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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정말 회중교회로 가는 것인가?(2)
  • 김종선 /초장동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07.04.07 00:00
  • 댓글 10
 

글을 맺으면서 이 지면을 통해 두세 가지 간절한 바람을 밝히고 싶다. 우선 가정교회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소그룹교회 운동들이 신뢰할만한 검증을 받을 기회를 속히 가졌으면 한다. 지금 가정교회 운동이 어떤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필자가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유의 소그룹 교회 운동은 어떤 반대나 비판이 있다고 금방 식어버리지는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향후 21세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소그룹교회 운동을 수용해야하는 추세일거라는 걸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피해가야 하는지 가려낼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교회가 나갈 방향을 제대로 잡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이며 공정한, 신뢰할만한 검증이 속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꼭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두 번째 바람은 어떤 사안을 놓고 입장을 말할 때 가능하면 사실에 근거했으면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하지 않고 막연한 선입견이나 들리는 풍문만으로 판단해버리면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고, 특히 그것이 개 교회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풍랑을 겪어야 하고 또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를 설명하는 책이나, 세미나(컨퍼런스), 실제로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실제를 파악할 수 있다. 꼭 그렇게 해서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도 하고 해석도 하고 견해도 밝혀주면 좋겠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가정교회운동을 받아들인 교회들 중에 많은 교회들에서 실제로 영혼구원이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대부분 행복해 하고 즐겁게 섬기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건강해 졌다는 간증들도 듣는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이런 흐름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성령께서 21세기 교회를 이런 모습으로 이끌어가려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 역사하심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혹 우리의 섣부른 판단이나 단정이 성령의 그런 역사를 가로막거나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럴 여지는 없는지, 좀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그리고 겸손히 성령의 이끄심을 따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분은 그 분의 영을 통해 이 교회를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심을 확실히 믿는다.

김종선 /초장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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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낙춘 2007-04-19 17: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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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긴 글을 올려주어서 감사하다.


    이 내용을 읽어보면 가정교회의 실체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연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사보고서의 내용 중 앞 부분에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이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고 했는데

    만약 가정교회가 이것을 의도한다면
    나는 가정교회를 시작하려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교회에서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한 교회의 한번의 어떤 사례를 가지고
    마치 모든 가정교회 제도를 도입한 모든 교회들이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고 주장한다면
    노회 조사위원회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앞으로 누가 가정교회의 문제점을 조사하려면
    제발 가정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고 조사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나
    한국교회 가운데 가정교회란 용어를 쓴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조사보고서의 앞 부분만 옮긴다.

    (조사보고서 앞 부분의 내용)
    5. 신학적 기본 입장
    우리는 회중교회에 대한 교의신학자 유해무 박사의 발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려신학대학원 제60주년 기념 신학포럼 지상강좌 6 기독교보 제587호 P3)

    장로교정치는 교황(감독정치)와 회중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취한다. 장로교정치는 중앙집권적인 교황제나 감독제와는 달리 지역교회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한다.
    장로교는 노회와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 회중정치 제도를 거부한다. 놀랍게도 회중정치가 장로교회 안에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다. “목장교회”라는 목회방식은 회중정치를 표방하는 침례교회에서 발생하였다. 목자가 당히의 고유업무인 “교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총찰”을 맡게 되니 당회는 유명무실해 질 위험이 크다. 도 이른바 “민주적인 정관”은 중앙집권적 경향을 거부하고 교인의 주권을 앞세우면서 당회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선배들은 장로교 정치제도가 가장 성경적임을 확신하였다. 고신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해야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에 우리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   삭제

    • 백병주 2007-04-19 13:14:23

      가정교회 시행에 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1. 진정인과 피진정인
      진정인 : 윤강석 장로
      소속 : 대한예수교 장로회 초장동교회 시무장로
      피진정인 : 김종선 목사
      소속 : 대한예수교 장로회 초장동교회 담임

      2. 조사위원회 구성
      부산노회 제98차 제1회 임시노회(일시:2007.1.12<금>/장소:다대교회당)에서 가정 교회 문제로 야기된 동 사안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다. 동 위원회가 조직을 구성하니 아래와 같다.
      위원장 : 백성호 목사
      서기 : 조정용 목사
      위원 : 김양광 목사, 박영주 목사, 김우곤 장로, 박희석 장로, 김영수 장로
      연구위원 : 권경호 목사

      3. 조사위원회 회집
      동 조사위원회는 제8차에 걸쳐 아래와 같이 회집하다.
      제1차(2007.1.12) 회의는 위원회의 조직 및 조사범위, 조사방법, 연구방향 등을 결의하였으며 관련 신학적 제반 사항을 자문받기 위해 권경호 목사를 연구위원으로 위촉하기로 결의하다.
      제2차 동년 1.15 가정 교회 관련 면담 조사계획서 작성 완료
      제3차 동년 1.25 초장동교회 당회원 면담 조사
      제4차 동년 2.5 초장동교회 불참 당회원(황규제)면담 조사
      제5차 동년 2.16 초장동교회 담임 김종선목사 면담 조사
      제6차 동년 2.27 제4영도교회 담임 이순흠목사 면담 조사
      제7차 동년 3.26 감천중앙교회 담임 김인수 목사 면담 조사
      제8차 동년 4.6 가정 교회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다. 이상과 같이 제 8차에 걸쳐 회집하여 면담 조사하였으며 권면하다.

      4. 조사내용
      1. 본 노회가 가정교회 문제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게 된 동기는 전년도 2006년 가을 정기노회에서 결의 된 바 있는, 가정교회문제는 우리 교단의 헌법과 교리표준, 교회정치, 예배지침에 따라 행하기로 하며 당회와 시찰회가 지도하기로 가결하였으나, 이 결의가 일선 교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아니하는 곳도 있었다. 서부시찰 초장동교회는 가정교회를 시행해 오던 중 수차에 걸쳐 담임목사에게 시정 및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 건의가 받아 들여 지지 아니함으로 인해 시무장로인 윤강석 장로가 본 건-가정교회문제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상황 발생 흐름도]
      초장동교회는 2005년부터 가정교회를 시행함 → 2006년 정기 노회에서 교단 헌법과 정치를 준수할 것을 결의함 → 윤강석 장로는 담임교역자에게 수차례 시정을 요구함 → 미반영됨 → 김양광 노회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함(가정교회 중단 지도요청서) → 노회장은 거중 조정하여 수습하려고 노력함 → 2006년 12월 6일(수) 삼일교회에서 노회장과 원로 목사, 임원 등 16명이 연석회의를 열고 김종선 목사에게 권면함 → 김종선 목사는 노회의 공식 결의와 지도가 있으면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 → 이에 따라 노회 임원회의 결정으로 임시노회 안건으로 상정함 → 이에 따라 가정교회 조사위원회가 구성됨.

      2. 본 건 가정교회 문제를 야기한 초장동교회는 2007년 2월3일 당회의 결의로 가정교회를 중단하기로 가결하였으며, 대체용어를 빠른 시일 안에 결정하기로 하다.(당회록 참조)

      3.동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 문제 연구보고서>를 조사위원회의 명의로 2007년 봄 정기노회에 보고하기로 결의하다.
      4. 동 조사위원회는 종합적인 의견을 노회에 보고함으로서 이 건을 종결하기로 가결하다.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동안 가정교회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교회(초장동교회, 제4영도교회)의 담임 목사는 본회 앞에 사과하고, 개체교회에서는 <앞으로 가정교회 사역은 중단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할 것을 권고하기로 가결하다.

