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후원을 중단하면 교회는 급격히 줄어 들 것” 캄보디아를 떠나는 가톨릭 신부의 경고

캄보디아에 가톨릭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6세기 초. 선교 역사가 무려 5백년이 넘는다. 그럼에도 가톨릭교회는 성당 5개에 신자 2만 명에 불과하다. 1965년 이 나라에 선교사로 온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 프란시스 퐁쇼 신부가 금년 캄보디아를 떠나면서 가톨릭 선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캄보디아에서의 가톨릭 선교는 봉사와 자선사업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자립하는 교회는 거의 전무하며 물질 지원을 중단하면 교회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퐁쇼 신부는 학자 선교사로서 캄보디아 기독교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1975년 4월 폴포트 정권이 론놀 정부군을 패퇴시키고 프놈펜 시가를 점령할 때까지 론놀 정권의 부패에 실망하는 바람에 그만 폴포트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프놈펜 점령 이후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폴포트 군대에 충격을 받고 이 사실을 서방 세계에 알렸다. 당시 캄보디아는 완전히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대량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유일한 서방사람으로 이 사실을 프랑스 언론을 통하여 전 세계에 보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서방 세계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것을 믿지 않고 도리어 퐁쇼 신부를 비난하였다. 특히 미국을 가장 많이 비난하는 미국인 지식인 노암 촘스키와 논쟁은 유명하다. 퐁쇼 신부는 유일한 현장 목격자(eyewitness)로서 무려 1년을 프놈펜에서 버티다가 결국 추방당하고 말았다. 당시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기술한 저서가 바로 "그라운드 제로"였다. 땅에 아무도 생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글로 온 세계가 놀랐다. 노암촘스키는 끝까지 폴포트 군대의 잔인함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를 침공, 폴포트 군대를 산으로 몰아내면서 폴포트의 학살이 만천하에 완전히 알려지게 되었다.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은 윤리의 잣대가 균형을 상실, 무조건 "약자"편을 드는 이론이 중대한 모순을 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차 대전 이전에도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히틀러의 독일 정권이나 도조 히데끼의 일본을 좋게 보고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였다. 이런 연유로 루즈벨트가 인내로 기다리다가 진주만 폭격을 받게 된 것이고, 이에 미국인들이 분노하자 결국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이다.

퐁쇼 신부의 말에서 중요한 것은 "가톨릭이 돈으로 신자를 사고 있다. 캄보디아 교회는 지원을 중단하면 태양에 눈 녹듯 교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이는 캄보디아에 자립적 교회가 없거니와 자립 의지조차도 없다는 것을 우려하며 한 말이다. 개신교회도 사실 동일한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도 쇠퇴하고 있다.

최근 가톨릭 지도자가 가톨릭교회의 쇠퇴를 탄식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가톨릭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의 주교와 신부, 수녀가 있으며 12억 신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가톨릭의 대륙인 남미에서 매년 100만명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2010년 미국에서는

1,373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보고가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신도가 증가하고 있으나 구라파에서는 신도가 감소하는 추세이며 가톨릭의 나라 이탈리아에서조차 수십 년 동안 신자수가 2/3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에서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주의 교회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뉴스). 브라질 사람 네 명 중 한 명은 복음주의 신자라고 한다. 4천 4백만 명의 복음주의 교회 신자들의 사회적 지위도 과거 가난한 계층에서 신분상승하여 복음주의 단체들이 방송, 라디오 네트워크를 소유하며 정당도 조직할 정도이다. 가톨릭 신부들은 정치활동을 못하는 데 복음주의 신자들은 활발하게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니와 복음주의 신자들은 강한 보수 성향으로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이혼 등 일부 가톨릭이 금지한 윤리에 개방적인 면도 있다. 가톨릭은 브라질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세력 집단이 되고 있다며 이를 우려하고 있다. 국회의원 50%가 복음주의 신자들이며 상원 의원의 경우도 복음주의자가 68석을 차지했다. 반동성애주의자인 동시에 복음주의 설교자가 인권위원회 위원장이다.

3. 미얀마 갈수록 종교인종 갈등 심각

최근 미얀마 법원이 불교 여신도를 폭행한 무슬림 남성에게 징역 26년을 선고하자 로힝가족 이슬람 교도들이 강력 반발, 종교와 인종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발단은 이슬람 교도 남성이 24살의 불교도 여성을 폭행하자 이 소문을 들은 미얀마 불교도들이 이슬람 교도들의 마을을 습격(왼쪽 사진), 한 명이 죽고 많은 모스크와 고아원이 불탔다. 지난 3월에도 양편의 충돌로 수천 명의 가옥이 불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작년만 해도 미얀마에서 충돌로 200명이 죽고 14만명의 이슬람 교도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말았다. 양측의 충돌은 이웃 나라 말레이시아에서도 일어났다. 말레이시아로 피신한 로힝가 이슬람 교도들이 말레이시아의 한 도시에서 불교도 미얀마인들에게 보복 폭행을 하여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고 말았다.

