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 송영목 교수 고신대학교 신학과
이 글의 목적은 장로교 총회가 조직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에, 대표적인 4개 장로교단(기장, 통합, 합동, 고신)의 성경 해석을 회고하되, 구속사적 해석에 초점을 두어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로교의 바람직한 성경해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의 방법은 4개 장로 교단의 신학교 저널에 실린 글 중에서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된 논문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구속사와 역사비평의 조화를 꾀한 것이 기장과 통합의 흐름이라면, 합동과 고신은 역사비평을 배제한 구속사적 해석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2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정의 및 특징


구속사적(특별계시역사적) 성경해석의 정의를 위해서, ‘성경신학의 아버지’ 게할더스 보스(G. Vos)가 내린 고전적인 정의는 여전히 적실하다: “주경신학의 한 분과로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과정을 다루는 작업이다.” 보스는 성경신학적 해석의 4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계시 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2) 역사 안에서의 계시의 실제적인 구체화, (3) 계시 안에서 관찰 가능한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성격, (4) 성도의 삶에 적용되는 실제성. 이 성경 해석법은 판 더 발(C. Van der Waal), 헬베르그(J.L. Helberg),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 Greidanus), 그레엄 골즈워디(G. Goldsworthy), 그레고리 비일(G.K. Beale), 데니스 존슨(D.E. Johnson), 마이클 윌리엄스(Michael Williams) 등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이제 보스가 내린 구속사의 정의와 특징들을 염두에 둔 채, 4개 장로교단의 학술지에 실린 관련 논문들을 분석해 보자. 본 연구에서는, 위에서 밝힌 보스의 성경신학적 정의와 4가지 특징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반영된 학술지의 글들로 제한한다. 필요한 경우, 구속사와 연관된 성경해석 방법론에 관한 논의도 포함된다.

   

학술지의 논문 이외의 구속사와 관련된 저술은 본 연구에서 제외되므로, 전체적이고 철저한 분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논문이 아닌 단행본에서 학자들의 구속사적 해석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동일 저자의 논문과 단행본의 비교는 또 다른 논문을 필요로 한다.


3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회고와 평가: 4개 장로교단 신학교의 학술지를 중심으로


3.1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신학연구’


1939년 3월, 한국인에 의한 신학운동의 자립과 신학의 세계수준 도달을 목적으로 조선신학원이 설립되었으며, 1946년에 장로회총회 직영신학교가 되었다. 학술지 ‘신학연구’는 1955년 8월에 창간된 ‘한국신학대학 학보’의 후신이며, 1960년 7월부터 그렇게 명명되었다. 필자는 한신대 교수의 의견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즉 전체가 아니라 학자 개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장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나름대로 처음으로 기여한 이는 전경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직 김재준박사와 한국신학대학이 전통적 칼빈적 신학을 계승하면서도 비평적 연구방법을 용납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기독교사의 큰 사건이며 한국의 신학이 세계적 조류에 끼어들어 건전한 발전을 하게 된 기연(機緣)이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적으로 훈련 받은 현대인에게 선교할 방도로 역사비평에 기초를 둔 칼빈적 신학(구속사적 해석?)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전경연은 정통신학은 독단에 빠져 성경의 인간적 차원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주장함으로써 과학적인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전경연은 개혁교회의 신학이 성서해석학에 끼칠 공헌은 성경의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여 언어적, 시대사적, 여러 학문적 연구를 동원하려는 인간적 노력과 함께, 이런 노력이 자신에게 최후적 가치와 정통성을 돌리지 않고 성령에게 그것을 미루는 태도를 학문적으로 확립하는 길이라고 본다.

   

전경연은 구속사적 성경해석에서 의미 있는 자리매김을 하는 ‘모형론’이 성서의 논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는데 동의한다: “구속사에 일어난 일로서 전에 있었던 일이 후에 일어난 일과 동일함을 지적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일관성 또 구원의 사실로서의 확실성을 논증하는 방도가 동형론(typology)이다.” 그가 모형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성서는 과연 선민과의 계약이란 기본적 관계로 엮어지는 구속사이며 그리스도가 그 역사의 통일 원리이며 중심이란 이해에 도달한다면, 하나님의 활동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의 서로의 관련과 의미를 예표와 완성의 관계에서 찾는 것의 정당성을 볼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모형론적 해석에서 역사비평이나 종교사연구도 의미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전경연의 위의 주장은 비평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타난 사건의 역사성과 초역사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역사비평과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의 사역이 실제로 조화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모형론과 역사비평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성경의 역사적이며 인간적 측면을 합리적으로 밝히려는 역사비평으로 성경을 제대로 해석 할 수 있다면, 성경을 그런 전문적인 방법에 무지한 일반성도로부터 단절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문익환은 오경의 문서설(J, E, D, P)을 수용하면서 구약을 ‘구속’으로만 보지 말고, ‘새 창조’ 즉 창조의 회복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구약을 ‘창조’에서 출발하여 ‘구속’을 거쳐 ‘재창조’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로 이해한다. 문익환은 구속의 역사는 창조의 회복이며, 성경이 천지의 창조에서 시작되어 신천신지의 창조로 끝나는 것은 성경의 구조뿐 아니라, 내용이라는 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문익환의 주장처럼 문서설에 근거한 재창조의 구속사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환언하면, 창조-구속-재창조라는 성경의 구속사적 해석의 결론은 정당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최근에 오영석은 그리스도의 삼중직론 중에서 예언자직과 제사장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는 구약의 예언자직과 제사장직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속사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제 2이사야서의 전승사적 맥락’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전승사를 사용했고, 적용에서는 ‘사회적 악을 고발하고 추방하는 운동’, ‘민중 해방’, ‘민족 분단과 갈등의 치유’ 등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신학적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나는 어조로 마무리했다.

