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 송영목 교수 고신대 신학과
이 글의 제목은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배우기’가 아니라 ‘신약성경의 예배에서 배우기’이다. 이유는 AD 1세기 초대교회가 드린 실제 예배를 탐구하는 동시에, 신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의 환상 가운데 등장하는 천상의 예배도 본 연구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다. 이 글의 목적은 다음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회당 예배는 신약교회의 예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 요한계시록은 천상의 예배를 어떻게 소개하며,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1. 초대교회에 미친 성전과 회당 예배의 영향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인이었으므로, 그 당시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전반적으로 따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공격한 경우는 예외다. 예수님이 최후 만찬을 유월절 식사로 거행하셨으므로, 유대인들이 가정에서 행한 종교 관습을 공유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회당 예배도 공유하셨고(눅 4:16-30), 절기 때는 성전에도 가셨다(요 2:13 등).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드린 예배는 그레코-로마세계라는 이교제사보다는 유대인의 예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  

1.1.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영향 

AD 1세기에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침과 저녁에 양 한 마리씩 제물로 드렸고, 안식일에는 두 마리씩 드렸다. 그리고 월삭,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수전절, 부림절, 대속죄일에는 많은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참고. 날, 달, 절기를 성취하신 예수님, 갈 4:10-11).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는데(유월절, 2:13; 11:55; 명절, 5:1; 초막절 7:10; 수전절, 10:22), 요한은 명절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여기신(막 11:17) 예수님은 유대인들처럼 성전세를 내셨다(마 17:24-27). 오순절 후에 예루살렘 성도는 성전에 모였고(행 2:46),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행 3:1-3). 바울은 자신을 성전의 희생 제사와 연결시켰는데, 바울이 정결의식을 위해 짐승 제사를 드렸는지는 불분명하다(행 21:17-26). 그런데 예수님은 돌 성전의 예배가 아니라 ‘성령과 실체 안에서의 예배’를 제시하셨다(요 4:23).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죽으시며 장차 성전은 파괴될 것이므로(눅 21:6), 짐승 제사를 드리던 돌 성전은 더 이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전청결 사건(마 21:1-11; 요 2:13-22)에서 짐승을 이방인의 뜰에서 몰아낸 것은 짐승 판매와 연관된 부패는 물론, 희생 제사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신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도 성전 제의의 종막을 고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마 27:31). AD 70년에 하나님께 정교한 방식으로 나아가도록 했던 옛 예배 시스템은 끝났다(마 12:6; 골 2:16). 따라서 성전 제의가 폐지됨으로써, 비록 AD 70년 이후에 랍비 유대교와 회당 예배가 존속되었더라도, 신구약 중첩기간의 실질적인 종막을 알렸다. 

1.2. 회당 예배의 영향 

바벨론 포로 이후로 시작된 회당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역할을 했지만, 성전이 서 있는 한 유대인의 삶에 구심점이 되지 못했고 보완적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유대인들과 중앙-북부 유럽의 유대인들 사이에 몇 가지 관습에 있어 차이가 있었음에도, 회당의 주요 기도와 예배 방식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2) 1세기에 회당은 예배처소는 물론, 법정, 시장, 학교, 직업소개소 등의 역할도 병행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월요일, 목요일 그리고 절기 동안 성전에 가지 못한 경우에 모였다. 복음서에는 언급이 안 되어 있으나, 회당 예배의 일반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회중 찬송(비교. 고전 14:26; 엡 5:19-20; 골 3:16-17). (2)신 6:4-9, 11:13-21, 민 15:37-41이 혼합된 쉐마 낭독. 이것은 일종의 유일신 하나님에 관한 유대교의 신조임(비교. 롬 3:30; 고전 8:6; 12:5; 갈 3:20). (3)(가말리엘의 영향을 받은) 테필라(Tephillah, 혹은 Amidah, Shemoneh Esreh; 비교. 고후 1:3-7과 엡 1:3-10의 바울의 기도), (4)율법서와 선지서 낭독과 (아마도 통역 및 성구집에 근거한) 해석(homily). 유대인은 회당을 ‘가르침의 집’으로 여겼는데, 토라와 선지서는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그리고 안식일에 낭독되었으며, 토라를 낭독하는 주기는 3일을 넘으면 안 됨. (5)복의 선포와 회중의 아멘으로 응답(비교. 고전 14:16; 고후 1:20; 계 22:21).(3)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바른 성경, kata. to. eivwqo.j) 회당 예배에 참석하셨다(눅 4:16). 바울도 늘 하던 대로(kata. to. eivwqo.j)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행 17:2; 그리고 13:14). 따라서 초대교회는 회당 예배에 익숙했고, 일부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4) 만약 예수님과 사도가 회당 예배와 유사한 초대교회 예배 형식을 초대교회가 따를 것을 비판하셨다면 이 둘 사이의 유사점은 없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회당’(sunagwgh,)이 그리스도인의 집회 장소로 언급된바 있다(약 2:2). 

