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선거의 해입니다. 총선이 4월에 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각 정당들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선거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며, 또한 어떤 기대가 있는지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지난 총선부터 기독교 일각에서 기독이란 이름이 붙은 정당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원적 종교 상황과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많이 실추된 현실에서 기독정당의 출현이 어떤 긍정적 가치를 가지고 올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런 논의의 장을 통해서 더욱 성숙된 기독인의 정치, 선거에 대한 의견개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글의 구성은 손봉호 장로님이 기독인과 선거라는 글을 먼저 싣고, 각 연령대별로 이번 총선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부산 바른 선거 시민 연대 회장으로 추대된 강용원 교수님의 글도 싣게 됩니다. 좋은 나눔을 기대합니다.

-코닷연구위원장 이세령 목사 -

 

▲ 손봉호 교수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코닷 자문위원
선거철이 다가왔다. 예년에 비해서 금년 선거는 좀 더 시끄럽다. 각 정당이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기독교계에서도 예년에 비해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기 때문에 기독교계가 정치문제에 좀 더 민감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런 관심이 잘못되면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치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이해와 판단으로 입장을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치, 민주주의, 선거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

여러 신학조류들 가운데 정치문제에 대해서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개혁주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정치 영역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칼빈주의자로 알려진 아브라함 카이퍼는 “오!. 우리의 정신세계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에 절대주권을 행사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존재 영역에서 ‘내 것이다!’ 할 수 없는 부분은 한 치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는 인간 활동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국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고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우선 국가만 처벌할 권리를 가진다. 과거에는 교회, 학교, 가정이 벌을 줄 수 있었으나 오늘날은 국가 이외에는 아무도 벌을 줄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국가만이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목숨을 내놓고 싸우라고 요구할 권한이 있다. 과거에는 교회, 부족 등이 돈을 거둘 수 있었으나, 오늘날은 오직 국가만이 강제로 세금을 거둘 수 있다. 돈의 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커진 현대사회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은 매우 큰 힘이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을 친척, 이웃, 교회들이 돌보았으나 이제는 국가가 국민들의 복지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국가는 학문, 예술, 스포츠, 심지어 유희 문제에조차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문제를 관리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철학자 호브스 (Thoams Hobbes)가 지적한대로 국가는 이제 르와단 (Leviathan)과 같이 무서운 괴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중요하고 강해진 국가가 어떻게 그 권한을 행사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다. 우리 자신과 자녀, 이웃의 생존과 활동에 이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에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무관심하면 이는 중요한 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한 편으로 나그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2. 민주주의와 정의

인류가 이제까지 개발한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 민주주의란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며, 그 법 자체를  만드는데도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제도도 개인의 성, 신분, 재산, 교육, 능력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기본인권을 가지고 있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생각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왜 인간은 기본인권을 향유할 수 있고 인간은 왜 존엄한가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이론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가르침 외에 아직 제시된 것이 없다.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 등의 이론이 제시되었으나 충분한 설득력이 없다. 민주주의가 기독교 문화에서 시작되고 발전했다는 사실은 우연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는 말을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가난하고, 힘없고, 무식하고, 무능한 사람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고 존엄한 인간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정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시지만 특히 약한 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쓰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신다. 고아, 과부, 객 (외국인)을 특별히 돌보시고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관원들에게 진노하신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이하여 오셨지만 특히 병든 자와 장애인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바로 그가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마11:1-5).


흔히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시민들이 모여서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 결정에는 자유시민들만 참여했을 뿐, 여자, 노예, 상인들은 제외되었다. 즉 사회의 강자들만 권한을 행사했을 뿐 약자들의 권리는 전적으로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적 결정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적이었다 할 수 없다.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가장 약한 사람들도 가장 강한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할 있는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이 제공하고 있다. 