   

오래 전에 로마서 1장 주석을 통해서 강한표는 구속사적 해석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루지만, 그분의 노(怒)도 다룬다고 정확히 간파한바 있다. 그에 의하면, ‘구원’(swthri,a)은 단순한 구출(救出)이라는 의미, 즉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의가 지금 이미 상실된 세계 위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에서 그들을 보호한다는 소극적 의미 뿐 아니라, 동시에 ‘구원’(Heil)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구속사적 해석은 심판 혹은 하나님의 노(怒)도 다룬다. 이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가 구속사의 ‘현재’에 실현되는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에, 이 동일한 순간에 인간의 모든 불의에 대하여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노가 계시된다.

   

기장의 성경해석은 한편으로는 역사비평을 적극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사적 해석을 시도하는 일종의 부조화가 느껴진다. 더구나 이런 구속사적 연구는 본격적으로 민중신학이 발현되기 이전인 1950-60년대에 국한되는 듯하다.


3.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장신논단’


장신대 신학노선은 ‘좌도 우도 아닌 중도보수’, ‘색깔이 분명치 않은 신학’, ‘회색신학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이종성과 김이태는 장신의 노선을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혹은 ‘복음전통의 중심에 선 (개혁)신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 신학성명’은 복음적, 성경적, 개혁주의적, 에큐메니칼적, 대화적, 세계적, 선교적, 사회참여적 신학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신학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장신의 성경 해석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비평’의 수용 정도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64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 변조은(John P. Brown)이 성서비평학을 조심스럽게 장신대에 소개했으며, 1966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김기수(Keith R. Crim)는 요나서의 상징적(비역사적) 해석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적 있었다. 1972년 이래 문희석도 이 입장을 이어 받아 교수했다. 1980년대에 들어, 성종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매 시대와 역사와 상황 속의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와 상황과 인간에 맞는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비평의 종말을 선언한 마이어(G. Maier)를 극단적, 근본주의적 성경해석자로 분류하여 비판하지만, 신구약 성경을 하나의 전승사적 통일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슈툴마허(P. Stuhlmacher)와 게제(H. Gese)는 중도적, 긍정적 역사비평학자로 높이 평가한다. 성종현은 신중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역사비평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입장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라는 측면을 가진 것에 주목한 박수암에게서도 볼 수 있다: “성서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에서 행하여진 것의 소산이기 때문에, 계시가 일어났던 그 역사적 사건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재구성하는 데에는 비평적이면서 역사적인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박수암은 역사비평은 성경해석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성령의 역사를 배제한 순수한 이성적 작업으로 빠질 우려가 있기에, 적절하고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준이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신학을 ‘극단적인 정통주의’ 혹은 ‘근본주의’라 부른 것을 거부하는 김중은의 입장도 위의 고민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 문자의 우상화를 방지하고 가현설적 이해를 경계하기 위해서 성경의 역사적 성격과 그 형성사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나,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김지철도 “우리의 성서연구는 지상적 예수에게 이르는 전승사적 연구와 성서 본문이 지닌 양식사적 비판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밝히는 편집사적 연구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라고 밝힌바 있다. 그는 역사비평에 호의적 입장을 보이는 동시에, “우리의 신학은 개혁신앙의 본질인 성서로 돌아가며,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인 관계인 예언과 성취의 구속사적 구조를 염두에 두고, 그 맥락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창선도 “성서를 대하는 사람은, 성서의 역사 가운데는 역사적/종교사적인 방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이며 신적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비평과 신학적 해석의 통합을 강조한다. 장신의 성경해석의 유연성 혹은 통전성은 “포스트모던에는 포스트모던에 대응하는 성경관과 성경해석으로 대응 하여야 할 것이다”는 강사문의 최근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장신 교수들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J, E, D, P', ‘신화화된 전승’, ‘율법 전승’, ‘신명기적 역사가의 자료’, ‘제 1, 2, 3 이사야’, 'Q', ‘예수 전승’, ‘바울 학파’, ‘제 2 바울 서신’, ‘바울 이전 초대교회 신앙전승문’과 같은 가설적인 자료와 개념을 수용한다.

   

일부 장신 교수들은 보스(Vos)의 정의에 부합되는 구속사적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사문은 MT, LXX, 신약 본문을 비교하여 신약의 구약 사용을 연구하면서, 신약 저자들이 구원사적, 모형론적, 기독론적, 권위 있는 영적 해석을 시도했다고 보면서, 신구약의 이해가 기독론적 관점에서 해석되는 것은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장영일은 출애굽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는 부활신학을 모든 구약 신학들(창조신학, 구속신학, 계약신학 등)의 종합이요 절정이며 최후 종착점으로 본다. 구약 부활의 성취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염두에 두면서 장영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부활신학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마지막 목표를 확인했으며, 부활신학은 메시아 사상과 더불어 구약성경이 도달한 최후의 목표였다고 주장한다.

   

김지철은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메시아적 구원행위(치유, 선포, 축귀 등)를 하신 예수님이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을 연결한다고 본다: “창조신학은 자연에 대한 고찰이나 관찰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발견된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인간을 사랑하고 자유케 하고 구원하시려는 계시의 빛 아래서 비로소 인간은 자연만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창조신학은 예수에게서 자연스럽게 구속신학과 연결된다.” 성종현에 의하면, 종말 메시아적 인자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종말론적 예언을 성취하여, 천국 즉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새 통치를 이 땅에 가지고 오셨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통합의 경우 성경해석에서 역사비평의 수용 정도에 관한 해석학적 혹은 방법론적 논의는 비교적 활발했지만, 구속사적 해석 자체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50-60년대의 기장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통합의 경우 역사비평을 조심스럽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구속사적 해석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일으키게 한다. 장신논단에 이런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할만한 글은 많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3.3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복음이 조선에 전래된 지 약 30년이 지난 1918년에 창간된 ‘신학지남’의 초기 집필진은 주로 선교사들이었다(곽안련, 나부열, 어도만, 소열도 등). 1928년 조선인 남궁혁박사가 편집인이 된 후 신학지남은 발전기에 돌입했다. 해방 전 신약 관련 글의 특징은 성경 강해와 관련된 글과 공관복음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해방 후에는 신약신학과 관련하여, 언어학이나 해석학과 관련된 논문이 자주 등장했다. 그 무렵 박윤선은 ‘신학지남’을 통해서 논문발표보다는 주로 성경 주석에 몰두했던 것 같다.