1.3. 요약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종교 행위였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구원적 사랑을 예배로써 기억하며 기념했다. 성전 예배와 달리 회당 예배는 덜 형식적이었고, 교육적 요소가 강했으며, 제사장의 기능이 뚜렷하지 않았고, 일반 성도의 참여가 뚜렷했다. 예수님은 성전과 회당 예배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셨기에, 유대교 예배의 단절자라기보다는 완성자이시다.(5) 역사적인 단절과 진공상태가 아니라 1세기 팔레스틴의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사역은 새로운 예배 즉 참 예배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특별히 회당 예배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초대교회의 예배를 위한 도약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회당예배의 요소 중 일부를 독특한 기독교의 신학적 이해를 반영하여 변형시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6)  

2. 초대교회의 예배: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를 중심으로 

초대교회의 일원이었던 복음서 기자들은 초대교회의 예배에 관해서 정보를 제공한다.(7) AD 1세기는 예배를 포함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의 많은 영역에 있어서 상당한 다양성을 보였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예배에 관해서 획일화하거나, 과도하게 정확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예배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AD 3세기의 교부들의 기록으로부터 초대교회의 예배를 역으로 추론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초대교회 예배의 적지 않은 부분은 유대교 예배, 특히 회당에게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구약적 예배에서 기독교적 예배로 넘어가는 중첩기 혹은 중도기에 속한 초대교회의 예배는 공유된 유대교 예배 요소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8) 

2.1. 예배 장소와 시간 

2.1.1. 예배 장소  

신약 성경은 초대교회가 예배 모임을 위해서 특정 장소를 선호했다고 밝히지 않는다. AD 4세기까지 기독교 교회당이 건축된 적이 없으므로, 초대교회는 주로 성도의 가정집(katV oi=kon, ‘집을 돌면서’)에서 모였다(행 2:42, 46-47; 16:15, 34, 40; 20:7-12; 롬 16:5; 골 4:15-16; 몬 2). 그리고 회당이나(약 2:2) 성전에 모이기도 했다(행 2:46).  

2.1.2. 예배 시간  

AD 321년에 일요일이 휴일로 지정되었으므로, 초대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노예와 같은 자유롭지 못한 성도를 배려한다면 주로 주일 저녁 시간에 헌금 순서가 포함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행 20:7; 고전 16:1-2; 참고. 요 20:19, 26; 계 1:10; 디다케 14:1).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는 매일 예배를 드렸으며, 가정집은 물론 성전에 모이기도 했다(눅 24:52-53; 행 2:46-47; 참고. 행 3:1, 11). 로마의 클레멘트(c. AD 96)는 고전 14:40에 근거하여, 주님께서 헌금과 예배를 질서 있게, 지정된 시간과 때에, 사려 깊고 규칙적으로 하라고 명령하셨다고 기록한다.(9) 그런데 AD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현대 교회처럼 1년에 한 번만 부활절을 지킨다는 개념이 없었고, 매 주일이 부활절이었다. 따라서 이것을 간단히 적용해 보면, 현대 교회도 “매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다”(Every Lord's day is a little Easter!)는 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재적 권능과 영생 주심을 감사하고 축하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오늘 날의 예배는 새 언약의 갱신을 위한 잔치가 될 것이다.  