3. 민주주의와 부패

그러나 성경은 어디서도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고, 성경에 소개되는 정치제도는 대부분 전제군주제다. 그런데 민주주의 제도를 제외한 다른 제도들은 사회 약자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군주나 독재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얼마든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그런 군주나 독재자는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할 경향을 가지고 있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J. Dalberg-Acton)의 말처럼 권력을 독점하면 반드시 부패하고, 부패는 정의를 파괴하기 때문에 약자가 항상 그 피해자가 된다.


인간의 전적부패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취급한 신학자는 칼빈이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분명하게 민주주의를 선호했다. 신명기 17:14-18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자신의 권위로 왕을 세우지 않고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세우도록 하셨다. 만약 그가 왕권통치를 허락하시거나 (그런 통치를) 그가 선호하시는 것이었더라면 왕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백성들이 순종하도록 제정하시지 않았겠는가?” “선택 혹은 선거에 의하여 뽑힌 통치자들을 갖는 것이 군주 (a Prince)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용인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그가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 자체로 좋아서가 아니라 가장 다른 제도보다 인간의 악을 더 잘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선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가 주권을 가지게 되면 그들 자신의  기분과 선호에 따라 판관들을 임명하고 야심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아니, 그 보다  더 심각하고 부끄러운 부패가 있다. 최근에는 공직이 다른 상품들처럼 팔리고 있다. 우리가 그런 에를 목격하면 하나님께서 한 민족이나 국가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판관이나 지배자를 선택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감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선물이란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민주주의에도 약점이 많다. 특히 다수의 결정은 소수의 전문가의 결정보다 대부분 못하다. 미국 같이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부쉬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제도다. 권력의 독점을 막고 권력을 분산시켜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 부패를 막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3권분립, 주기적인 선거, 정권교체 등은 모두 부패를 막는데 필수적이다. 모든 민주국가가 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제외하고는 부패를 막는 방법은 없다.


권력이 부패하고 사회질서가 무너지면 반드시 약자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고통을 당한다. 강자는 손해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손해를 봐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부패한 사회에서는 약자가 안전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법과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특히 약자들이게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부패를 막고 약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제도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더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데 공헌해야 할 것이다.


4. 기독교인과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고 핵이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명하게 치러지면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더 선거가 자유롭고 공명하게 이뤄지는데 공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선거부정은 막아야 한다. 오늘 한국 선거가 이만큼이라도 공명하게 된 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이 그들의 시간, 돈, 정력을 바쳤기 때문이다. 4.19 혁명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명선거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이미 1987년에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을 만들어 시민운동를 벌렸다. 1982년에 조직되어 선거법 개정에 크게 공헌한 <공명선거시민운동협의회> (공선협)도 기독교인들이 시작했다. 한국 교회는 그 유산을 잘 살려서 선거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저지르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으며 고발하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그것은 시민의 의무일 뿐 아니라 돈, 연고 등 올바르지 못한 이유로 투표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온다.


5. 기독교 정당과 기독교인 후보

기독교 정당이란 이름을 내 건 정치단체가 생겨나고 기독교인 후보자가 출마해서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 정당, 그런 후보를 그리스도인들이 지지해야 하는가?


물론 기독교 정당이 정말 정직하고 공정하며 매우 유능해서 다른 정당들보다 훨씬 더 정의롭고 유능하게 정치할 수 있으면 당연히 지지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인 후보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를 잘 하고 예배에 잘 참석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무능하면 그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 나라와 국민 뿐 아니라 한국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큰 해를 끼친다. 이름만 기독교인이고 무늬만 기독교 정당이지 비기독교인보다 더 부정직하고 불공정하며 무능하면 그 분 혹은 그 정당 때문에 한국 교회와 기독교가 같이 욕과 비난을 다 받게 될 것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로 시민과 정의를 위하여 노력하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불신자가 진실하고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불신자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의 뜻을 이룩하실 수 있다.


우리 정치가들의 약점은 훌륭한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 세워도 그것을 올바로 실천에 옮길 정열도, 능력도 없으면 그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이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거짓과 불공정이 난무하고 그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직하고 공정한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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