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교회 설립 60주년에 고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

▲ 이성구목사 시온성교회담임 고려신학대학원교수역임
교회는 누구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싱거운 질문 같지만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목적 없는 존재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대답은 간단할지 모른다. 교회는 참된 복음이 나타났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기념비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틀이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 구원의 은혜가 세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교회가 적어도 세상에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회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발하고 심지어 비난하기에 이른 것 아닌가 싶다. 오늘의 교회는 마치 권력집단 같기도 하고, 부를 많이 축적한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복음, 은혜와 같은 본질적인 면보다는 훨씬 돈, 성(性), 권력 등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교회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역사적 복음을 보존하고 그 복음을 오늘의 문화와 삶 속에 현재화하는 가장 확실한 틀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의 역사를 보존하고 확대하며, 복음의 현재화를 이루어가려 할 때, 교회는 동시에 복음의 본질에서 이탈될 위험도 안게 된다. 교회 역사를 통해 이단들이 끊임없이 발생한 사실이 바로 이러한 본질 이탈의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이 있다. 일찍이 어거스틴이 시편 5편의 주석에서 이단 주창자들이 결코 시시한 자들이 아니었고 ('none save great men have been the authors of heresies'), 쉬와르즈(Hans Schwarz, The Christian Church, 1982)가 지적하는 대로 이러한 이단들을 무조건 ‘거짓말쟁이나 부정직한 사람들로만 몰아 부칠 수 없다’는 주장은 올바른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지난(至難)한 과제임을 잘 말해준다. 단순히 복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결코 복음의 전통을 제대로 보존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단이 발생할 때가 ‘정통적인 교회가 혹시라도 잃어버리거나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진리가 없는지를 겸허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상은 우리에게 교회란 복음을 전달하는 민족과 역사, 문화라는 특수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자칫 자신이 처한 민족과 문화적 상황 속에서 복음을 변질시킬 수 있음에 유념해야 함을 잘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란 자신이 처한 현재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복음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살아가야 하는 까다로운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속의 고신

그렇다면 한국교회 안에서 고신교회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한국교회 내에는 광범위한 부류의 사람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고신교회를 마치 정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무시하려 하였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주류교회들이 고신을 향하여 ‘바리새적’이니 ‘독선적’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면서 마치 정통교회에서 이탈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유도하려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신교회는 우선 지역교회의 분포가 부산 경남 일원을 중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이단시되었던 것을 많은 고신인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주류교회의 주장처럼 고신교회가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였을 개연성도 있다. 저들이 보기에 신사참배 문제는 ‘이미 지난 과거’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진심으로 새삼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는 것보다는, ‘지금 여기서’ 바른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이미 해방된 상황에서 굳이 과거를 들추며 비타협적으로 나가는 것은 자기 의(義)를 자랑하는 교만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보다는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감추고 계속해서 교권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이 고신운동을 의도적으로 이단시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지리적인 한계, 그로 인한 폐쇄성이 크게 부각되는 데다, 한국교회 주도세력들의 자기 허물에 대한 호도(糊塗)작업이 맞물려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의 모습이 전혀 사실과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이야 그 형편이 상당히 달라졌지만 정통신앙을 가장 잘 보존해왔다고 자부하는 우리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순간이 있었음이 사실이다.

