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 “구약과 목회와의 만남” 세미나

6월 13일(목)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충신교회에서 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가 주최한 제21차 정기논문 발표회가 있었다. 주제는 “전도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였다. 한국복음주의 구약신학회는 1년에 두 차례 세미나를 가지며 상반기에는 “목회자와의 만남”, 하반기에는 “학술토론”을 한다.  

 

▲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날 논문 발표회에 앞서 전정진 회장(성결대학교 구약학)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에서 진재혁 목사(지구촌교회)는 시편 23:1을 가지고 목자와 양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진 목사는 “양은 방향 감각도 없고 매우 고집스런 동물이다. 그래서 길을 잃은 양이 목자가 없다면 그 양은 죽은 양이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양의 특징을 언급한 뒤에 “우리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목자이자 하나님 앞에서는 양인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야 한다.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현창학 교수(합동신학대학원 구약학)의 사회로 김중은 박사(전 장로회신학대학교 제18대 총장, 구약학 교수)가 “세상 만사는 정말 허무한가”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이형원 교수(침례신학대학교 구약학)가 “전도서에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장성길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가 “코헬렛의 대화 전략에 대한 주제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세 발표자의 발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기조강연: 세상 만사는 정말 허무한가 / 김중은 박사  

 

▲ 세상 만사는 정말 허무한가에 대해 발표하는 김중은 박사
구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부 토라(율법), 제2부 느비임(예언서), 제3부 크투빔(문집). 전도서는 크투빔에 해당한다. 토라가 신앙의 지혜를, 느비임이 역사의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면 크투빔은 일상생활의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 크투빔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현실 생활에서 어디까지나 인간이 경험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오래로부터 위를 향하여 재구성한 말씀이다. 그리고 전도서의 핵심적 주제는 죽음의 공포와 현실의 만연한 불의 앞에서 실의와 허무감에 빠져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자포자기하지 않고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도서 본문의 근간을 이루는 1:12-12:7까지는 코헬렛(전도자)이 인생에 대해 스스로 관찰하고 연구하여 그에 근거한 짤막한 철학적 담론들을 자서전적인 독백 형식으로 펼치고 있다. 코헬렛의 담론은 때때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적어도 서른 다섯 번이나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상을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주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서 주신 노동과 먹고 마시는 삶의 즐거움을 즐기라고 하기 때문이다. 

전도서의 저자에 대해 여러 논의를 정리하면, 전도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1:2-12:8까지의 본문에서는 역사적 솔로몬을 포함한 여러 지혜자들의 어록이 하나님이 주신 영감된 계시로서 함께 정리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설교자는 전도서 전반의 본문을 보다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보다 활발하게 사용해야 한다. 

전도서의 핵심 주제는 6가지이다. 첫째, 전도서에서 코헬렛이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하는 근거는 인간의 죄악과 그로 인한 죽음의 현실이다. 둘째, 전도서는 인간 타락의 결과로 인한 창조세계 전반의 비극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셋째, 노동은 즐거움과 고통을 동반한다. 코헬렛은 노동의 이러한 두 가지 역설을 대비하고 있다. 해 아래서 인간의 노동과 수고에는 언제나 이 두 가지가 함께 동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참된 지혜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코헬렛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인생의 때를 즐기라고 말한다. 다섯째, 때와 시간은 중요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코헬렛은 지혜자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며 그 때와 시기를 기다릴 줄 알고, 그 때를 선용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섯째, 코헬렛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 경외 신앙을 강조한다. 

그리고 전도서와 신약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자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다.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지혜자 솔로몬도 실패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왕의 왕이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며, 모세와 같은 예언자이고, 하나님의 지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며, 전도서 12:11에서 코헬렛과 지혜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시는 그 “한 목자”이다.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헤벨’은 추상적인 허무나 무의미를 말하는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다. 헤벨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며 회화적이다. 헤벨은 사실 매우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다. 그럼에도, 헤벨을 헛되다거나 허무하다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은 헤벨의 1차적 의미에서 전이된 2차적 의미다. 따라서 본 강연자는 헤벨의 번역을 1차적 의미에 더 가깝게 ‘잠깐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의 무상함에 대비하여 전도서를 읽으면 그동안 부정적이고 모순적으로 들렸던 역설적이고 반어법적인 코헬렛의 수사학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코헬렛의 지혜는 인생의 무상에 대위하는 영원(올람)의 의미를 독자의 마음에 각인하고 있다. 

