날까봐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 - Larry A. Poston with Carl F. Ellis Jr., The Changing Face of Islam in America (Camp Hill, PA: Horizon Books, 2000), p. 188.)


또 다른 유명한 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가룟 유다라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후에 알라신이 유다의 모양을 변형시켜서 예수처럼 생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롯 유다가 예수로 오인되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되었고, 그 대신 예수님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하늘로 그대로 승천했다는 주장이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이슬람 선교에 힘쓰는 압둘학크는 그의 책 『당신의 믿음을 무슬림과 나누라』에서 <이슬람 세계> CD ROM의 내용을 말한다. 이슬람의 많은 학자들이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의 모양이 예수처럼 되어 그들은 가롯 유다가 예수인줄로 착각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 3시간 후에 하나님은 예수를 취하여 하늘로 올리셨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주 -  Abdiyah Akbar Abdul-Haqq, Sharing  Your Faith with a Muslim (Minneapolis: Bethany, 1980); cited in The World of Islam CD-ROM.) 이때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심은 구약에서 엘리야가 불마차 가운데 오른 사건과 유사한 것으로보며 예수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것으로 본다.

 

『바나바의 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대인 단체가 예수를 조롱하였다. … 그 후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였다. 이 사실을 알라신이 예수에게 알려 주었고 또한 예수 그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 중에 누가 내 모습으로 변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천국에 들어가겠느냐?’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알라신은 그를 예수 모습으로 변하게 했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다. 그는 다름 아닌 위선으로 예수에게 행했던 제자였는데 유대인들을 끌고 예수께로 온 자였다. 그러나 알리신은 그를 예수처럼 생기게 만드셨고 결국 그는 군병에게 잡혀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주 - David Sox, The Gospel of Barnabas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84), p. 96.)


또 다른 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긴 했어도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기절’한 것인데 죽은 것으로 오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 도망쳤다. (주 – Bruce A. McDowell and Anees Zaka, Muslims and Christians at the Table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1999), p. 117-118.)


왜 무슬림들과 쿠란은 예수가 절대로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일까? 그 주된 이유는 무슬림들은 알라신이 절대로 자기의 선지자 예수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런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알라신의 전능하심과 모순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알라신은 반드시 위험에 처한 선지자를 구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의 운명을 정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가 원수에 의해 모독을 당하며 죽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주 - McDowell and Zaka, p. 118).


무슬림 학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주장은 마귀의 주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이븐 타이미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 “마귀의 맨 처음 목표는 거짓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특히 마귀는 사도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그리스도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주 – Ibn Taymiyya. A Muslim Theologian’s Response to Christianity. Edited and translated by Thomas F. Michel. Delmar. (N. Y.: Caravan Books, 1984), p. 110.)


따라서 무슬림의 관점으로는 예수님은 결코 십자가에 못박힌 적이 없으며 승천은 하셨지만 부활한 적도 없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다음과 같이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여 하늘로 오르셨으며 어느 날 이 땅에 다시 돌아와서 미래 사건에 주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을 믿는다. 선지자 무하마드(Muhammad)가 말한 내용에 근거하여 예수는 종말이 오기 직전에 이 땅에 다시 돌아와 적그리스도를 죽이고 돼지들을 죽이고 십자가의 복음을 무너뜨리고 회당들과 교회들을 파괴시키며 이슬람 종교를 다시 세우고 이 땅에서 40년을 살다가 선지 무하마드가 묻힌 도시 메디나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주 - Norman L. Geisler and Abdul Saleeb, Answering Islam: The Crescent in Light of the Cros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3), p. 65.)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성경의 주장 


십자가의 실제적 고통 (마 27:35-50)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실제적인 고통은 고대 역사 가운데 가장 분명한 사건 중에 하나다. 자유주의 신학자이든, 이방인이든, 타종교의 사람들이든, 보수 계통의 신학자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고, 주의 죽으심으로 인해 제자들이 절망하게 된 것에 거의 다들 동의한다. 


사복음서의 십자가 사건 요약

그리스도의 신체적 외상이 실제적인 사실이었음에 대하여는 고대나 현대나 의학적으로 전혀 의심 받지 않는다. 유월절 전날 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고 베드로에게 버림을 받은 후 성전 군병들에게 체포된다.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예수님은 조롱을 받고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한다. 그 다음 날 아침, 매를 맞고 멍에 든채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은 관정(Praetorium)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거기서 예수님은 옷을 벗기운 채 잔인한 로마 병정들의 채찍을 맞기 시작했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납덩어리와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채찍은 채찍이 주어질 때마다 예수님의 몸을 떼어내며 피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뒤범벅이 되자 군병들은 자주색 겉옷을 예수님의 어깨 위에 두르고, 손에는 홀(scepter)을 쥐어주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눌러 씌웠다.