   

총신 신약학의 본격적인 발전기는 1984년 박영희, 1988년 권성수, 1989년 김세윤, 이한수, 정훈택이 교수로 임용될 때 부터였다. 정훈택은 신학지남의 (신약관련) 글들이 성경의 영감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비평도 (현재까지) 허용하지 않았고, 공관복음과 바울신학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이 후퇴했고, 전근대적인 해석 방법과 주제에 몰두했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신학지남에서 가장 각광을 받으며,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다루어진 신학사상은 ‘칼빈주의’인데, 1970년부터 ‘개혁주의’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참고로 1960년에 에큐메니칼적 성격을 지닌 통합과의 분리(1959년) 직후 ‘보수주의’라는 표현이 신학지남에 종종 나타났다.

   

20세기 신학지남에 실린 논문의 계량서지적 분석에 의하면, 구약의 신학적 주제로 ‘모형론, 언약, 예언의 성취’와 같은 구속사적 표현이 자주 등장했고, 신약의 경우 ‘설교, 강해, 바울’이 자주 등장하지만 기독론과 종말론 등에 관한 연구는 미비했다.

   

김정우에 의하면, 전승사 비평이 성경에 나타난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와 확인 불가능한 구전과 자료들에 대한 신뢰에 기초해 있다면,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정경은 초기 단계와 성장 단계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문학적 맥락에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권위가 있으며 영감되었다. 따라서 그는 원저자의 의도가 정경 형성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고, 명확해 졌다고 본다. 김인환은 출애굽기에 반영된 창조 주제를 연구하여, 구원 사건인 출애굽을 이스라엘의 재창조로 본다.

   

차영배는 “구속사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사를 이름인데, 성경은 단순한 말씀이나 추상적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니고, 창조라는 큰 역사적 사건을 시발점으로 하여 재창조의 완성에 이르기 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神)의 일련의 행동사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항상 구속사의 진행의 빛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하는데, 구약부터 전개된 계시의 절정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한편 김인환은 구속사에 나타난 ‘저주’의 역할에도 주목하면서, 그것은 우상숭배 같은 죄악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다른 일면임을 지적한다.

   

신약 복음서의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유상섭의 공헌은 간과될 수 없다. 그는 주기도문을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주석하여, 이 땅에 재창조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기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며 동시에 새 이스라엘이신데, 주기도문은 주님에게 속한 신자의 기도와 삶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고 본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광야 이스라엘의 사명과 삶과도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만물 지배권을 수여 받은 아담의 사명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결국 주기도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과 참 이스라엘이라는 구원 계시사적 해석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상섭은 신약의 구약 인용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로 이해하기 위해서, MT, LXX, 신약 헬라어 본문을 세밀하게 비교했다. 덧붙여 유상섭은 공관복음서의 신학적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독특성과 강조점을 문법-역사적 해석 및 구속사적 주석을 통해서 밝힌 공헌이 있다.

   

신약의 구속사적 해석 가운데 바울 신학과 관련하여, 신성종은 예수님과 바울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을 강조했다: “십자가는 바울신학의 중심으로써 어떤 면에서 볼 때에 바울신학은 기독론이요, 따라서 기독론의 중심인 십자가는 바울 신학의 중심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한수는 ‘바울의 새 관점’과 전통적 해석을 모두 비판한다. 이한수는 김세윤, 김경식 등을 언급하면서, AD 1세기 유대교가 행위구원 종교였다는 전통적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전통적인 주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대교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본다: “전통적 유대교 연구는 율법이 신분 규정의 표준으로서 지닌 이러한 측면들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삶의 방편으로만 접근했던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접근으로 인해 유대교는 행위로 구원을 확보하려는 ‘행위구원의 종교’ 또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어내려는 공적주의의 행위의(行爲議) 종교로 간주 될 수밖에 없었다.” 이한수는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율이 나란히 작용하는 ‘신인협력적 신율주의’(synergistic nomism)라고 보는 절충적 입장에 동의하는 것 같다. 동시에 이한수는 유대교가 은혜 종교임을 언급하는 제 2성전 시대 유대문헌들을 중요시하여 논리를 편 새 관점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제기한다: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은 모세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아브라함의 언약에 속한 모든 복은 당연히 모세 언약에 속한 자들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 없는 바울 복음을 유대인들의 우월한 자의식과 유대교의 중심적 정체성을 공격하는 이단적 주장으로 여기고 그의 복음과 사역을 핍박하게 되었다.” 이한수에 의하면, 이에 맞서 바울은 아브라함 언약이 지닌 보편성과 그 보편성을 인종을 초월하여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제시하여 변증했다(롬 4:14): “로마서 4:13-25의 경우, 바울의 “유대인 논적들이 비평받을 점이 있다면, 그들이 율법을 행위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이 죄인들에게 진노를 이룰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특권적 신분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또한 율법을 통해서 아브라함 언약의 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 언약의 구성원이 되면 자동적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한 때문이다.”

   

합동의 구속사적 신학은 성경의 유기적 영감과 통일성에 기초하여, 헤르만 리덜보스, 게할더스 보스, 리차드 개핀 Jr.과 같은 화란 및 구 프린스턴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비평에 개방적인 기장이나 조심스럽게 수용하려는 통합과 달리, 합동은 역사비평을 성경의 영감성과 일치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거부하며, 대신에 문법(문예)적-역사적-정경적 해석을 고수한다. 하지만 특정 주제(예. 자살)를 교의학이 아닌 성경신학적으로 다루려고 시도한 공헌을 빠뜨릴 수 없는 이한수를 제외하면, 유대문헌에 대한 연구가 통합에 비해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구속사와 관련하여, 종말론에 있어서 기존의 전천년설과 다른 입장이 공존한다.


