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삶의 특징은 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고 마음의 평강을 찾기 어렵습니다. 가끔 휴식을 갖지만 그것이 깊은 쉼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마음의 잔잔한 고요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의 길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활동의 길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 그들은 엄격한 규정을 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한 규칙을 따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쉼을 앗아갔습니다. 역설적인 결과였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분주한 활동을 통해서 안식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즉 자기의 힘으로 쉬지 않고 일해서 자기의 안전과 안녕을 스스로의 힘으로 확보해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를 기초로 안식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취해야 정말 이제 됐다며 쉼을 느낄까요? 자기가 만족하는 쉼을 얻기 위해서 더 일하게 됩니다. 쉼을 위해서 일하지만, 결국 참된 쉼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쉼을 얻는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내 활동을 중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내 활동을 통해 이룬 성취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짐을 내려 놓는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면서 바른 관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된 쉼이 주어집니다. 그분의 돌보심에 나를 맡기고 내가 힘을 뺄 때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나의 일을 상대화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려 놓고 맡기는 것을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이 속에 참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의 길은 활동의 길입니다. 무활동이 쉼을 준다는 앞의 내용과 반대됩니다. 그러나 이 속에 담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쉼은 단순히 육체가 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힘들 때에는 오히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땀 흘림 속에 쉼이 있습니다. 피곤할수록 적극적으로 주의 뜻을 따라 헌신해 보십시오. 그런 의미 있는 활동 속에 쉼의 길이 있습니다.


쉼의 길은 두 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활동의 길, 즉 모든 것을 맡기고 내려놓는 수동성의 길입니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노력이 내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내 활동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짐을 맡기는 믿음의 연습을 하는 것이 안식의 길입니다. 또 하나는 열심히 일하는 활동의 길, 즉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따라 이웃 사랑에 헌신하는 능동성의 길입니다. 모든 것을 맡기고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쉼이 있고, 하나님께 다 달려 있다고 믿고,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하는 수동적 능동성 속에 쉼이 있습니다. 쉼을 상실한 세상에서 진정한 쉼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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