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Dr. Samuel Escobar 는 미 동부침례교 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이다. 현 시대의 탁월한 사상가 사무엘 에스꼬바르 교수가 말하는 현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회 변화와 상황을 들어 본다 -윤춘식-


▲ 역자 윤춘식 선교사
지난 번 4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주의 주지사로 나선 로시냐 가로티뇨(Rosinha Garotinho)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 후보는 모 장로교회에 출석하는 잘 알려진 신문기자 출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는 아프리카계 브라질 출신의 하나님의 성회 교인인 베네디따 다 실바(Benedita da Silva)라고 하는 매우 유명한 리더의 인수인계를 받았다.

개신교인인 이들은 사회당에 소속되어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로서,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인들의 독특한 특징이 되어버린 전통적인 틀을 깨뜨리는 변혁의 상징이 되었다. 이 두 여성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개신교인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인 남성우월주의에 대항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 대두되는 도전에 대하여 전통적인 교인들이나 오순절파 교인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글에서는 개신교의 현황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복음주의(evangelico)라는 용어가 대부분의 개신교를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19세기 유럽과 북미에서 이주해온 전통적인 교회들과 무소속 선교단체의 선교 사역의 결과로 생성된 무소속 독립교회들, 그리고 선교 사역 혹은 지역 사회의 부흥의 결과로 생성된 교회들이 포함된다.


주 종교는 정치에 대하여 영향력을 확보하고, 공공 교육에 대하여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하는 바티칸과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만 캐톨릭은 지난 수십 년 간 의미심장한 변화를 시도했으나 숫자적으로나 사회의 영향력이라는 영역 속에서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보여 왔다.


또한 “파라-복음주의”(para-evangelico)라고 일컬을 수 있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로마와 인연을 끊은 몇몇 카리스마적 천주교회들(이를 테면, 페루의 Agua Viva/생명수교회)과 미국의 카리스마적 초대형 교회들의 선교로 세워진 교회들(과테말라의 Verbo/말씀교회), 그리고 전통적인 개신교회들과 결별한 단체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 중에는 피터 와그너가 미국에 본부를 두고 감독하는 신사도적 운동과 연합한 단체들도 있다. 파라-복음주의 교회들은 복음주의자들과 연합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숫자적 증가, 신학에 대한 무지, 포스트모던 문화에 종속되는 신앙생활 추구, 새롭고 독창적인 자기주장은 개신교와 가톨릭과도 구분되는 또 다른 하나의 종교 세력으로 취급하기에 충분하다.


개신교의 성장

미국의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가 지난 수 십 년간 급성장했음을 심심치 않게 보도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 오순절 교단 안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이 같은 경이적인 성장에 대하여 많은 글이 쓰여 졌다. 신빙성이 가장 높다고 하는 Operation World 자료에 따르면, 카리브 해협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에만 개신교 인구가 5천 5백만에 육박한다. 동시에 파격적이기까지 한 오순절파 운동으로 인하여 실제 개신교 인구는 훨씬 더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상세한 분석은 콜롬비아와 같은 경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준다. 1968년만 하더라도 85,000명(1천 9백만 전체 인구의 0.43%) 에 불과했던 개신교 인구가 2000년대에는 2백만 명을 넘어섰다(3천 8백만 전체 인구의 5%).