3.4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고신대 신학과 중심의 저널인 ‘고신신학’(전신은 ‘고려신학보’)에 실린 글을 먼저 살펴보자. 구약의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하여, 신득일은 해석자가 고안한 신학적 전제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요구하는 전제인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구속사’를 구약의 가장 포괄적인 중심주제로 제시한다. 신득일은 구약 안에서의 구속사의 발전에 주목한다. 그는 여리고성의 재건 시에 임할 저주 예언(수 6:26)이 아합 왕 때에(왕상 16:34)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구속사적으로 다룬다. 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신득일은 아합을 그리스도 왕국을 대적하는 자로 해석함으로써, 구약 본문을 세밀하게 기독론적으로 주석하는 대신에 적용 부분을 기독론적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아모서 주석에서도 나타나는데, 열국에 대한 심판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이며, 새 언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1985년 이후 20여 년간 고신대학교 신약학에서 구속사적 해석을 주도한 이는 황창기이다. 그는 구속사적 해석(언약적 해석)의 기둥으로 그레이다누스가 제시한 구약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7가지 길(점진적 구속사, 약속-성취, 모형론, 유추, 통시적 주제들, 신약 관련 구절 사용, 대조)과 구약 해석의 열쇠인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에드문드 클라우니(E.P. Clowney)의 사각형(구약 진리, 구약 사건, 그리스도의 성취, 현대 적용)을 중요시 한다. 그리고 그는 구약의 여러 언약들 사이의 중첩(overlapping), 신구약의 중첩, 신약 성도 안의 중첩에도 주목한다. 황창기는 종말론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개혁주의 종말론을 ‘때’보다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중심으로 이해하도록 제안한다. 그는 종말론의 시간적 틀인 ‘이미’와 ‘아직 아니’를 고수하지만, 종말이신 그리스도의 ‘온 교회적 인격’ 및 ‘만유적 인격’을 강조한다. 성도와 연합된 만유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는 개인, 세상(천국), 만유가 하나님과 변혁을 거쳐 화목한 것이다. 황창기는 특정 주제(예. 경건, 딤전 3:16)도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적 교회론(엡 3:3-6) 및 성령론과 연관된 구속사(고전 15:44-46; 고후 3:17)에 근거하여 이해한다. 그는 2006년에는 ‘그리스도 완결적(Christotelic)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시편 68:11이 에베소서 4:8에서 변경된 이유는 구속사의 절정이자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여 신약 독자의 상황에 맞도록 조정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원형(archetype, 그리고 ‘원초 모형’[prototype])이라는 기독론적 예표론(Christological typology)을 제시한다. 사건은 시대별로 이해하되, 적용은 그리스도 중심적 혹은 그리스도 완결적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출애굽의 원형을 모세 당시의 구속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출애굽(눅 9:31)으로 보기에, 그리스도 완결적인 모형론적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임영효는 양식비평의 하부분과로 1950년대에 태어난 ‘편집비평’은 특히 네 문서 가설과 역사적 회의주의에 근거해 있으므로, 복음주의 학자들이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해석 방법으로 본다.

   

구약과 그것이 사용된 신약 사이의 대화에 나타난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주목하면서 송영목은 요한계시록의 간(間) 본문적 해석을 시도한다. ‘부분적 과거론’으로 계시록을 해석하면서 그는 간 본문들의 불연속성은 그리스도 사건으로 인한 구속사의 확대-상승에서 주요 요인을 찾는다. 또한 송영목은 요한계시록의 여성주의적 해석의 전제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패미니스트들이 계시록의 구약 간 본문과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제 고신대 신학대학원의 저널인 ‘개혁교회와 신학’(전신은 ‘고려신학보’)에 실린 글을 살펴볼 차례다. 오병세는 하나님 나라를 정의할 때, 하나님의 역동적인 주권과 현재성 및 미래성을 균형 있게 강조한다. 그는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타났지만,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서 역사한다고 본다. 즉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역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구속사에서 출애굽 사건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출애굽과 십계명이 신약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성취되었는가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홍반식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사 9:1-6; 52-53; 슥 12:10)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것을 부인하는 유대인의 해석을 비판한다.

   