      5. 신학적 기본 입장
      우리는 회중교회에 대한 교의신학자 유해무 박사의 발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려신학대학원 제60주년 기념 신학포럼 지상강좌 6 기독교보 제587호 P3)

      장로교정치는 교황(감독정치)와 회중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취한다. 장로교정치는 중앙집권적인 교황제나 감독제와는 달리 지역교회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한다.
      장로교는 노회와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 회중정치 제도를 거부한다. 놀랍게도 회중정치가 장로교회 안에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다. “목장교회”라는 목회방식은 회중정치를 표방하는 침례교회에서 발생하였다. 목자가 당히의 고유업무인 “교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총찰”을 맡게 되니 당회는 유명무실해 질 위험이 크다. 도 이른바 “민주적인 정관”은 중앙집권적 경향을 거부하고 교인의 주권을 앞세우면서 당회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선배들은 장로교 정치제도가 가장 성경적임을 확신하였다. 고신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해야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에 우리 조사위원회는 가정교회는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부정하며, 장로 제도를 약화 내지는 없애려고 한다는데 대해 우려한다.

      2007. 4. 6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산노회
      가정교회에 대한 조사위원회
      위원장 : 백성호 목사 서 기 : 조정용 목사 연구위원 : 권경호 목사
      위원: 김양광목사 박영주목사 김우곤 장로 박희석장로 김영수 장로
      가정교회 문제 조사 연구 보고서


      1. 사건의 발단과 경위
      “가정교회”문제는 요즈음 부산노회의 몇 교회에서도 실시하던 중 교회의 장로들 중 몇 사람이 여기에 잘못된 점을 들어 시정을 요구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특별히 초장동 교회에서는 2005년부터 “가정교회”제도를 실시하던 중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휴스톤 침예교회의 최영기 목사를 강사로 행한 부흥회 등에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해 교회 윤강석 장로가 당회장인 김종선 목사에게 그 잘못을 적시하고 수차례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회장에게 진정을 하게 되었고 김양광 노회장은 이를 공식화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자체적으로 수습하려고 증경노회장을 비롯한 노회 원로들과 임원 연석회의에서 김종선 목사에게 권면하였으나 김종선 목사는 노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지도하며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노회는 임원회의 결의로 이 안건을 제98차 제1회 임시노회(2007.1.12 다대교회당)에 상정하였다. 노회는 “가정교회는 즉시 중단하도록 하기로 하다”라고 결의한 후 “가정교회”의 오류를 지적하여 밝히고 개체교회를 지도하기 위하여 가정교회 문제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인 동시에 가정교회 조사위원회의 조직 경위이다.

      2. 조사위원회 구성과 활동
      2.1 조사위원회 구성
      노회는 조사위원으로 백성호목사, 김양광목사, 조정용목사, 박영주목사, 박희석장로, 김우곤장로, 김영수장로를 조사위원으로 선임하였고 조사위원회는 위원장에 백성호목사, 서기에 조정용목사, 회계에 김우곤장로를 선임, 조직하였다.
      2.2 협조위원 선정
      조사위원회는 1차 회의를 (2007년 삼일교회당) 열고 조사위원회의 활동 방향을 확정하고 자문과 협조를 위하여 권경호 목사를 조사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위촉하였다.
      2.3 조사위원회 활동
      2.3.1 조사위원회는 8차에 걸쳐 위원회를 회집하고 다음과 같이 활동하였다.
      2.3.2 초장동교회 당회원 면담
      2.3.3 초장동교회 김종선 목사 면담
      2.3.4 제4영도 교회 이순흠목사 면담
      2.3.5 감천중앙교회 김인수 목사 면담
      2.4 조사위원회의 면담 결과
      2.4.1 초장동교회 김종선목사는 조사위원회에서 진술을 통해 “가정교회”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자신의 목회적 판단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가정교회”중단을 약속하였으며
      2.4.2 초장동교회 당회는 2007.2.3에 “가정교회를 중단하기로 하고 대체용어를 빠른 시일 안에 결정하기로 가결하다”로 결정하였다.
      2.4.3 제4영도교회는 이미 지난 해 정책당회에서 중지하기로 가결하였음을 이순흠 목사가 진술하였다.
      2.4.4 감천중앙교회는 당회에서 “가정교회”실시를 결의한 바가 없으므로 조사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다.
      2.5 조사위원회 결정
      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노회에 보고하기로 하였다.
      2.5.1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하다.
      2.5.2 아직도 일부에서는 부분적으로 가정교회를 시행하고 있고 노회 결정에 대하여 불복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므로 “금번 가정교회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해 교회 당회장과 당회원(대표)들이 노회 앞에서 사과하고 재방 방지를 약속하며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중단을 선언하도록 하다”로 결정하다.

      3.“가정교회”에 대한 긍정적 시각
      우선 현재에 “가정교회”를 실시하고 있는 교회들이 주장하는 긍정적 시각들을 살펴보자.
      3.1남자가 동참하게 된다.
      남자들의 참여도가 높다. 그러나 순차적으로 “가정교회”는 부부가 동참하는 교회와 여자만 모이는 교회로 구분하고 있다.
      3.2 직장인도 동참하게 된다. “가정교회”는 퇴근 후에도 모일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인도 가능하다.
      3.3 일군양성이 용이하다.
      현재 구역조직은 사실 그 특성이 여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가정교회”는 부부동역장을 세우므로 부부가 함께 관리 심방 등을 감당하는 적극적인 차원의 평신도 사역자들이 된다.
      3.4 전도의 기회가 된다.
      “가정교회”의 특징은 자연습럽게 참여할 수 있는 관계성을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전도의 전략에 뛰어나다.
      3.5 개인적 신앙과 내적치유가 일어난다.
      소그룹 모임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서로 자신을 내놓고 함께 아픔과 문제를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삶의 나눔) 이로서 점차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오는 개인 신앙과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무관심과 소외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치유하고 해소할 수 있다.
      3.6 친교의 기회가 된다.
      “가정교회”는 소그룹 단위의 생명력이 넘치는 활달한 교제를 풍성하게 해준다.
      3.7 교회가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 파악이 용이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3.8 교회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
      “가정교회” 교인들이 기성교회 교인들보다 교회 생활에 더 만족해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경우 기독교 관련 미국 여론 조사기관, 바나그룹은 기성교회 교인들과 미국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가정교회 교인들이 교회생활에서 경험하는 리더십, 교인들의 신앙, 공동체/교우들과 맺고 있는 관계, 영적 깊이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 이들 네 가지 영역 모두에서 “가정교회”교인들이 기성교회 교인들보다 더 많이 전적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바나그룹은 이 조사에서 “가정교회”를 교회 건물이 아닌 가정이나 다른 장소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는 신앙인들의 그룹이며 자신들을 전형적인(기성)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이며 자치적이고 자신들을 그 자체로 완전한 교회로 여기는 그룹으로 한정했다.

