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가정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

  • 기자명 이세령
  • 입력 2007.04.19 00:00
  • 댓글 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2007-04-27 21:43:53
주안에서 김종선 목사님께
주신 관심에 먼저 감사 드립니다. 공론화된 논의에서 글을 쓰면서 답글을 받고 싶은 사람이 때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제 스스로 평신도라는 용어 사용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를 포함한 '신도' 혹은 '성도'라는 용어를 왜 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에서 밝혔듯이 그런 용어를 사용해서 현실을 표현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운동은 개념화 내지는 표준화(신조나 강령)를 하게 되고, 거기서 자기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게 됩니다. 실제로 가정교회 사역원의 원리와 구조 조직 등에서 이런 구별은 많이 묻어 나옵니다. 요약하면 "목사는 교회의 전체 리더쉽이고 평신도는 교회 사역을 분담하고". 그리고 인용하신 엡4장의 본문이 어떤 이해를 서로 돕는지요?

두 번째 질문도 앞에 연결된 것 같습니다.
어떤 현실을 규정하는 용어는 단순해 보여도 이미 자신이 담아야 할 내용을 담는 정도에서 규정한다고 불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규정하면 안된다기 보다는 가정교회 운동이 그렇게 규정하고 시작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들의 논의는 가정교회 운동이 오늘의 우리 교회들을 잘 각성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하는 논의입니다. 그리고 어떤 표현을 씀에 있어서 아무리 가정교회를 긍정하더라도 자기가 서있는 고백적 자리에서 규정된 교회 개념을 뒤로하고서 어떤 진보를 가지고 올 수 있겠습니까? 차이와 다름 그리고 수용 가능성 등을 결국은 자기 입장에서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날개라는 표현이 오히려 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당회는 회중을 위한 것이고 회중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당회는 모든 교회내의 일의 영적인 감독을 합니다. 무엇보다 회중의 구체적인 형편을 돌아보고 심방하고 교제함으로 회중을 다스립니다. 따라서 그 돌아봄과 교육의 수단으로 여러 조직들이 있게 됩니다. 그 동안도 있어 왔고 제가 보기에는 가정교회 운동도 그런 예 중에 하나로 보일뿐입니다.

캠퍼스 선교 운동 단체와 제자훈련은 성도를 돌보고 양육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분명히 교회에게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교회가 이를 수용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셀교회 혹은 가정 교회 등의 발전된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입니다. 제가 가정교회를 우리 역사 현실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대학 시절에 캠퍼스에서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은 리더쉽들이 교회라는 제도권 안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운동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운동 가운데 제자훈련과 가정교회는 사람을 돌보는 진정한 장로의 섬기는 리더쉽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한 완전한 지역 교회 안에 교회가 바른 것이냐는 것입니다.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수와 관계없이 그 자체가 완전합니다. 제가 올린 서평 글에서 서평자의 비평은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6-12명의 성도들로 규정된 소위 가정교회가 신약의 온전한 교회로 믿고 독립된 교회를 지향한다는 것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교회를 그런 식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장로교회가 이런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적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 안의 교회를 인정하는 이런 현실을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많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 대형화 하는 교회 현상을 정당화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아주 좋게 표현해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지 이런 논의를 통해서 발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침례교회의 집사회가 치리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기본적 역할이 있기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다 있겠지요. 이름만 다르고 실질적으로는 같을 수 있겠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목사가 홀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김 목사님!
지난 간사 시절 목사님의 댁을 통째로 빌려서 학생들과 밤이 새도록 며칠을 토의하면서 지냈던 세월도 기억나고 학신 운동이 왜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하고 그런 운동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저에게 물으시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에 평안을 빕니다.
2007-04-27 00:37:46
이세령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건강하시고...