2.2. 초대교회 예배의 요소들 

신약 성경은 조직화된 예배 순서를 제시하지 않기에, 초대교회의 예배 순서에 관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10) 여기서 예배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2.2.1. 찬송과 신앙고백 

그레코-로마 종교의 종교적 노래를 특징짓는 언어스타일의 요소를 살펴봄으로써 많은 학자들(예. E. Norden, J. Weiss, L. Thompson, R.P. Martin)은 신약 저자들이 그 당시의 찬송과 신앙고백을 성경을 기록할 때 사용했다고 주장한다.(11) 예를 들어, 눅 1-2장의 세 찬송시들(Magnificat, 1:46-55; Benedictus, 1:68-79; Nunc Dimittis, 2:29-32)은 초대교회의 예배에 사용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세 찬송시들이 유대적인 어휘와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참고. 출 15; 삿 5; 삼상 2:1-10), 적어도 유대-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중에 즐겨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참고. 마 21:9; 눅 2:14).(12)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중요한 진술인 요한복음의 서론에 초대교회가 부른 찬송과 신앙고백(1-5절, 9-14절, 16-18절)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이가 있다.(13) 즉 초대교회는 자신의 찬송과 고백하는(to confess, o`mologe,w, evxomologe,w) 신앙(교리)을 통해서 정체성을 드러내었다는 것이다(참고. 마 10:32-33; 14:33; 16:16; 롬 10:10; 빌 2:6-11).(14) 확실한 사실은 초대교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다(고전 14:26; 엡 5:19; 히 13:15; 참고. 마 26:30; 행 2:47; 16:25; 약 5:13).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높여 기리는 ‘새 노래’도 불렀다(계 5:9; 14:3; 15:3). 고전 14:7-8이 예배 중에 악기를 사용한 증거 구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15) 참고로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총독 플리니(AD 111-112)의 편지들(The Letters of the Pliny the Younger)에 보면, “기독교인들이 해 뜨기 전에 마치 하나님께 하듯이 그리스도에게 불러 드리는 노래를 서로 번갈아 불렀다”고 전한다. 

2.2.2. 기도 

초대교회의 기도의 기원이 구약의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로 거슬러갈 수 있지만, 예수님이 보이신 기도의 모범에서 새로운 자극과 내용을 공급받았다(마 5:44; 눅 6:12; 11:2-4; 21:36; 참고. 행 1:14).(16) 복음서의 주기도문은 초대교회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근거는 디다케(8, 10장)인데 마 6:9-13의 주기도문과 거의 동일한 기도문을 제시하며, 하루 3회 반복할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회당의 영향을 반영하는데, 왜냐하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테필라를 하루 3회 반복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기도 중에 불렀고(롬 8:15; 갈 4:6),(17)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기도했다(행 7:59-60; 9:17; 계 5:8). 

2.2.3. 성찬 및 애찬(agape meal) 그리고 세례 

2.2.3.1. 성찬 및 애찬 

첫 번째 성찬은 정규 유월절 식사였다(참고. ‘[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의 첫날에’, 마 26:17; 눅 22:7). 그런데 예수님의 최후만찬(마 26:26-30; 막 14:22-26; 눅 22:14-23)은 복음서 기자들이 속한 초대교회의 성찬을 다양하게 반영한다(참고. 행 2:46). 마태와 마가의 경우 떡과 포도주 각각을 위해 기도하지만, 누가와 바울(고전 11:23-25; 참고. 행 20:7)은 통합하여 한 번의 감사만 소개한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누룩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준비를 함으로써, 유월절 동안 출애굽을 회상하고 자신들을 해방시킬 메시아의 오심을 기대했다(Mishna Pesahim 10). 이 유대인들의 회상과 기대는 바울이 주의 만찬을 설명하는데도 나타난다(고전 11:17-34, 특히 24-26절).(18) 성찬식은 1세기의 실제 식사 상황에서 행해졌다.(19) 실제 식사 상황이라면 어린 아이들도 성찬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AD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는 성찬을 먹기 전에 죄를 고백해야 하며(14:1), 세례를 받은 사람만 빵과 포도주를 먹을 수 있다고 명시한(9:5). 그런데 행 2:46은 일상적인 표현인 “빵을 먹다” 대신에 “빵을 떼다”(klw/nte,j a;rton, breaking bread)라고 언급하기에, 성찬이 일상 식사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의식이었음을 암시한다. 초대교회가 성찬식 마지막 시점에 했던 신앙고백(혹은 기도)은 ‘마라나타’였다(고전 16:22; 참고. 디다케 10:6). 아람어 ‘마라나타’가 사도 바울이나 디다케의 저자에 의해서 헬라어로 번역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초대교회의 가장 오래된 기도문 중 하나인 이 표현이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20) 마라나타는 과거에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임재하심, 현재에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영적으로 임재하심, 그리고 미래에 최종 파루시아로 임재하심을 포괄하는 심오한 용어다. 고린도교회는 성찬을 포함하는 예배 전에 애찬(agape meal, 바른 성경: ‘자기의 만찬’)을 먼저 시행했던 것 같다(고전 11:21-22, 34).(21) AD 2세기 이래로 애찬과 성찬이 함께 시행되었다는 증거가 있다(디다케 10:1). 참고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c. AD 107)는 집사가 일반 성도에게 분병 및 분잔을 했다고 전한다(참고. ‘음식 봉사’[diakonei/n trape,zaij], 행 6:2).(22)  