발표 1: 전도서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 이형원 교수  

 

▲ 전도서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를 발표하는 이형원 교수
전도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을 위한 다양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불신자들로 하여금 인생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이고 허무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 되짚어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귀한 보고다. 필자에 따르면 설교의 주된 관심은 성서 본문의 내용과 전달 방식을 연구하여 현재의 청중들에게 삶과 신앙을 위한 교훈들을 가장 효과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전도서를 설교하려 할 때 가장 효과적인 연구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문학적인 연구 방법이다. 전도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문학 양식을 동원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의 설교자들이 자신의 설교를 청중들에게 전달할 때에도 다양하고도 참신하고도 창조적인 문학 양식들을 사용해야 한다. 

전도서의 문학적 구조를 논할 때 그 속에 논리적인 일관성이 결여되었거나 모순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도서의 독자들은 전도서의 저자나 최종 편집자가 구조적인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기록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전도서의 각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독특한 주제들을 전체적인 큰 들에서 볼 때 반복, 대조, 비교, 강조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도서에는 다양한 문학적, 수사학적 기법들이 있다. 고전적인 수사법으로 분류하자면 사상적 수사법(직유, 은유, 환유, 역설, 이미지), 언어적 수사법(평행, 반복, 대조 혹은 비교, 열거, 수사적 의문, 교차대구, 소리에 따른 수사) 등이 있다. 

전도서의 주제와 교훈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반복되는 단어와 구문들의 연구가 필요하다. 필자에 따르면 전도서의 주제와 교훈은 ▲ 인간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드는 것들 ▲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비결 ▲ 인간 경험과 지혜의 한계 ▲ 하나님 경외하기 ▲ 지혜로운 삶의 요소들 등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전도서의 구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서문: 인생무상(1:1-11)

(2) 인생무상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1:12-2:26)

1) 지혜를 얻는 것(1:12-18)

2) 쾌락과 사업(2:1-11)

3) 죽음(2:12-17)

4) 수고(2:18-24)

5) 인생의 모든 경험들(2:24-26)

(3) 모든 일에 때를 정하신 하나님(3:1-15)

(4) 인생무상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 죽음, 학대, 수고(3:16-4:16)

(5) 지혜로운 삶에 이르는 길들(5:1-11:6)

1) 합당한 예배(5:1-7)

2) 죽음의 필연성을 아는 지혜(7:104; 9:1-10)

3) 중용의 도리(7:5-8:9)

4) 인간 지혜의 한계를 인정함(9:11-12)

(6) 젊은이를 위한 충고(11:7-10)

(7) 연로한 자의 모습을 통해 얻는 지혜(12:1-8)

(8) 결문: 인생의 본분(12:9-14)

발표 2: 코헬렛의 대화 전략에 대한 주제적 고찰 / 장성길 교수  

 

▲ 코헬렛의 대화 전략에 대한 주제적 고찰에 대해 발표하는 장성길 교수
코헬렛이 전도서의 핵심 주제들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연결시키는가 알아보는 것은 본문의 기저에 흐르는 주제적 통일성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 전도서의 서론부(1:1-11)와 결론부(12:9-14)는 3인칭 화법으로, 본론부(1:12-12:8)는 1인칭 화법으로 기술되어 있다. 일종의 교차대구법이다. 그리고 전도서의 정보구조는 크게 ▲ 코헬렛이 직접 경험한 것과 관찰한 내용들 ▲ 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교훈하는 말과 가르침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코헬렛의 본질적인 물음은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할 수 있다. 