      4.가정교회의 주장에 대한 비평
      4.1 “가정교회의 개념”
      4.1.1 가정교회는 하나의 “메타교회 운동”(Meta church movement)이다. 메타교회(meta는 헬라어로 함께라는 의미)는 메가교회(maga)교회 즉 대형교회에 반대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미래의 교회는 메타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교회는 변화하는 교회요 개혁하는 교회이며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 성경에 기초하는 교회, 성도가 일하는 교회, 성장이 추구되는 교회라는 것이다. 성령과 성경과 성도와 성장이 모토가 되는 교회라고 한다. 얼핏 보면 메가 교회를 비판하면서 또 교회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류의 운동이 그러하듯이 아직 정확한 개념이 통일된 것도 아니고 그 흐름이 하나로 통합된 것도 아닌 여러 가지 개념이 혼재하고 여러 갈래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랄프 네이버와 윌리엄 백햄, 싱카포르의 로렌스 콩은 “셀 교회”로 로버트 뱅크스는 “가정(home)교회” 최영기는 “가정(house)교회”와 같이 그 용어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메타교회를 쓴 칼 죠지는 성장하는 미래교회 메타교회의 아주 뚜렷한 두가지 요소를 가정 단위의 작은 그룹과 찬양그룹을 들고 있다.
      4.1.2 “가정교회”라는 책을 쓴 박승로에 의하면 “가정교회”는 형재 두가지 개념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완전히 “작은 교회” 운동으로 지역교회에서 분리되어 작은 교회를 선호하는 독립된 가정교회이다. 이는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기존교회에서 행하는 것을 다하게 된다.
      둘째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구역과 같으면서 그 특성을 조금 달리하는 “가정교회” 유형이다. 그래서 소그룹(셀) 운동의 이론과 구역제도와 무관하지 않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다만 그 특성상 초대교회의 “가정교회”의 기능적인 장점들을 강조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혼재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4.1.3 “가정교회”를 시작하여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휴스톤 침례교회의 최영기는 그의 책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가정교회는 “개척교회”와 같다. (미국의 개척교회는 평신도 가정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2. 가정교회는 그 자체가 교회이다.(수 십 개의 가정교회가 모여서 서울침례교회를 이루고 있다.) 교단과 지역교회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3. 구성원들이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원하는 가정교회를 선택할 수 있다.
      4. 주된 활동은 삶을 나누는 것이다.(성경공부가 아니다)
      5. 대상은 안믿는 사람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6. 지역교회가 하는 사역을 골고루 다하는 지역교회와 같은 교회이다.

      그는 또 가정교회와 교회 구역의 차이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1. 구역은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정교회는 회원의 선택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
      2. 구역은 교회의 부속기구이고 가정교회는 독립개체이다. 가정교회가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있다.
      3. 구역의 주목적은 친교이나 가정교회의 주목적은 지역교회의 사역을 다하는 것이다.

      4.1.4 화평교회의 최상태는 “21세기 신교회론 이것이 가정교회다”라는 자기 책에서 “가정교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 모여서 예배와 고제와 사도의 가르침과 나눔과 전도 등에 힘썻던 사역을 지역교회의 형태로 행하는 것이 가정교회이다.”
      4.1.5 로버트 뱅크스도 가정교회를 교회 내부의 “회중에 기초를 둔 가정교회(Home church based Congregation)"와 ”교회와 병행하는 가정교회(Home church)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데 “가정교회”는 미혼자, 기혼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포함하는 일종의 확대된 그리스도의 가족을 말하고 있다. 로버트 뱅크스는 “가정교회”가 “셀교회”보다 더 효과적으로 말하고 있는 반면 랄프 네이버는 “셀교회”가 휠씬 더 효과적임을 주장한다.
      4.1.6 가정교회가 제시하는 기성교회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참된 사귐이 어렵다.
      2. 직책이 한정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이 어렵다
      3. 참된 불신자 전도가 어렵다.
      4. 성장과 더불어 건물을 확장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그러면서도 휴스턴 침례교회는 두 번이나 교회당을 확장하였다.)

      4.2 “가정교회”의 성경적 배경 주장과 비판
      “가정교회” 주창론자들은 “가정교회”야 말로 성경적 교회로 주장한다.
      4.2.1 교회가 시작된 시기는 한 개인의 가정이 하나님의 지역교회였으며(고전16:15)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모이는 것이 금지된 이후 가정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에 나타난 대부분 교회는 “가정교회”였다는 것이다.
      4.2.2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역시 “가정교회”형태였다고 한다. 초대교회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에 가정에서 작은 수의 무리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고제하고 선교하였다.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의 초기 단계가 가정교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120명이 모인 것을 보아 다락방이 가정에서의 모임이고 가정교회의 시발임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최초의 기독교의 모임은 가정에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4.2.3 로버트 뱅크스는 로마에는 두 종류의 작은 그리스도의 집단 즉 함께 일하는 모임과 가정교회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은 온 교회가 한 장소에 모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가 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전체가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엄두도 못 냇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이유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도 작은 무리들이 “교회”로 모였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로마서16:5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언급하면서 “저희 집이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이 “가정교회”로 제공되었음을 익히 짐작한다고 하였다.
      4.2.4 “가정교회”주창론자들은 중국의 가정교회(처소교회)를 “가정교회”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4.2.5 더 많은 설명이 있지만 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위의 모든 주장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들이 얼마나 유치한 주장이며 이 주장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위해 얼마나 심한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초대교회는 당연히 초대교회 뿐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오늘날에 있어서도 교회가 시작될 때는 많은 경우 가정에서 시작한다. 성경은 교회를 어떤 곳에서 시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어떤 경우든 모이면 교회는 성립되는 것이다. 굳이 이런 주장들을 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초대교회가 모두 가정에서 시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당에서 시작된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루살렘처럼 성전에서 시작된 경우는 왜 애써 외면하는가? 교회는 어디에서나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은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많은 교회들이 가정에서 시작하였다. 그것이 “가정교회”를 해야하는 이유는 아니다.