2.2.3.2. 세례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세례도 빼놓을 수 없다(고전 1:13-17; 10:1-17; 15:29; 엡 5:26; 골 2:12; 벧전 3:21; 참고. 마 28:19; 행 19:4-5; 엡 1:13). 그런데 초대교회가 흐르는 물이 있는 강에서 침례를 행했다면(참고. 죽고 삶으로서의 세례, 롬 6:3-4),(23) 장소 상 침례와 성찬을 동시에 시행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행 2:38) 시행하되, 세례 받는 사람이 회개(행 2:38)와 신앙을 고백한 후(행 8:37) 거행되었다. 온 집안이 세례를 받은데 유아세례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보는 이가 있다(행 16:15; 고전 1:16).  

2.2.4. 설교 및 사도가 쓴 편지 낭독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지역에 있던 교회는 말씀의 가르침(복음적 설교)을 받는 일에 힘썼다(행 2:42; 갈 6:6; 딤전 4:13). 드로아에서 바울은 성찬 전후에 설교를 했다(행 20:7, 11). 설교에 대한 회중의 반응인 ‘아멘’은 회당 예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고전 14:16등에 나타난다. 그리고 사도가 교회에 보낸 편지는 종종 공적 예배 모임에 낭독되도록 의도되었다(골 4:16; 살전 5:27; 계 1:3). 예배 중에 구약성경도 읽고 설교했다(참고. 저스틴의 변증론 67).  

2.2.5. 헌금 

그리스의 고린도의 경우 매주 첫째 날이 임금을 지불하는 날이기에, 그 날(즉 주일)에 헌금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헌금을 포함한 주일 예배의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고전 16:1-2; 참고. 눅 8:2-3; 행 4:34-37; 11:29-30).(24) 

2.2.6. 복의 선포 

신약 서신들이 예배 중에 낭독되도록 의도되었다면, 복의 선포가 예배 처음(요삼 2; 계 1:4-5; 참고. 눅 24:50-51) 그리고 마지막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전 16:23; 고후 13:13; 갈 6:18; 빌 4:23; 살전 5:28; 살후 3:18; 딤전 6:21; 벧전 5:14; 유 24-25; 계 22:21).(25) 신약 서신 가운데 특히 바울 서신의 흐름(epistolary flow)은 예배의 여러 요소들을 통합하여 초대교회 예배 순서에 적합하도록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6) 그리고 아마도 거룩한 입맞춤으로 예배를 마쳤을 것이다(롬 16:16; 고전 16:20; 살전 5:26). 