고신교회에 있어서 구속사적 해석의 본격적인 발전을 위해서 화란 개혁교회가 파송한 교의학 교수 고재수선교사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구속사를 간단히 “모든 시대를 포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사역”이라고 정의하는 고재수의 말을 들어보자: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읽는 것은 그저 재미있는 주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생이 걸려있는 죽음과 생명의 문제이다.” 구약의 도덕적 해석의 한계를 인지하면서, 그는 지엽적이거나 표면적 유사성이 아니라, 구약 본문의 문맥과 전체 의도를 고려한 채 (모형론을 통해) 기독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재수와 동시대에, 박종칠은 신구약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기독론적 구속사적 해석을 강조했다. 그는 구속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 가운데서 살려고 하시며, 또 자기 계획을 실현하려고 하는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구약은  ...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성경으로서, 오실 것으로 선포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성문화한 것인데, 말씀과 기록으로 구약이 생긴 것은 오로지 오실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 자신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성경을 단순한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구속해 가셨는가를 기록하는 신학적인 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한정건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입각하여 선지서(특히 이사야서)를 구속사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는 구약 예언에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한다. 그 결과 그는 구약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을 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정건은 계시역사의 가장 큰 주제를 ‘하나님 나라’로 보면서, ‘언약’은 천국의 완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제라고 본다. 한정건이 적지 않은 관심을 둔 ‘언약의 발전’ 역시 전천년주의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그는 단편가설이나 자료비평을 반대하면서,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창 49:8-12)은 유다의 궁극적 왕권 회복을 예언하는 신명기 33:7을 거쳐, 에스겔 21:27에서 동일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데, 메시아적이며 종말론적인 예언이라고 본다(계 5:5). 여기서 ‘종말론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보다는 재림으로 임할 평화롭고 풍성한 메시아 시대라는 미래적 뉘앙스가 강하다. 한정건은 아담 언약을 행위언약이 아니라(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1-6; 대교리문답 20문), 종주권적인 ‘은혜언약’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생명과 사망의 언약’이라고 명명한다(참고. 롬 5:17; 계 22:2, 19). 그리고 그는 안식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장소이자 창조의 극치였던 에덴동산이 보여준 미래 종말론적인 안식의 모습을 이사야 11:1-5, 에스겔 34:25, 히브리서 4:1을 거쳐, 완성은 계시록 21-22장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의 주장을 짧게 평가를 해 보면, 역사적 전천년에 입각한 해석인데, 구약의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라 초림으로 성취된 측면을 약화시킨다. 또한 한정건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구속역사의 서론에 해당하며 안식으로 끝을 맺으며, 창조기사는 안식을 향한 구속의 구도였고(신 5:14), 더 나아가 안식년(레 25:3-5)과 희년(레 25:8)도 단지 일에서 쉼보다는 구속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신약의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하여, 이승미는 성경의 영감성을 강조하면서 성경 계시 내용의 목표(scopus)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본다. 변종길은 로마서 3:25의 힐라스테리온을 ‘속죄제물’(참고. 헬라어 ‘힐라스모스’, 요일 2:2)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예표하는 ‘법궤 두껑’(혹은 贖罪壇)으로 이해하면서(참고. 히 9:5), 이 명사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구속사적 고리’일 뿐 아니라, 신약의 빛 아래서 구약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변종길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물론 ‘영토’ 개념도 강조한다. 그리고 천국의 ‘이미’와 ‘아직 아니’를 ‘긴장’ 관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이 있다면 천국 백성이 되었지만, 불완전한 사람에게 존재한다고 본다.

   

길성남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이 회고적 방식으로 모형론을 사용했다고 본다. 즉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으로 가능해진 기독교의 세례(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계시)를 출발점으로 하여 모세 당시의 출애굽을 회상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구약의 모형은 대형(antitype)을 내다보는 전망적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길성남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종말론적인 의도가 완전하게 만족된 구약의 율법 전체가 그리스도인에게 계속적이고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해도, 율법의 본질적 내용은 신자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모두 인정했다. 

   

고신의 구속사적 해석은 합동의 경우처럼 성경의 영감성에 근거하여, 역사비평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속사적 연구에 있어서, 초기에 화란 선교사 고재수의 긍정적 역할은 논문과 설교를 통해서 실제적이었다. 그리고 언약의 중첩에 대한 분석과 적극적인 모형론적 해석 및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넘어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과 간 본문적 해석(그리고 화행론)에 이르기 까지 방법론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고신의 경우, 최신 성경 해석의 경향(예. 바울의 새 관점)과 제 2성전 시기의 유대문헌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 종말론에 있어서는 언약의 승리 종말론(후천년설)은 물론,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등 다양한 입장이 상호 존중 가운데 공존한다.


3.5 평가


장신대의 김중은은 총신을 ‘칼빈주의에 역점을 둔 근본주의 신학’으로, 고신을 ‘근대 화란 개혁주의에 기초한 근본주의 신학’으로, 기장을 ‘자유주의적 신정통주의 신학-진보주의 신학-신정통주의 문화신학-민중신학’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과 합동은 ‘근본주의’라는 표현과 그 범주에 자신이 있다는 김중은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4개 교단의 학술지에 실린 전체 논문 중 구속사적 성경해석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모형론적 해석은 4개 교단 전체에 등장한다. 구속사적 성경해석 중 언약, 하나님 나라, 구원과 같은 주제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기장이나 통합보다는 합동과 고신에서 다소 높게 나타난다. 구속사적 해석의 연도별 분포도를 분석해 보면, 기장은 1950-60년대에 절정에 달했고, 통합은 1990년대 초까지, 반면 합동과 고신은 지금까지 꾸준한 분포를 보인다.


4 나오면서: 한국 장로교의 구속사적 성경해석 전망

   

한국의 4개 장로교단의 성경해석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기장과 통합은 각각 세계 수준의 신학과 에큐메니칼적 신학을 표방하면서, 역사비평과 구속사적 해석을 조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 조화의 성공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합동과 고신은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대동소이한데, 후자보다 더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진 전자가 구속사적 해석을 더 넓은 범위와 주제에 걸쳐서 시도했다면(예. 공관복음 본문들의 구속사적 비교, 새 창조로서의 출애굽, 성경 주제들에 관한 성경신학적 연구,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비평 등), 후자는 구속사적 해석을 다소 더 세밀한 방법으로(예. 언약의 중첩,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 간 본문적 해석, 그리스도 인격 중심의 종말론 등) 시도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구식 혹은 골동품으로 취급 받을 신학이 아니다. 구원의 역사는 성경의 광맥이기에, 칼빈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장로교회가 마땅히 발전시켜야 할 해석법이며, 장로교회의 강단에서 핵심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장로교단들은 물론이거니와, 학회들(예. 개혁신학회, 한국성경신학회, 한국장로교신학회) 사이에 학술적 토론이 더 촉진되기를 바란다. 구속사에 관한 주제에 있어서는 ‘신약의 구약 사용’에 관한 연구가 더 필요하고, 이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회 내의 분과의 설립도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문헌


간하배. “다니엘서 2장에 관한 소고.” 『신학지남』 32 (1965년, 3): 36-48.

______. “다니엘서 9:24-27 해석.” 『신학지남』 36 (1969년, 3): 54-72.

______. “한국장로교신학에 관한 연구(II).” 『신학지남』33 (1966년, 4): 32-39.

강사문. “고대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기독교 축제.” 『장신논단』 1 (1985년), 183-210.