      교회는 “가정교회” 였다는 것이다.
      4.2.2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역시 “가정교회”형태였다고 한다. 초대 교회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에 가정서 작은 수의 무리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교제하고 선교하였다.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의 초기 단계가 가정교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120명이 모인 것을 보아 다락방이 가정에서의 모임이고 가정 교회의 시발임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최초의 기독교의 모임은 가정에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4.2.3 로버트 뱅크스는 로마에는 두 종류의 작은 그리스도의 집단 즉 함께 일하는 모임과 가정교회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은 온 교회가 한 장소에 모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가 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전체가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이유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도 작은 무리들이 “교회” 로 모였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로마서 16:5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언급하면서 “저희 집의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이 “가정교회”로 제공되었음을 익히 짐작한다고 하였다.
      4.2.4 “가정교회”주창론자들은 중국의 가정교회(처소교회)를 “가정교회”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4.2.5 더 많은 설명이 있지만 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위의 모든 주장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들이 얼마나 유치한 주장이며 이 주장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얼마나 심한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초대교회는 당연히, 초대 교회 뿐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오늘 날에 있어서도 교회가 시작될 때는 많은 경우 가정에서 시작한다. 성경은 교회를 어떤 곳에서 시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어떤 경우든 모이면 교회는 성립되는 것이다. 굳이 이런 주장들을 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초대 교회가 모두 가정에서 시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당에서 시작된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루살렘처럼 성전에서 시작된 경우는 왜 애써 외면하는가? 교회는 어디에서나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은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많은 교회들이 가정에서 시작하였다. 그것이 “가정교회”를 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4.2.6 로마의 교인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인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경에 로마서가 로마 교회에 보내졌다고 해서 로마 도시에는 한 교회만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다만 성경에 그것이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졌지만 그 넓은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가 하나만 있었겠는가? 그들이 한 곳에 모일 필요가 무엇이 있었겠는가? 교회가 가정에서 모이거나 어디서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굳이 가정에서 모인 것만이 교회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모이는 것만이 진정한 교회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곳에서 모이는 것은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동시에 성경 어디에 현재의 가정교회와 같은 형식의 교회가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도 내놓아야 한다.
      4.2.7 성경은 한 번도 조직된 교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성경에 관한 무식의 소치이거나 조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초대 교회도 비록 느슨하기는 했으나 조직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도들만 있었으나 문제가 생기자 그들은 교회를 조직하고 일 분담하기 시작했다.(행 6장) 그리고 바울서신에는 장로와 감독 그리고 집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이미 교회가 조직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가정교회”는 조직이 없다는 것은 조직이 무엇인지도 모른 무지이다. 목사가 있고 그 밑에 여러 “가정교회”가 있고 거기에 “목자”가 있고 “목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보고를 한다. 이것이도 다른 조직이며 이것을 조직된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직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것은 교회들의 공감대 속에서 조직 자체를 변혁시켜 재조직하면 되는 것이다.
      4.2.8 중국의 처소교회는 그렇게 모이는 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3자 교회가 문제가 있긴 해도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수천 명씩 모이는 교회를 굳이 교회가 아니라고 강변할 것이낙?
      4.2.9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교회정치 제2장(교회)은 다음과 같이 교회를 규정하고 있다.
      제9조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믿는 택한 백성의 거룩한 공회이다.
      제11조 지상의 모든 교인이 한 곳에 모여 교제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으므로 각처에 교회를 설립하여 회집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성경에 사례와도 합치된다. (갈 1:22, 계 1:4-20).
      제12조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과 그 언약의 자녀들이 일정한 장소에서 그 원대로 합심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실하게 생활하고, 예수의 나라를 확정하기 위하여 성경에 교훈한대로 연합하고 제정된 교회 정치에 복종하며 공동예배로 회집하면 이를 개체교회라 한다.
      4.2.10 그러나 교회의 통일성과 질서를 위하여 교회 설립에 대하여 규제를 가하고 있다.
      제14조 예배 장소를 준비하고 일정한 교인들이 회집하다가 교회를 설립하고자하면 노회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고 순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치리회를 조직하고 규칙을 만들어서 그 치리회의 허락을 받는 경우에 교회라고 엄격하고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이나 교회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 헌법은 우리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어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4.3 “가정교회의 조직”과 “목장”,“목자”,“목녀” 의 명칭문제
      4.3.1 교회가 치리회의 결의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동질성을 훼손하거나 그 정체성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정교회”는 담임목사(일부에서는 대목자라 부른다) 밑에 “목자장,”그리고 “큰 목자”가 있다. “목장”마다 “목자”가 있고 “목장”안에는 “예비목자” 그리고 “목원”들이 있다. 때로는 “목자장”을 “촌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목자”의 부인을 “목녀”라고 호칭한다.
      4.3.2 “목장”은 “가정교회”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구역”이나 “순”이란 명칭 역시 헌법에 명기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사용할 수 있다. 우리교회들도 교구, 교구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영기의 말처럼 “구역”이라 부르지 않고 “목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4.3.3 목자는 가정교회의 지도자이며 그들 주장대로 하면 “가정교회”의 목사이다. 우리 헌법도 목사를 가리켜 목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목사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목녀는 굳이 따진다면 교회의 목사부인(사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명칭들은 가정교회의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미 교회론과 장로교회의 정체성의 변형이다. 따라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4.4 평신도 목회의 문제

      가정 교회는 평신도 목회를 강조한다. 아들이 평신도 목회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두 가지 이다.
      4.4.1 만인 제사장 원리이다.
      마르틴 루터가 “모든 평신도는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이 있으며 서로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에 관한 것을 서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신교 그 누구도 만인제사장 원리를 부인하지 않는다. 더러 개신교회 목사 중에 목사를 제사장처럼 가르치고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원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천주교에서 사제들이 주장하는 것을 오해한 것 같다. 만인 제사장 원리는 “가정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4.4.2 에베소서 4:11 - 12을 근거로 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이른 목사만의 일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평신도는 할 일이 없어서 권태롭고 목사는 할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도도, 심방도, 행정도, 교인 가정의 축하 편지도 모두 평신도들이 한다고 자랑한다.
      4.4.3 개신교회 그 누구도 에베소서 4:11 - 12의 일들이 목사만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목사 혼자 다 하는 교회도 없다. 단지 그 중요성에 비추어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을 따름이다. 목사직을 성직, 성도들의 하는 일들을 세속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원론에 속한 것이며 개혁주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목사만 특별하다고 가르치는 교회도 없다. “개혁교회” (Reformed Church,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개신교회의 한 교단)는 부목사가 없다. 교인이 몇 천 명이라도 목사는 하나다. 아이들의 교리문답은 목사가 직접 가르치지만 성경공부와 모든 것은 평신도들이 감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제도도 그런 시스템으로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개신교회도 대부분 심방도, 전도도, 행정도 평신도들이 합니다. 단지 사람이 없을 경우에 목회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평신도들에게 목사와 같은 느낌 주어 책임감과 동기를 유발하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목사의 기술적 문제다.
      4.4.4 휴스턴 침례교회는 예배 전에 평신도들이 목사에게 안수를 한다. 이것은 목사와 평신도 간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장로교회도 다른 직분과 목사간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교회 치리 상 당회장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당회장 권을 구약의 제사장처럼 과도히 행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다. 위와 같이 안수하게 되면 안수 문제로 일어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경험한 바이다. 목사와 다른 직분과 차이가 없다고 해서 질서 상 목사의 권위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딤전 4:12)고 했다. 즉 목사의 리더쉽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4.5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딤전 4:14)라고 하였다.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 없이 말며”라는 것은 디모데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헛되게 묻어두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ㅇ,ㄴ시’의 헬라어 ‘카리스마토스’는 ‘카리스(은혜)’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성령으로 부여받는 모든 영적 은혜와 능력을 의미한다(눅 7:42; 행 27:24; 롬 8:32). 본 절의 ‘은사’는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수(按手)를 통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안수는 초대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자에게 행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반적인 은사의 의미와 직분의 의미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조심 없이”는 “멸시하여 소홀히 여긴다”는 뜻이다.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목회자라는 위치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성별된 것이므로 소홀히 여기거나 헛되게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에 대하여는 디모데가 안수를 받을 때에 안수를 행하던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덧입혀짐으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은사가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혹자는 이 안수 의식이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떠날 때에 거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장로회”는 장로들의 단체, 즉 교회의 공회를 가리킨다. 장로회는 점차 성례전을 행하는 단체로 직제화 되었다. 아마 바울도 이 장로회의 일원이었을 것이다(딤후 1:6). ‘안수’(에피데세오스 톤 케이론)는 고대로부터 유대 사회에 내려온 관습으로서 권위나 축복, 능력 등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그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그러므로 안수는 아무에게나 함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회에서 실시되었다. 따라서 디모데는 인간의 의식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인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 목회라는 말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한다. “가정교회”에 있어서 목원의 모든 축하행사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목자가 한다. 심지어는 어떤 교회는 장례식마저도 “목자”가 한다. “가정교회”에서는 예배, 선교, 교육, 훈련, 친교 등이 이루어진다. 목사와 성도들은 동역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정교회”를 교회로 인정하고 목자를 사실상의(심지어는 성례도 행하는) 목회자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평신도 목회는 더욱 함부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평신도가 하지 못한다는 의미보다는 실제 집행에 있어 어려움과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4.5 “가정교회”의 예배에 있어 “삶의 나눔”의 문제