동남아에서 개혁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미얀마는 종교와 인종 충돌 외에 카친 등 소수 부족들이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하면서 무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정부가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카친족 8만5천명은 전쟁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 갈수도 없는 형편이다(오른쪽 사진).

4. 사우디 법무부 장관이 참수 대신 총살형을 강구 중 엄격한 이슬람법을 시행, 수니파 퓨리탄 국가로 불리는 사우디는 해마다 수백 명에서 수십명이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보는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칼로 목을 자르는 끔찍한 형벌이다. 최근 법무부 장관이 참수가 가혹하다고 판단될 뿐 아니라 참수를 하는 집행인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총살형을 제의했다고 한다. 금년에만 벌써 40명이 참수형을 당하였고 작년의 경우엔 76명이 참수를 당했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는 간음한 자나 큰 죄를 범한 자는 참수형을 하도록 가르친다. 간음의 경우 주로 여자들이 참수를 당한다. 특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가정부들의 참수형이 많아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 항의하였지만 사우디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제인권단체들이 이 문제를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물론 사우디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우디는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참수형이 집행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이다.

최근 사우디에서는 한명의 레바논 남성과 사우디 남성이 한 여성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며 이들을 6개월 징역에 300대의 태형에 처했다.

5. "성과 속"이 충돌하는 터키

중동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는 “성과 속”의 전쟁이 터키로 번지고 있다. 최근 터키도 에르도안 수상의 이슬람주의 정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세속주의자들이 이스탄불의 케말 파샤를 기념하는 공원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강하게 반발한데서 데모가 시작되었다. 케말 퍄샤는 1923년 칼리프 (혹은 술탄) 왕국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세속화를 추구하였다. 사실 이는 구실에 불과하다. 강력한 이슬람 신정주의를 추구하는 에르도안의 이슬람화 정책에 세속주의자들이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심야에 술을 못 팔게 한다든지 거리에서 청년 남녀들이 키스를 못하게 한다든지, 스튜어디스들조차 긴 옷에 립스틱도 바르지 못하게 할 정도인 이슬람 율법주의를 강요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세속주의적 군부를 제압하고 많은 장성들과 언론인들을 구속하는 등 서방 언론은 이미 작년부터 터키의 불안하다고 예견하였다. 터키는 본래 비잔틴 기독교(희랍정교회)의 종주국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터키 서남부에 있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지역에 신자가 하나도 없다는데 의아해 한다. 터키는 어떤 나라인가? 참고로 20세기 초 터키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터키의 기독교인들은 사이프러스로, 사이프러스의 이슬람 교도들 가운데 원하는 자들은 터키로 이동하도록 하여 현재의 소아시아의 교인들이 다 사이프러스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한국 교회는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이란, 터키 등 중동의 많은 국가들에서 현재 전개되는 성과 속의 대결을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터키"라는 단어는 투르크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인종은 몽골족의 4촌격인 돌궐족이다.

중국은 터키를 오랑캐로 여겼다.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이들 “오랑캐”의 침략을 막기 위함이다. 9세기에 아랍 무슬림이 중앙아시아를 침략하자 투르크족은 중국에 대한 반발로 아랍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고 만다. 당시 중앙아시아에는 네스토리안교회가 아주 강세였다. 그러나 대부분 투르크 부족장들은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만다. 투르크는 용맹하여 계속 진격, 서구를 위협한다. 셀주크 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서방의 가톨릭은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다. 이후 오스만 투르크라는 더욱 강력한 투르크 족이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자 세계최대의 정교회 성당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만다. 부패한 정교회와 동로마제국은 이슬람교의 투르크에 무너지게 된다. 수도 이름도 이스탄불로 바뀌고 성당은 모스크로 변한다. 성 소피아 성당에는 지금도 십자가와 초승달 상징(이슬람교 상징)이 공존한다. 케말 파샤가 세속화를 추구하면서 모스크의 집회가 중단되고 관광명소로 공개된다.

