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교회지도자들은 사회의 도덕적인 타락상을 보면서 이를 개탄한다. 거짓과 방탕과 술수와, 도를 넘은 음란 등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며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종교계를 들여다보면 일반 사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몸으로 보고 느낄 때가 많다.

교회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관계자들이 오히려 신앙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들보다 더 악랄하고 교활하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곧 일종의 확신범로 나타난다. 돈독한(?) 신심이 지독한 자기 확신과 거짓의 변종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편드는 사람들이 나타나 도덕문제를 정치문제로 바꾸어 대결을 조장함으로써 의와 불의를 희석시키고, 악인들의 입지(?)를 확보해 주어 불의한 자들이 대중 가운데 뻔뻔히 상주케 만든다.

근래에 와서 일반사회는 언론매체들에 의해 도덕의식이 상당히 엎그레이드 되고 있다. 거짓과 위선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검증이 시도된다. 그리고 꼭 범법행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도덕성의 요구를 따라 자진 징계의 형식을 취하므로 기본적인 의가 세워진다. 그래서 요즘은 우리나라 정치계가 교계보다 더 맑아졌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평가가 허튼 평가가 아니라는 증거들이 많다. 보라. 정치가였다면 완전히 매장되고 말았을 사람이 교회지도자였기에 거룩(?)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목사가 아니었더라면 잡범보다도 더 못한 파렴치범으로 낙인되고 처벌되었을 것인데, 목사라는 것 때문에 종교적 보호(?)를 받으며 여전히 지도자로 행세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부흥은 생명의 소생이다. 그런데 생명은 유아독존이 아니다. 생명은 관계 속에 있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의다 - 생명은 그 풍성함을 더한다. 이 생명의 풍성함이 부흥(revival)이다. 윤리의식의 회복, 하나님의 의를 찾고 세우는 운동, 이런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어게인 1907, 평양대부흥 100주년에 한국교회가, 아니 우리 고신교회의 도덕성이 제발 사회적인 수준 정도라도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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