      “가정교회”는 삶을 나누는(Modeling)시간을 가진다. 이것은 “가정목장”을 인도하는 원리이며 이 나눔은 목장사역의“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목원 들이 목장을 사모하고 좋아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지난주일 들은 설교를 가지고 실제 적용에 대한 토의를 하고 간증을 하고 그리고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함께 토의한 후에 중보기도를 한다. 이론상으로는 아주 훌륭한 것이다. 가정교회는 삶의 나눔이 주가 아니라고 하지만 순서를 보면 성경공부는 20분이지만 삶의 나눔은 1시간 30분 - 2시간 30분정도를 잡고 있다.
      4.5.1 여기서는 자기 삶을 노출시켜야 하고 거기에서 들은 것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 가정 교회에서는 이것을 강요하지는 않고 자기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가리켜서 “솔직해 지는 모임”이라고 한다. 자기 죄를 서로 고하고 기도하며 목원 들의 문제들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을 나무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자기를 노출시켰을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 없을까? 모두가 천사 같은 사람만 있으면 별 문제이지만 그렇지는 못하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이미 부작용을 염려한 것이고 비밀을 지켜지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한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심어 줄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을 듣고 알고는 감싸주리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오히려 많은 사생활들이 노출되면서 부작용만 커질 수가 있다. 상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라고 혐오감을 가질 수도 있다. 자기가 존경하던 목자가 아주 추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할 때 받을 충격은 신앙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덕”의 문제이다.
      4.5.2 문제에 대한 상담과 성격적 조언은 전문가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최영기는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에 의한 상담은 효과가 없고 비전문가에 의한 상담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도 경험하여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의 견해거나 최목사 자신의 견해일 뿐 그렇다면 모든 상담전문가는 사라져야 한다. 목사의 목회 상담은 필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목장에서 내적치유가 이루어진다 라고 말한다. 그럴 경우도 있을것이고 문제에 따라서는 그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곤란한 일이다. 간증은 좋은 것이나 그것도 자칫하면 잘못될 수도 있는 형편에서 서로의 삶을 노출시키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 같으면서도 나중에는 더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신중히 해야 한다. 자칫하면 내적 치유는커녕 더 나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4.6 예배의 개념 문제

      4.6.1 “가정교회”는 당연히 목장에서 예배를 한다. 교회마다 다르지만 대개 이런 순서를 가진다.
      1) 찬 양 25분
      2) 광 고 3분
      3) 성경공부 20분 (지정된 성경공부교사가 인도/ 교안을 가지고 전달)
      4) 나 눔 : 1시간 30분 내지 2시간 30분
      5) 중보기도 15분
      6) 선교도전 15분/ 선교사 위해 기도, 전도대상자 기도, 심방보고 등
      여기에 광고대신 기도가 들어가기도 하고 마지막에 폐회 찬송과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나눔 시간을 빼면 여느 구역 예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교회의 예배라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짦게 하는 이유는 불신자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이 공 예배이고 교회의 주일 낮 예배는 목장 연합 예배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배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며 앞으로 목장 예배와 목장 연합예배라는 혼동을 주어 성도들의 예배 개념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4.6.2 우리가 가진 예배 지침에 의하면 구역예배는 공예배가 아니다. 물론 구역예배라는 명칭은 사용하되 공식 예배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정 예배 주창자들 중에는 가정 예배는 예배나 공부가 중심이 아니라 친교와 삶의 나눔이 중심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도의 중심과 모이는 첫째 목적은 예배라는 관념은 앞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 할 수 있다.

      5. “가정교회”와 장로교회의 정체성 문제

      “가정교회”는 기존이 정치 체계를 바꾸는 일종의 변혁이다. “가정교회”는 회중교회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에 장로교회의 정치체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5.1 가정교회는 기존 치리회 권위를 아주 약화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정교회의 조직 자체가 치리회를 배제하고 있으며 치리회가 자리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설사 현재는 치리회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앞으로는 치리 장로를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가정교회” 기성교회가 목사와 성도의 관계를 수직화 시켰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옳은 지적이 아니다. 장로교회의 원리는 “개인이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회가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체제인 것이다. 오히려 “가정교회”는 평신도 목회를 이야기하나 그 중심에 목사가 있음으로서 “목자”와 목사는 수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치리회 권위는 약화되고 교회의 모든 일들은 목자들의 모임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목사가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치리회의 권한은 약화되거나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은 모든 것은 자체적으로 결정될 뿐 치리회는 그 권위를 잃고 말 것이다. 심지어 이것을 실시하는 교회 중에는 당회를 아예 폐지한 곳도 있었다.
      5.2 "가정교회“는 현재의 장로회 헌법과 상치된다.
      5.2.1 “가정교회”는 침례교회와 같은 형태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거기에는 치리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교회의 헌법과는 상치된다. 먼저 부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에는 담임목사 외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선교 목사나 교육 목사 등으로 호칭하고 그것마저도 모두 성씨에다 목사호칭을 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5.2.2 “가정교회”는 현재의 직분을 부정한다. 현재의 직분은 계급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 목회를 강조하면서 현재의 직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헌법 어디에도 직분이 계급이라는 곳은 없다. 직분은 그 직무가 다 다른 것일 뿐이다. 물론 성도들이 이것을 오해해서 마치 계급처럼 혼동하기도 하고 일부에서 직분을 종속적인 관계처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제도나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5.2.3 우리가 장로교 헌법을 채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성경은 장로를 세우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감독과 집사를 세우고 그 자격까지 명시하고 있다. 감독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집사들이 구제와 재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5.2.4 “가정교회”는 장로회 헌법과는 전혀 다른 직분을 제시하고 있다. 설사 그것이 더 좋은 제도라면 공동의 합의를 통해 교회제도를 바꾸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고 모든 제도를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교단의 법에도 교회의 공동체성에도 상처를 주는 일이다.