______. “성경에서의 광야(사막)주제.” 『장신논단』 16 (2000년): 10-33.

______.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약 인용문 연구.” 『장신논단』 8 (1992년): 7-34.

______.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경관과 성경해석(2).” 『장신논단』 25 (2006년): 11-34.

강한표. “하나님의 의의 계시와 노의 계시: 로마서 1:18f 연구.” 『신학연구』 8 (1962년):        160-166.

고재수. “구약의 역사적 본문에 대한 기독론적 해석.” 『고려신학보』 17 (1989년): 49-73.

______.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 『고려신학보』 16 (1988년): 19-36.

______.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있어서 모범의 기능.” 『고려신학보』 14 (1987년): 115-131.

권성수. “박윤선 박사의 성경해석학.” 『신학지남』 56 (1989년, 4): 100-137.

권혁정. “복음서 속의 시 118(117 칠십인경): 22-23, 25-26의 인용.” 『신학지남』 76(2009년, 4): 264-283.

기동연. “스바냐서의 여호와의 날 신학.” 『개혁신학과 교회』 24 (2010년): 33-52.

길성남. “그리스도인의 자유, 사랑, 그리고 모세 율법: 갈라디아서 5:13-15의 주석적 연구.”       『개혁신학과 교회』 9 (1999년): 101-145.

______.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10:1-11에 나타난 바울의 모형론 연구.”  『개혁신학과 교회』 12 (2001년): 54-81.  

______. “신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주일.” 『개혁신학과 교회』 16 (2005년): 31-68.

김길성. “총신 100년과 그 신학적 정체성.” 『신학지남』 68 (2001년, 2): 99-137.

김세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실존.” 『신학지남』 56 (1989년, 4): 6-49.

김의원.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안식일 개념.” 『신학지남』 70 (2003년, 3): 9-54.

______. “선지서에 나타난 언약신학 연구.” 『신학지남』 64 (1997년, 4): 50-85.

김의환. “고신 신학의 역사적 조명.” 『총신대 논총』 14 (1995년): 29-49.

김인환. “구속사에 나타난 저주의 역할(I): 신 32:19-25를 중심으로.” 『신학지남』 50 (1983년, 2): 143-159.

김정우. “개혁주의 정경적 성경 해석학에 대한 제안.” 『신학지남』 76 (2009년, 3): 80-99.

______. “구약 율법과 신약 윤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신학지남』 58 (1991년, 1): 9-42.

______. “시편 89편의 성경신학적 기여: 무조건적 언약 속에 있는 조건성의 수수께끼.” 『신학지남』 57 (1990년, 4): 11-53.

______. “신학지남에 나타난 총신 신학 전통의 회고와 전망(I): 20세기 신학지남의 계량서지적 분석.” 『신학지남』 68 (2001년, 2): 7-29.

______. “신학지남에 나타난 총신 신학의 회고와 전망(II).” 『신학지남』 68 (2001년, 3): 7-44.

______. “요엘 2:28-42(MT 3:1-5)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약속과 그 신약적 성취.” 『신학지남』 60 (1993년, 4): 9-26.

김중은. “장신대의 신앙과 신학노선.” 『장신논단』 18 (2002년): 11-53.

김지철. “예수에게 나타난 창조신학.” 『장신논단』 8 (1992년): 83-101

______. “장신대 신학 정립을 위한 하나의 시도: 몇 개의 성서 신학적 명제들.” 『장신논단』 4 (1988년): 18-35.

김창선. “신약성서가 선포하는 ‘복음’.”『장신논단』 23 (2005년): 73-98.

______. “역사적 성서해석과 신학적 성서해석: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장신논단』 22 (2004년): 69-91.

김희보.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의 구약신학적 고찰 및 그 현대적 의의(II).” 『신학지남』 44 (1977년, 4): 44-51.

______. “이사야 선지가 본 메시야의 동정녀 탄생: 이사야 7:14의 Almah에 관한 소고.”『신학지남』 31 (1964년, 1): 35-41.

남궁혁. “성탄설교: 은혜로 주신 아들.” 『신학지남』 13 (1931년, 1): 59-62.

류기철. “메시야 예언 성취의 성격과 의미.” 『고신신학』 11 (2009년): 37-62.

리태학.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 『신학지남』 8 (1926년, 2): 73-74.

명신홍. “주 예수의 천국관(I).” 『신학지남』 35 (1968년, 1): 2-4.

문익환. “구속사와 창조사.” 『신학연구』 10 (1967년): 45-70.

박수암. “역사비평방법의 가능성과 문제점.” 『장신논단』 2 (1986년): 23-36.

박아론.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의 타당성.” 『신학지남』 63 (1996년, 1): 142-157.

______. “합동측 장로교회의 신학.” 『신학지남』 58 (1991년, 4): 4-7.

______. “해방 30년의 한국 보수주의신학.” 『신학지남』 42 (1975년, 4): 41-47.

박영희. “인자의 대속적 죽음.” 『신학지남』 53 (1986년, 4): 6-24.

박윤선. “그리스도의 탄생과 계약사상.” 『신학지남』 31 (1964년, 1): 15-20.

______. “바울신학의 언약사상.” 『신학지남』 43 (1976년, 1): 11-13.

______. “산상보훈에 나타난 계약사상: 마태 5:1-7, 29.” 『신학지남』 31 (1964년, 2): 25-44.

박종칠. “구속사적 성경해석.” 『고려신학보』 13 (1987년): 137-150.

______. “구약의 본질과 신약과의 관계.” 『고려신학보』 6 (1984년), 11-28.

박형룡. “구약과 신약의 신앙적 통일.” 『신학지남』 36 (1969년, 2): 7-10.

______.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신학지남』 46 (1979년, 3): 78-97.

______. “신학지남 50년.” 『신학지남』 35 (1968년, 1): 3-8.

박형용, “바울의 구속사관: 고후 5:17, 6:2에 나타난.” 『신학지남』 39 (1972년, 1): 40, 35-49.

