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규 교장 두레자연고등학교
우리 교육계의 최대 이슈는 학교 폭력문제이다. 최근 들어 굵직한 학교 폭력 관련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상 학교 내에서의 폭력과 왕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 내에는 폭력의 형태와 성격이 조금 다를 뿐이지 크고 작은 폭력 사건들을 늘 일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폭력 문제는 과거와는 비해 청소년들의 죽음으로 비화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더구나 청소년 폭력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을 놓고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간의 정치적 이념적 대립 양상마저 보이고 있어서 다른 어느 때보다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학교는 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입시경쟁의 장으로 변해 버렸고, 학생들은 입시위주 교육에 갇혀버려서 철저하게 교육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학교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학교교육에서 추구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번만 돌아보자.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작년 11월 더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는 어머니의 강요에 시달려 급기야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서울 모 고등학교 3학년 우등생이 붙잡힌 사건과 12월 말 대구에서 왕따 폭력에 시달리던 한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 등을 보면 오늘날의 학교교육현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학교현장에서 직접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도 학교 폭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방관할 수밖에 없는 어정쩡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학생인권조례안 발표 이후, 현장교사들은 학생 폭력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교사들이 학생생활지도에 적극적으로 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교육 세력들은 학교폭력과 학생인권문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옹호만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리고 학교폭력문제의 근본 원인이 학생인권조례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보수진영의 교육세력들은 이 조례안으로 인하여 학교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고 폐기를 주장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처럼 학생 폭력 문제가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서 이제는 정치적 싸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지난 2월 6일 정부는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그 대책 안을 보면 오늘날과 같이 학교 폭력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학생들의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만을 표명하고 있다는 듯 한 인상을 주어서 실망이 크다. 내용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피해학생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둘째는 ‘가해학생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셋째는 ‘학교폭력에 대해 교사가 어떤 책임을 저야 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학교 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경찰이 동행하면서 보호하거나 가해학생과 격리시키는 조치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우선 보상, 117신고제 등이 구체적인 내용이고,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출석정지 및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등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주 내용으로 담았고, 교사부분에 대해서는 복수 담임제 도입과 학교폭력 은폐 시 교장과 교사의 중징계를 주요 골자로 하는 대책 안을 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대책방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우리는 학교 폭력 문제의 근본원인을 우리 교육을 이끌고 있는 ‘교육정신’과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홍익인간이라는 훌륭한 교육이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그저 사문화된 구호에 불과하고 이 교육정신이 실제로 우리 교육을 이끌어가고 있지는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요즘처럼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가 마치 점령군처럼 우리 교육계를 휩쓸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교육정신은 경제논리에 매몰되어 경쟁과 효율화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에 예속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교육정신이다. 세상 사람들이 북유럽교육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 나라의 훌륭한 교육시스템과 교육환경이 아니라 교육정신과 철학이 그 나라 교육에 스며들어 있고 교육을 지탱하며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학교 폭력 문제는 오늘날 학교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암암리에 물질적 가치에 의한 성공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학생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이상하게도 한쪽 방향으로 토끼몰이를 하듯이 학생들을 몰아가고 있고, 이 게임에 뒤처지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이기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경쟁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고 있는 학생들이 매년 수 만 명씩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사회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산물’이다. 오늘날 청소년 문화의 특징은 대체로 네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다. 첫째는 입시문화이다. 청소년들은 공부 이외의 것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아예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상급학교 진학이 공부의 목적이고 이를 위해서 올인하는 생활이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는 소외문화이다. 청소년들은 삶 자체가 공부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욕구와 에너지는 폐쇄되어 일종의 감금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력감, 소외감, 욕구불만,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인하여 외향적으로 폭력성향을 내향적으로 우을증 증세를 띠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소비문화와 감각지향적 문화이다. 이는 디지털 세대의 특징이기도하다. 청소년들은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것만 추구하면서 물질적 향유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 문화가 학교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학교 폭력은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 그런데 학교 폭력을 현상으로만 보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학교폭력을 제어하려고 한다면 그 법적 제도적 장치 그 자체가 학생들을 옥죄고, 그런 노력이 학생들을 감금시키는 쪽으로 역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부정적 문화가 철저하게 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자유를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해 주고 학생 인권을 조건 없이 해방시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학생 폭력 문제를 감소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학생이 누리는 인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폭력문화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건강한 교육정신과 가치 그리고 문화를 새롭게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학교 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학교 사회 자체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이때에, 학교폭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학교가 문제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기독교대안학교가 바로 그것인데, 이들 학교에서는 공교육에서와 같은 학교 폭력 사태가 비교적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설사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슬기롭게 해결하고 있다.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문화와 교육적 가치에 대해 저항하고 이곳으로부터 탈출한 아이들 그리고 공교육 체제로부터 상처받은 학생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학교이다. 그러니까 대안학교는 소위 말하는 학교부적응 학생들과 중도탈락자들을 위한 학교이다. 대체로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 폭력의 당사자들이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지지하고 이끌어가는 교육정신은 공교육과는 달리 나름대로 독특한 이념과 철학에 기초해 있고 또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이 되는 문화와 학교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적 핵심가치가 특별하다. 대안학교를 보다 정확하게 정의하면, 대안학교는 교육의 본질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학교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두레자연고등학교의 경우, 이 학교는 학교부적응 학생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세워졌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는 공교육이 양산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하면 이 가치들은 두레학교 학생이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통하여 반드시 배워야 할 과제인 동시에 모든 교육활동을 이끄는 동력이기도 하고, 교육활동의 규범 내지는 학생들의 생활규칙의 규준이 된다.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공동체성=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

②자연생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잘 관리하고 다스리자”

③자율자치= “스스로 생활하며 다스리자”

④사랑= 사랑하기 힘든 사람조차도 사랑하고 익명의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⑤정직성 = “그리스도 앞에 정직한 자로 서자”

⑥인권존중 =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그리고 두레자연고등학교에는 ‘참여 문화’, ‘자율자치 문화’, ‘소통의 문화’, ‘체험 문화’ 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다른 교육주체들이 언제나 소통하고,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공동 자치회’라는 모임 형식으로 모든 교육주체들이 다 같이 참여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 또한 입시경쟁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이를 계발할 수 있도록 삶으로 배우는 체험활동을 주요 교육활동으로 삼고 있다.


최근 학교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활지도 방안으로 ‘회복적 정의’에 의한 생활지도방안이 많은 교사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방안은 이미 두레자연고등학교에서 오래전부터 실천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평화학교를 위한 써클 모임’의 경우도 두레자연고등학교에서는 학교폭력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폭력당사자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 교사가 한자리에 모여서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모임을 벌써 해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체적인 생활지도 방안이 가능하자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교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적 가치와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야 가능하다. 공교육에서 회복적 정의에 의한 생활지도 방안을 실천한다고 할 때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장담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 폭력문제 해결은 법적 제도적 장치 내지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덴마크에 그 나라의 교육을 이끌어 가는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이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천박하고 시대착오적인 교육정신 대신에 한 나라의 백년대계를 이끌어가는 교육정신을 뿌리 내리는 것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고 교육 주체들이 함께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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