      6. “가정교회”의 위험성
      현재 목회의 패러다임은 변화이다. 21세기의 교회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가정교회”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6.1 변화는 필요하지만 성경과 원리마저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제도의 운용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가장 성경적이기 때문에 운용해 왔다면 그 원리는 지켜져야 한다. 가정교회는 일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오늘날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6.2 무교회주의로의 발전 가능성
      “가정교회”는 기존의 교회 관념이 아니라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참교회라는 새로운 교회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교회는 하나의 연합교회이고 따라서 교회에는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넣어주기가 쉽다. “가정교회”와 “교회”와의 관계 설정이 애매하므로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결국에는 현재의 교회를 부정하는 무교회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현재도 그런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6.3 교회분열
      “가정교회”는 “가정목장”의 유대관계를 강조한다. 구성원들은 한 가족과 같으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가정교회”를 유지하는 끈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요소이다. 이들을 교육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 항상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다. 둘 중 목자나 누구가 교회나 목사에 대하여 불만을 품을 경우 한 “가정목장”이 이탈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뜻을 같이하는 몇“가정목장”이 이탈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뜻을 같이하는 몇 “가정목장”이 이탈할 경우 통제할 방법이 없게 된다. 언제나 모두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최영기는 전도에 최우선 목표를 두면 파당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죄인이고 전도 목표가 약화될 수 있고 그 생각은 언제나 변하고 유혹은 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가정교회”가 이런 토양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6.4 목사의 독단성 강화
      “가정교회”는 평신도 목회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위치를 최고화 시키고 따라서 목사의 독단성은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다. 장로회 정치가 장로회의 치리제도를 택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죄인이고 부족할 뿐 아니라 절대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정교회”는 목사(대목자)의 조건으로서 구령의 열정, 존경받는 기도생활, 열심의 모범, 금전 문제의 깨끗함, 투명한 생활 등을 강조한다. 어느 교회 목사에게나 다름이 있지 않지만 이것으로 목사의 독단성이 없어지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가정교회”는 목사의 독단성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한다. 이 위험성은 부산에서 소그룹을 시행한다고 자랑하는 어느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하게 되어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6.5 목사 유고시의 위기관리 약화
      목사의 독단성 증대와 치리회 권위의 약화는 자연히 교회의 위기관리 능력의 약화를 가져오게 된다. “가정교회”는 스스로 핍박 때에도 강한 교회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한 통솔은 교회가 위가가 오거나 목사가 유고가 되었을 때는 위기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심하면 와해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6.6 성례의 의미와 시행
      현재까지 대부분 성례는 교회가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가정목장”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름난 한 대형 교회는 성례식을 목장에서 시행하고 있다. “가정목장”을 참 교회로 인정한다면 언젠가는 성례식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모순이 될 뿐 아니라 그렇게 요구하고 발전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에 목사가 반드시 성례를 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을 내세워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난처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개혁교회가 참된 교회의 표지로 성례의 정당한 시행을 내세운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성경을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시행세칙은 성경 안에서 서로의 약속을 따라 법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다. 만약 성례식이 “가정교회”에서 행해진다면 이것은 성례에 대한 관념을 아주 혼란시키는 것이다.
      6.7 권징의 시행
      개혁교회의 표지 중 하나는 정당한 권징의 시행이다. “가정교회”의 경우는 친교와 나눔으로 내적치유가 된다는 점만 강조하지 잘못한 자에 대한 권징은 문제는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교회는 진리의 파수와 순결의 수호를 위해서 권징을 반드시 시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권징을 시행할 주체도, 의지도, 방법도 없다.
      6.8 헌금관리
      헌금은 제직회가 관리하지만 그 주관은 당회가 한다. 그러나 치리회가 약하되고 “가정교회”의 원대대로라면 제직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헌금의 결정과 관리 주체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현재도 목장별로 전도사업, 선교사업, 그리고 목장활동에 사용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헌금관리의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6.9 목장간의 불균형 현상
      동일집단원리에 의해 자신이 선택한 목장이 될 때 여기에는 분명히 불균형이 초래된다. 성도들도 역시 유유상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헌금마저 그 일부라 할지라도 목장이 사용하고 목장별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게 된다면 자연히 목장간의 불균형이나 요즘 말하는 소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6.10 공동체로서의 교회
      “가정교회”를 시행하는 교회들은 목장 안에서의 친교만 강조할 뿐 교인 상호간의 교제에 대해서는 차단하고 있다. 이 현상을 교회의 다른 기관들이 폐지됨으로서 가중된다. 최영기는 교인들이 어차피 모든 사람을 알고 교제하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소수만 더 잘 알고 교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교제범위의 확대를 원하는 교인에게 잘 모르는 100명과 교제하겠느냐 잘 아는 10명과 참 교제를 나누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한민국 사람이 수천만이므로 교제가 불가능하니 이웃 몇 만 잘 사귀라는 것과 같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성을 가족목장으로만 한정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이 문제는 한 교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교단 나가서 그리스도 교회의 동질성과 공동체성을 깨뜨리는 것이다.

      7. 노인학교와 대중문화의 문제
      요즘 노인학교에서 불신자를 전도한다는 구실로 유행가를 부르거나 대중가수들을 초청하여 교회에서 공연을 하고 공 예배시간에도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이런 대중문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같이 적용된다. 이것이 창조원리에 다른 하나님 주권 사상이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을 모를 따름이다. 신자가 할 수 없는 것이면 불신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전도 전략이나 양육 원리상 밥을 먹일 자와 죽을 먹일 사람을 골라 그 적용을 유연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도들이 부르지 못할 대중가요나 문화를 공공연히 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이것으로 인해 기존 성도들이 혼란을 느끼고 시험에 들 뿐 아니라 이것을 기화로 하여 불신자들보다는 성도들이 오히려 앞장서고 즐기는 풍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개혁주의 기독교 문화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대중가요나 문화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8. 결론
      본 위원회는 “가정교회”를 실시하고 있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좀 더 나은 교회를 만들어 보고자하는 충정에서 이 일을 시작한 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사보고서와 위원회의 결정들이 목회자들의 의욕을 꺾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갈전히 기도한다. 우리는 기존의 구역 제도를 비롯한 많은 제도들이 탄력성을 잃은 채 타성에 빠지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그러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8.1 “가정교회”를 실시하는 교회들이 “가정교회”를 교회의 구역을 재조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 “가정교회”는 일반명사에서 고유명사화 되었으므로 “가정교회”를 독립된 참 개체 교회로 인정하는 오해를 막기 위하여 그 명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8.2 같은 이유로 장로회(교단) 헌법과는 상치되는 조작과 용어인 “목장”,“목자”,“목녀”,“목원”등의 명칭은 사용하지 말거나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8.3 “가정교회”가 기존의 구역을 재조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제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그런 제도의 결과를 가져 올 위험성이 크고 성도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으므로 그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8.4 “가정교회”는 정도를 목표로 하고 여기에서 전도가 잘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 제도에서도 얼마든지 같은 방법으로 전도할 수 있다. 문제는 영성과 열심, 동기부여이지 제도가 아니다.
      8.5 오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그 성장이 정체된 것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영성이 부족하고 말씀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임으로 모두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영성으로 새로워지고 충만해 질 것을 권고한다.
      8.6 한 보고에 의하면 오늘 많은 신 교인들이 천주교회로 개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신교회는 통일성이 없고 천주교는 그 의식이 통일성이 있고 엄숙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교회는 신학적 검토 없이 성장에 좋다면 너무 빨리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교회는 우리가 서로 같은 주님의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보다는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와 얼마나 다르냐를 나타내려고 애쓰는듯이 보인다. 기독교는 적어도 같은 교단만이라도 동질성을 유지하는데 힘써야 한다.
      8.7 무엇보다도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성경적, 신학적 검토와 우리의 정체성과 원리를 신중히 살펴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좋다하더라도 마치 그것을 못하면 안 되는 것 같이 성급히 서두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방법론보다 중요한 것이 원리이기 때문이다.
      8.8 “가정교회”의 이론은 상당수 침례교회의 교회론을 따른 것이다. 이것은 차성회가 쓴 논문 “침례교회의 교회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론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교회론에 대한 본질적 변혁이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실시하는 화평교회의 최상태는 자기 책의 이름을 “21세기 신교회론”이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므로 본 교단에 소한 교회는 성경과 교단 헌법, 개혁주의 신학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본 교단을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8.9 참고로 본 조사 연구를 위하여 참조한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박승로 “21세기 목회의 대한 가정교회” 도서출판 세복
      이의용 “세상에는 이런 교회도 있다” 시대의 창
      최상태 “21세기 신교회론, 이것이 가정교회다” 국제 제자 훈련원
      최영기 “구역조직을 가정교회로 바꾸라” 나침반
      최영기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두란도
      볼프강 짐존 “가정교회” (황진기 옮김) 국제 제자 훈련원
      논문 차성회 “침례교회 교회론” (신학석사학위논문) 침례교 신학대학원
      소논문 노병표 원종민 “메타교회 한 모델인 가정교회” 천안대학교 기독전문대학원. 끝   삭제