변종길. “로마서 3장 25절의 힐라스테리온.” 『개혁신학과 교회』 10 (2000년): 73-102.

______. “하나님 나라와 성령의 사역.” 『개혁신학과 교회』 3 (1993년): 61-80.

배재욱. “정류(靜流) 이상근 박사의 신학과 사상.” 『장신논단』 36 (2009년): 71-101.

서남동. “구속의 의미에 관한 탐구.” 『신학연구』 6 (1960년): 3-13.

서요한. “개혁신학의 전통과 한국 장로교.” 『신학지남』 78 (2011년, 1): 111-145.

성종현. “성서신학의 주요 주제로서의 율법.” 『장신논단』 16 (2000년): 133-153.

______. “신구약성서와 유대문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호와 예수의 이름에 대한 고찰.” 『장신논단』 8 (1992년): 102-125.

______. “신약성서의 종말론.” 『장신논단』 14 (1998년): 56-83.

______.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장신논단』 6 (1990년): 218-239.

______. “크리스챤과 성서해석.” 『장신논단』 2 (1986년): 7-22.

______.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비전.” 『장신논단』 30 (2007년): 79-109.

소열도. “쥬 예수님의 그림자,” 『신학지남』 5 (1923년, 3): 85-98.

송영목. “세 선지자의 간본문적 대화: 계 1장을 중심으로.” 『고신신학』 10 (2008년): 251-287.

______.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부분적 과거론과 이상주의 비교.” 『고신신학』 11 (2009년): 63-100.

______. “요한계시록의 여성주의적 해석 비평.” 『고신신학』 12 (2010년): 7-33.

______. “칼빈의 영성 이해: 기독교강요와 그의 신약 주석을 중심으로.” 『고신신학』 13 (2011년): 287-317.

______. 『칼빈과 신약교회』. 부산: 고신대 기독교사상연구소, 2012.

______. “황창기 교수의 신학” (『황창기 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하나님 나라와 신학』, 황창기 교수 은퇴 기념논문 편집위원회, 부산: 고신대 출판부, 2008년): 78-105.

신득일. “광야의 놋뱀: 민수기 21:4-9 주석.” 『개혁신학과 교회』 1 (1993년): 37-59.

______. “구약 중심주제의 논쟁점과 신학적 주석관점으로서의 구속사.” 『고신신학』 4(2002년): 39-64.

______. “모세의 선지자적 권위.” 『고신신학』 11 (2009년): 101-120.

______. “법궤 위의 그룹에 대한 주석적 고찰.” 『고신신학』 7 (2005년): 231-249.

______. “아모스의 열국에 대한 심판.” 『고신신학』 13 (2011년): 259-285.

______. “여리고성 재건에 나타난 저주.” 『고신신학』 10 (2008년): 289-309.

______. “역사문헌비평에 대한 평가.” 『고신신학』 8 (2006년): 151-181

______. “전승사 비평에 대한 평가.” 『고신신학』 5 (2003년): 199-223.

______. “하나님의 속성을 계시하는 도구로서의 법궤.” 『고신신학』 12 (2010년): 36-57.

______. “희년의 윤리.” 『고려신학보』 13 (1987년): 28-39.

______. “Modern Literary Approaches to the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and Its Assessment.” 『고신신학』 1 (1999년): 71-120.

신성자. “문서설비판.” 『신학지남』 62 (1995년, 4), 204-228.

신성종. “바울 신학에 있어서 십자가의 의미.” 『신학지남』 48 (1981년, 1): 27-43.

______.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개념.” 『신학지남』 47 (1980년, 4): 32-41.

안인섭. “‘합동’과 ‘통합’의 교단 분열 이후 역사적, 신학적 발전 연구.” 『신학지남』 76(2009년, 4): 176-206.

오병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고려신학보』 9 (1984년): 20-26.

오영석.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론: 예언자직과 제사장직을 중심으로.” 『신학연구』 31(1990년): 333-373.

윤주택. “마가복음의 기독론.” 『신학연구』 1 (1955년): 151-177.

유상섭. “문둥병자의 정결 기사에 대한 각 복음서의 강조점.” 『총신대 논총』 29 (2009년): 265-291.

______. “성경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 주기도(마 6:9-13; 눅 11:2-4).” 『총신대 논총』 21(2002년): 214-255.

유시욱. “바울의 구약성서 해석.” 『신학연구』 3 (1957년): 149-186.

이동수. “야훼의 날: 스바냐 1:7-18의 공시적 통시적 연구.” 『장신논단』 17 (2001년):10-29.

이복수. “‘대속을 통한 복된 통치’로서의 하나님 나라.” 『고신신학』 4 (2002년): 89-119.

이승미. “계시 내용의 목표(Scopus)와 성경해석.” 『고려신학보』 16 (1988년): 11-18.

이우재. “균형 잡힌 성경신학적 설교를 위한 제언.” 『신학지남』 71 (2004년, 3): 296-313.

이한수.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본 자살.” 『신학지남』 76 (2009년, 1): 29-54.

______. “언약신학 패러다임의 비교 연구: 롬 8:12-17과 신 30:15-20에 나타난 언약적 사고들에 대한 탐구.” 『신학지남』 73 (2006년, 1): 89-115.

______. “언약의 성취자 그리스도: 로마서 4:13-25에 나타난 바울의 언약신학 탐구.”『신학지남』 76 (2009년, 3): 100-125.

______. “율법과 성령(I): 구원사적 대조 속에 나타난 그 실천적 의의들.” 『신학지남』 66(1999년, 1): 172-200.

______. “이방선교의 전망에서 본 율법 문제.” 『신학지남』 69 (2002년, 3): 84-120.

임영효. “고린도후서 구성의 통일성.” 『고신신학』 2 (2000년): 101-126.

______. “편집비평에 대한 반성.” 『고신신학』 1 (1999년): 49-69.

장영일. “구약의 종말론(II): 부활사상.” 『장신논단』 9 (1993년): 247-271.