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어서 두가지 정도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목사님 글에 '가정교회 운동은 평신도와 목사의 구별을 명시화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가정교회에서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엡 4:11,12절을 인용합니다. 혹시 그 부분 설명을 듣거나 글을 읽은 적이 있으신지.... 저는 그 부분을 목사님의 주장과 정반대 의미로 이해했고 받아들였는데, 목사님은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구분 한다고 이해하셨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지적하신 것 중에서 "말씀과 성례와 직분에 의해 정의되는 장로교적 개념의 교회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정교회에서 목장이 그런 의미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정교회에서 목장이 그런 의미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주 막연한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교회 정의를 사용한다." 라고 지적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런 의미의, 그러니까 '부름심을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 라는 식의 일반적이고 단순한, "아주 막연한" 의미의 교회 정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지, 다시말해서 말씀과 성례와 직분에 의해 정의되는 교회만 교회라고 생각하시는지, 그외에는 교회라고 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궁금합니다.
덧붙여서, 선교단체와 비교해서 말씀하셨는데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 심지어 회중교회라고 경계하고 있는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 까지도 치리회(집사회)가 있고 거기서 행정적이고 법적인 것들 세밀하게 다 다루고 있는데, 그런 조직체로서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선교단체와 그런 조직체를 갖추고 그것을 운영하는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와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흔히 사용하는 대로 두날개의 의미를 조직체로서의 대그룹 교회와 유기체로서 소그룹 교회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더 건강하고 좋은, 교회다운 하나의 교회를 세워간다. 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조직교회의 틀을 갖추지 않은, 한쪽뿐인 학생선교단체들과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를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는지, 그렇게 비교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 하시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은 가정교회의 열성적인 옹호자이거나 가정교회가 아무 약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냥 사실에 입각해서 사실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근거로 분석 평가 하는 작업을 했으면하는 바람이 간절하기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평안 하시기 바람니다.
부산에서 김종선 드림.
2007-04-24 00:58:02
주안에서 전기홍 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교회 현실앞에 얼마나 몸부림 치면서 자기 반성을 하며 일구어 가는 운동이겠습니까? 생명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보입니다.
장로교회됨은 무엇보다 치리회를 통한 다스림이겠지요. 그런데 그 치리회의 구성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어떻게 자기를 이해하는가가 실제로 치리회의 내용과 형식을 지배하겠지요.
더 좋은 나눔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2007-04-23 07:20:54
"실제로 한국교회는 형식상 대체적으로 장로교회적이다. 장로는 심지어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고백에 충실한 장로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도를 심방으로 돌보고 섬김으로 나오는 권위에서 치리하는 장로상의 상실과 그런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치리회적 성격을 상실하고 운영위원회의 성격으로 변질됨으로 생긴 난맥상이 한국 장로교회의 현실이다.

여기에 가정교회 운동은 바른 장로와 집사상의 재발견을 촉구한다."

.............................................................

가장 성경적인 개혁교회(장로교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있어서 위험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우리교단교회가 역사적개혁교회와 제도와 원리,운용등 모든 성경적 요소들이 일치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 우리교단교회가 역사적개혁교회와 내용은 일치하지 않고 이름만 같은 장로교회라면 우리교단교회의 정체성부터 정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느낀 점은 사역자들의 명칭은 장로교와 다르지만 섬김의 자세로 사역하고 다스리는 사역자들의 모습은 오히려 역사적개혁교회의 장로나 집사와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장로교회가 왜 중요한가? 하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가정교회를 바라보고, 적용하면 좋은 대안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명칭을 바꾸어 운용하신다는 안병만목사님과 얼굴로 뵙지 못했지만 늘 올리시는 좋은 글들로 마음으로 친숙해진 이세령목사님, 전라노회에서 목양하셨던 전성준목사님, 배움 얻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2007-04-22 05:44:52
주안에서 전성준 목사님
주신 관심과 격려 감사합니다.
개척교회로의 새로운 부름에 수고가 많으시지요.
지난 시절 베푼 후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거듭 생각해 보는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와 목사가 이끌고 싶은 교회 사이에 어떤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갈등속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것이진 좀 더 냉정한 살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누고 싶은 중심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정말 낮아지고 잃어버리고 섬기는 복음의 자리를 꿈꾸면서 세워져 가는가?

건강하시고 더 가까이서 섬기고 함께 봉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때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