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서울의 대형 교회마다 1만명씩 눈 비비며 참석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 새벽. 사방이 캄캄하기만 한 서울 강남역 뒷골목은 뜻밖의 인파로 붐볐다. 두툼한 점퍼 차림의 남녀가 종종 걸음을 치고, 잠에서 덜 깬 초등학생도 눈을 비비며 발길을 재촉했다. 4시 45분부터 시작하는 사랑의교회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러 달려온 신도들이다. 4시 20분이 넘자 강남 곳곳은 물론 도봉, 마포, 목동, 안양, 광명, 구리 등에서 신도들을 태우고 온 교회 차량 수십대가 사람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 부활절을 앞두고 신도들이 대거 몰린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의’특별새벽기도회’. 젊은이들과 남성 신도들의 참여는‘특새’열풍의 새로운 현상이다. / 온누리교회 제공

45분 정각. 오정현 목사의 인도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됐다. 본당과 별관 곳곳을 꽉꽉 채워 앉고도 자리가 없어 복도와 현관에도 의자를 놨다. “2일부터 시작한 ‘특새’(특별새벽기도회) 참석자가 매일 1만 명에 달했다”는 오목사의 말에 우렁찬 ‘아멘!’이 터져 나왔다.

새벽기도회 열풍이 뜨겁다. 서울에서만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매일 새벽기도회를 찾아 움직인다. 몇몇 대형 교회의 특새는 하루 출석수가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올해 1월1일부터 40일간 계속된 온누리교회 ‘신년특별 새벽기도회(신년 특새)’에는 매일 1만 명 안팎이 참여, 무려 8000명이 개근상으로 성경책을 받았다.

   
새벽기도로 이름난 명성교회에서는 3월 초 8일간 연 특새에 매일 5만명이 서울 강동구 명일동 본당과 상계, 목동, 분당 교회에 참석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2일부터 6일까지 닷새 동안 여의도에만 매일 1만3000여명, 전국의 21개 지성전을 합하면 10만 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대형 교회만 새벽기도회를 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골목골목 자리잡은 크고 작은 교회마다 매일 새벽 수십명, 수백명이 모인다. 개신교가 한국 땅에 들어 온지 120 년 여. 새벽기도회는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국적 풍경이다.

평촌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는 “예수님이 기도하던 시간도 새벽이었고 부활과 승리, 은혜의 시간이 모두 새벽이었다”며 새벽의 중요성을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새벽은 영적으로 신비한 시간이며, 남들이 다 잘 때 일어나 기도하는 것은 신령한 것을 찾고 신령한 것을 믿는 일”이라고 말한다.

새벽 3시에 첫 기도를 드리는 전통은 가톨릭 수도원에도 있다. 그러나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들이 매일 새벽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는 것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개신교 문화다. 신학대학에서는 신학생 시절부터 의무적으로 새벽 기도 훈련을 시킨다. 때문에 “새벽기도회만 없으면 목사도 할 만한 직업”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한국 이민자들이 있는 곳에는 그곳이 미국이건 파라과이건 몽골이건, 반드시 새벽 기도회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 교회와 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남미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교회들이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를 벤치마킹해가고 있다. 교회사를 연구하는 서정민 연세대 교수는 “새벽기도회는 철야기도회, 삼일 기도(수요예배)와 함께 한국 교회의 3대 발명”이라고 꼽는다.

새벽기도회의 뿌리는 멀리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끈 장대현 교회 길선주 장로는 사경회(査經會·성경강독회)를 앞두고 1906년 가을부터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 기도회를 준비했다. 기독교에 귀의하기 전 도가(道家) 수련을 했던 길장로는 새벽 수련이 몸에 배어있었다. 당시 미국서 온 선교사들은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조선 기독교인들의 열정에 놀라면서도 매우 낯설어 했다.

하지만 단지 역사적 전통 만으로는 새벽기도회의 폭발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올 들어 참석 연인원 수십만 명을 기록한 ‘특새’의 열기는 예전의 새벽기도회 풍경과 몇 가지 다른 점이 두드러진다.

매일 1만명의 참여를 이끈 대형 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스타급 담임 목사들이 직접 인도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조용한 기도에 집중하기 보다 찬양으로 뜨겁게 달궈지는 부흥회 분위기가 더 강하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담임 목사는 건강의 어려움을 딛고 40+1일 특새를 마친데 이어 4월2일부터 2주간 동안 고난특새와 부활특새를 인도하고 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도 고난 특새 내내 혼자 기도회를 이끌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 5, 6, 7시 3부에 이르는 새벽기도회를 인도한다.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서울교회 등의 대형 새벽기도회는 참석자 중 절반 이상이 30·40대 젊은 층이고 남자들이 40%에 육박한다. 몇십명 둘러앉는 동네 교회 새벽기도회도 요즘 남자신도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변화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곧장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아침 식사나 요기를 제공하는 것도 요즘 새벽기도회 풍경 중 하나다. 왜 남자들이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일까.

서울 개포동에서 개척 교회를 열고 있는 한 목사는 “1997년 외환위기 후 한국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젊은이들은 취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남자들이 겪는 불안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한다. 회사에서는 언제든 잘릴 수 있고 가정에서도 자칫하면 소외당하거나 이혼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예전처럼 남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통하지도 않는다. 지난 2년 간 자살률이 OECD국가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혹독한 사회 환경도 큰 압박이다.

사진작가 허호(48)씨는 온누리교회 40일 신년 특새에 개근했다. 매일 새벽 분당에서 양재동까지 다녔다. 해외 출장으로 마지막 이틀을 빠졌지만, 현지에서 인터넷으로 참여했다.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삶이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첫 일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신의 문제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열리자 주변에 자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허씨는 “덕분에 일이 몇 가지 생겼다”며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새벽기도회도 단순히 성경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확립과 가정의 회복, 화해를 특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분당샘물교회 이성호목사는 “부부가 함께 참여하도록 권장한다”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서정민 교수는 “대형 교회 새벽기도회를 가보고 ‘이 사람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큰 충격을 받았다”며 “복을 비는 것을 넘어서서 죄에 대한 아픔을 드러내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확대되면 새벽기도회는 정말 강력한 한국 사회의 영적 파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조선일보)

 

새벽 4시 50분, 서울 서초동 사랑의 교회,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 마지막날 1만여명의 신도들이 꽉 들어차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 김보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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