2.3. 초대교회 예배의 특징 

초대교회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한 예배 용어 중 일부 사용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대인의 성전과 회당 예배와 구분되는 초대교회 예배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 성격이다(참고. 계 5:12-14). 초대교회는 의도적으로 유대인의 예배일인 안식일과 구분하기 위해서 일주일의 첫날을 예배 시간으로 삼았는데,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은 물론 주님의 부활 이후 주일에 있었던 현현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초대교회 예배의 요소들인 찬양, 설교, 성찬, 신앙고백, 복의 선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적 현존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기하는 것이었다.(27) 박해를 경험하던 초대교회에게 예배 중에 임하시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소망과 재림이라는 미래 종말 사상은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28) 물론 여기서 삼위일체 중심적 예배의 요소들을 간과할 수 없다(고후 13:13; 엡 2:18; 히 9:14; 벧전 1:2; 참고. 디다케 7:1-4).(29) 특별히 예배에 있어 성령님의 역할이 중요했다(요 4:23). 성령님은 예배 요소들이 교회의 성장을 합력하여 도모하도록 역사하셨고, 찬송과 기도와 설교와 신앙고백을 가능하게 하셨고, 예배에 예언과 방언 같은 은사적 요소들을 부여하셨고,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도의 과거, 현재, 미래적 연합을 이루셨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와 관련하여, 고린도교회의 경우 예언, 방언 및 통역, 계시를 말하는 예배의 은사적 요소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 모든 요소들은 공동체의 덕(edification)을 세워야 했다(고전 12:10; 14:3, 6, 12, 26).(30) 

2.4. 요약 

초대교회의 예배 순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와 장소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예배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화하고 교화시키기 위해서였다(고전 14:5의 i[na h` evkklhsi,a oivkodomh.n la,bh|). 요약하면 초대교회는 말씀과 성찬이 함께 공존한 생동감 있는 예배를 드렸다(고전 10:2-3). 어거스틴의 말대로 ‘말씀’의 예배는 밀알들을 도리깨질하고 빻는 과정이며, 그 후 ‘세례’의 물로 반죽하고, 불로 구워져 ‘성찬’에 올릴 떡이 되었다.(31) 

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천상의 예배와 현대적 적용

 밧모 섬에서 주의 날에(32)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은(계 1:10) 그리스도의 계시를 예배 상황 가운데 낭독되도록 의도했다(1:3).(33) 그리고 요한은 소아시아 7교회의 지상의 예배를 천상의 예배(계 4-5)와 병행되도록 의도하는데, 지상 교회는 마땅히 성령님 안에서 실체의 예배를 드려야하기 때문이다(참고. 요 4:24). 신약성경 중에서 계시록은 히브리서를 제외하면 가장 예전적인 책이다. 이 사실은 계시록이 종종 구약의 성전을 언급하고(11:1, 2, 19; 14:15, 17; 15:5; 16:17), 언약궤(11:19), 제단(6:9), 촛대(1:12, 20), 향(5:8; 18:13), 연기(18:9, 18), 나팔(8:2), 대접(16:1) 등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어린 양’(5:6, 7, 8), ‘거문고’(5:8; 14:4; 15:2-3), 그리고 ‘세마포’(15:6; 19:8, 14)와 같은 용어는 문맥에 따라서 어떤 예배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계시록 전체는 예배의 요소를 상징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1) 예배로의 부름(계 1): 이 부름은 인자 같은 분의 나팔 음성으로부터 나온다.

(2) 죄의 점검(계 2-3). 교회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 중에서 책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말씀을 가져옴(계 4:1-8:1): 이 단락에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시자 굉장한 예배가 드려지는 것을 본다.

(4) 말씀을 읽고 설교함(계 8-13):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여신 후, 일곱 천사들에게 말씀을 주어 읽고 전하게 하신다.

(5) 봉헌(계 14:1-15:5): 빵과 포도주는 거두어져서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 진다.

(6) 성찬(계 15:6-19:10): 대접 재앙은 천사들에 의해 소아시아 7교회의 대적에게 부어지고, 음녀는 피를 마시고, 새 예루살렘 성(교회)이 참여할 어린 양의 혼인 만찬이 뒤따른다.