예수님을 질리도록 조롱한 군병들은 그의 손에서 홀을 빼앗은 후에 그것으로 예수님의 머리를 계속 갈긴다. 지금 예수님은 중상을 입은 상태다. 그럼에도 무겁고 두꺼운 긴 나무토막을 피를 흘리시는 그리스도의 몸에 지운다. 그리고 골고다라고 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그곳에서 주님은 십자가상에 매달려 이 땅에서 가장 지독한 신체적 고통을 당하셨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고안된 처형 방법이다. 사실, 십자가형이란 “excruciating”, 곧 문자적으로 “십자가로부터” 라는 뜻으로서 인간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어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주 - Strobel, The Case for Christ, pp. 197-198.)


 “해골” 이라는 곳에서 로마 군사들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는다. 그 못은 두꺼우며 길이는 약 18 Cm다. 대못이 주님의 신경 계통을 잡아 찢자 그리스도의 온 몸에는 고통의 파장이 흐른다. 십자가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그 몸은 약간의 숨을 들이키는 것조차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된다. 십자가에 매어달려 있으면 주기적으로 뼈마디가 끊어지는 고통을 체험하며 간헐적으로 질식한다. 발의 힘이 빠져 십자가의 나무 판에서 위 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을 도려내는 고통이 임한다.


죽음이 다가온 것을 느끼신 주님께서 부르짖으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이 고뇌에 찬 절규 속에는 이 세상의 가장 큰 고통이 다 들어 있었다. 이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류의 죄와 고통을 담당하신 것이었다. 그의 대속의 고통을 통해 사명을 마치시자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셨다.


주께서 숨을 거둔 직후에 로마 군병 하나가 달려와 창을 들고 예수님의 시체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 창은 심장 막을 지나 그리스도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고통을 당하여 죽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듯 피와 물이 쏟아졌다.


성경의 모든 증거는 예수님의 죽음을 절대적으로 본다. 그분의 죽음의 사실에 성경의 권위와 진실성이 서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이 없다면 그를 믿는 자들을 향한 죄의 대속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에 의한 죄사함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 영혼들은 자신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는 논리적으로 볼 때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지옥 심판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죄를 해결할 길이 형벌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4. 예수의 죽음이 거짓이라는 무슬림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기절했다고 보는 설은 황당한 추측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설을 믿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절설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 후에 아무 의학적 치료 없이 삼일 동안 살아있었으며, 엄청나게 무거운 묘지의 입구 돌을 홀로 움직이셨으며, 묘비를 지키는 무장된 군병들을 굴복시키셨으며, 못 박히셨던 그 발로 활보하셨으며, 그 후 자신의 남은 삶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제자들에게는 그가 죽음을 이겼노라는 신화를 만들도록 유혹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가룟 유다가 예수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바나바 복음』은 이슬람교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무너뜨리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서다. 이 문서는 16세기 말에 이태리어와 스페인어로 쓰였는데 무슬림들이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문서로서 그 내용이 사실로서 믿을만하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무슬림들은 『바나바의 복음』을 기독교의 위경 『바나바의 서신』과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이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의학적 판정

뛰어난 의사로 알려진 알렉산더 메써렐 박사(Dr. Alexander Metherell)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의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그 후 기절설의 허점을 정확하게 찌르는 증거들을 마련하였다. 메써렐 박사는 주장하길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그러한 지독한 십자가의 고문을 당한 사람이라면 “결코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감동시켜서 자신이 죽음을 이긴 생명의 주라고 선포할 것을 부탁할 수 없다”라고 지적하였다. 메써렐은 계속 주장하길, “그러한 끔찍한 고통과 혹사를 당하면 치명적으로 피를 다 흘리게 되며 중환자의 상태가 된다. 만일 제자들이 그러한 주의 모습을 보았다면 너무나 불쌍하고 비참하게 느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러한 주님을 모습을 보고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그를 환영하기보다 너무나 불쌍한 마음에 오직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예수께서 그러한 비참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났는데 만일 제자들이 자신들도 어느 날 그러한 비참한 모습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 부활을 외치는 운동을 하였다고 본다면 이는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주 - Strobel, The Case for Christ, 202.) 따라서 기절설은 아무 근거 없는 황당한 추측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확실성