      • 김만연 2007-04-12 11:54:36

        (이 글은 김만연님이 [가정교회 문제 없는가]의 제하의 기사에 댓글로 달아 놓은 것인데 본인은 없어 졌다고 아쉬워했으나 편집장이 살펴본 결과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기 다시 게재하여 함께 읽혀지기를 바랍니다)[2007-03-06]


        노란안경
        아들이 성장하여 일년동안 교제후에 이런신부이면 우리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판단되여 보수적인 집안어른들을 비롯한 온가족들에게 선을 보이고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여 3년이 지나 임신 중입니다

        이 아내로 말미암아 예전에는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가족간에 결속력과 생명력이 살아나는 간증이 나오고 섬김을 통한 삶의 진한 감동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용하는 언어가 가문어른들이 익혀온 전통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였고 독립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 가문과 집안어른의 권위와 역활이 퇴색해질 것같고 사촌과 관계가 힘들것 같고 또 가족중에성격상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를 염려했고 또 온 문중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면 큰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살았던 어머니가 아들이 결혼후부터 아내에게 푹 빠져가는 것을 보고는 질투심이 발동했고 문중일을 많이 하기에 어른들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고 있
        다가 작년가을부터 가문에 큰 혼란이 올 것을 염려하여 집안식구들에게 걱정을 태산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도없이 문중어른에게 알리니 문중회의가 열렸고 집안어른이 한사람씩 불러가서 조사를 받았고 가족들도 모르는 집안일을 소상히 알고 있어서 놀랐다

        문중회의 결과는 임신 중인 며느리를 귀가조치 시키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선포했다

        가문을 염려하시는 문중어른들이시여!
        삼년동안 살아온 것은 누구의 역사이며 귀가선포는 누구의 역사입니까?
        징조할배께서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했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십니까?
        진정 고신가문을 사랑하신다면 시집온며느리와 한 가족이 되어 살아 보시고 난 다음에 과연 염려가 현실로 올 것인지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 있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아내만 성급하게사랑한 아들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댁까지 매도하지 마세요

        " 너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필을 놓습니다
        읽는 모든 어르신께 불순한 말이 있었다면 주안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삭제

        • 김낙춘 2007-04-12 10:05:46

          무슨 문제가 생기면
          주님이 아시지 않는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지겠지,
          내가 옳고 바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참고 지날 수도 있다.

          가정교회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가정교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서
          가정교회 하는 교회들이 잘 하면 오해가 풀릴 것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이미 부산노회에서
          가정교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결의를 했다.
          또 수도권 미래교회포럼에서 6주에 걸쳐 강좌를 열게 돼 있다.

          이미 고신 교단 안에만 해도
          가정교회 운동을 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더 이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사료된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적어도 한 번쯤은 설명이 필요한 것처럼.

          수도권 미래교회포럼에는
          가정교회에 대해서 비우호적인(^^) 강사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김종선 목사의 의견처럼
          부산노회의 권경호 목사께서 참석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토론이란 모름지기
          불이 좀 붙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설득력 있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삭제

          • 김종선 2007-04-11 22:50:46

            이 글을 쓰고 익명의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왜 가정교회에 대해 좋은 점만 말하냐고...편향되다고...
            그래서 말씀인데,
            4월 중순부터 수도권에서 포럼을 열 계획이라는 공지가 있었습니다.ㅡ
            잘 모릅니다만, 내정된 강사님들이 너무 가정교회에 대해 우호적인 분들은 아닌지...관계자분들께서 좀 검토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낙춘 목사님 댓글을 보고 든 생각인데 저희 부산노회 가정교회 조사위원회 연구 위원으로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신 권경호 목사님을 비우호적 강사로 모시면 어떨까요?
            추천하고 싶습니다.
            혹 포럼 일정 조정이 가능하시면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삭제

            • 천석길 2007-04-11 17:23:01

              1. 소그룹 운동을 순복음에서 했으면 순복음의 것이기에 못한다는 말은 아니지 싶다. 마찬가지로 침례교회에서 찾은 것도 아니고 최영기 목사님 개인이 성경에 나타난 목회의 원리를 찾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물어야 할 것이다.

              2. 지향하는 목표가 영혼구원이지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어떤 의도성이 어디에도 없는데 왜 그렇게 받아 들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면 어쩌면 획일적인 지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이는 기우가 아닌가 싶다.

              3. 당회와 목자의 관계성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함부로 속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당회원 스스로가 목자로서 사역을 해 보았다면 얼마나 장로교스러운지(?)를 감탄할 것이로되 맛을 보지 않은 탓인가 싶다. 이보다 더 좋은 관계성이 없을 터인데 말이다. 침례교회에서 목자나 초원지기 사역을 하는 분들은 오히려 장로교를 부러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4. 제자훈련을 할 당시에도 목사의 제자를 만든다고 항변하더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논쟁을 하기 보다는 반듯한 모델들이 자꾸만 나온다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나 저나 열심을 다해서 하는 목회의 방법론에 대하여 노회가 앞장서서 결의를 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있는 일이지 싶다.

              5. 빠르게 변하는 시대와 의욕이 넘쳐나는 많은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사역을 분담시킨단 말인가? 이런 논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교인들에게는 알리고 싶지가 않다   삭제

              • 김낙춘 2007-04-11 15:38:45

                부산노회 가정교회 조사위원회가
                가정교회에 대해서 조사하고 보고한 것을
                이번 노회에서 채택했다고 한다.
                김종선 목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조사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하다.
                코람데오에서 그 내용을 실어주면
                부산노회의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목사에게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가정교회 운동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야 되지 않겠는가
                만약 가정교회에 대한 오해를 조사위원회와 부산노회원들이 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신앙운동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조사를 할 때는 그야말로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뜻밖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 운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가능하면 부산노회 가정교회 조사위원들과
                모두의 유익을 위해 가정교회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싶다   삭제

                • 전성준 2007-04-09 07:40:56

                  수도권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목회자로서 현장의 소리를 전하고저 한다
                  아파트 전도 ---너무 힘들고 어렵다 도데체 문을 열고 들어 갈수 없다
                  원천 차단작전을 편다 그것도 아파트관리팀 뿐아니라 입주민들도 그렇다
                  그래서 재정이 지원되는 교회는 단지마다 전세집을 얻어 아예 전도팀을 상주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온 사람들 모두가 대부분 외롭다고 운다
                  사람이 그립다고 야단이다
                  아파트 전도전략을 시험하면서 가장 좋은 길은 찾아가는 전도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정으로 끌어내는 점촉점 시도이다

                  예배당 지어 놓고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너라 모이라 그것은 지극히 한계가 있다
                  수평이동하는 열심쟁이는 가능하다
                  그러나 정말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 불신전도의 접촉점을 제공하는 것은전략이 너무나 절실하다 셀교회나 가정교회 전략도 그중에 좋은 전략으로 생각한다

                  지금 사도행전시대가 아니다
                  농경시대도 아니다
                  농촌지역이 아닌곳에서 목회를 하려면 전략을 잘세워야 한다.

