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이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교육이다. 이 교육 효과는 '자국어 성경'과 '자국어 설교'를 통해 나타났다. 유럽 각국의 자국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지만 자국어 성경 번역을 정당화하고 보편화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이다.”

5월 1일(수)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위치한 총회세계선교센터에서 있었던 미래교회포럼 셋째 날 오전 발표에서 황대우 교수(고신대학교 교양학부)는 “16세기 성경공부모임의 기원과 의미 및 적용”이라는 제목를 가지고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였다. 황 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취리히의 성경공부모임

자국어 성경을 보급하고 자국어 설교를 하는 데 루터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루터는 자국어로 드리는 예배는 좋게 생각했지만 자국어 예배 및 설교는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일시적 방편 정도로 생각했다. 츠빙글리는 1520년 이후부터 다른 동료들과 사적 모임을 통해 연속강해 형식으로 성경공부를 진행해 오다가 1525년 6월 19일 '예언연구회' 모임을 개설하였다. 이 예언연구회는 비록 성직자들에 의해 주도된 모임이었고 목회자들과 설교자들의 참여가 의무적이었으며 이들을 위한 성경해석과 신학교육이 주요 목적이었다. 하지만 성경해석과 신학에 관심이 있다면 학생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즉 도시의 시민들인 일반교인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예언연구회는 당대의 학교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 예언연구회는 당시 성경을 가르쳐야 할 성직자뿐 아니라 성경과 성경에 근거한 교리를 알고자 하는 일반 교인에게 말씀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일반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취리히의 예언연구회는 유럽의 수많은 개혁교회와 영국의 국교 및 비국교도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 모임은 성경해석을 위한 종교개혁의 모델이 되었다.

▲ 발표하는 황대우 교수
제네바의 성경공부모임: 금요성경연구회

칼빈의 제네바에서도 취리히의 예언연구회와 같은 모임이 '꽁그레가씨옹'(모임, 회집, 회합, 회중이란 뜻)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제네바에 이런 모임을 소개한 것은 파렐과 칼빈이고 그 시기는 1536년 경으로 추정된다. 제네바의 금요성경연구회는 취리히의 예언연구회를 모체로 한 것이므로 이와 유사하게 목회자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대중에게는 자유로운 참여 형식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이 모임의 설립목적은 제네바 교역자들 사이의 교리적인 혼합이나 불일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1540년대와 1550년대의 금요성경연구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목회자와 일반인을 합하여 모두 50~60명 정도였던 것으로, 그리고 이 중 약 40%는 목회자이고 나머지는 비목회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요성경연구회의 진행은 취리히의 예언연구회처럼 선택된 성경 본문의 연속강해 형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교도의 성경연구모임: 말씀연구회

영국에 개방적인 설교연구회가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엘리자베스 집권 초기인 1560년대로 볼 수 있다. 1572년에는 공적 모임이 되었고 세 명의 발언자가 일반 청중 앞에서 성경을 해설하는 형식이었다. 초기의 모임은 단순히 성직자 훈련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점차 발전해 가면서 일반교인들을 수용하여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모임에서는 교역자들의 모임을 통해 다음 모임과 그 모임에서 다룰 성경 본문을 결정했으며, 설교연구회에서 논의된 교리와 발언자들의 삶과 도덕을 평가하고 감독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받지 못해 설교연구회에서 자유롭게 발표할 수 없었던 성직자들이 얼마나 공부에 진전이 있는지 살피는 것 역시 교역자들의 몫이었다. 방청이 허락된 자는 설교자들이 정한 본문을 찾아 읽을 수 있었고, 성직자들이 모임을 가지는 통안 일반 교인들은 들었던 것을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신학생들의 훈련과 연습을 위해 사용되는 순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에 따라 신학교로 발전한 설교연구회도 있었다. 1570년대에는 설교연구회가 국교도, 비국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친숙한 관행이 되었다. 당시 통치자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종교에 관하여는 중도적 입장이었지만 영국 교회의 통일된 모습을 원했고 국민에게 반항적인 지성보다는 무지한 순종을 원했기 때문에 일반 백성의 신앙적 지성을 깨우는 교육의 통로가 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설교연구회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성경공부모임의 의미

16세기 성경공부 모임은 종교개혁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성직자뿐 아니라 신앙의 열정을 가진 일반 성도들의 지성을 깨웠다. 특히 이 모임의 배경과 목적은 기독교 교리의 통일성에 있었다. 교리의 통일성은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교인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에서 말씀의 권위와 질서가 바르게 회복될 때 비로소 교회의 잘못된 관습과 윤리적 타락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모임은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모임이었다. 일반 교인들은 단순히 방청객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성경공부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교역자들만을 위한 모임이 있었는가 하면 일반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모임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16세기 성경공부 모임은 후대에 세 종류의 형태로, 즉 교역자를 양성하는 공적인 신학교와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들의 재교육 및 평생교육, 일반 교인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사적인 성경공부모임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경공부모임의 적용

16세기 성경공부모임은 교회에서 말씀의 권위와 질서를 바르게 회복하기 위한 모범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것을 오늘날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공부모임의 원리와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응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오늘날 교계에는 개교회주의가 만연하다. 지역교회간 연합을 통한 동반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같은 지역 내에 있는 가까운 교회들의 교역자들이 사심 없이, 경쟁의식 없이 동역자로서 함께 모여 성경을 공부하는 정기적인 모임을 조직하는 것이다. 현실을 감안할 때 이상적으로 보이나 오늘날은 이러한 모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시찰회나 교역자회를 성경공부모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것이 잘 정착하면 지역교회의 연합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상호간 경쟁의식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 논찬하는 이성호 교수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문제 해결의 시작과 끝

황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자 종착역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히 16세기 종교개혁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 교회이기를 원하는 모든 불완전한 지상교회가 끊임없이 자성적으로 외쳐야 할 공동의 구호”라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있어 건강한 목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설교”라는 것을 천명하며 “성경과 설교는 목사가 자신의 양떼인 성도와 더불어 가지는 거룩한 영적 교제의 수단이다. 이 수단을 통해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교회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설교의 권위가 바르게 회복되는 곳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도 회복되고, 그제야 교회는 교회다워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드러내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논찬을 맡은 이성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는 “황 교수의 발표는 이 주제와 관련한 최초의 한글논문인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 내용을 교회에 적용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교회 모임 중 불필요한 모임을 제하고 이러한 성경공부모임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청중에서는 “실제로 노회 및 시찰회 현장에서 이렇게 실행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 포럼을 하면서 성경공부모임과 관련된 내용을 따로 주제로 잡아 다룰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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