철학자이며 신약 역사가인 게리 헤버마스 박사(Dr. Gary Habermas)는 몇 가지 근거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절대적이 사실임을 증거한다. 첫째, 사도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 군병들이 예수께서 죽으셨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그때 물과 피가 나왔다 (요 19:34). 요한은 서기 1세기 사람으로서 최근의 의학을 알 턱이 없다. 그러나 최근의 의학에 의하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진 현상은 심장 주변에 물주머니인 “심낭(pericardium)”이라고 불리는 것이 터지면서 물이 나왔고 또한 심장이 찔리면서 피가 흘러나온 것이다. 헤버마스는 “만일 예수께서 만에 하나 창으로 찔리기 전에 살아 있었더라도 창에 찔린 후에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옆구리가 창으로 찔려 피와 물이 나온 사건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분명하게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주 - Habermas, The Historical Jesus, 74. 참조하라. Davis, “The Crucifixion of Jesus: The Passion of Christ from a Medical Point of View,” 183-187; and Edwards, Gabel, and Hosmer, “On the Physical Death of Jesus Christ,” pp. 1455-1463.)


성경의 역사 기록에 대한 진실성

신약 성경은 호머(Homer), 플라토(Plato), 아르스토틀(Aristotle), 시저(Caesar), 타시투스(Tacitus) 등의 다른 어떠한 문학 작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본이 많다. 신약 성경에는 헬라어로 쓰인진 약 5천개 이상의 사본이 남아 있으며 라틴어(Latin), 콥틱어(Coptic), 시리아어(Syriac)로 된 번역본들은 2만이 넘는다.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는 서기 120년에 기록된 것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초의 사본은 1세기 중엽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는 점이다. (주 -  Carsten Peter Thiede and Mathew d’Ancona, Eyewitness to Jesus (New York: Doubleday, 1996), 29-31, chap. 5; Philip Wesley Comfort, ed., The Origin of the Bible (Wheaton: Tyndale House Publishers, 1992), pp. 179-207.) 현재 존재하는 플라토의 사본은 겨우 7개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경 사본의 수는 엄청난 것이다. 또한 원본으로부터 직접 복사한 사본과 마지막 사본 사이에는 약 1300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신약의 내용에 있어서 최초의 사본과 수세기 후에 쓰인 사본을 비교할 때 거의 같다. 


더욱이 성경의 신빙성은 성경 저자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을 기록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예를 들어, 누가는 목격자들의 증거를 모아서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눅 1:3)고 증언한다. 또한 사도 요한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고 증언한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그의 독자들에게 편지하기를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험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고 증언하고 있다.


성경의 신빙성은 예수님과 관련된 구약의 예언들이 다 이루어진 사실에 있다. 한때 자유주의 신학자들 및 성경 비평학자들은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먼 훗날에 편집되어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기록된 그 당시보다 수백 년 뒤에 발생할 일들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결론을 내리길, 사건이 발생한 후에 성경 편집자가 성경을 거슬러 올라가 원래 내용을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 것처럼 뜯어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틀리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의 예언 및 그 정확성이 증거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신약 성경의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다른 예언들보다 훨씬 많으며 만일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섬세하게 완성하지 않으셨다면 이러한 예언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에 의하면,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어야 하고 (창 12:3; 17:19; 마 1:1-2; 행 3:25), 그의 탄생은 베들레헴이어야 하며 (미 5:2; 마 2:1, 6), 죄인과 함께 형을 당해야 하며 (사 53:12; 마 27:38; 참조, 눅 22:37), 십자가상에서 그의 손과 발이 찔려야 하며 (시 22:16; 요 20:25), 그의 옷을 놓고 군병들이 주사위를 던져야 하고 (시 22:18; 마 27:35), 그의 옆구리가 찔려야 하며 (슥 12:10; 요 19:34), 그의 뼈는 죽을 때에 부러져서는 안 되고 (시 34:20; 요 19:33-37), 그의 묘지는 부자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 (사 53:9; 마 27:57-60).


통계적으로 볼 때 성경의 이러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예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진 사실은 우연일 수도 없고, 그 예언들이 추측이라고 할 수 없으며, 철저한 속임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더더욱 주장할 수 없다.  위의 인용된 예언들의 내용은 그 역사성과 확실성을 의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예언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회의론자들이라 하더라도 거절할 수가 없다. 이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 되며,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실제적 고통에 관한 성경 기록은 수백 년 전의 분명한 예언으로서 다른 예언의 완성과 함께 예수님께 실제로 발생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고고학적 증거들

사본의 증거처럼, 고고학은 신약 성경의 정확성에 관하여 힘 있는 증거가 되어 준다. 끊임없는 방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 기록의 신빙성을 확증한다. 따라서 성경 비평 학자들도 어쩔 수 없이 견고한 고고학적 증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신들의 의심과 비평을 접게 된다.


