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합동신학대학원 개교 30주년 기념 정암신학강좌에서 발표하고, 신학정론 2010년 가을 호에 실려 있는 “다시 듣는 정암 박윤선의 설교, 합신인에게 남긴 정암 설교의 재조명”을 요약한 것임. 필자 주


1. 정암 박윤선과 합신


   
  ▲ 정창균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M.Div.)
  Stellenbosch University
  (Th.M., Th.D.)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설교학
합신 30년의 역사를 합신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할 때, 정암 박윤선을 논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 만큼 정암 박윤선은 합신의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과 지속적인 영향을 끼쳐 온 것이다. 그가 합신에서 가르친 기간은 고신에서 가르친 14년(1946. 9~1960. 10)이나 총신에서 가르친 13년여(1963. 3~1974. 11, 1979. 3~1980. 10)의 기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고려신학교의 첫 교수였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려신학교 설립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2년 동안 고려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합신에서 8년 동안의 가르침은 단순히 8년(1980.11. - 1988. 6)이라는 시간적 길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비상한 결단으로 75세의 나이에 합신의 설립에 가담하여 8년 후 소천하는 순간 까지 합신을 이끄는 지도자요, 합신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박윤선의 한국에서의 신학교육은 고신에서 시작하여 합신에서 마무리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윤선이 합신인에게 심어주거나 혹은 남겨주고 싶어한 정신이 무엇이었는가를 아는 것은 합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암은 합신 설립 초기부터 합신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고, 합신의 사람들은 정암의 정신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정암의 정신, 정암이 이루고자 한 것, 정암이 지향하고자 한 것은 곧 합신이 따르고 이루고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합신이 정암이 소천한 다음 해부터 정암신학강좌를 개설하여 23년이 되는 지금까지 그 강좌를 지속하여 오는 저변에는 정암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 깔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합신을 향한 박윤선의 뜻과 쏟은 열정


정암이 합신 설립에 합류하고 원장으로 취임하여 합신 역사의 선두에 서기로 결단한 데는, 그의 말대로 “분리주의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을 기꺼이 감수하고라도 합신에 합류할 만한 분명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당시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부패이며 이러한 부패의 본질은 목회자의 부패라는 현실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는 현실 인식과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바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절박감과 간절함이었다. 이러한 절박한 심정은 그 당시 행한 그의 설교들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는 합신에서 바른 목회자를 양성함으로써 한국교회의 개혁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말년의 모든 열정을 합신에 쏟아 붓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학생들을 향하여, “우리 교수들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냥 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한 사람을 교회 하나로 보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학교 있을 때 우리 교수들의 가르침을 잘 들어야 합니다”는 말을 자주하였다. 정암은 합신에 모든 것을 거는 열정으로 합신을 이끌어나갔으며, 그러한 헌신을 합신에 몸을 담고자 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요구하였다. 그러므로 정암은 교수들에게도, “이 학교와 함께 죽기를 원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학교를 떠나시오”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생들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말년의 정암은 그동안 신학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품고 있었다. 성경주석 완간에 전심하다 보니 신학교에서 가르치시면서 제자들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었으니 그것이 무슨 바른 교육이 되겠느냐는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합신에 몸을 담았을 때는 이미 주석을 완간한 후였기에 그는 강단에서나 사석에서나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제자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의 경건한 삶을 전수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3. 합신에서의 박윤선의 정신과 가르침


합신에서 이루어진 박윤선의 가르침, 특히 그가 행한 설교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정신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개혁

개혁은 박윤선이 당시 합신에게 제시한 최우선의 가치였다. 박윤선은 한국교회의 부패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합신을 설립한 교수들과 당시의 학생들이 이 학교 설립의 정당성과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하여 기치를 내건 것은 “교회의 개혁”이었다. 이것은 초창기 합신인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박윤선은 개혁의 대상, 방안, 구체적인 실천에 대하여도 그 입장이 매우 분명하였다. 개혁의 대상에 대하여 정암이 시종일관 취한 입장은 “우리 자신의 개혁”이었다. 정암이 개혁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강조하여 외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부터의 개혁”이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정암이 제시한 구체적인 방안은 “바른 목회자의 양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합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바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여겼고 그 일을 위하여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쏟은 것이다. 그리고 개혁운동의 실천에 대하여 강조한 것은 성결한 생활과 진실한 삶 등의 모습으로 현장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무감독 시험이나, 무인 구내 매점 운영 등은 합신인에게는 단순한 선행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개혁정신과 실천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중요한 표지와 전통이 된 것이다.


2) 설교 :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할 최우선, 최대의 일”

정암은 설교는 단순히 연설이 아니고, 영의 움직임이요, 생명의 전파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단순히 설교자는 말하고 교인은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설교자는 그 말씀으로 반드시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것에 집착한다. 그는 설교를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할 최우선, 최대의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설교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주 사용한 핵심용어들을 보면 설교에 대한 그의 정신을 가늠할 수 있다.  “생사 결단의 말씀 연구”, “경건하고 깊이 있는 해석” ,  “간절하고 많이 하는 기도”,  “성령의 감화” , “말씀대로 순종하는 인격” 등이 그가 설교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핵심 용어들이다.


3) 기도 : “생사 결단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 투신의 기도”

정암은 그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요, 제자들과 목회자들에게도 기도를 가장 강조하여 가르쳤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암의 평양신학교 시절부터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의 평생의 기도 생활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정암은 목회자가 평생 기도를 힘써야 할 것과 기도를 기도답게 할 것을 강조한다.


4) 고난 : “당연하고도 유익한 것”

목회자의 고난에 대한 정암의 입장은 확고하다. 목회자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유익한 것이라고 한다. 정암은 교역자들이 의식주 문제로 말미암은 고난을 싫어하여 의식주 문제의 종이 되어 진리를 무시하고, 하나님 나라를 떠받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발밑에 두는 듯한 타락한 신분으로 나아가는 경향에 대한 염려를 자주 표현한다. 그는 “고난이란 것은 우리가 말도 하기 싫고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은 고난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가장 유익을 주는 친구입니다.” 라고 말한다.


5) 연단 : “정평 있는 목회자가 되는 길”

정암은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연단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신학 교육을 받은 이들이 연단을 받음이 없이 그럭저럭 세월만 채우고 나가는 것을 그는 안타까워한다. 또한 그러한 사역자들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하여 심한 우려를 자주 표한다. 그는 연단 받은 일군을 길러내는 것이 신학 교육의 바람직한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연단은 정평 있는 목회자를 만들어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6) 경건 : “목회자의 알파와 오메가”

정암은 경건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것을 학문과 대조시킨다. 마치 학문보다는 오히려 경건에 더 비중을 두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경건을 강조한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는 학문과 경건의 균형을 철저하게 고집한다. 사실 정암 자신이 학문과 경건을 함께 갖춘 지도자로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그는 경건, 거룩, 성결, 신앙 인격, 진실 등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경건을 말한다. 정암은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의 삶의 자세나 실천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개념들로 사용한다.


4.  나가는 말

정암 박윤선의 말년의 설교는 172편이 육성과 녹취문으로 남아있어서 합동신학대학원의 설교센터 안에 구축되어 있는 서버에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2011년 봄부터 그의 설교들을 영음사에서 설교집으로 발간하기 시작하여 이미 3권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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