당시 로마군대와 비잔틴 군대가 힘을 모았다면 투르크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개탄한다. 비잔틴을 증오한 로마 관료들과 군인들은 도리어 투르크“이방군대”의 진입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마르틴 루터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부패한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아퀴나스, 루터, 칼빈 등 가톨릭 신학자들이나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 파워”를 적그리스도로 말할 정도로 이슬람을 위험한 종교로 간주한다.

“무함마드는 일찍이 비잔틴 제국 침략을 명령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무함마드가 이미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 왕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이슬람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하마드는 죽기 전 아라비아 주변의 많은 임금들과 관원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이슬람을 받아들이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동로마 제국 왕에게도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한다. 내용을 소개하면, “바로 지금, 나는 당신을 이슬람으로 초청합니다. (알라에게 항복을 의미한다).

이슬람교를 영접하시오. 그러면 안전할 것이요. 이슬람교를 영접하면 알라가 당신에게 갑절의 상급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슬람의 이 초청을 거절하면 귀하는 백성(당신 나라)을 잘못 다스린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무하마드 사후 아라비아의 무슬림 군대가 중동과 구라파 일부, 그리고 북아프리카로 진격하고 그 다음으로 중앙아시아까지 칼로 진출한 것이 바로 무하마드의 이 초청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참호를 파다가 검은 돌에서 섬광이 비치는 것을 보면서 알라의 특별한 영감이 임한 것으로 확신한다. 그 영감이란, 아라비아 주변은 물론 비잔틴까지 정복을 허락받은 것으로 그는 무슬림들에게 “우리는 코스로스(페르시아 왕)와 시자(동로마 제국 임금)의 보물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무함마드의 가장 권위 있는 자서전에 근거한다. 무함마드 사후 150년 뒤에 Ibn Ishaq이[알라선지자의 자서전](Sirat Rasul Allah)을 썼는데, 이 자서전은 무함마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무하마드 자신이 27번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오토만 제국 역시 이슬람의 전파자 노릇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한 셈이다. (Robert Spencer, The Truth about Muhammad(New York: Regnery Pub., 2006), 152).

최근 터키 세속주의자들의 완강한 저항의 이면에는 에르도안의 야심이 있다. 그는 경제발전의 여세를 몰아 앞으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 과거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아랍의 이슬람과는 달리 범투르크주의를 항상 내면에 깔고 있다. 죽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투르크인들을 이슬람교로 통일하여 투르크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중국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위구르 역시 투르크인들이다.

“오르한 파묵의 “눈(2006)”

터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눈(2006)”은 터키의 종교와 정치 갈등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전통과 현대, 세속과 종교, 군부와 이슬람의 충돌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는 터키인의 고뇌가 잘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현대화를 지향하는 케말주의자(우파)와 그에 저항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좌파)가 있고, 히잡을 벗는 대신 자살을 택하는 여학생들과 교칙을 고수하려는 학교가 있다. 또 카르스의 가난한 현지인들과 대도시 이스탄불의 부르주아,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테러리스트와 경찰, 군부와 언론, 쿠데타 세력과 민중,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현재 터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6. 죠슈아 링겔 박사, 한국에서 무슬림 전도 및 교회 훈련을 위한 <이슬람 학교 운동> 시작권면

6월13일 한국 이슬람화 저지와 전향적인 무슬림 복음화 전략 마련을 위한 조슈아 링겔 교수 초청 세미나가 잘 마쳐졌다. 링겔 박사는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 5개국의 언어를 연구하였다. 특별히 문명 충돌론의 이론가 사무엘 헌팅톤의 제자이다.

박사는 서울과 대전에서 소규모 강의 세미나를 가졌다. 6월14일, 이슬람대책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링겔 박사를 초청, 이슬람 학교 운동 취지와 목적을 들었고 위원회는 한국에서도 이 운동을 하도록 결정하였다. 즉 <Mission Muslim World University>를 한국에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12명의 준비위원을 조직하였다.

관련 커리큘럼의 한국 도입은 이슬람 선교를 위한 무슬림 전도 및 교회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 도입을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 무엇보다 재정이 필요하다. 특히 링겔 박사는 한국 교회의 연합과 순수한 리더쉽을 강조하였다. 미국에서는 이 훈련 커리큘럼을 만드는데 무려 120만 불 이상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일을 위하여 교회와 선교단체 대표 12명을 준비위원으로 초청, 1차 모임을 7월4일에 가지기로 하였다. 특히 위원회 구성에서 있어 내부자 운동을 하는 선교 단체는 제외시키기로 하였는데 이것은 201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대회에서 인사이더 선교전략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관련 진행 사항들은 차후 공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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