성경 회의론자인 윌리암 람세이 경(Sir William Ramsay)은 잘 훈련된 고고학자였는데 그는 신약 성경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증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생스러운 중동 고고학 여행을 다니면서 그는 누가의 역사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주 -  William M. Ramsay, The Bearing of Recent Discovery on the Trustworthiness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3), 겉장.)


더욱이 고고학자들이 최근에 다량으로 발견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그 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 및 장사 사건에 관한 성경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던 학자들에게 할 말을 잃게 하였다.  특히 제프리 쉘러(Jeffrey Sheler)가 1999년 10월 25일에 발행된 U.S. News and World Report 에서 제시한 최근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는 서기 1세기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시체들의 잔재들인데 성경의 기록을 철저하게 뒷바침한다. 다음은 고고학적 발견에 관한 쉘러의 기록이다.


“탐험가들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는 나불루스(Nablus) 도로 근처의 기바아트 하미트바(Giva’ at ha-Mitvar)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의 뼈들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은 참으로 중요한 발견이다. 그 이유는 구세기와 신세기가 바뀌는 약 200년 동안 로마 사람들이 반역자, 강도, 도망자, 간신들에게 집행하였던 십자가형에 있어서 십자가형을 당한 잔재가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잔재를 발견한 후 분석한 결과 그들의 상태는 성경이 묘사하는 로마 군인들의 십자가형의 집행과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뼈는 납골당이라고 불리는 돌로 만든 상자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뼈의 주인은 키가 165 센티미터 정도이고 24세에서 28세의 남자로 보였다. 그의 팔은 십자가형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그러한 십자가 모습의 나무 판에 못 박혔던 자국이 있었다. 무릎은 접혀서 양 옆으로 펼쳐져 있었고 큰 대못이 양쪽 발꿈치를 관통하고 있었다. 형을 집행한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놓았지만 대못은 여전히 양쪽 다리의 발꿈치에 박혀 있었다. 대못은 휘어 있었는데 십자가 나무의 옹이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정강이뼈는 부러져 있었는데 이는 요한복음에서 기록한 로마 형의 통례와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주 – Jeffrey L. Sheler, “Is the Bible True?” U.S. News and World Report, 25 October 1999, p. 58).


마지막으로 고고학에서는 최근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재판과 관련한 구체적인 증거들을 발견하였다.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및 가야바(Caisphas)와 관련한 자료들이 발견된 것이다. 빌라도는 로마법으로 십자가형을 언도하였고 가야바는 종교 재판에서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1990년, 쉘러의 기록에 의하면 성전산(Temple Mount)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서기 1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묘실을 발견하였다. “묘실에서 고고학자들은 석회로 만든 12개의 납골당을 발견하였다. 어떤 납골당은 60세의 남자의 뼈가 들어 있었는데 “Joseph, Son of Caiaphas”라고 새겨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뼈가 예수님의 체포를 명령하고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십자가형을 집행하게 하기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를 넘긴 가야바의 것으로 믿는다. (주 - Sheler, “Is the Bible True?” pp. 58-59.)


5. 쿠란과 성경 외의 역사적 문서 증거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성경 외적인 증거들을 살펴보자. 특히 개리 하버마스가 쓴 『예수의 삶에 대한 고대 증거』는 이 부분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주 - Gary Habermas, Ancient Evidence for the Life of Jesus, (Nashville: Thomas Nelson, 1984), 87-118.)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지방에서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 - Tacitus, Annals, 15:44. cited by F. F. Bruce, Jesus and Christian Orijins Outside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74), 22.)


2세기 경 저스틴 마터는 “본디오 빌라도의 행적”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수의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후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처형을 당하고 집행관들은 그의 옷을 차지하려고 주사위를 던져 제비를 뽑았다”라고 기록하였다. (주 - Justin, First Apology, 35, in The Ante-Nicene Fathers, vol. 1, 175).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인 요셉푸스는 “예수라고 불리는 지혜로운 자가 있다. … 빌라도가 그에게 십자가 처형으로 죽음을 선고했다.” (주 - Josephus, Antiquities, 18:3).


유대교 탈무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 “유월절 전날 밤에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 라고 말한다. (주 - Michael L. Rodkinson, The Babylonian Talmud, “Sanhedrin,” 43a (Talmud Society, 1918).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 가장 오랜 기록은 팔레스틴 역사가 탈루스(Thallus)가 서기 52년에 쓴 것이다. 그 기록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함께 어둠이 임했다”고 말한다. (주 -  Bruce, 30).