______. “유배자의 유토피아: 이사야 35장 주석.” 『장신논단』 15 (1999년): 34-55.

______. “초막절과 계약갱신 축제.” 『장신논단』 21 (2004년): 45-70.

전경연. “로마서 5장의 그리스도와 아담 동형론과 그 타당성.” 『신학연구』 7 (1961년): 62-75.

______. “성령과 성서해석.” 『신학연구』 9 (1965년): 57-74.

______. “신국 선교와 종말론.” 『신학연구』 5 (1959년): 36-48.

정훈택. “신학지남에 나타난 총신 신약신학 90년.” 『신학지남』 74 (2007년, 3): 73-99.

______. “우리는 장로교/깔뱅주의/개혁신학인가?” 『신학지남』 76 (2009년, 3): 4-7.

주성준. “로마서에 나타난 구원에 대한 소고: 바울 복음 이해에 관한 새로운 관점 비판.” 『총신대 논총』 28 (2008년): 219-251.

______.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조망.” 『총신대 논총』 27 (2007년): 13-37.

편집부. “한국신학대학 40년의 발자취.” 『신학연구』 22 (1980년): 213-218.

차영배. “구속사 신학.” 『신학지남』 43 (1976년, 2), 20-29.

총신대 신학교수 일동. “총신의 신학적 입장.” 『신학지남』 46 (1979년, 3): 6-12.

최낙재. “바울의 종말론.” 『신학지남』 4 (1979년, 2): 67-76.

______. “신약 해석학과 구속사.” 『신학지남』 40 (1973년, 3): 59-66.

한정건. “구속역사에 뛰어드는 여호와의 종.” 『개혁신학과 교회』 16 (2005년): 5-29;.

______. “마지막 전쟁과 구원: 사 59:15-21 연구.” 『개혁신학과 교회』 24 (2010년): 11-32.

______. “바벨론과 바벨론 왕에 대한 신탁의 의미.” 『개혁신학과 교회』 17 (2004년): 5-50.

______.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노아의 언약(창세기 6:18; 9:1-17).” 『개혁신학과 교회』 9 (1999년): 7-43.

______. “신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회복.” 『고려신학보』 15 (1988년): 62-74.

______. “아담과의 언약에 대한 고찰.” 『개혁신학과 교회』 4 (1997년): 7-60.

______. “아브라함의 언약과 약속.” 『개혁신학과 교회』 11 (2001년): 9-44.

______. “유다에 대한 축복의 예언(창세기 49:8-12).” 『개혁신학과 교회』 10 (2000년): 9-48.

______. “이사야 8:11-18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징계와 회복에 관한 예언.” 『개혁신학과 교회』 5 (1995년): 7-37.

______. “이사야 36-39장의 재해석과 그 의미.” 『개혁신학과 교회』 15 (2004년): 7-44.

______. “‘종의 노래’(사 52:13-53:5) 연구(1).” 『개혁신학과 교회』 18 (2005년): 5-33.

______. “‘종의 노래’ II: 이사야 53:6-13 연구.” 『개혁신학과 교회』 특집호 (2007년): 119-149.

______. “창조에서의 안식의 의미.” 『개혁신학과 교회』 6 (1996년): 27-66.

______. “창조질서 속에서 본 여자의 위치에 대한 고찰: 창세기 3:16을 중심으로 한 성경신학적 해석.” 『개혁신학과 교회』 8 (1998년): 7-27.

한제호. “신구약 계시의 계속성: 영감의 전이과정에 관한 고찰.” 『신학지남』 41 (1974년, 1): 47-58.

홍반식. “유대인과 메시야 예언.” 『고려신학보』 19 (1990년): 16-21.

황창기. “개혁주의 종말론 이해의 새로운 전형.” 『고신신학』 1 (1999년): 11-48.

______.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기둥들.” 『고신신학』 11 (2009년): 11-35.

______.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 『고려신학보』 10 (1985년): 25-42.

______. “신약 ‘경건’의 기독론적 이해.” 『고신신학』 2 (2000년): 13-35.

______. “에베소서 4:7-10의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 『고신신학』 9 (2007년): 144-171.

______. “올바른 기독론적 예표론을 향하여.” 『고신신학』 10 (2008년): 49-70.

Beale, G.K.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11.

Goldsworthy, G. Preaching the Whole Bible as Christian Scripture. Grand Rapids:           Eerdmans, 2000.

Greidanus, S.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9.

Hay, D.M. “신약에 사용된 구약.”  문익환 역. 『신학연구』 11 (1968년): 35-42.

Helberg, J.L. Die Here regeer: Openbaringslyn deur die Ou Testament. Pretoria:           NGKB, 1980.

Johnson, D.E. (ed). Heralds of the King. Wheaton: Crossway, 2009.

Kim, I.W. "Creation Motif Reflected in the Book of Exodus." 『Chongshin Review』         7 (2004년): 42-56.

_________. "Continuity of the Covenant of Creation in the Abrahamic Covenant               Reflected in Ex. 1:1-7." 『Chongshin Review』 7 (2002년): 30-46.

Lehman, C. Biblical Theology. 김인환 역, 『성경신학』.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Ryoo, E.Y. "Biblical Theology of Holiness and Its Doctrinal Preaching." 『Chongshin Theological Journal』 13 (2005년): 231-258.

Van der Waal, C. Search the Scriptures. Grand Rapids: Paideia Press, 1978.

Vos, G. Biblical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48.

Williams, M. How to read the Bible through the Jesus Lens. Grand Rapids:                 Zondervan, 2012.

Wright, N.T. Scripture and the Authority of God. 박장훈 역,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1.

Yoo, S.S. "The Distinctive Uses of the LXX's Translation of Jer 38:31-34 in Heb 8:8-12 and 10:16-17." 『Chongshin Review』 5 (2000년): 118-146.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