이 같은 성장은 사회학자들과 로만 가톨릭 지도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편, 개신교의 양적 성장에 대한 이들의 질적 분석은 우리에게 선교학적인 안목에서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기초를 제공한다. 개신교 역사가 1세기가 넘은 칠레의 경우를 보자. 칠레의 가톨릭대학 연구에 따르면, 칠레 전체 인구의 13.9%가 개신교이다. 상류층의 개신교 인구는 6.2%에 불과하지만, 하류층의 개신교 인구는 무려 21%에 육박한다. 또한 이 연구 자료는 이러한 성장 배후에는 10년 이상의 까다로운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제들에 비해 대부분의 개신교 목회자들은 독학을 통해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교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어느 나라의 경우 개신교인들의 교회로부터의 탈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빙성이 있는 어느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상당수의 개신교인들이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든가, 혹은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실제임을 입증한 사람이 바로 사회학자인 동시에 목회자인 코스타 리카 출신의 호르헤 고메스(Jorge Gomez)이다. 고메스는 1994년에 그의 연구를 완성하였으며, 1989년과 1991년 사이에 연구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이 같은 현상을 고찰하였다. 그의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 중에 50%는 교회를 떠난다. 과거에, 혹은 현재 개신교인이라고 지칭하는 20% 중 단 10%만이 개신교인으로 남아 있다.” 이 논문은 일반 목회자들이나 교단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숫자를 제공했다.


탈퇴 현상은 청년(18세에서 24세까지), 남성, 모태 신앙인, 그리고 새 신자(교회에 등록한지 1-2년 된 자)들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자훈련과 교회 탈퇴 현상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확고한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목회적 돌봄이 없는 교회들에서 사람들의 탈퇴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탈퇴 현상의 원인은 교회가 요구하는 도덕적인 삶에 대한 압박감을 불쾌하게 여기는 새 신자들과 목회자와 지도자들 간의 재정적인 문제와 성적인 문제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지도자 훈련

개신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양적 성장에 따른 지도자 훈련이다. 신학교 집중 과정은 1960년 대 선교사들이 채택한 당시의 최선의 방책이었다. 신학교 집중 과정이란, 전통적인 신학교 과정이 아닌 기능적 대책이었다.

  

현재 10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교단 신학교들과 초교파 신학교들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목회자, 선교사, 그리고 리더들을 배출하고 있다. 신학교와 함께 평신도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성서유니온, 예수전도단과 같은 선교 단체들이 있다.


과거의 신학교 학위는 교회와 교단 내에서만 인정되는 학위였지, 라틴 아메리카의 국내 교육청이 공인하는 학위는 아니었다. 이는 가톨릭 세력의 극소수였던 개신교에 대한 일종의 차별 대우였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어 권에서는 예외 사항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국가의 공인을 받기 위하여 신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절대 다수와 상대적으로 세속화 된 사회 속에서 이 같은 인정을 받고자 하는 움직임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해방신학으로 저명한 코스타리카의 라틴 아메리카 신학교와 콜롬비아 메델린(Medellin) 소재의 신학교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최초로 대학으로 인정을 받았다. 초교파적인 이 두 대학은 교육청의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다른 교단 신학교들도 동일한 질적 수준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파라-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초대형 교회들은 카리스마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자신들의 신학교를 세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어떤 교단들은 높은 수준의 지도자 교육의 필요성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단기 합숙 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은 미국 미주리 주의 스프링필드 소재의 하나님의 성회 본부에서 주관한다. 연합 그리스천 선교협회(Alianza Cristiana y Misionera)는 단기 합숙 과정을 통해 코스타리카 아메리카 기독교 대학을 통해 석사 학위 과정을 제공한다.