물론 고신교회가 지난 60년 동안 드러낸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단 분열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는 ‘문창교회 고소사건’을 총회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바람에 한국교회 앞에 전혀 덕을 세우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설립 후 15년간 고신신학을 주도해 온 박윤선 박사가 교단을 이탈하기까지 하였다. 박윤선 박사의 이탈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1957년에 1차 이탈을 하였다가 그 후 다시 60년에 완전히 떠나게 되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주일성수’ 문제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법정 소송에 대한 견해차로 보기도 하고, ‘(고신을)누가 만들었는데, 이북사람이 좌우지 하는가?’라는 말이 당시 여러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국내외 몇 사람의 국내외 증언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 성경적 가치관이 교회의 문제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 것이라 사람의 정리(情理), 교회내의 세력구도에 따라 교회가 움직이는 바람에 큰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그 후 결국 고신교회는 또 다른 ‘고소사건’에 휘말렸다. 그 고소사건이 일어난 것은 한마디로 고신대학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였다. 사조(私租)이사 사건이라고 불리는 고려신학교의 정규 대학인가에 얽힌 사건을 들여다보노라면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어긋난 일이 교회 전체를 우습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마침내 ‘고소파’와 반고소파‘로 나뉘어 고신 교단 자체가 분열하게 된 것은 단순히 부끄럽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얼마나 질서가 없으면 고신교회 최고의 ’법통‘이라 불리는 당시 송상석 목사가 이사장인 상황에서 그 분 몰래 대학이 법적 허가를 얻은 일을 진행할 수 있으며, 또한 총회가 얼마나 조정 능력이 없으면 자신이 24년간 예배당을 찾기 위하여 고소에 전념한 송목사를 ’반고소파‘로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고소를 진행한 사람이 반고소파가 되고 고소를 반대해온 사람들이 고소파가 되는 희안한 일이 우리 총회 안에서 벌어졌으니, 누가 이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후에도 고신대학과 복음병원을 세우고 경영하면서, 목적을 위하여 방법을 정당화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대표적으로 1991년도 발생한 의과대학 부정입학 사건, 95년의 주차장 사건, 99년의 김해복음병원 청산결의 불복사건, 2003년의 고려학원 부도사태, 2009년 신대원 현직교수 구속 등이 있다. 최근 다시 24억의 고신대학 교비유용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떤 결론을 얻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총회의 결정이 경시되는 풍토가 조성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도 우리 고신 교회는 여전히 복음의 보존과 확장이라는 교회의 본질과 상관없는 일 때문에 일탈(逸脫)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부패와 이단적 행위에 대해서는 가장 단호한 결단을 먼저 내려야 할 고신총회가 금권선거를 대놓고 한 것으로 온 천하에 알려지고, 무슨 연유인지 돈 있는 ‘이단세력’에 흐물흐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유보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교회의 본질과도 맞지 않고, 고신이 가진 역사적 태도와도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한국교회 속의 고신은 규모에 있어서는 별로 내놓을 것이 없지만 가진 분명한 신앙전통, 불의와 불법에 맞서는 단호한 태도 때문에 고신 존재의 정당성을 유지해왔는데 갈수록 그 색깔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교회, 역사 성찰의 책임을 진 고신

현재의 이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고신교회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이탈할 위험을 보인 결정적인 순간에 그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로 교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남다른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흥분한다. 사회적으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이 이제 와서 더욱 힘을 발하고 있으며, 친일행위를 한 인사들의 명단이 년 전에야 뜻있는 국회의원들을 통해 발표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고신교회의 존재야말로 한국교회가 저지른 치욕적인 역사를 변명해 줄 더 없이 아름다운, 유일한 전통임을 확인하고 감사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고신교회는 계속해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지켜보며 그 순수성을 제대로 보전하도록 독려하고, 단순한 비판의 차원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삶의 본을 보이는 사명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신학의 다원주의, 그에 따른 신앙의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복음의 순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고신교회의 존재이유요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인본주의적 배교(背敎)의 도전이 끊어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소수 편에 서서 무시 받는 처지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한국교회를 성경적 교회로 지켜갈 수 있는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의식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군상 철거운동에서 잘 나타내었다. 법적, 역사적, 학문적, 종교적 정당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음을 뻔히 알면서도, 신사참배 압박에 굴복한 역사가 여전히 살아있음인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철거운동에 소극적인 한국의 주류교회를 향해 보란 듯이 누구의 눈치도 보는 일 없이, 전방위적 공격을 거침없이 해댄 고신교회의 모습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성찰하는 책임을 감당하는, 고신교회의 존재의미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였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갈수록 고신교회가 이어온 저항정신이 사라져가는 느낌을 받게 되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잊혀 진 절제운동의 전통 잇기