(7) 행진(계 19:11-22:21): 전쟁 맥락에서 백마 탄 분이 나온다. 예수님을 따라 교회가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지만, 계시록에는 바울 서신들이 갖추고 있는 분명한 형식의 ‘복의 선포’가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지 않는다(참고. 계 22:21).(34) 

계시록의 수신자들은 박해로 인해 거짓 예배 대상자를 숭배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계 2:6, 9-10, 13-15, 20-24; 13:4, 8, 12, 15; 14:9, 11; 16:2; 19:20; 20:4). 그들이 로마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경제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다(13:17). 하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으로 왕 같은 제사장 된 교회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도를 미혹하고 박해하는 음녀 바벨론을 따르지 말고, 대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했다(1:6; 5:10; 14:7-8; 20:6).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바다짐승(13:1)을 숭배하면 독한 헌데의 재앙을 받을 뿐 아니라, 유황불 못에 들어가서 일순간의 안식조차 없게 된다(14:11; 16:2; 19:20).  

지상의 예배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천상의 예배를 통해서 살펴보자: (1)예배는 집단적이어야 한다. 계 4:11은 교인 모두가 참여하는 집단적인 예배를 강조한다. 천군 천사와 모든 피조물(4생물)과 신구약의 구속받은 모든 성도(24장로)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한다. (2)예배는 쌍방 대화적어야 한다. 지상의 예배에서 우리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성경낭독, 설교, 성찬, 복의 선포 등에 언약적으로 반응한다. (3)예배는 계획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천상의 예배에서 24장로와 4생물은 서로 방해하지 않았고 튀려고도 하지 않았다(비교. 고전 14:40). (4)넓게는 예배, 좁게는 찬송(새 노래)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고, 삼위 하나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원 사역을 올바로 인식하는 가운데 위로를 발견하고 즐기는 잔치여야 한다(1:4-6; 5:9-10).(35)  

나오면서 

신약 전체 즉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그리고 계시록은 예배를 중요하게 다루며 언급한다. 성전과 회당 예배의 영향을 일부분 받은 초대교회의 예배는 유대교의 예배의 한계를 넘어섰다. 초대교회의 예배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유대교의 예배의 종막을 고하시며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라 할 수 있다. 이 특징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했으며, 그 결과는 초대교회의 강화와 성장이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예배가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를 오늘날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 적용을 할 때, 초대교회가 신구약 중첩기(그리스도의 초림-성전 파괴)라는 하나님의 특수한 구속사의 한 시점에 위치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예배 순서와 특성을 그대로 오늘 예배에 이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대신에 초대교회의 예배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올바르다.  

현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예배는 다음과 같다:  

(1)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예배(예. 예배의 일부로서의 간단한 임직식,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정숙한 악기 사용, 설교자가 하는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및 목회기도 및 복의 선포).

(2) 질서를 갖추되 하나님과 영적 제사장들인 성도 사이의 쌍방적이며 생동감 있는 예배(예. 예배와 기도회 혹은 집회의 구분, 예배 순서가 올라가는 것인지 내려오는 것인지 대한 숙지, 집사의 수전과 분병 및 분잔).

(3) 보이는 설교인 성찬이 자주 시행되는 예전이 풍성한 예배(예. 장로의 저녁 심방 후 월 1회 성찬 시행, 오전, 오후[저녁]예배의 예전의 동일화).(36)

(4) 성령님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예배(예. 온 가족 즉 소위 삼대 예배).

(5) 설교자가 구약과 신약을 함께 봉독함으로써 그리스도 중심적인 계시사적 설교가 있는 예배(예. 그리스도가 빠진 구약의 모범적 설교를 지양, 설교 중 찬송은 지양).

(6)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시편과 새 노래를 회중이 함께 찬양하는 예배(예. 찬양대 운영을 재고, 성경 암송 효과를 주는 시편찬송을 부름. 비교. 찬송가 579장).

(7) 신앙고백이 강조되는 예배(예. 사도신경은 물론 니케아신경과 아타나시우스신경도 눈을 뜨고 고백함, 교리 설교).

(8) 삼위 하나님이 회중에게 주시는 복의 선포(혹은 예배 시작은 시 121:1-2를 통한 ‘예배로의 부름’)로 예배를 시작하고 마치는 잔치로서의 예배(예. 다양한 복의 선포 구절을 성경 그대로 사용함).

(9) 그리스도 중심적 절기 예배(예. 부활절, 승천절, 맥추절 대신에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과 연결된 대강절과 성탄절).

