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단 50주년기념교회인 하나교회당. 앞쪽이 이번에 건축한 교육관이고 뒷쪽이 본당이다.

 

고신교단설립50주년을 앞두고 행사준비위원회(위원장 곽삼찬목사 마산동광교회 원로)에서는 50주년 기념으로 각 지역에 자율적으로 개척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그 모범적으로 위원장 곽삼찬 목사와 마산노회가 천안에 기념교회를 설립하기로 하여 시작한 교회가 하나교회이다.


교단 60주년을 앞두고 하나교회를 찾았다. 마침 천안 백석동의 하나교회당은 가을 하늘 아래 참 아름다운 자태로 기자를 맞았다.


2002년 9월9일(월)은 하나교회가 태동을 한 날이었다. 곽삼찬 목사와 마산동광교회의 헌금 1억 등 마산노회 교회들이 분담하여 모은 5억의 기금으로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9-1번지 땅 604평을 매입하고 고려신학대학원 소예배실에서 교단인사들이 모여 ‘개척준비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이후 약 10주 동안은 이성구목사(당시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교수. 구포제일교회 담임목사)가 교회개척에 동참할 뜻이 있는 몇 가정식구들과 개척준비모임 기도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12월1일(주) 드디어 하나교회가 첫발을 뗀다. 담임목사로 오병욱 목사가 청빙되어 고려신학대학원 305강의실에서 공식적으로 첫 주일예배 드렸다. 이 날에는 부산, 서울 등에서 개척교회서립을 축하, 격려하기 위해서 90여명의 성도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 다음주일에는 실제 개척 멤버인 18명(어린이 포함)이 주일예배를 드림으로 하나교회는 출발하게 된다.


▲ 2부 예배를 드리는 모습. 왼쪽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앞 옆과 뒷쪽은 하늘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선 작지만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본당은 대지를 담보로 4억을 대출받아 이듬해인 2003년 11월에 준공하였다. 2층으로 된 교회당은 1, 2층 각 84평인데 2층은 본당으로 사용하고 1층에는 식당과 부속실(현재는 유치부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교회당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는 것이다.


오목사의 착실한 목회로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어느 듯 공간이 부족하다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컨테이너를 하나 둘 들여놓아 사용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인근에 있는 빌딩의 1층을 임대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불편을 겪다가 2011년 봄에 3층짜리 교육관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7월에 준공했다. 바닥면적은 60평인데 1층은 주차장으로, 2,3층은 각각 소 예배실과 작은 모임방으로 사용하도록 지었다. 교육관에서 초등부예배, 중고등부예배, 청년부예배와 소그룹모임을 하고 있다. 본당과 묘하게 어우러져 운치가 더한다.


 

   
   
▲ 이날 새신자인데도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여성도가 출산하고 첫예배에 아기를 데리고 나와 교회 앞에 소개하고 오목사가 축복기도를 했다.

주일오전에는 1,2부로 예배를 드리는데 1부에는 중고등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유, 초등부교사들과 주일점심봉사자들과 기타교우들이 모이고, 2부에는 청년들과 일반교우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1,2부 각각 120~130명 정도 회집하고 있다. 그리고 유치부와 초등부어린이는 70~80명 정도 출석한다. 그렇게 해서 주일평균 출석 숫자는 330여명 남짓 회집하고 있다.


오병욱 목사에게 굳이 천안에서 교회를 개척하려 한 사명이라도 있는 지를 물었다. 그는 천안이라고 하는 위치적 사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곽삼찬 목사님은 천안에 교단설립5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는 의미를 ‘고려신학대학원을 위한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천안이라고 하는 위치적 사명임을 기억하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위하여 매달 100만원씩 후원하고, 또 다른 부탁(인적, 물질적 봉사)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 오후예배에는 청년부가 교육관에서 따로 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그는 현재 고려신학대학원 캠퍼스 내에 있는 ‘탈북청소년대안학교’를 8년 동안 교목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고신총회 북한선교위원회 산하의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를 섬기고 있는데 하늘꿈학교 학생들은 매주 하나교회의 1부 예배에 참석하고 신앙지도를 받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인 그들 중에는 부모와 가족 모두가 고향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있다. 능력에 따라 개별학습을 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인정을 받고 고등학교 과정 이후에는 사회로 진출한다. 탈북, 입국 등 여러 절차를거치는 과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북한의 사정 때문인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에게 오병욱 목사는 목회자이기전에 자상한 아버지였다. 


하나교회는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이 젊은 사람들로 상당히 이색적인 분위기였다. 노인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청년 교회다. 60세 이상의 교우들은 5%(15명) 정도 밖에 안 되고 50세~60세도 20명 정도이고, 주로 20대~40대 교우들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역사가 짧기도 하고, 지역사람들보다 직장을 따라 전입한 교우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오목사는 설명했다.


▲ 오목사의 서재실에서 사모님과 함께

오병욱 목사는 “지역교회로서의 하나교회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답게 설교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거룩한 교회로 세워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런 교회건설을 목표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고, 교회의 다른 일들은 훈련된 교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은사와 직분을 따라 자율적으로 헌신하도록 맡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섬기고, 선교단체들을 후원하고, 충청노회교회들을 섬기고, 고신교단의 일에 협력하고, 한국교회의 갱신에 이바지하여 “민족과 세상을 섬기는 목회”를 하는 것이 자신의 목회방침이라고 하면서 잘 감당하도록 전국교회가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내년 교단설립 60주년을 맞아 하나교회와 같은 제2의 기념교회가 탄생할 것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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