우리는 고신이 시작한 진리 운동을 매우 좁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심사참배 회개 운동을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역사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갖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이라는 정통 신앙 운동과 함께 절제운동이라는 신앙의 생활화를 추구하는 고신운동을 만들어 낸 인물이 우리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송상석 목사의 존재에 대한 바른 평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고신교회 역사 속에서 송상석 목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마산 문창교회 예배당을 차지하기 위한 고소사건은 송 목사와 박윤선 박사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낳았고, 결국 고신 신학 그 자체였던 박 박사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확실하게 지지하지 않는 교단에 회의를 느껴 교단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친(親)고소적 입장을 취한 송 목사 지지자들이 후일 ‘반(反)고소파’를 이루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송 목사는 고신대학 인가를 둘러싼 ‘사조(私租)이사회 사건’으로 시끄러워진 상황에서 끝까지 이사장의 법적 임기를 주장하며 교단의 결정에 저항하여 교단을 다시 소송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는 등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상석 목사는 그의 생애를 다 마쳐 가는 1978년 한국기독교 절제회 명예회장의 자격으로 ‘한국 절제교육 연구사료 집’을 발간하여 이 땅의 절제운동의 한 획을 그은 인물답게 큰 족적을 남겨 놓았다. 일제하에서 절제회 전국 총무로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그 후에도 절제운동의 부활을 위해 여러 번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83세의 나이에 자료집을 편찬한 것은 절제운동에 대한 50여 년간의 흔들림 없는 관심을 잘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 교단은, 대부분의 보수주의 교회들과 같이, 오직 영적 신앙운동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관하여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송상석 목사가 일찍부터 신앙운동과 사회운동은 분리될 수 없는 일로 간주하고, 금주 금연 등의 절제운동을 통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허영과 낭비, 부패근성에 대하여 강력한 저항운동을 펼쳐왔다는 사실은 고신교회 운동에 동참한 자들이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일제치하에서의 신사참배반대운동은 매우 정치적인 운동이자 사회적 참여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신앙 전승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바람에, 사회적 책임을 지는 아름다운 전통을 공동체적으로 제대로 전승시키지 못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통 신앙의 보존과 사회정의의 실현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과제임을 이제라도 우리의 전통으로 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절제운동의 역사가 1980년대 후반(1987년), 한국교회가 그 외형에 비해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던 때, 고신의 인물인 손봉호 교수의 주도하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으로 그 맥을 구체적으로 이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고신 교회가 공동체적으로는 그러한 사회 개혁적 성격을 가진 운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고신 교회를 통하여 신앙을 익혀온 인물들에 의해 역시 ‘절제’를 핵심 과제로 삼는 기독교윤리운동이 벌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초중고 기독교사들이 ‘좋은 교사’ 운동을 벌이는 일에 학생 시절 서울대학 SFC운동에 함께 하였던 정병오집사가 오랫동안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희생적으로 섬기고 있어 개혁주의 신앙으로 학원과 세상을 복음화하고자 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연합운동, 통일운동과 고신

고신 교회가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그 뿐 아니다. 고신 교회가 공동체적으로는 대학, 병원 등 커지는 몸집 때문에 필요 없는 일에 힘을 소진한 면이 없지 않지만, 교회 안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고고한 정신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공동체 전체의 힘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고신의 전통에서 생산된 인물들이 곳곳에서 한국교회의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음은 이를 입증한다. 교회 연합운동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던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일 때, 교단적으로는 크게 공헌할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 우리였지만,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서울영동교회의 김경래 장로는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기념사업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우리나라의 신학대학에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를 만들어 한국교회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사료를 집성한 일은 역시 고신에서 살아온 이만열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기독 실업인들의 힘을 결집하여 실업인 전도에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는 한국기독실업인회(CBMC)는 서울서문교회의 김창성 장로가 사무총장으로 그 조직체계를 확립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등촌 교회의 이 우준 장로는 국제 기드온 협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전 세계적으로 성경을 보급하는 운동에 앞장섰었다. 