                  수도권은 대부분 고급아파트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전도전략 특히 불신자 접촉점을 배려하는 전략을 구상할때다

                  신학교수단 사명은 현장 목회자들을 지원하고 학문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현장을 돕고 산학 협동이 자연스레 일어 나도록 지도할 책무가 분명하다.
                  그런 교수 밑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교회 현장에 오면 인턴쉼과 도제 학습은 목회자에게 받게 해야 한다
                  신학교수들이 그야말로 초대시대 주님을 힘들게 했던 서기관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에 대한 믿음, 기대감, 사랑이 일어 나도록 현장목회를 늘 성찰하고 간품하고 지지하고 때로는 건강한 비판이 일어 나도록 해야 한다

                  현장 목회자는 장로그룹들의 공격의 대상이요 또 교회성장에 스트레스를 엄청받고 있다 그런 빌미를 신학자 쪽에서 만들어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회성장이 지지부진 하여 받는 스트레스를 누가 위로하는가?
                  전략을 새롭게 만드는 논리, 학문적인 지원을 누가 해주면 좋으랴!

                  40대에 심장마비로 부름 받는 목회자를 누가 싸안고 가야 하는가?

                  전략을 만들고 임상실험까지 해주시요
                  학교서 그런 일로 학문적인 건강한 논쟁이 일어 나기를 바라오
                  다들 고생이 많소이다
                  개혁주의 신학으로 목회에 꽃을 피울수 있음을 알려야 할것이요   삭제

                  • 김종선 2007-04-09 07:28:31

                    조잡한 글에 대해 신속한 답을 주신 이 교수께 감사드린다.
                    대부분 이해가 됐지만 보다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들 때문에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다.

                    1. 회중교회화 라는 부분에 대해
                    그것이 '회중교회의 정치제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유기적 공동체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음을 말한 것이지 장로교회를 부정하거나 회중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회중교회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회중교회의 정치제도(이를테면 당회 등 치리회를 약화시킨다거나 고유의 직분체계를 부인하는 것등)화에 무게를 두고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교수께서 유기적 공동체의 강조, 혹은 소그룹 교회로의 흐름이라 하지 않고 굳이 회중교회화 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게 문제 제기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여기는데 이 교수님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다.

                    2. 독립, 완전함에 대해
                    필자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몸" 혹은 "유기적 공동체" 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름받은 성도 두세사람만 모여도 그것 자체가 완전한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 돌보고 섬기며 독립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측면에서 소그룹 교회도 독립적이고 완전한 교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직분과 치리회가 근간을 이루는 조직교회의 체제나 정치체계에 있어서는 완전하거나 독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께서는 '목장연합예배'라는 것 때문에 완전함과 독립을 지향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소그룹교회, 즉 유기적 교회 공동체들의 모임을 두고는 '연합'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건지 알고 싶다. 그리고 가정교회가 교회의 완전한 독립을 지향해 가는 것이 밑바닥에 깔린 정서라고 보신다면 그 소그룹 교회(가정교회의 모장이)가 정치체계나 조직, 치리회 등에서도 완전과 독립을 지향해 가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시는지 아니면 그 독립과 완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3. 조화
                    필자는 쟁점의 핵심은 장로교회의 직분, 치리회, 그리고 치리회가 관장하는 영역 등이 가정교회 운동으로 어떻게 소상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문에서 기술한대로 유기적 교회와 조직교회의 구분과 역할 안배를 통해 충돌하지 않고 충분히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님께서는 이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글에서 밝히셨는데 그 방안에 대해서 어떤 견해가 있으신지 듣고 싶다. 그리고 가정교회운동이 그런 기존의 직분체계나 치리회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밝혀주시면 좋겠다.

                    4. 해명
                    '매도 비방'에 대한 언급은 이 교수님의 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고 3자 입장에서 보면 피차를 향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때문에 우리 입장을 밝힌 것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성급함과 획일화 등등이 3년동안 진행한 가정교회를 중단한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것들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도 결정적인 이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담임목사로서 부덕하고 또 지혜롭게 목회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조용히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테니까.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교통사고 등 신상에 어려움이 많으신데도 힘써서 생각을 나눠주신 이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건승을 기원한다.   삭제

                    • 이성구 2007-04-07 23:22:01

                      김종선목사께서 어려운 가운데 귀한 글을 올려주어서 너무 감사하다. 사실 가정교회에 관하여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져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김목사께서 가정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받고 교회의 본질에 접근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며, 상당한 시간과 정열을 준비하는 데 바치고 있고, 그래서 상당한 변화를 보며 탄력을 받고 있던 가정교회 운동이 위기를 겪는지 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분석의 1차 자료는 경험을 담은 문서

                      김목사님의 글은 상당히 논리 정연하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실제로 가정교회에 대하여 준비를 하거나 훈련을 받을 입장에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입장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해부터 꾸준히 '미래교회 포럼'을 통해 이 주제에 접근하려고 애를 썼고, 최영기 목사나 다른 분들의 정리된 글을 읽게 되었다. 현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국 분석작업은 문자화된 것을 1차 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중교회로의 흐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필자의 글의 핵심을 '가정교회의 회중교회화'로 요약한 것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가정교회는 교회정치적으로 보면 '회중교회'의 성격을 보인다고 한 것은 김목사님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가정교회가 따르고자 하는 초대교회는 그때까지 장로제도를 확립하지 못했던 것 같고, 따라서 직분이 달리 있을리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다가 교회는 곧 필요에 따라 변화되어 장로를 세우던 것에서 나아가 철저한 감독교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폐해가 지나치자 일어난 종교개혁은 잘못된 신학적 전통뿐 아니라 사실상 잘못된 교회의 정치적 전통에 도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교회의 본질과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이 터져나오게 하고, 생명력을 잃은 하나의 조직체로 굳어지기 시작한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들의 모습에 절망한 20세기 말엽의 그리스도인들, 목회자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심각한 저항을 보이게 되었고, 저항의 구체화된 모습이 셀교회를 거쳐 가정교회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새로운 도전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의문의 제기일 뿐 아니라 동시에 권위화된 현재의 교회제도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제2의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필자가 회중교회의 흐름이라고 지칭한 것이 굳이 회중교회의 정치제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본래 감독교회에 저항하여 생겨난 회중교회가 강조하는, 조직의 일부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유기체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중시하는 흐름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회중교회의 흐름'이라고 했다고 하여 그것이 곧 장로교회를 부정하고 회중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가 이러한 논의가 '감정적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고 또 “상대방을 매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한 것은,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회에 대하여 단편적인지식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그 부분은 김목사님이 다시 읽어보시기를 부탁한다.

                      가정교회, 독립적이고 완전하다면 문제가 있는가?

                      아무리 보아도 필자에게는 가정교회가 독립성과 완전성을 지향한다는 것이 가정교회의 밑바닥에 깔린 기본적인 정서가 이닌가 싶다. 대그룹의 주일예배를 연합예배로 부르는 것은 가정교회의 독립성과 완전성을 철저하게 배려한 용어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른 의미로 연합예배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게 객관적인 시각일 것이다.

                      시대는 도전과 변화를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신학은 '신앙이 구현되는 현장의 사람'이면서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선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고,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맛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수시로 받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하나님의 은혜를 시대를 거두어가실 것같은 초조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가정교회 운동이 그냥 시작된 것 같지 않다. 다만 필자가 지적한 성급함, 차별화라고 표현하기를 원했지만 뒤집어면 여전히 획일화라고 할 수 있는 독단성의 위험을 내포한 가정교회만의 네트워크화 유혹, 전통적 교회와의 유기적 관계 단절 위험, 직분과 사역의 괴리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김목사님처럼 유의하고 있다면, 3년간 지속된 가정교회 사역을 그만둘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좋은 교회들이 속출하기를 버려진 영혼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논의를 거치면서 더 아름다운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갈망한다. 인간의 아집과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역사가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좋은 글을 주신 김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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