지도자 교육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재력과 인력 협력을 위한 노력들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왜 남 침례교 교단의 선교국이 신학교 교육에 손을 떼고, 이른 바 미전도 종족에 모든 재력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지 의심된다. 리더십의 부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도자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제도적 약점이 라틴 아메리카 개신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적 변화와 경제적 궁핍은 제도적 생명 유지의 가장 큰 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몇몇 전통적인 교단들의 경우, 세대를 초월하는 튼튼한 제도적 구축이 되어 있는 반면, 신생 교단들은 이 같은 관점에서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오순절 교단으로서 페루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그리스천 선교협회의 경우, 성공회 주교 식의 정치적 제도를 도입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알고 있다. 카리스마적 교회는 상황적인 제도로 보이는 권위적인 리더십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가톨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권위주의적인 사제적 리더십과 연관성이 있다. 아르헨티나와 페루에서 나타난 일부 초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의 재정 및 성적 스캔들은 제도적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드러낸 단적인 예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나는 다양한 교단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대담을 나누었는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을 행사해야 교회의 양적 성장과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많은 목회자들이 이 같은 유혹에 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적 불안정성은 초교파적 연합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World Evangelical Fellowship과 연관성이 있는 CONELA로 보수 교단 연합회는 소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CLAI 에큐메니칼 운동 연합회는 언론에 힘입어 존속하고 있다. ALC는 인터넷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누에보 시글로(Nuevo Siglo/새 세기) 월간지는 개신교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시각을 제공하는 유일무이한 정보지이다. 또 다른 성공적인 정보지는 아뿐떼스 빠스또랄레스(Apuntes Pastorales)인데, 3개월에 일회 발행되는 국제 기독교 개발을 위한 목회자 정보지이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 정보지는 5만부가 발행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배포되고 있다. 좁고 변덕스러운 라틴 아메리카라는 시장을 감안한다면, 대 성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교회와 정치적 삶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나타난 교회의 양적 성장과 사회적 불안은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의 개신교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세 가지 영역에서 의미심장한 사회적 충격이 가해졌음을 부인하기를 어렵다.


첫째, 가난과 압력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적 상황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테러 집단과 정치적 폭력과 가정 파괴를 몸소 경험한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재력과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라틴 아메리카 선교 단체에서 시작된 레드 비바(Red Viva)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있는 청소년 복지 기관과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탁월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둘째, 원주민 지역의 교회성장은 복음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주민들의 자생력을 강화시켜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세속적인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도 과테말라, 멕시코,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에서 이 같은 사회적 변혁이 있음을 인정한다.


셋째, 비록 확실한 데이터가 결여되어 있지만, 대도시에서의 오순절 운동의 확산은 동일한 구속적 변화를 일으켰다. 오순절 운동은 가난한 자들이 대도시라는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회에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의 변혁은 당연하면서도 논리적인 발전이지만, 수십 년 동안의 개신교의 영향력은 부끄러움과 수치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우리에게 상당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브라질 출신의 폴 프레스톤(Paul Freston)과 같은 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나라 각국에서 여러 자료와 데이터를 수집하며 이 같은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경험에 입각한 거대한 스펙트럼 안에 행동에 근거한 두 개의 일반적인 라인이 있다.


과테말라의 경우,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Efrain Rios Montt)나 호르헤 세라노 엘리아스(Jorge Serrano Elias)와 같은 카리스마적 개신교인들은 군사 혁명, 또는 선거 과정을 통해 정치적인 세력을 획득한 대표적인 이들이다. 몬트의 경우, 게릴라들과의 투쟁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적지 않은 저항을 받았다. 세라노 엘리아스의 경우, 정치계의 극도의 부패로 인하여 사직해야만 했다.


페루의 경우, 알베르토 푸지모리(Alberto Fujimori)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어느 한 침례교 목회자가 부통령으로, 그리고 여러 명의 개신교인들이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 혁명을 통해 푸지모리 대통령은 부통령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의원들을 박탈시켰다. 재선을 통해 여러 명의 개신교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는 하였으나 사회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변혁의 시도마저 사실상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개신교 정치인들은 기독교 사회 윤리적인 특징들을 공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기본적인 정치 신념이나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그들은 비기독교인 정치인들과 같이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자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르헨티나의 감리교인인 호세 미게스 보니노, 페루의 장로교인인 뻬드로 마라나, 콜롬비아의 하이매 오르티즈와 같이 전통적인 교단에 속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신념에 따라 입법의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시간에 지남에 따라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치계에 입문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로시냐 가로띠뇨와 베네디따 다 실바와 같은 사람들은 브라질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브라질은 기독교인들의 정치 가담에 있어서는 선두주자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목양할 것과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사회 정치 영역 속에서 개신교 신앙에 입각한 상황적인 윤리를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