또한 대영 박물관에 있는 시리악 사본  마라 바 세라피온 은 질문하길 “그들의 왕을 처형해서 유대인들이 얻을 것이 무엇인가?” 라고 말함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주 – Bruce, 31).


이들은 전부 기독교에 대항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다. 


6. 쿠란의 주장의 논리적 모순과 성경의 논리적 진실성

이븐 타이미야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유대인들 곁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오히려 사도들은 두려움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사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십자가 사형을 목격하지 않았다.” (주 - Ibn Taymiyya, p. 305)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븐 타이미야의 주장과 상충된다. 복음서는 사도 요한이 십자가형이 집행될 때 십자가 곁에 바로 서 있었다. (요 19:26). 특히 여인들 중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지켜 본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요 20:25-26), 다른 여인들 (눅 23:27; 요 19:25)이 있었다. 심지어 이븐 타이미야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한 사도들이 없다고 해도 그 주장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당시 로마 병정들은 만일 십자가 처형에 있어서 어떤 실수라도 하게 되면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는 실수가 있을 수 없으며 이 사실에 대해서는 로마 병정들이 증인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전문 집행관들이며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두 강도가 있었고 (마 27:38), 많은 군중들이 있었다(마 27:39; 눅 23:27).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미워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조금의 착오도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 분명하게 하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실제로 죽으셨다는 증거는 대단히 많다. 첫째, 구약이 메시아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하고 있다 (사 53:5-10; 시 22:16; 단 9:26; 슥 12:10).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여러 차례 미리 선언하셨다 (마 12:40; 17:22-23; 20:18; 막 10:45; 요 2:19-20; 요 10:10-11). 또한 성경이 예언하는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확실하다 (시 16:10; 사 26:19; 단 12:2; 요 2:19-21; 마 12:40; 17:22-23).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입으신 상처와 십자가에서의 고통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장한다. 특히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죽은 것을 확인할 때 예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요 19:34)가 나온 것은 그가 실제로 죽었다는 의학적 증거다. 마지막으로 십자가형과 죽음에 대해 전문하는 로마 군병이 예수의 죽음을 선포했다 (요 19:33). 무엇보다도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요셉에게 장사지내도록 시신을 내주기 전에 다시 한 번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막 15:44-45). 가장 중요한 점은 그의 시체가 봉인된 무덤에 3일 동안 놓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못 박는 것이다. 바울은 이 부분을 복음의 핵심 내용에 의도적으로 삽입하고 있다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주님은 실제로 죽으셨기 때문에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쿠란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부인과 성경의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주장을 비교 분석하면서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믿을만한 증빙 서류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절대적으로 사실임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쿠란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에 쿠란의 다른 모든 내용들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역사적 사실과 함께 그 진실함과 신빙성을 신원 받았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물과 피”로 증거한다. 요한복음 19:34절을 보면 물과 피는 메시야에 대한 특이한 예언 성취인 것을 본다.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곧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36절)는 의미는 메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인 하나님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보내신 메시야가 틀림없으며 그의 죽음은 절대적 사실임이 확실하다. 


특히 물과 피는 의학적인 증거 및 예언 성취의 증거도 되지만 성경은 ‘물과 피’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의 증거임을 선포한다. 따라서 이를 부인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며, 이 죄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 같은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다. 즉 ‘물과 피’로 증거하시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사실과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고서는 죄사함과 영생의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이며, 그가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야임을 증명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 따라서 물, 피, 성령의 오심은 인간의 실제 역사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이심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 하시는 증거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즉, 물과 피와 성령의 오심의 이 세 증거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 자신께서 친히 예수님을 증거 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에서 엄청난 증언을 한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완전하게 공의하시다. 따라서 죄를 조금이라도 간과하신다면 하나님은 완전하게 공의로우실 수 없다. 쿠란은 인간의 선행이 악행보다 많기만 하면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의 주장은 인간의 삶 가운데 50%의 죄를 하나님께서 간과하신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50% 미만의 죄를 간과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완전하게 공의하실 수 없다. 오직 100%의 의가 있을 때만 구원을 허락하셔야 하나님의 절대 공의는 영원히 설 수 있다. 따라서 50% 이상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슬람의 주장은 그들이 믿는 알라신을 불의의 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쿠란은 다른 사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영생을 방해하는 가장 큰 마귀의 작품이다. 따라서 거짓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복음과 영생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거짓말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예수님의 역사적 죽음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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