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원명 목사

  상항북부교회담임
“공감”이란 상대방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관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자신의 인격이 무시당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분을 내고 결국 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버립니다. 아무리 대화의 기술이 뛰어나도 상대방의 인격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대화는 무위로 끝나고 맙니다.  


아내가 불평을 합니다. “제 남편은요.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아요. 그렇게 많이 말해줘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니, 정말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이러한 경우에 답답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내도 자기 입장만 고수하고, 남편도 지지 않으려 하니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해결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해(understanding)는 남의 아래에(under) 서는(stand)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아래에 서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위에 서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빌립보교회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었고 그래서 다툼과 시기가 교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런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된 지위에 있었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주님의 마음이라면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일이 쉬울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대화를 한다면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돕는 자로서 서로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의 관계로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에도 수준이 있다고 합니다. 1점은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고 2점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부족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3점은 상대가 말하는 수준으로만 공감하는 것입니다.  4점의 공감은 상대방이 말하는 그 이상을 찾아서 언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참 더운 것 같아요”라고 말하였는데, “덥기는 뭐가 더워?” (1점), “여름이니 덥지요. 모르셨어요?”(2점), “정말 덥군요”(3점), 가장 완전한 공감은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1%의 가능성(긍정이나 선한 마음)을 보고 언급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싶은데 너무 더워서 집중이 안 되시는군요.”  이런 공감의 대화로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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