담임목사의 자리를 두 번씩이나 그만 두고 나와 교회를 개척하는 모범을 보인 박은조 목사는 한동안 한민족복지재단의 상임이사로 북한 돕기 운동에 한 몫을 감당했고, SFC간사 출신의 김경민 원장 (향상교회)이 통일교육문화원을 창설, 초중고교의 통일 교육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의식 고취와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설립한 ‘한국교회 목회자 윤리위원회’에 향상교회 정주채 목사가 서기로서 윤리선언문을 초안하는 등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대형교회나 세상이 부러워하는 지위를 가진 사람,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사람만이 역사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교단 설립 60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교회의 면면을 모조리 계량화하여 수적인 비교우위로 그 위치를 평가하는, 대단히 세속적으로 흘러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제법 고고하게 살아간다고 말하던 고신 교회마저 이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이쯤에서 이제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보존하고 복음의 확산에 최선을 다하면서 역사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삶으로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교회로 나아가는 것이 한국교회 속에서 고신 교회가 감당할 역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60주년에 끝내 남는 아쉬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라는 이름으로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설립된 지도 어언 60년이 되었다. 이 일을 기념하여 지난 6월14일에는 부산에서 일 만여 명이 모여 기념대회를 갖기도 하였다. ‘갱신과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로 모인 이 날 대회는, 그러나, 예배, 음악회, 세미나, 특별행사 등 4부로 구성하여 4시간 이상 진행하면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포함하려는 과욕(!)을 보이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성도들은 벅찬 스케줄을 감당하지 못해 2부 시간 이후에는 멀리서 온 성도들이 먼저 빠져나가면서 참석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분위기가 매우 산만해지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대회 주제로 내건 슬로건이 과연 고신 총회 설립 60주년에 걸 맞는 것이었는지에 관하여 대회 이전부터 비판이 일었다. ‘갱신과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를 걸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갱신할 것인지, 무엇이 과연 고신이 바라보는 새로운 지평인지 집중적으로 그 문제를 두고 논의하거나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그룹도, 기회도 없었다. 전혀 구체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주제를 구체화 하느라 내건 대회 명제인 치유, 통섭 등은 고신이 추구해온 신학적 역사적 맥락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통섭이라는 언어는 너무 생뚱맞은 것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오직예수’만을 외쳐야 할 고신교회가 말하는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인문학적인 용어인 ‘통섭’을 빌려와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인지 교단의 그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날 세미나에서 제시된 미래 역시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을 뿐 구체성이 결여되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였고 그 후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기독교보가 상세하게 그날의 내용을 전했지만, 그 누구도 그 제언을 이어가는 일도 없었다. 아쉽기 짝이 없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0년전 50주년 기념대회 때는 총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 시간을 떼 내어 기념식을 가질 정도로 간략하게 치렀지만 50주년 준비위원회(위원장 곽삼찬목사) 5억 원을 들여 신대원이 옮겨온 천안에 기념교회인 하나교회를 세워 지금은 충청노회 굴지의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60주년을 지낸 지금, 10년 전의 기념교회인 천안 하나교회가 1억을 내 놓겠다고 했지만 아직 개척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 아쉬움을 안고 오늘 갖게 되는 이 포럼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는 더 많은 아쉬움을 안고 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고신은 결코 외형을 중시해서는 안 되는 교회라는 점이다. 고신은 끝까지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조류에 대하여 저항하며 살아야 하는 교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크고 보기 좋고 남이 부러워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만 아시면 아무 문제가 없고 주님만 기뻐하시면 아무 소원이 없는 그런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고신교회는 신학과 신앙, 목회와 성도의 생활면에서 예인선 역할을 해야 한다. 덩치가 큰 통합 합동 감리교 등의 교회들이 비대한 몸집을 쉽게 움직일 수 없어 변화하는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어 쩔쩔매고 있으며, 곳곳에서 밀려오는 세속화의 물결을 막기 어려워하고 있을 때 고신 교회는 작은 몸집으로 빠르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성경적 개혁주의적인 교회로서 제 자리에서 바른 교회로서의 선명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결단으로 고신의 목사와 성도가 되기를 다짐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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