(10) 주중의 삶의 예배로 이어지는 예배(예. 삶의 전리품으로서의 헌금)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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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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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기. “초대교회의 예배 연구”, 천안외국어대학교 논문집 2(2002), 6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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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대교회의 예배가 대립의 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다신교적이며 혼합주의적인 그레코-로마 세계의 예배에 관해서는 R.P. Martin, "Worship" in G.F. Hawthorne et al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Leicester: IVP, 1993), 983-84를 참고하라.

(2)N. Solomon, "Jewish Worship", in J.G. Davies (ed.), A New Dictionary of Liturgy and Worship (London: SCM, 1986), 290.

(3)Solomon, "Jewish Worship", 290; Martin, "Worship", 985.

(4)S.C. Farris, "Worship" in J.B. Green et al (eds.),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 (Leicester: IVP, 1992), 981-82.

(5)함창기, “초대교회의 예배 연구”, 천안외국어대학 논문집 2(2002), 73.

(6)C. Nassis, "The Use of Music in Christian Worship: Background and Early Evidence", Phronema 22(2007), 27.

(7)복음서 내용의 직접적 배경인 AD 30년대의 예수님의 삶의 정황은 약 AD 60년대의 복음서 수신자들의 삶의 정황을 투영(transparency)한다. 하지만 양식비평의 가설(. 저자로서의 복음서 공동체를 인정함, 신약 저자가 자료를 사용함에 있어 성령님의 영감 사역을 배제함)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8)정훈택,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신학지남 71(2004, 2), 75.

(9)D.W. Bercot (ed.) A Dictionary of Early Christian Belief (Peabody: Hendrickson, 1998), 699. 그런데 쿨만(O. Cullmann)은 마 24:20을 근거로 일부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에 예배로 모였다고 추론한다. 『원시기독교 예배』 (Early Christian Worship, 이선희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4[1953]), 9.

(10) 칼빈은 행 2:42(-47)에서 초대교회의 예배 요소를 찾아서 스트라스부르크(1540)의 예전을 세웠다:

A. 말씀의 예전

예배로의 부름( 124:8) - 인도자

죄의 고백 - 다같이

용서의 말씀( 10:43) - 인도자

사죄 선언 - 인도자

십계명 찬송

십계명 전반부( 20:2-11) - 교독

십계명 응답송 - 다같이

십계명 후반부( 20:12-17) - 교독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 설교자

성경 봉독 - 설교자

설교 - 설교자

B. 성만찬 예전

헌금 - 다같이

중보기도(Intercession) - 집례자

주기도문 해석 - 집례자

사도신경 찬양 - 다같이

성물(빵과 포도주) 준비 - 집례자

성찬 기도 - 집례자

주기도문 - 다같이

성찬 제정사(고전 11:23-29) - 집례자

권면의 말씀 - 집례자

분병, 분잔 - 집례자

성찬 참여 - 다같이

성찬 후 감사기도 - 집례자

시므온의 찬미 - 다같이

아론의 축도 - 집례자

참고. 송영목, 『칼빈과 신약교회』 (부산: 고신대 기독교사상연구소, 2012), 14-15.

(11)L. Thompson, "Hymns in Early Christian Worship", Anglican Theological Review 55(1973, 4), 461.

(12)학자들은 서정성과 율동적 스타일, 근접 문맥에 나타나지 않는 생소한 어휘, 기독교 교리에 관한 언급, 그리고 세례나 예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힌트로부터 찬송과 신앙고백문을 찾아낸다. R.P. Martin, 『초대교회의 예배』(Worship in the Early Church, 오창윤 역, 서울: 은성출판사, 1989[1974]), 75-77, 83. 하지만 신약 저자들이 그 당시의 찬양과 신앙고백문을 자료로 사용했다는 가설이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거나, 복음서와 서신서가 초대교회의 예전이 확립된 매우 후대에 어떤 공동체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록된 신약에 기초하여 초대교회가 나중에 찬송과 신앙고백을 만들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Nassis, "The Use of Music in Christian Worship: Background and Early Evidence", 27.

(14)Farris, "Worship", 893.

(15)Contra Nassis, "The Use of Music in Christian Worship: Background and Early Evidence", 26.

(16)정훈택,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102.

(17)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13.