전도서의 상당한 분량을 코헬렛은 사회의 부정적 일면들을 관찰한 결과를 기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코헬렛이 고발하는 불의, 악, 학대, 경쟁심 등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코헬렛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아픔을 공감하며, 인간 스스로 허망함과 생의 무의미함에 빠져들 수 있음을 직시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지혜자는 어떤 사람인가? 코헬렛은 8:5를 통해 지혜자를 행동을 취해야 할 적절한 때와 방법을 아는 자로 정의한다. 그리고 지혜의 유익을 논하면서 코헬렛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한다. 지혜자의 마음은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데 반하여 우매자의 마음은 언제나 현재의 유희와 쾌락을 목적으로 산다. 또한 지혜자는 과거에 묻혀 회상하며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코헬렛은 어리석음보다 지혜가 유익하다는 사실은 발견하면서 지혜의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인간의 미래의 운명은 인간의 지혜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주장한다. 

코헬렛은 죽음을 언급할 때, 죽음 이후의 문제를 자신의 담화의 핵심 이슈로써 끌어들이거나 사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이 있다는 실존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삶의 의미를 반성할 뿐이다. 코헬렛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인간 이해의 한계성, 죽음의 보편성이라는 세 가지 중심 사상을 융합시켜 나간다. 이를 통해 코헬렛은 독자들을 좋은 삶, 즉 복된 생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는 독자들을 회의주의자로 이끌려고 하지 않는다. 코헬렛은 죽음을 단순히 운명적 사건으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음을 말하기 위하여 죽음의 그림자를 끌어들인다. 지혜의 상대적 가치와 죽음의 보편적인 필연성을 동시에 강조하려는 것이다. 

‘헤벨’이란 단어를 번역하는 것은 어렵다. 헤벨의 본래의 문자적 의미는 ‘호흡’(breath) 혹은 ‘수증기’(vapor)다. 헤벨은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하나의 의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불합리’, ‘덧없음’, ‘수수께끼’, ‘불가사의한’, ‘의미 없음’ 등으로 역동적인 번역을 해야 한다. 헤벨을 중심으로 전도서 본문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코헬렛 역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필연적 한계와 위기 속에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가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코헬렛의 담화 속에서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주시는 분, 심판자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비추어진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유한하며 한계가 분명하지만 행복을 찾고 영속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과연 지금도 이 세상의 모든 일들 속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코헬렛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선포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청중 토론 

청중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헤벨’을 해석하면서 허무주의와 긍정 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설교해야 하는가

- 이형원 교수: 헤벨이라는 단어가 허무주의를 낳는다기보다는 단어가 쓰인 문맥을 볼 때 우리로 하여금 허무주의로 바찌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누리는 것이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2. 전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가

- 김중은 박사: 이미 발표에서 ‘한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 이형원 교수: 레슬리 알렌은 “전도서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예언적, 예표론적 자료들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 복음의 길을 열어 주고 있다”고 보았다. 

3. 전도서에서 중용이란 것을 도출할 수 있는가. 중용이란 중간선을 지킨다는 말인가.

- 이형원 교수: 모든 일에 바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지혜가 아닌 것 같다. 목회를 해 보니 시간을 가지며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 현창학 교수: 지혜롭고 의로우라는 것은 계시의 요구다. 그러면서도 전도자는 너무 지혜롭지 말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가지 말라는 것 같다. 이것이 상충되어 보이고, 그래서 이것을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4. 전도서를 읽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구체적, 실천적 지혜를 제시해 달라.

- 김중은 박사: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하면 어렵다. 크게 보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것과 하나님 밖에서 누리는 삶이 천양지차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즐기는 기쁨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간단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각자의 삶이라고 본다. 결국 하나님 있는 삶과 하나님 없는 삶의 차이다.

- 장성길 교수: 본인은 전도서를 보면서 지혜자가 가장 피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보았다. 전도서에서는 본질적으로 지혜롭고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어리석은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전도서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보아야 하는가. 즐기라는 내용 바로 앞에는 절망적인 내용이 나와 있기도 하다. 상충된 것인데, 결국 문맥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김중은 박사: 그렇다. 문학적으로 보면 코헬렛의 어조는 역설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보면 전체적인 해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6. 전도서가 단지 현재를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종말론적 삶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장성길 교수: 자신의 삶만을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실은 그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오는 축복은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을 모두가 누리는 것이 아니다. 다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지만 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 전도자의 안타까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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