(18)Martin, "Worship", 984. 따라서 초대교회의 성찬식이 무거운 분위기의 예수님의 최후만찬이 아니라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나누신 기쁨의 식사(참고. 2:46의 ‘기쁨’, 24:30-32, ‘함께 먹다’로 번역 가능한 행 1:4sunalizo,menoj)에서 연유했다는 Cullmann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설득력 있지만 일방적이다. 『원시기독교 예배』, 15-16.

(19)Cullmann은 행 2:42, 46절의 ‘떡을 떼면서’로부터 포도주를 먹는 것이 반드시 성찬식 때 필요한 순서는 아니었다고 본다. 『원시기독교 예배』, 15.

(20)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15.

(21)Contra 식사와 성찬이 동시에 거행되었다고 보는 정훈택,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112. 하지만 성찬은 원래 일상 식사를 배경으로 한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22)P.L. Gavrilyuk, "The Participation of the Deacons in the Distribution of Communion in the Early Church", St. Vladimir's Theological Quarterly 51(2007, 2-3), 256.

(23)P.F. Bradshaw, Early Christian Worship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10), 4.

(24)Martin, "Worship", 986.

(25)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26.

(26)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27.

(27)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10, 20

(28)나형석, “예배와 집회는 다르다”, 기독교사상 513(2001), 24.

(29)R.P. Martin, "Worship and Liturgy" in R.P. Martin and P.H. Davis (eds.), Dictionary of the Later New Testament and Its Developments (Leicester: IVP, 1997), 1236.

(30)저스틴 마터 시대에(AD 100-165), 예언과 방언 및 통역은 사라졌고, 성찬식은 실제 식사의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제의적 식사로 변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참고. 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66.

(31)나형석, “예배와 집회는 다르다”, 29에서 재인용.

(32)‘주일’에 부활의 예수님이 만유의 주로서 다스리실 미래를 기대하는 종말론적 의미가 있다. Bradshaw, Early Christian Worship, 86.

(33)Cullmann, 『원시기독교 예배』, 6.

(34)계시록에 다양한 예배 언어가 등장한다: ‘찬양하다’(aivne,w, 19:5), ‘감사하다’(euvcariste,w, 11:17), ‘감사’(euvcaristi,a, 5:12-13; 7:12), ‘노래하다’(a;|dw 그리고 ‘노래’[wv|dh,] 5:9, 14:3, 15:3), ‘외치다’(kra,zw, 6:10; 7:10), ‘영광을 돌리다’(doxa,zw, 15:4; 18:7), ‘영광’(do,xa, 4:9, 11; 4:12; 11:13; 14:7; 16:9; 19:7), ‘명예’(timh,, 4:9, 11; 5:12-13; 7:12), ‘기도’(proseuch,, 5:8; 8:3-4), ‘아멘’(avmh,n, 1:6; 3:14; 5:14; 7:12; 19:4), 그리고 ‘할렐루야’(a`llhloui?a,, 19:3, 4, 6). 참고로 proskunei/n의 용어상, 신약에서 20회에 걸쳐 하나님이, 14회에 걸쳐 예수님이 예배(proskunei/n)를 받으셨다. 정훈택,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80.

(35)이 단락은 송영목, 『신약신학』 (서울: 생명의 양식, 2008), 479-96에서 발췌함.

(36)달라스 남감리교신학교의 화이트(J.F. White) 16세기 교회개혁이 이전 시기의 정당한 예전(. 참회, 전체 구원 역사를 반복하는 성찬식 기도, 교회력과 성구집, 성찬 기도를 통한 신앙의 선포 및 초대교회 당시 유대교에서 볼 수 있던 암송을 통한 감사표현)을 많이 버렸다고 비판한다. "Where the Reformation was Wrong on Worship", Christian Century 99(1982, 33), 1074-77.

(37)“이 모든 일(성찬)이 끝난 후 회중들은 각자 서둘러 선한 행위로 뛰어 들어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사도전승 21). 나형석, “예배와 집회는 다르다”, 24에서 재인용.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에 관해 자세한 것은 B. Chapell,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 (Christ-Centered Worship,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2009]) The Calvin Institute of Christian Worship, The Worship Sourcebook (Grand Rapids: CICW, 2004)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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